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160
160화
전차, 내 시그니처 무기.
어쩌다 보니 사람들이 전차 하면 나를 떠올리는 시대에서 내 임명식에 전차가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와우…”
“세상에, 저게 뭐랍니까. 육상전함이라는 말이 정말 들어맞는군요!”
“55톤… 완전무장 하면 그 이상이겠지. 저딴 무기를 만들어대니 요새를 지을 필요가 없는 거야…”
어째 나보다 르노 중전차 모델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다만 그러려니 한다.
‘두 대만으로 도로폭을 채웠어. 내가 봐도 무식해. 거의 MK시리즈라니까.’
주력은커녕 실전성도 떨어진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딱 하나의 기능은 엄청나다.
덩치에서 나오는 압도감.
걸어다니는 성채라는 느낌이 확 드는 게 저번 행진 때 탔던 전차보다 시야가 확실히 높다.
그렇다. 난 오늘도 전차에 탑승한 채 파리에서 행진을 하고 있다.
벌써 두 번째. 다만 이번에는 해외 손님 및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열병식에 가깝다.
수백 대의 전차가 도로를 꽉 채운 모습은 나조차도 없던 자신감이 생길 만큼 위용이 넘친다.
여기에 제2의 사라예보가 되고 싶진 않아 거리마다 군인들이 통제하게 만들었더니 약간 기분이 묘하다.
그 기분을 나만 느끼신 게 아닌지 페탱 원수님의 표정도 이상하다.
‘자네, 지금 뭐 하나?’
‘왕위를 계승… 이 아니고 열병식 마치고 원수 임명받으려고요.’
오랜만에 ‘눈으로 말해요’를 시전했더니 뒤를 슬쩍 보시더니 계속 대화를 이어가신다.
‘내 뒤에 있는 저 사람들은 뭔가.’
‘제 친구들하고 여기저기 유력자들 같습니다.’
‘네놈이 부른 거군?’
‘흠흠, 국가 행사에 초대한 거죠.’
‘군이 파리 점령하는 듯한 이 행사에 말이지.’
여기까지 이어진 대화는 북소리와 함께 마르세유의 노래가 시작되자 끝났다. 그러나 탐탁지 않아 하는 원수님의 시선에 괜히 땀이 난다.
이번에는 진짜 무력으로 어찌해보려는 게 아니었다. 그래도 꼴에 원수인데 열병식은 당연히 해야 하는 행사 아닌가.
그렇다고 열병식을 뭐 라인란트에서 해? 그럼 독일이 초청 안 해도 달려올 것 같긴 하다만.
결국 오해다. 난 정해진 행사 절차를 따랐을 뿐인데 왜 원수님마저 의심하실까.
“베르게르 모헬 소장. 앞으로.”
그래, 이것도 문제야. 왜 아직도 소장인데? 언제는 막 나이 마흔 만 넘겨도 총사령관 시켜줄 것처럼 말하더니 아직도 안 시켜주네.
그리고 말이야.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페탱 원수님이다.
날 도와주시겠다는 의지는 너무나 감사한데.
딸깍.
툭.
“무거운 거라네. 정말 무거워.”
자신의 계급장과 원수봉을 내게 건네주시는 퍼포먼스는 조금 과하지 않나 싶다.
나도 그땐 마냥 동의했지만 저, 저거 봐봐.
“뒤에 보이십니까. 두메르그 대통령님 표정이 시뻘건데요.”
“대통령이 임명해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나. 자넨 원수직을 달았지만 내 손안에 있으니 내 눈치 보라는 뜻이야.”
딸깍.
“사람들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요?”
“자네만 알면 돼.”
내가 볼 땐 내일이면 프랑스 시골구석까지 페탱 원수가 내 혁명을 공식 승인했다고 소문날 것 같은데.
허나 그딴 소문 신경 안 쓰는 양반답게 자신의 봉까지 건네시곤 쿨하게 자리로 돌아가셨다.
가슴팍에 원수를 나타내는 동그란 패까지 달아주시자 난 정식으로 임명한 원수, 마샬 제너럴이 되었다.
이로써 나는 프랑스 공화국의 세 번째 원수가 되었다.
페르디낭 포슈.
필리프 페탱.
그리고 이 몸, 베르게르 모헬.
사후에 추서 느낌으로 원수 칭호만 받은 조제프 시몽 갈리에니와 루이 프랑셰 데스페레 두 장군만 제외하면 난 3대 원수가 되었다.
심지어 페탱 원수님이 오늘을 기점으로 완전히 은퇴하시고 포슈 장군님께선 안 계신다는 점을 생각하면.
‘유일무이 원수!’
약간의 교통정리가 필요하겠지만 어차피 난 군에서 한발 물러날 테니 딱히 문제될 것은 없어 보인다.
의전상이야 그냥 베이강 총장님 위로 올려주면 되겠지. 허나 그 외로는 다 내 아래다.
저 멀리서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날 보는 페탱 원수님이 영혼 없이 박수를 치신다.
난 그가 볼 수 있도록 가슴팍을 좀 더 앞으로 내밀고 차렷한 자세를 취한 채 씨익 웃어 보였다.
