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136
136화
재향군인단체.
이름만 들으면 수백만 참전자들이 여기에 속해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재향군인단체는 각 지역마다 제각기 형태로 존재했다.
전쟁 끝나고 다들 집에 돌아가고 싶어 했지 남아서 이런 조직에 가담할 생각 자체를 안 했으니까.
파리 길거리에 흔히 보이는, 평범한 펍으로 착각해도 이상하지 않은 한 식당에 들어선 드라로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몇몇 여성을 제외하면 다 남성이었는데 어렵지 않게 그들 속에서 장애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목발을 짚은 자, 팔이 꽉 차 있어야 할 옷이 펄럭거리는 자, 눈이 안 보이는 자, 심지어 정신이 멀쩡치 못한 자까지.
들어오자마자 프랑수아는 이 젊은 이들이 모두 참전자들임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어쩌다가 여기에 모인 것이오?”
“다양한 사연을 어찌 이 자리에서 다 말할 수 있겠냐마는, 하나같이 상처받은 이들이오.”
“그리 보이오.”
“몸 말고. 마음 말이오. 술과 동료들을 찾아서 이 펍으로 몰려든 거요.”
웃고 떠드는 소리에 시끌벅적하지만 프랑수아는 그들이 무언가를 감추려고 더욱 크게 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음식과 술이 널린 식당을 지나 건물 2층으로 올라가니 조금은 대화하기 좋은 공간이 나타났다.
“그리고 여기가, 우리 재향군인단체 본부요. 언론 투고, 협상, 단체 활동 및 생계 지원 등 모든 게 결정되지.”
안내인의 손짓에 프랑수아는 홀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쌓인 서류와 함께 괴팍해 보이는 서른 남짓의 남성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절 찾으셨다고.”
“프랑수아 드라로크 육군 중령이오. 내 부하들이 여기 속해 있다고 하길래 한번 찾아왔소.”
“모리스 다르토이(Maurice d‘Hartoy), 이 보잘것없는 것들의 대표를 맞고 있습니다.”
책상에서 일어나 소파로 걸어오는 그 몇 미터 거리를 모리스는 지팡이를 짚으며 이동했다.
“그쪽도 몸이 불편한가 보군.”
“어디 이 다리만이겠나요. 청력, 시력 저하는 기본이고 위장과 변비로 평생 밥도 제대로 못 먹는 몸이지.”
“그 정도 부상이면 참전 장애 연금을 탈 수 있지 않소?”
“모르는 소리 마시죠. 그쪽이야 앞날 탄탄한 신사지만 우린 다릅니다. 다리가 잘려도 연금을 못 받는 놈들이 널린 판에 고작 총상으로? 어림도 없지요.”
피식 웃으며 손을 휘적이는 게 일말의 가능성도 기대하지 않는 모습이다. 그런 모리스의 태도가 프랑수아를 더욱 착잡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구직을 도와주기도 하오?”
“시도는 합니다만 그것도 어렵죠. 고분고분한 여편네들 더 싸게 부려먹는 게 전쟁터에서 나라 지키다가 다친 우리 쓰는 것보다 나을 테니. 설령 몸이 멀쩡해도 우리가 파업이라도 일으킬까 봐 되려 참전자들은 꺼립니다.”
모리스의 말에 프랑수아는 눈을 잠시 감았다.
‘이곳은 파리다. 일자리가 넘쳐나는 곳일진대 참전자들을 피하다니, 이게 현실이란 말인가.’
공장주들이, 자본가들이 후방에서 안전할 수 있던 게 누구 덕인가. 북부 공업지대를 되찾고 알자스-로렌 중공업 지대를 얻은 게 누구인가.
전부 1층에서 웃고 떠드는 저들 덕이다. 저들이 목숨 걸고 싸웠기에 그들이 존재하는 것인데, 어찌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하물며, 사회를 넘어 국가마저도 말이다.
“연금 이야기를 꺼내는 걸 보니 아무래도 파리에 온 지 얼마 안 된 분 같은데 현실을 알려드립죠. 여기서 연금을 확실히 탈 수 있는 이들은 오직 한 종류의 인간뿐입니다.”
“누구요.”
“참전하지 않고 꼬박꼬박 세금낸 이들.”
“…….”
전쟁 중에 주급도 안 주면서 목숨 걸고 싸우라고 던진 국가한테 소득도 없이 세금을 낸 군인이 있을 리가 없다.
“참전하지 않고, 세금을 밀리지 않고 낼 수준의 소득과, 전쟁 피해를 거의 입지 않은 이들이란 소리군.”
“잘 이해하셨네.”
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른다. 그의 형, 레몽이 죽었을 때의 기분이다.
‘우린… 도대체 무엇을 위해 싸웠던 건가.’
그토록 처절했는데. 정말 죽음이 너무 친숙하여 일기가 유언장과 다를 바 없는 삶이었는데.
그 종착역이 사회와 국가로부터 버려져 이 펍에서 서로의 상처를 핥는 게 전부라면. 자신이 지키기 위해 싸워온 나라가 고작 이런 곳이었다면.
