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17
017화
부대에서 최소 쉰 살 넘어서 뒷짐 지고 돌아다니는 짬킹들을 본 적 있는가?
그들은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해봤으며, 그 어떠한 일에도 당황하지 않는다.
설령 내일 세상이 멸망해도 ‘허허, 그거 오늘 사과나무 심으면 해결되네.’라며 아랑곳하지 않고 답할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눈앞의 페탱이다. 적어도 난 그런 줄 알았다.
“네 이놈! 감히 나를 능멸하느냐!”
“히이익!”
오늘 새롭게 하나 깨달은 게 있다.
만약 그런 짬킹들이 당황하거나 이상 반응을 일으킨다면, 그건 진짜 무언가 잘못된 거라고.
“후욱, 후욱….”
“제발 진정, 진정하십시오.”
겨우 숨을 고르며 자리에 앉은 페탱. 드디어 설명할 기회가 생겼다 생각한 나는 바로 말을 이었다.
“예, 화내시는 것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이해하기는 개뿔. 되려 내가 이해 못 하고 있다 생각해 나불거리려는 놈이.”
아까 태우다 만 담배를 다시 그의 입에 조심스레 물리자, 페탱은 고개를 까딱이며 어서 씨불여 보라고 신호를 주었다.
“조금 과하게 표현되어 있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가령.”
“뭐 사상자 수치 같은 경우는 정말 저도 어찌 될지 절대 모르니까요. 수천만이 수백만으로 줄 수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야, 이 개색-”
“잠시만! 잠시만 더 들어주십시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흐으, 그래. 그렇지.”
대화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진다.
자유의 프랑스 아닌가. 왜 이리 말 한마디 한마디 뱉는데도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지 난 도저히 모르겠네.
“핵심은 그겁니다. 전쟁이 멀지 않았고, 곧 터질 건데. 이게 조금 터지는 게 아니라 아주 그냥 다 같이 폭삭 망할 정도로 터진다는 것.”
“여기 적힌 표현에 의하면 100년 전쟁을 압축해도 이보다 더 진하지 않을 것처럼 말하는군. 맞나?”
“정확합니다.”
에이, 100년 전쟁은 양반이지. 기간만 길고 사망자는 대전쟁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아닌가.
게다가 한 세대 자체를 삭제시켜버리지도 않았으니 보험사 분류 자체가 다르다. 100년 전쟁이 접촉사고면 대전쟁은 터널 안에서 일어난 99중 추돌사고라고.
“자네, 저번 발칸 때는 지성인의 이성이 어쩌고 하지 않았나?”
“근데 그때와 지금은 조금 다르지 않습니까?”
“그때 책 좀 읽은 놈들의 지능이 전부 원숭이 수준으로 퇴화라도 했단 말인가?”
“음, 처음부터 원숭이와 똑같은 결론을 내렸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하, 하하. 나랑 장난하나?”
“아닙니다. 전 어느 때보다 진지합니다.”
억지로 밝게 말하려고 하지만 난 지금 누구보다 내가 틀리길 바라는 사람이다. 페탱 또한 애써 내가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음을 느꼈는지 더는 발광하지 않았다.
“그 전에, 자네 내가 왜 화를 내는지는 아나?”
“보고서가 너무 믿기 힘들어서 아닙니까?”
“그것도 있지. 근데 진정 나를 화나게 하는 건 자네가 이걸 이제야 내게 내밀었단 거야. 그럼 그전에 썼던 발칸 내용. 아니, 이때까지 나와 이야기했던 대화들. 전부 거짓을 섞은 거 아닌가. 난 그 거짓에 홀라당 넘어간 병신이고.”
“…죄송합니다.”
그게 그렇게 돼버리네. 페탱의 입장에선 내가 거짓말하며 상관을 바보 취급한 것처럼 느꼈을 수도 있다.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저 가정일 뿐이었고, 최근 들어서야 한번 말씀드려야겠다고 느꼈습니다.”
“그래, 그랬겠지. 아니라면 오랜만에 사격 연습 좀 해볼까 싶었네.”
‘물론 표적은 네 머리통으로’라는 패탱의 눈빛.
절대, 절대 페탱한테 들켜선 안 되는 게 하나 또 늘었다. 작성 날짜 같은 것은 안 적어놔서 다행이야.
“솔직히 믿기 힘드네. 그러니 좀 더 자세히 설명해보게.”
“언제일지, 무엇이 계기가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전 확신합니다.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그거 말고. 전쟁이야 일어난다고 떠드는 놈은 어디에나 넘쳐나. 당장 정치인들 중 전쟁을 일으키자는 놈만 세도 내 손발이 부족한데 말이야. 난 전쟁 구도가 어찌 될지 묻는 게야.”
“뭐, 이 부분은 제가 딱히 드릴 말이 없습니다. 그래도 말하자면, 계획대로 되지 않겠습니까?”
“계획대로라….”
그간 페탱과 내가 안주 삼아 씹고 또 씹다 단물 빠질 거 같으면 양념 뿌려서 다시 잘근잘근 씹어댄 그거.
