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205
#205화
대의명분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처칠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내가 잘 안다.
일개 병사에서부터 후방에 지내며 전쟁을 피부로 덜 느끼는 국민들까지 전부.
국가가 설정한 방향성, 이놈의 ‘대의’ 아래에서 움직이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영국과 미국은 이번 대서양 헌장을 통해 본인들이 완전히 선이고 반대편이 악임을 공고히 하고 싶어한다.
근데 내게 본인들의 대의명분에 끼워줄 테니 대신 발목에 족쇄를 차라?
두 사람이 착각하는 게 하나 있다면.
‘아무리 선악구도를 원한다지만 내가 그렇게 도덕에 미치진 않았는걸.’
어차피 우린 독재고 난 지금처럼 사람 죽이는 데 앞장설 것이다. 너희와 달리 그 모든 책임을 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니까.
이번 헌장은 동일한 명분을 외침으로 같은 편임을 확실히 함과 동시에 ‘같은 편이면 숙일 줄도 알아야지’라고 말하는 일이다.
“첫째 조항, 영토 확장 금지.”
“확장주의가 모든 문제의 근원 아니겠소.”
“그건 땅덩이 넓은 미합중국이니 할 수 있는 소리 아닙니까. 인디언들이 들으면 독립운동이라도 한 번 할 것 같습니다만.”
표정 썩어들어가는 것 좀 봐라. 인디언들은 사람이 아니라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논리라 이거냐.
영토 확장 금지, 그래 좋다. 근데 당장 라인란트만 봐도 어우, 도대체 얼마나 봐줘야 하는 거야.
내가 무장하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야 하냐고. 이제 대화는 끝. 영구 비무장이 힘들다면 그냥 내가 가져가는 게 맞지 않을까?
“그다음은 자유 표현, 소망, 다 좋은 표현입니다. 셋째, 정부 형태 존중. 주권 이야기가 나오는데… 주권 문제를 두 분께서 꺼내시긴 힘들 텐데요?”
진짜 각국의 주권을 인정하는 국가는 우리 프랑스 아닌가. 하다못해 먼로주의인 미합중국보다 내가 주권 존중을 더 하겠다.
“모헬 원수는 언제나 전쟁이란 수단을 등 뒤에 숨기고 있으니 괜찮겠지요.”
“남의 등 뒤에 숨어서 전쟁을 무서워하는 것보단 낫습니다.”
미합중국의 참전이 절실한가? 아니, 난 전쟁을 길게 끌고 갈 생각이 없다.
랜드리스가 급하지도 않고 모스크바까지 쳐들어가 스탈린의 목을 딸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설령 가능해도 본전도 못 찾는 일인데 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다만 미합중국이 반공 포위망에 합류하면 좋겠다고 생각은 한다.
근데 이 헌장의 마지막 조항.
“앞의 것들은 다 빈말이라 치고. 여덟째, 군축?”
“원수, 영구적이고 전반적인 안보 체제가 확립될 때까지 한시적인 것이오.”
“처칠 경. 군비 부담을 덜면 우리 프랑스도 당연히 좋습니다. 비록 전 영구적 평화를 보장하는 체제가 성립될 거라 여기진 않지만요.”
전쟁 군비를 상시로 버틸 수 있는 국가? 그딴 게 존재할 수 있긴 한가? 왜 내가 건함을 안 하는데. 대육군도 유지하기 힘들어서 허덕이니까 차라리 집중투자 한 거잖아.
“그래서 그 체제 안에 소련이 있습니까?”
“…잘 생각해보시오. 소련과 계속 반목했을 때 프랑스가 볼 손해를.”
“없다는 소리로 들립니다만?”
고개를 돌려 이번엔 루스벨트를 쳐다봤다. 혹시 너희도 소련을 타협, 협력, 평화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지.
‘분명 이 문제는 과거에 우리 사이 끝낸 이야기였잖아.’
대놓고 너희 국가를 전복시키고 사회주의 정권을 세우겠다는 놈들인데, 왜 아직도 적이 아니라고 여기는 것일까.
아니, 그리고. 독소일 삼국 동맹 보면 소련이 누가 봐도 최종보스, 배후중상설의 진실 그 자체로 보이지 않나.
“원수, 이성적으로 생각하십시오. 소련을 악으로 지정해서 얻는 것은 없습니다.”
“그럼 일본 제국도 헌장에 집어넣으십시오. 그럼 내 소련을 인정하지요.”
“…….”
왜, 일본은 좀 아니야? 그 옐로몽키 새끼들은 너무 맛이 가버려서 역시 징치 대상으로밖에 안 보이지?
‘일본이나 소련이나 그놈이 그놈이거늘.’
결국 입장 차이다.
아시아를 홀라당 독식할 일본은 좌시할 수 없지만 공산주의니 사회주의니 하는 소련의 적화는 크게 관심이 없는 거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분명 적화 위협은 전 지도자들을 공포에 떨게 할 그런 공포가 아니었나.
‘…나 때문인가?’
역시 역사가 틀어졌으면 다 나 때문이겠지.
뒤늦게 이마에 손을 올리며 어디서부터 틀어졌을지도 모를 이 문제의 종착점을 고민한다.
