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20
020화
그리 몸에 안 좋다고 소문난 MSG의 치사량은 성인 남성 기준 1.2kg.
생존에 필수적인 소금도 300g 정도 먹으면 죽는데 사실상 MSG라는 게 먹는다고 바로 뒤지진 않는 거 같다.
페탱한테 보여줬던 순한 맛에 치사량이 넘지 않도록 1kg 정도 조미료를 팍팍 뿌리고 캡사이신 잘 섞어서 보낸 서류 봉투들이 퍼지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이삼 일.
연고도 없는 후방 부대나 헛기침 좀 한다는 군바리들 주소로 무작정 보낸 것까지 생각하면 아마 다 퍼지는 데에는 2주 정도 걸릴 거다.
사형대로 향하는 사형수가 이런 기분일까. 폭풍이 몰아치기 전, 난 마지막 사색을 즐겼다.
“거 죽기 딱 좋은 날씨네.”
이번에는 대사 치는 맛이 있다. 진짜 상황이 좆 되긴 했나 보다.
여기에 담배 한 대 물면 역사에 길이 남을 느와르 명장면 완성이지만 안타깝게도 내 필름은 뚝 끊어져 버렸다.
아, 누구야. 좀만 늦게 들어오지. 내가 원조 될 수 있었는데.
“모헬! 베르게르 모헬 어딨어!”
“뭐야, 자네인가?”
“자네 무슨 짓을 한 거야?”
“소식 들었나 보군.”
제일 먼저 날 찾아오신 면회자는 샤를 드골이었다.
“뭐, 뭐? 프랑스공화국의 멸망? 젊은 세대 삭제?”
“뭐 거기에 경제 붕괴, 외교 관계 재정립, 인권 퇴보, 식민지 이탈 등 많지.”
“하하, 이 와중에 태연해? 자네 지금 상황이 어떤지 아는가?”
“시끄럽겠지.”
“이건 최소 중징계. 아니, 군사 재판감이야, 이 미친놈아!”
잘 안다. 그 정돈 되겠지. 이 내용들이 군 외부로 유출된다면 군교도소 장기 투숙 예약을 잡아야 할 거고.
‘뭐, 덕분에 감사는 안 내려오겠군. 총기 몇 정 가지고 날 압박하진 않겠지.’
이 와중에 감사? 아마 상황 정리 끝나고 나서 보복성이라면 모를까 그 전엔 어림없지.
드루와, 드루와. 미친놈 상대할 자신 있으면 어디 드루와, 이것들아. 근데 이거 저 지옥행 엘리베이터다?
문득 그리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흐흐.”
“진짜 내 걱정되어서 묻네. 혹시 실성했나?”
“설마, 멀쩡하네. 그 어느 때보다 머리가 맑아.”
고작 이런 거 하나에 발톱 가릴 거면서 거참 왜들 그러셨어. 난 정상인데 덕분에 당분간 미친놈 연기해야 하잖아.
“일단 빌어. 자네가 그리 믿는 연대장님이든 누구든 바짓가랑이 붙잡고 장난으로 쓴 내용인데 아랫놈들 중 하나가 잘못 보낸 거라고. 가만, 어디어디에 보냈나?”
“자네 비열한 말을 쉽게 하는군. 어디 보자, 등사기로 뽑아낸 게 대충… 한 팔십 부? 곧 더 뽑아서 보낼 생각이긴 해.”
“아아악!”
복사기도 없어서 등사기로 한 장 한 장 뽑아내는 것도 일이었는데 노력이 가상해서라도 다들 한 번씩은 읽어주겠지? 소문이 퍼지면 궁금해서라도 읽지 않을까.
자기 일도 아니면서 머리카락을 쥐어 잡는 샤를의 모습에 난 걱정이 들었다.
“자네 머리털 뽑을 처지가 아니야. 내가 아는데 자네 탈모의 조짐이 보여.”
나중에 나이 먹고는 그 몇 가닥 남지 않은 걸로 어떻게든 머리를 가려보겠다고 옆으로 넘긴 사진만 남았던데.
“야아아! 지금 장난이 나와! 네가 뭔 짓을 한 건지 알긴 아는 거냐고!”
“아, 안다니까 그러네.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는가. 나라고 이게 내 단두대인 걸 모르겠나?”
“자네 환생했나?”
뭐야, 갑자기 시발.
당황해서 말조차 못 하고 눈만 끔벅이자 샤를 드골이 답도 듣지 않고 지랄을 이어갔다.
“네가 지금 기요탱 박사의 환생이냐고! 아니면 왜 스스로 죽을 기요틴을 만들어!”
“아, 그 말이군.”
순간 쫄았잖아, 이놈아.
조제프이냐스 기요탱 박사님은 그래도 나처럼 자발적이진 않았다. 그거랑은 다르지 난.