그럴수록 몇몇 이들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가는 것 같다만… 그건 착각일 거다. 내가 메두사도 아니고 왜 저래. 셈나면 너희도 군생활 20년 하든가.
고작 이거 하나 얻으려고 그간 발버둥 쳤나 싶지만 뒤를 돌아보니 또 의미가 색다르다.
나의 명령만을 기다리는 수많은 장병들. 그 뒤로 보이는 엄청난 수의 전차.
내가 프랑스의 운명을 완전히 바꾼 게 아닐까 싶은 생각까지 한다면 너무 나간 생각일까.
취임 연설을 위해 앞으로 나가니 준비해온 말들이 제대로 기억이 안 난다.
특별한 목적도, 사기를 고취시킬 생각도 없으니 난 그저 내가 느끼는 바를 필터 없이 내뱉기로 했다.
“어려운 시대, 무거운 자리. 그리고 남겨진 우리. 허나 걱정하지 마라.”
역시 이 시대 사람이 아니어서 그런지, 냉정히 스스로를 평가하자면 난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에 걸맞은 인간은 아닌 것 같다.
할 말이 그리 많지 않아 단어를 끊어서 하나하나 강조하듯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만약 지옥을 통과하는 중이라면, 멈추지 말고 계속 가라. 만약 두 갈래 길에서 갈등하고 있다면, 주저하지 마라. 오늘을 후회하지도, 내일을 걱정하지도 마라.”
그래도 일단은 원수 임명식이니 정치보다는 군에 관련된 내용으로 해야겠지.
“내 말을 듣는 모든 이에게. 그 어떤 민족도, 국적도. 그 어떤 정치나 이념도 프랑스 위에 있을 순 없으니 괘념치 말라.”
평등, 애국, 상호존중, 이런 거 듣기 좋은 느낌 좀 넣고.
“어차피 우리가 이겼으니까.”
“와아아아아!”
그리고 마무리는 애국주의로.
음, 더는 할 말도 없다. 여기서 끝내는 게 나을 것 같다.
“프랑스가 다시 위대해지길,”
고작 이 몇 마디 내뱉는 데 1분은 족히 지난 것 같다.
그럼에도 군복 안 입은 사람들까지 가만히 자리에 있지 못하는 것을 보니 내가 좀 열심히 살아왔나 보다.
“베르게르 모헬 만세!”
“프랑스여, 영원하라!”
“마샬드 제네랄 만세!”
파리 전체가 함성에 진동한다.
그저 원수 임명식에 불과한데 너무 일을 키운 것인가 싶기도 하지만.
‘효과는 좋네.’
국빈들 자리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아주 긍정적이다.
말로만 듣는 것과 실제로 파리의 분위기를 보게 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니까.
특히나 폴란드에서 온 피우수트스키 총리의 표정도 볼만하다.
도열한 전차와 군인들. 보이지 않는 멀리에서도 터져라 외치는 파리 시민들.
나와 같은 원수이자 한 나라의 독재자인 당신은 과연 이 광경을 재현할 수 있을까? 약간의 우월감까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몇 가지 행사 절차가 더 지나니 임명식은 마무리되었다.
이후 저녁 시간.
임명식의 진짜 목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
몇 블록 떨어진 곳까지 엄청난 수의 군인들이 통제하고 있는 파리의 한 번화가의 건물.
고전 양식이 담긴 건물 하나를 통째로 빌려서 시작된 파티는 1층에 온갖 게스트들이, 그리고 귀빈들이 2층에 머물렀다.
아래는 화려한 사치와 시끌벅적한 파티가 밤새도록 이어질 예정이었다.
혹시 죽었다가는 내 계획이 틀어질 수 있는 인간이 한둘이 아니라 부득이하게, 진짜 아무런 의도도 없이 난 파리의 일부를 통제했다.
파비앵이 먼저 만났다는 피우수트스키 총리. 우리 정부에서는 어떻게든 자신들의 손님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하는 것 같다만 이미 이 인간은 나 하나 보고자 며칠째 파리에 있다.
‘파비앵이 이미 나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거라 했지. 굳이 가면을 쓸 필욘 없겠군.’
괜히 품격이니 격식이니 하는 것들 다 치우고, 난 편하게 그와 대화를 풀기 시작했다.
“흡연, 하십니까?”
나만의 작은 담배 던힐은 어느새 유명세를 타 거대해졌다. 이젠 내게 맞춤 제작으로 매달 보내주기까지 하는 소중한 담배를 그에게 권유해보았다,
“시가를 필 줄 알았는데, 의외입니다.”
“시가는 필터가 없어서.”
역시 이 시대의 군바리답게 그는 온몸을 채울 기세로 담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의외로 그는 조사한 바와 달리 정중하고 신사처럼 행동했다. 재떨이에 차분히 재를 터는 그 증거다.
“아마 저희의 담화가 끝나길 바라는 이들이 있어 오래는 안 될 겁니다.”
“오늘만이 시간이 아니니 걱정할 것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질문은 참기가 힘들군요.”
“편히 말씀하시죠.”
“6주 안에, 베를린까지 점령이 물리적으로 가능합니까?”