‘독일 다음은 소련이 아닌 일본이라 이것인가.’
루스벨트가 무엇을 바라는지 안다.
유럽의 대전쟁에 식량, 자원, 무기, 금융. 모든 것을 팔아먹으며 대공황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그 힘을 아시아에 쏟고 싶은 거다.
미합중국이 홀로 아시아 전역을 해방하고 도쿄에 성조기를 꽂으며 항복을 받아낸다라…. 그럴 힘이 있었으면 진작에 했지.
결국 미합중국은 전쟁하려면 하나부터 열까지 키워내야 하는 입장.
분명 키우는 속도도 빠르고 질도 나쁘지 않겠지만 병력을 처음부터 키워내는 행위 자체가 국가적 손해다. 당연히 전쟁 끝나면 다 와해될 모래성에 불과하고.
반면 프랑스는 상시로 대육군을 키우고 있는 국가. 여기에 더해 유럽 다양한 국가들에게 힘을 끌어다 쓸 능력이 있다.
FDR의 전략은 확실하다. 독일 다음은 일본으로. 대신 유럽 전쟁을 먼저 도와준다.
그나마 내가 속 검은 백인에게 호의적인 부분이 하나 있다면.
‘확실히 주전파이긴 한가 보군.’
유럽 전쟁을 먼저 도와주고, 나중에 그 힘을 끌어다 쓸 수 있게 될 때 국내 먼로주의자들에게 ‘어차피 유럽이랑 같이해서 별로 안 힘듦!’이라고 변명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는 것 같다.
즉, 루스벨트는 확고하게 천황 머리를 깨고 싶어 한다는 거다. 아마 이것을 위한 3선이 아니었을까.
반면 그 옆의 처칠은….
‘폴란드 상륙은 불가. 대신 해상 봉쇄와 징집병 지원이라….’
어차피 내가 나치와 협력할 의지가 전혀 없음을 잘 아니 그나마 나한테 제시할 수 있는 카드는 우리가 받는 피해 분담 정도려나.
끓는 프랑스 옆의 40도 대영제국. 그리고 36.5도의 미합중국.
이들만으로 동토를 녹이긴 힘들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런 주제에 일본 열도에 마이야르 반응을 일으키고 싶어 하니…’
일본 제국은 압도적인 힘으로 녹여버리고 싶고,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은 유지하고 싶어한다.
“다들 절 전쟁광이라고, 또 한 번의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고 말하지만 언제나 전 최선의 선택을 할 뿐입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딱 하나. 이번 전쟁이 마지막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뜨뜻미지근한 스탠스라면 너희가 내게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내가 너희들의 몫을 빼앗는다고 느껴도 할 말은 없다만 차라리 방관하라 이거다. 어차피 바라지도 않았으니까.
어차피 혼자 독일을 상대할 심산으로 준비했고.
비록 피해가 커지겠지만 협상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딴 헌장이나 내게 내밀려고 온 것이라면.
“이런 식이라면, 두 분이 이 자리에서 저한테 얻으실 수 있는 것은 더 없어 보입니다.”
돌아가라. 그리고 다시 집구석에 박혀서 일본이 아시아를 집어삼키는 것을 구경하며 자신의 과거나 회상하며 흔들의자에 앉아 있으란 말이다.
난 최소한 파시즘과 나치즘을 지우고 빨갱이들을 막고 있을 테니.
기껏 스당까지 찾아온 두 사람에게 축객령을 내리며 자리는 파해졌다.
연합국.
그 속에 자신의 목소리만 높이는 놈들은 필요 없었다.
***
“설득의 여지조차 없군.”
“아시아까지 가서 전쟁하란 소리를 곱게 들을 리 없으니 말이오. 그렇다 한들, 가히 적대적이라고 느껴질 법한 기분이었소만.”
“기대가 없고, 원하는 게 없고, 적대할 테면 적대하라는 식이었습니다.”
오늘의 만남으로 루스벨트는 한 걸음 프랑스에 대해 깨우친 바가 있었다.
‘호의의 반대말이 적대임을 이해하지 못하는군.’
호의가 아니면 방관. 그 뒤에 적대까지 고려하진 않는다.
엄청난 자신감일 수도, 혹은 근거 있는 판단일 수도 있다.
아무리 대영제국과 프랑스 사이가 나쁘다 한들 런던 시민들에게 ‘오늘부터 우리의 적을 프랑스로 선정할까?’라고 묻는다면 당장 자본가와 극우파부터 미쳐 날뛰지 않을까.
모헬 원수가 국내 정치 따위 고려하지 않고 외부에 대응하는 모습이 루스벨트는 언뜻 부럽기까지 했다.
알고 있음에도 행동하지 못하는 것. 의견을 모으지 못하여 가만히 있는 것.
그 기분을 누구보다 잘 아는 본인은 3선 대통령이 되었어도 옴짝달싹 못 하는 죄수와 다를 바 없거늘, 저자는 스당 총사령부 의자에 앉아 전 세계에게 프랑스의 방향성을 상기시킨다.