“그만. 이미 저질러진 일이네. 수습만 잘하면 될 일이야.”
“수습? 수우으습? 이건 니가 그리 믿고 깝치는…”
샤를이 슬슬 나를 친우에서 정신병자로 대하려고 할 즈음, 또 한 번 문이 열렸다.
“에드튀르 중위님?”
“가시죠.”
불과 오늘 아침에 받았을 텐데 페탱이 자신의 부관을 점심 먹기 전에 내게 보냈다.
‘제대로 퍼졌구먼.’
이거, 생각보다 효과가 좋다. 역시 군대는 미래나 지금이나 똑같나 보다. 꼭 미친놈 말을 잘 들어준다니까. 다음엔 아예 그린캠프를 차리든가 해야지, 에휴.
난 벙쪄 있는 샤를을 뒤로하고 중위를 따라갔다. 거절 따윈 없었다.
아마 이 둘뿐만 아니라 곧 내 방을 찾아올 이들은 한둘이 아닐 터다.
나와 에드튀르 중위는 페탱의 집무실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아무 말도 없었다.
노크도 없이 바로 문을 열어주는 에드튀르 중위.
문을 열자마자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한기가 보스몹이 시작도 전에 분노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충성.”
“앉아.”
눈도 안 마주치고 두 손을 깍지 낀 채 턱 앞에 둔 페탱.
우린 전처럼 함께 폐를 채우지도, 찻잔을 나누지도 않았다.
그의 앞에는 종이 서류가 가지런히 쌓여있었다.
나에겐 눈길도 안 주고 앞만을 바라보길 잠시, 필리프 페탱이라는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극한의 인내심의 선에 선 것처럼 입을 열었다.
“난 말이야, 이번 5월 파리에서 열린 세계 박람회가 올해 가장 큰 소식일 줄 알았네.”
“확실히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일이긴 하죠.”
“모헬 중위, 닥쳐.”
“옙.”
책상에 종이만 있는 게 다행이군. 재떨이라도 있었으면 백 퍼 날아왔다. 우리 연대장님이 말년이라 순해 보이는 거지 원래 불같은 양반이거든. 즉결 처분도 서슴지 않는.
“이보게, 베르게르 모헬. 죽고 싶으면 나한테 진작 말하지 그랬나. 난 또 유망한 청년인 줄 알았잖은가.”
“읽어보셔서 아시겠지만-”
“뭘 알아!”
책상을 쾅 치면서 말을 끊은 페탱은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
“내가 저번에 그랬지! 더는 나대지 말라고! 이건 선을 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항명이나 다름없다! 나 또한 자네 덕에 온갖 문제에 시달리겠지! 내가 제공해준 정보들과 뒤를 봐준 것까지 모두 문제가 될 거야.”
“….”
예상했기에 속으로는 담담했지만 겉으로는 고개를 푹 숙였다. 나도 조금은 이해하는 게 아랫놈이 보고 체계만 어겨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오죽하겠나.
“자네와 나의 관계는 이제 끝이야. 곧 적합한 처분이 이어질 걸세. 아마 군인 인생은 끝장이라고 보는 게 좋을 거야.”
페탱이 날 자신의 줄에서 자를 줄은 알고 있었지만 새삼 그의 입으로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알고는 있었지만 역시 감싸주진 않는구먼. 야박하다 야박해.
“연대장님.”
“자네 망상은 충분히 읽어봤으니 그 이야기면 그만하고 나가.”
“음, 아마 재판은 꽤 시간이 걸릴 겁니다. 이 부분에 관심을 가지시는 분들이 워낙 많아질 거라.”
“뭐?”
“제가 저희 사단에만 뿌린 게 아니라 육군 전체에 무작정 뿌린 거거든요. 연대장님도 읽으시면서 공감 가는 부분이 있지 않던가요?”
내가 파악한 제17계획의 뒤에는 일종의 파벌 싸움이 존재한다.
대독일전쟁 계획을 세우면서 자신의 파벌을 확고히 하려는 조제프 조프르.
아쉽게도 조프르 장군은 아직 미래 육군 원수와 같은 절대권력자가 아니다. 그의 직위는 참모본부장, 전시에는 예비 참모총장과도 같은 직위.
육군지휘관 최대 짬킹이자 한때 그의 상관이던 조제프 갈리에니 장군과의 사이도 예전 같지 않다.
1911년 프랑스 육군 개혁 당시 온갖 죄목을 뒤집어씌워 쫓아낸 미셸 의원에 대한 죄책감과 나이 때문에 갈리에니 장군은 육참 자리를 거절했다.
갈리에니가 거절한 육군참모총장을 조프르는 곧장 홀라당 받아먹었고.
여기까진 괜찮았다. 갈리에니도 권유한 자리니까.
다만, 이후가 문제였다.