지난 십수 년의 삶이, 자신이 충성하던 국가로부터 송두리째 부정당한 것이다.
“어디 돈 좀 있는 집안 사람 같은데 참전자면 갈 때 후원 좀 해주십쇼.”
“후원?”
“생활고에 자살까지 하는 이들이 널렸는데 어떻게든 한 푼 두 푼 모아서 도와줘야지요. 아래층 식당도 그런 용도고.”
“꽤 있나 보오?”
“없습니다. 우리한테 줄 바에 어디 고아원에 기부하고 자기 명성이라도 드높이면 몰라, 다 큰 어른들한테는 동정도 아까워하는 게 이 나란데.”
이미 말라버린 저자의 애국심은 인내의 수준을 넘은 것 같았다. 짧은 시간이지만 자신도 회의감을 느낄 정도인데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젊음을 바치고 가정을 꾸려야 할 저들은 얼마나 더하겠는가.
“마지막으로, 자넨 어디서 복무했소?”
“기병대. 레지옹 기사십자 훈장도 탔지요. 지금은 퇴물 예비역 기병대 중대장일 뿐이지만.”
그는 주머니에서 훈장을 꺼내 책상 위로 던져놓으며 말했다.
누구나 자랑스러워할 훈장이 자랑스럽지 않은 듯했다. 그들을 아무것도 아닌 취급하는 국가처럼 모리스의 훈장은 온갖 때가 타서 더러워진 상태였다.
“에휴, 그나마 얼마 전 르노 공장에서 한 스무 명 뽑아가서 다행이었지. 아니었으면 적자에 운영이나 제대로 했을랑가 몰라.”
“르노? 그런 기업과 연관되어 있소?”
“응? 모르셨나 봅니다. 여기 가장 큰 후원자가 르노의 주주인 베르게르 모헬 대령님입니다. 그분 아니었으면 진작 문 닫았을걸요. 당장 우리 먹고 살길도 없어서 난리인데 그분 도움이 아니었다면 파리에 어떻게 식당을 열고 사무실을 유지하겠어요?”
“…….”
자신의 처남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묵묵히 돕고 있었던 거다.
“나도 후원하지. 아니, 가입하겠소.”
“딱히 도움이 필요해 보이진 않는데… 뭐, 우리야 언제든 환영입니다.”
그 자리에서 가입서를 작성하고 프랑수아는 건물을 나왔다.
여전히 아름다운 파리의 밤은 길거리의 가로등마저 눈부시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밤길의 빛보다 어둠에 시선이 갔다.
잘 보이지도 않고, 무엇이 있는지 알 수도 없어 평소라면 기피했겠지만 오늘만큼은.
뚜벅, 뚜벅
그 어둠속으로 걸어가고 싶었다.
프랑수아에게 빛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았다.
***
샤를로트와 가스파르를 계속 오를레앙에 두자니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해서 두 사람을 파리로 이사하게 했다.
오를레앙-라인란트보다는 아무래도 파리-라인란트가 거리적으로 훨씬 짧으니까.
샤를로트는 계속 라인란트로 오겠다고 했지만 아서라. 아무리 프랑스인이 판치는 곳이지만 곳곳에 사는 독일인이 적지 않다.
괜히 나 편하자고 가족을 위험하게 만들 순 없다.
자, 이제부턴 군인 베르게르 모헬 대령이 아닌 자본가 베르게르 모헬의 시간.
열심히 살면서 힘들 때가 오면 모아온 통장 잔고를 보라고 하였다. 그럼 과연 내 재산은 얼마일까?
주식, 땅, 인적물적 자원 등 모든 게 워낙 왔다갔다 할뿐더러 인간 자체의 가치는 수치로 표현하기 어렵기에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내 재산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나라는 인간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딱 돈으로만 순위권을 매기자면, 장담컨대 이 나라에서 양손가락 발가락 끝자락에는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대출까지 받아서 오르는 시장에 탑승했기에 자산이 늘어난 것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성장을 이룬 건 물류 운임비가 28배 폭등하던 시기가 아닐까 싶다.
일부는 단기적인 현상이고 곧 정상화 될 거라 했지만 이후 미합중국이 참전하면서 다시 한번 뛰었고 전후에도 유럽이 미국 생산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어 여전히 높은 실정이다.
최근에서야 정상화되어 40%대 운임비를 유지하고 있지만 과거 10~20%대 운임비는 다시 보기 힘들 것 같다.
그럼에도 내 철칙이 하나 있으니 절대 공장을 소유하지 않는 것이다.
이미 프랑스 전체가 내가 돈 많은 거 아는데 여기에 내 이름 붙여서 경영까지 한다? 사내 복지 하나하나에 정치적 의미가 부여되도 이상하지 않고 무엇보다, 그냥 할 이유가 없다.
귀찮은 것도 있고, 솔직히 내가 사업에 재주가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어차피 돈은 더 필요 없긴 해. 그냥 벌 수 있을 때 번다, 딱 그 정도 느낌이지.”
얼마나 세상이 미쳐돌아가면 광란의 20년대라는 이름이 붙었겠어. 그냥 슬쩍 편승해서 한번 먹고 나와야지.