“저희는 알자스-로렌 돌격. 독일은 벨기에 방면 우회. 차이점이라면, 저희는 막히고 독일은 뚫겠지요.”
“그리된다면….”
“운 좋으면 저희도 뒤늦게 우회하는 독일군을 막겠으나 만약 저희가 알자스-로렌에 깊숙이 박힌다면… 끝입니다.”
“우리가 우리 손으로 프랑스를 멸망시킬 계획을 세웠다는 의미인가.”
“결과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원래라면 슐리펜 계획은 제17계획처럼 절대 성공할 수 없는 망상에 가깝다.
독일이 자랑하는 철도? 아무리 철도의 도움을 받는다 한들 그 철도가 벨기에, 프랑스 안쪽까지 이어져 있겠는가. 결국 두 발로 걸어가야 한다는 소린데 그 거리가 최소 400km. 심지어 이것도 적을 밀어내면서 가야 하는 거리니 단시간 내에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 어째서 난 계획대로 된다고 말하는가 하면 이유는 간단하다.
“이거, 중앙 돌파를 해도 문제군.”
“그렇습니다. 말도 안 되는 확률로 알자스-로렌 중앙 돌파에 성공해도 이는 더 큰 위험만 초래할 뿐입니다.”
“깊게 박힌 아군은 우회하는 독일을 막을 수 없을 테고.”
“파리는 그대로 무너지겠지요.”
현 프랑스군은 무언가를 해야 할 필요가 없다. 그저 가만히. 정말 가만히만 있으면 적의 계획을 저지할 수 있다.
다만 가만히 있는 것조차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벨기에를 도울 필요도 없습니다. 보불전쟁 때처럼 중앙이 우려된다면 군을 그쪽에 몰아넣어도 상관없습니다. 적어도 저희가 치고 나가지 않는 이상 우회하는 독일군보다 느릴 순 없으니까요.”
“자네의 말이 이제야 이해되는군. 공격 중심의 교리를 왜 그리 싫어하는지도 말이야.”
“프랑스군은, 공격하는 순간 지고 들어가는 겁니다.”
정말 오랫동안 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꺼내자 마치 임금님 귀의 비밀을 외친 사람처럼 속이 시원했다.
그간 수없이 생각해봤다. 왜 프랑스는 독일을 이길 수 없었는가.
병사들 개개인의 전투 정신의 부족? 기술력이나 무기의 차이? 혹은 지휘 체계나 통솔의 미흡?
그도 아니면 그냥 단순 무식한 병력 차?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위 요인들이 프랑스가 무너지는 데 주춧돌 하나씩 빼먹었을 수는 있어도 기둥을 무너트린 원인이 되진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그럼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딱 둘밖에 없었다.
전군에 퍼진 공격적 군사 교리.
그리고 잘못된 계획.
이후의 사건들은 도미노에 무너지는 블록에 불과하다
벨기에가 벌어준 시간을 날려 먹고, 국경과 마른에서 현역 군인들 다 꼬라박고, 그럼에도 제17계획에서 벗어나지 못해 아집을 부리다가 프랑스 국가의 핵심인 북부 공업지대를 적에게 넘겨준 뒤 파리 앞까지 내주게 된다.
아마 나처럼 자세히는 아니어도 페탱의 머릿속에는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진 거 같다.
집 갈 날만 기다리던 느긋한 페탱은 온데간데없고 내 앞에는 프랑스의 미래를 걱정하는 지휘관만이 고뇌에 빠져 있었다.
“전쟁, 그게 다가온다는 것은 모두가 느끼네.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걸 잘 아는 게야.”
“그렇습니다.”
실제로 1차대전이 터지자 이미 안보 위기라는 인식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던 프랑스인들은 담담히 ‘올 게 왔다’라는 식으로 행동했다.
“다만 그 누구도 자네처럼 패전을 가정하진 않네. 프랑스의 미래는 오직 승리로만 가득 차 있을 거라 외쳐대지.”
“군인과 정치인이 패전을 외치는 것이 더 이상하긴 하지요. 그렇다고 시민들이 현실을 알 리는 없지 않습니까.”
“하아… 젠장.”
독일에겐 신의 한 수이자 프랑스에겐 뼈아픈 벨기에 우회.
정말 그걸 이 시대 열강의 군대라는 프랑스가 몰랐을까?
이미 영국과 프랑스는 여러 차례 대독일전 비밀 군사 회의와 협약을 맺었다.
그 과정에서 영국은 독일이 무조건 우회한다 믿었고, 프랑스 내부에서도 그리 생각하는 자들이 꽤 있다. 심지어 제17계획을 세우는 핵심에 있던 자들 중에서도 말이다.
조제프 조프르 아래에 있던 사람 중에선 11군단 사령관 샤를 란레작, 20군단 군단장 페르디낭 포슈가 그러했다.
비단 이들 외에도 재작년에 육군 참모총장직을 거절한 조제프 시몽 갈리에니 장군은 아예 대놓고 ‘뫼즈강 서쪽으로 독일군이 올 거 같은데?’라며 경고했지만 조제프 조프르 장군은 들어 처먹질 않는다.