“으음…”
엄밀히 말해, 대독전 계획은 극비 중 극비다.
물고기를 물 밖으로 끌어내려면 그에 걸맞은 미끼가 필요하니 바늘에 걸어놨다만 마냥 먹이를 다 먹게 해줄 수는 없는 이치랄까.
과연 어디까지 오픈해야 이 고기가 내 어항으로 들어올까 고민이 든다.
‘우리가 매달리는 그림은 안 좋은데.’
앞으로 폴란드 말고도 수많은 국가와 함께하게 될 텐데 어쩌면 이 인간과의 관계는 차후 모든 관계의 표본이 될 수도 있다.
일단은 내 대외적인 이미지를 활용해서 약간 숨기기로 결정했다.
“오해가 있으시군요. 꼭 점령일 필요는 없습니다.”
“…예?”
“베를린까지 공략한다는 의미지 굳이 독일을 제가 손에 넣고 어찌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이야깁니다. 그건 점령 계획이지 전쟁 계획이 아닐 테니까요.”
“…….”
움찔거리는 걸 보니 먹힌 것 같네. 나도 오해가 오해를 부른다는 것을 알지만 이제와서 지난 20년간 쌓아온 업보를 다 지울 순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독재자 상대로는 이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소득 없는 전쟁으로밖에 안 보입니다만.”
“음? 아니죠, 아니죠. 적이 사라졌으니 소득이 왜 없습니까? 그땐 진정한 프랑스의 평화가 찾아오는 겁니다.”
“허면, 지금은 평화의 시대가 아닙니까?”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숨고르기. 지금은 잠시 숨을 고르고 있을 뿐입니다.”
여기까지. 이 이상 미친 소리 해대면 전쟁광으로 비춰져 다가오던 놈도 떨어져 나갈지도 모른다.
장기적으로 폴란드와는 안보 협력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지만, 일단은 안보라는 주제만으로도 우린 벅찼다.
잠시 스스로를 정비한 피우수트스키는 본래의 주제로 돌아왔다.
“자키 파비앵 대령의 말로는 제게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저와 당신이 만나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독일.”
“좁게는 독일입니다만, 저는 친구를 찾고 있습니다.”
스위스 빼고 지금 독일 인근의 군사력 상태를 보자면 좌로 나. 우로 피우수트스키.
아래로는 파시즘의 대부, 무솔리니가 추가되지만 이 양반은 기대가 적다.
나보다는 우리 프랑수아 형님하고 손발이 잘 맞을 것같이 보이는 친구. 마냥 함께하기엔 너무 시한폭탄과도 같아 적절한 유대감 정도만 형성할 생각이다.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은 하나.
“전 폴란드의 안위를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독일? 이런 말씀 죄송하지만 이기고자 한다면 저희 프랑스 혼자서 가능합니다.”
아니다. 독일이랑 1대1로 다이다이 붙으면 부분적으로 이길지언정 그나마 남은 경제, 외교, 군사 다 숯덩이와 재로 변할 거다.
심지어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프랑스가 불리한 싸움이다.
결국 이대로는 인구와 경제에서 밀리니까.
“반대로 원하는 것이 있다는 소리입니까.”
폴란드라는 나라는 참으로 특이하게도, 정말 모든 문제점의 한가운데 있는 것 같은 국가다.
이념, 민족, 국토. 쌈박질 원인 삼대장이 다 몰려있는 곳이랄까. 괜히 제2의 발칸 소리가 나오는 게 아니다.
피우스트스키를 통해서 하고자 하는 바가 많지만 일단은 참아야 한다.
독일. 결국 우리의 큰 흐름은 독일을 막는 것이다.
“진정한 위협은 라인란트 반환이 기점일 겁니다.”
“반환을… 하실 겁니까?”
“해야지요. 허나 그냥은 아닙니다.”
라인란트를 그냥 주기도 아깝지만, 마냥 안 주기도 애매하다.
그럴 바엔 아예 새로 판을 깔아야지.
“폴란드와 독일은 경제적으로 아주 밀접한 관계였습니다. 우리 프랑스도 마찬가지였지요.”
자국 내 철도가 뚝 절반 끊겼으니 지금은 덜하겠지만 당장 내일이라도 정치적 문제만 없다면 정상 작동할 수 있는 애들이다.
“전 프랑스-독일-폴란드. 세 나라가 협력하길 바랍니다.”
“아주 듣기 좋은 소리입니다만 너무 이상적입니다. 독일이 굳이 당신 나라와 협력할 이유가 없습니다.”
“있습니다.”
없기는 왜 없어. 루르 공업 지대 사건 봤잖아. 언제까지 독일의 서부 공업 지대 전부 놀릴 거야. 그거 때문에 우리 북부 공업 지대도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닌데.
당신도 안보라는 미끼를 보자마자 알면서 여기까지 날아왔잖아. 독일이라고 별반 다르진 않을 것 같은데.
“전 독일을 재무장시킬 생각입니다.”
왜냐면 난 저것들 손에 총칼을 쥐여줄 생각이거든.
패전국이 이걸 어떻게 포기할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