게다가 그 뒤로는 기억나는 것도 없단 말이야.
그렇다고 돈 되는 거 다 손댄다고 깝쳐봐라. 아예 조선까지 가서 동양척식주식회사 지분이라도 살 순 없잖은가.
“후후, 그래도 얼마 전 모노그램 무늬 보고 하나 건지긴 했지.”
상류층들이 입는 옷이라고 집에 몇 개 있길래 봤더니 샤를로트가 준비해놓은 옷들이었다.
그곳에는 익숙한 단어가 복제 방지를 위해 실로 새겨져 있었는데, ‘루이비통’이라 적혀 있었다.
당장 프레드릭을 보내, 앞으로 내가 입고 다니며 홍보하는 조건으로 약간의 지분을 매입할 수 있었다.
뭐, 내가 자본가로 활동하는 것은 딱 이런 수준이 전부다.
그 외로는 고아원, 교회, 성당, 재향군인, 등 후원하는 걸 제외하곤 그냥 언제나 똑같다.
매번 프레드릭이 나한테 ‘이번 달 주요 자산 병동은 어쩌구 저쩌구’ 떠들긴 하는데 어디 누가 내 돈 횡령했단 소식만 아니면 크게 신경쓰지도 않는다.
이 부라는 것이 없을 때나 확실한 목표가 되지, 게임마냥 순위권에 집착하거나 돈이 주는 권력을 원하는 게 아니면 별로 신경도 안 쓰게 되는 것 같다.
근데 이건 전부 평소에 하던 말이고.
“프레드릭, 여기까지 올 필요는 없었는데.”
“미국 갔다 왔으니 한번 직접 보고해야지요.”
이제 나이도 있는데 라인란트까지 직접 오게 하니까 괜히 죄책감 느껴지네.
미국까지 보내놓고 할 말은 아니다만 아무튼 내 양심은 아직 살아있다는 점이 중요한 거다.
“프랑의 가치는 과거에 비해 회복세에 접어들었습니다. 이대로라면 아마 올해 내로 1914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경제 성장이 아니라, 단순 회복이란 소리군.”
“그렇습니다.”
영국과 1, 2위를 다투던 금융강국은 사라진 지 오래고 우리 프랑스는 농업부터 다시 차근차근 쌓아 올라가려고 한다.
국내 기아 현상이 일어날 정도로 식량이 부족할 뻔했지만 다행히 미국의 수입, 그리고 신이 유럽의 축복을 몰빵했다는 토지 덕에 3년 만에 다시 안정화되기 시작했다.
그럼 경제가 좋으냐 하면 그건 아니다.
“1919년을 시작으로 올해 22년까지 프랑의 가치는 떨어지고 물가는 극적으로 오르고 있습니다. 반면 노동자들의 임금은 크게 변하고 있지 않지요.”
“아주 위험하단 소리 같네.”
“숨만 쉬어도 월급이 줄어드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미국 측 예술인들이 프랑스에서 돈을 쓰고 간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지금 파리의 밤에는 재즈라는 래그 타임도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달러 프랑 환율이 그 정도란 소리군.”
이해가 확 되네. 미국 예술가들이 돈을 쓰고 간다니. 심지어 잡종들 문화가 유입될 정도로 많이? 밀랑, 뭐 하는 거야. 광란의 20년대인데 이리 성적이 처참하면 어떻게 해.
“정세는 이 정도이고, 현금 유통은 일단 주식 매도보다는 대출을 주로 이뤘습니다. 아무래도 더 오르는데 지금 팔기는 아까워서.”
“대출 이자는?”
“주식이 오르면 더 대출을 받아야지요.”
“…계획이 다 있는 거지?”
“그럼요.”
프레드릭, 분명 전통+고지식 금융인의 표본과도 같다고 생각했는데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설마 그 방탕하고 더러운 문화에 물든 거 아니지? 막 가방에서 그 나이에 온갖 더러운 쾌락을 담은 ‘소년의(La Garçonne)’ 책이 나온다던가….
그래도 광란의 20년대라는데 그 정도 대출이야 무섭진 않다.
“자, 그럼 이 돈을 들고 북부로 가면 되네. 가서 르노 회장 좀 만나고 와.”
“투자입니까?”
“거래에 가깝지?”
나에게는 수준 높은 전차의 개발 및 공급. 그는 꾸준한 매출과 현금 부족한 이 시기의 투자를 얻으니 딱 좋은 거래 아닌가.
“전차 개발과 생산을 직접 하시려면 부족하실 텐데요.”
“걱정 마, 계속 넣어줄 거야.”
“언제까지 말씀이십니까?”
“강력한 화력을 지닌 30톤짜리 전차가 30km 넘는 속도로 야지를 100km 이상 이동하는 게 가능할 때까지?”
“……”
응, 나도 알아. 돈 엄청 많이 들어갈 거야. 근데 어떻게 해.
이제 국가 병기창에서 전차 생산 안 하겠다는데.
그럼 싸제 만들어야지.
어차피 싸제가 언제나 군용보다 좋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