막상 육군 대가리가 된 조프르가 갈리에니 말을 안 듣기 시작한 거다.
그러나 이미 떠오르는 권력은 조프르였기에 갈리에니 장군의 후계자인 란레작조차 조프르 장군이 틀렸음을 알았지만 차마 나서진 못했다.
내가 문제를 원래 계획보다 키운 첫 번째 근거.
“전 조사를 신청할 겁니다. 아주 자세하고도 철저한 조사를.”
“허! 나한테도 피해가 올 테니 도와달라 이건가?”
“설마 그러겠습니까. 곧 은퇴를 앞두셨으니 비리 정도만 아니라면 아무 문제 없겠지요.”
누가 이 양반 집 몇 달 더 빨리 보내겠다고 난리를 치려 하겠나. 그냥 쉬쉬하고 끝내지.
“만약 조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전 한발 나아가 언론에도 뿌릴 겁니다. 필요하다면 돈을 들여서라도.”
“그 순간 자넨 평생 감옥에서 썩어야 할 게야. 군 기밀 유출부터 군기문란. 내 장담하는데 붙일 수 있는 건 전부 붙여주지.”
“압니다. 그렇지만 공론화는 되겠지요. 그럼 이 계획을 세우신 윗분들도 지금처럼 마냥 무시하지도 못할 테고요.”
군대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그거. 군 내부가 아닌 군 외부로 문제가 커지는 것.
근데 그게 이전 권력자인 갈리에니 장군과 비슷한 생각에서 출발한 내용이다? 아, 내가 볼 땐 이건 저 구름 위 윗대가리여도 엉덩이 떼고 움직여야지.
“설마 제가 못 할 거라고 생각하진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정말 미쳤군. 은혜를 이리 원수로 갚아?”
“단순히 생각해주십시오. 연대장님도 전쟁 가능성과 전쟁 계획에 수많은 의문을 품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해가 안 돼서 그래. 자네가 이런 개짓거릴 해서 얻는 게 도대체 뭔가?”
“….”
어, 부대 총기나 군수품 조금 더 지키고, 뭐냐. 의미 없는 훈련도 빼고 개편된 거랑 안 바꾸고… 아무튼 내 중대 지키려고요.
이리 대답하면 장담하는데 재떨이로 부족해 권총을 찾지 않을까.
잠시 적절한 변명을 진지한 표정으로 찾다 결국 난 입바른 소리를 뱉기 시작했다.
“그냥, 뭐 저라도 말하는 겁니다. 틀렸으니까. 일개 중위가 외친다고 육참의 뜻을 바꾸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누군간 외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전쟁이 터질 거라 생각한다면요.”
포병 시절, 할 말 없을 때는 대의를 명분으로 세우라고 배웠다. 나도 지휘관 입장에서 병사들한테 할 말 없으면 ‘실제 전쟁이었으면’ 카드를 꺼내게 되더라고. 이게 진짜 만능 변명이라니까?
“아주 잔 다르크 납셨구먼, 납셨어.”
아쉽지만 페탱한테 먹히진 않는 거 같다. 그래도 잘 넘어갔는지 더는 추궁하지 않았다.
“나가. 조사는 공정하게 해주지. 다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게야.”
“감사합니다.”
페탱은 명백한 처벌을 말했지만 난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시간을 주겠다는 의미니까.
선은 명확하게 그어졌다.
‘한 달. 딱 한 달만 버티자.’
지금이 5월이니, 다음 달이면 6월.
그달에는 아마 일개 중위의 일탈 따위 조사할 인력도 없을 거다.
***
다음 날부터 내 앞으론 속전속결로 처리된 징계가 내려왔다.
“시작부터 직무 정지라니. 작정들 하셨구먼.”
지난 2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내가 행한 모든 것을 조사할 작정인지 부대는 뒤집어졌다.
다행이라면 조사를 위해서 적어도 손을 대진 않는다는 점이다.
더는 중대장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 나의 삶 또한 변했다.
“어라?”
직무 정지. 즉, 일시적인 무직. 그러니까, 나 백수야?
혹시 직무를 한 4년 정도 정지해줄 순 없을지 진지하게 빌어봐야 하나 싶은데?
아직은 조사 중이기에 멀리 벗어나진 못하고 부분적인 자유와 함께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난 오랜만에 익숙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가주님.”
“프레드릭, 그놈의 가주라고 말 좀 하지 마. 여기서 난 모헬 중위라고.”
소식을 전하자마자 프레드릭은 아라스로 찾아왔다.
“작업은?”
“그거부터 물어보실 줄 알았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준비는 끝났습니다.”
“좋아, 좋아.”
나의 직무는 정지되었지만 그건 중대장 업무만이고.
모헬 가문의 상속자이자 탐욕스러운 자본가로서의 일은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