그렇다면 사실상 정해진 미래. 아직은 페탱도 대령 ‘따위’이기에 이를 막을 순 없다.
“단기전. 결과가 어떻든 단기전으로 끝날 수도 있지 않은가?”
“단기전이 성립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저희가 파리를 빼앗겼을 때입니다.”
단기전이라, 어림없는 소리다.
하루에 만 명씩 죽어 나가도 몇 년을 싸울 만큼 징집할 텐데 어디서 텔레토비 랜드의 햇님 얼굴 같은 희망찬 소리를 하고 있어.
현실은 동성애자 보라돌이에 유색인종 뚜비, 매춘부 나나와 자폐아 뽀일 뿐이다.
“모헬, 자네의 말이 맞다고 가정해보세. 그래, 전쟁이 터지고 우리가 조금 불리해질 수도 있지. 전쟁이 오래갈 수도 있고. 근데 어찌하여 이 이야기를 나한테 하는 건가?”
“과연 제 추측을 윗분들이 어찌 생각할지 궁금했습니다.”
이를테면, 시제품 테스트랄까. 겸사겸사 페탱에게 눈도장 다시 한번 찍고.
“자네가 이걸 뿌린다고 이 육군의 방향성이 조금이라도 달라질 거 같은가? 그냥 자네만 다치고 끝나. 절대 헛짓거리는 하지 말게.”
그의 진심이 느껴지는 경고. 참으로 고마움이 느껴지는 조언에 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연대장님의 반응을 보니 위에 보고하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잘 생각했네. 이에 대해선 나도 일단은 함구하겠네. 아직 이 내용들이 현실성 있는지도 확실치 않으니.”
“알겠습니다.”
연대장님, 미리 죄송해요. 근데 제가 가만히 있기엔 현실이 너무 박해서요.
페탱에겐 염려 말라는 태도로 그의 말에 고개를 계속 끄덕여 댔지만 순한 맛의 성능을 확인한 난 더는 멈출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과연 의 성능은 어느 정도일까.
처음은 미약할 수도 있지. 묵살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시간이 지나 다시 땅으로 떨어질 때쯤이면 중력가속도를 무시하며 종단 속도를 가뿐히 넘긴 공이 될 거다.
‘그 파괴력은 히로시마에 떨어진 리틀 보이급은 되려나.’
이거야말로 나비효과 아닐까?
근데 이미 역사에 끼어든 시점에서 내가 일으키는 나비효과는 어쩔 수 없는 필연적인 일이잖아.
아이참, 그러네.
그러니까, 난 아무런 잘못 없다.
***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은 노력과 집념을 가진 이들이 있다.
이런 이들은 노력이나 재능 같은 단순한 표현으로는 묘사하기 힘들다.
광기, 그리고 집착. 오직 두 가지만으로 머리가 채워져 버린 인간.
혁명의 나라 프랑스답게 혁명적인 스타일로 변해버린 수염. 산발인 머리와 며칠째 씻지 않았는지 온몸에서 나는 쉰내.
그럼에도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해지다 못해 그만 보내주라고 비명을 지르는 종이를 탐했다.
“…적 진지… 파괴….”
미친 사람처럼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폐인. 그는 놀랍게도 월요일이 오면 말끔하게 변신하여 출근해야만 하는 군인이었다.
“히히, 장갑! 어둡고 무거운 장갑!”
손때로 누렇게 변해버린 종이는 마치 고대의 파피루스처럼 변해버려 이젠 내용조차 안 보일 정도였지만 남자에겐 상관없었다.
이미 한 글자도 빠짐없이 다 외워버렸으니까.
“때가 되었다.”
기병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막심 베이강.
그는 신무기라는 너무나도 큰 입력값에 고장이 나버렸다.
일개 중령이 손댈 일이 아니다. 육군에서 내로라하는 무기개발자들이 전부 달려들어야 했을 일. 그럼에도 그는 도전했다.
적어도 그의 손에 쥐어진 이 꼬불꼬불한 글자 속에 답이 있다면. 여기에 기병의 미래가 있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볼 만했으니까.
무엇보다 그 또한 처음 이 종이 뭉치를 받자마자 가능성을 봐버렸다.
“내 평생 아버지 돈까지 끌어다 쓸 줄이야.”
모헬이 돈을 쏟아부어 기관단총을 만들었다고? 남자라면 돈 또한 지지 않는다.
그의 의붓아버지는 다비 코헨 드 레옹. 신문에도 종종 나오는 금융인이시다.
‘그렇다고 내가 미쳐서 친부한테까지 손을 벌리진 않았지만….’
아무튼, 비록 처음에는 갈피조차 못 잡았으나 슬슬 모헬이 자신에게 던진 난제도 풀려간다.
“멀지 않았어…. 세상은 기병이 지배한다….”
한때 전장의 피조물들을 지배했던 중세의 기사가 부활하고.
아시아 끝에서부터 유럽까지 쫓아오던 공포를 재현한다.
진심으로 막심 베이강은 그리 믿어 의심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