“근본적인 의문이 듭니다. 왜 프랑스는 아시아 시장에 관심이 없을까. 뿐만 아니라 식민지 그 자체를 방치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모든 게 과연 독일 때문일까요?”
“독일이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단 의미요?”
“더글러스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모헬 원수는 누구보다 일본 제국의 폭주를 예상하고 있었다고.”
과거 모헬의 행적을 볼 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폭주를 알았고, 그래서 방관했고. 모든 힘을 독일에 집중했다고 보는 게 맞겠지.’
반대로 독일이 끝났을 때. 그때도 프랑스는 아시아에 관심이 없을까? 저 거대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시장에?
그는 동토에 소련을 가둬놓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것 같았다. 다른 의미로 말하면 독일만 끝나면 방향을 다른 곳으로 틀만한 여지가 있다는 의미. 그래서 루스벨트는 프랑스의 힘을 아시아로 틀만한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야욕이 없다고 말한다면… 웃겠소?”
“독재자가 야욕이 없다는 말을 믿으십니까? 개개인의 욕망이 현상화된 게 독재자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실적에 목말라하는 회사원과 같지요.”
“안주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소?”
“…베르게르 모헬의 안주라.”
모르겠다. 자기확신에 가득찬 독재자에게 안주가 있을 수 있나.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낭떠러지임을 인지한다면 가능은 하겠지.’
분명 프랑스는 거짓을 고하지 않는다. 다른 수를 뒤에 두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프랑스의 손바닥 위에 놀아나는 이 기분이, 루스벨트를 못내 귀국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일단은 다시 파리로 돌아온 두 사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자가 있었으니, 이전 대서양 회담에서 만났던 에두아르 달라디에였다.
‘중도좌파. 눈치 빠르고 권력을 휘두르지 않아 제 자리를 사수한 인간.’
장교 출신 참전용사이자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은 점이 아마 군부에서 그를 좋게 보는 유일한 이유겠지.
총리로 대통령 대행까지 겸한 달라디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을 뻔히 예상한 듯 두 사람을 반겼다.
“각하와의 대담은 어떠셨습니까?”
“일말의 여지도 안 주더군.”
“자자, 들어가서 저랑 좀 더 이야기를 나눠보시지요.”
전에는 권한이니 능력 밖이니 하던 달라디에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우리 각하께서 원체 군인 출신이시라 애매한 여지를 남겨두시질 않습니다. 아무래도 정치에 아직 익숙하지 않으신 것이겠지요.”
“……?”
“모헬 원수가?”
갑자기 정치에 익숙하지 않다고 말하는 에두아르의 발언은 두 사람에게 현 프랑스 정치 구조에 근본적인 의문을 품게 만들어버렸다.
“그래도 제겐 무려 ‘대행‘까지 맡기실 정도로 신뢰하시니 다행이지요. 하하, 사람이란 게 본래 잘하는 역할이 있길 마련이니 말입니다. 역시 전쟁 잘하는 사람은 전쟁하고, 정치 잘하는 사람은 정치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독재 국가 총리라면 독재자 이름 넣은 국가를 만들어 4절까지 불러도 부족할 판에 ‘우리 대통령은 정치를 잘 몰라’ 발언은 두 사람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흠흠, 그러니 전보다는 조금 더 진솔하게. 어, 그러니까 여지를 남겨두지 않고 확실하게 대화를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무슨…. 대화 말이요?”
“어디 보자, 일단 랜드리스는 원가로 받고 수십 년에 걸쳐 나눠서 갚는 게 좋아 보입니다. 두 분 사이에서도 많은 이야기가 오갔겠지만 그래도 스페인 측에서는 역시 지브롤터를 본인들이 관리하고 싶어 하더군요. 다만 만약의 경우가 있을 수 있으니, 저희 프랑스가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참, 이집트는 독립한 국가인데 내부에 왕립군이 남아있으면 쓰겠습니까? 이 부분도 한번 고려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자, 잠깐!”
“그게 무슨 말이요?”
“음? 아아. 설마 원수님한테 주구장창 원하는 바만 설명하신 겁니까?”
“…….”
그, 그랬나? 근데 헌장 이야기부터 꺼낸 모헬은 협상 여지 자체를 남겨두지 않지 않았나.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겨우 참은 달라디에는 본인 상관에 대해 두 사람에게 가르치듯 말했다.
“제가 한번 잘 설.득. 해보겠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턴 저랑 소통하시면 됩니다.”
여지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와 희망을 보길 한 번.
그리고 이게 겨우 ‘모헬 원수를 설득’하는 일이라는 것에 절망 한 번.
천당과 지옥을 오간 두 사람은 어서 머릿속 회계 장부를 열어 계산을 시작했다.
그런 두 사람에게 확실히 인지된 것이 하나 있으니.
프랑스가 유리한 입지임은 인정하고 시작해야 대화라도 할 수 있단 거다.
“자, 그럼 다시 대서양 회담을 이어서 하겠습니다.”
대서양 회담 내내 위축돼 허수아비 총리처럼 보였던 달라디에.
전과 달리 모헬을 등에 업은 달라디에는 언뜻 신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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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전역 따윈 없다-20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