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229
#229화
다를랑의 폭탄발언 이후 난 프랑스라는 나라를 다시 한번 객관적으로 점검해 보았다.
비록 진실된 통계 따위 손에 없어도 이웃 영국, 혹은 과거 프랑스와의 비교만으로도 차이점은 확연히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바르샤바가 곧 무너질 거라고 한다.
내가 볼 때도 지금 페탱의 기세라면 발칸 연합군이 소멸하기 전에 바르샤바는 끝장이다.
다를랑의 우려처럼 앞으로의 전공이 나를 돋보이게 하는 것도 어찌 보면 끝을 알 수 없는 변수.
변수는 경계해야 마땅하다.
허나, 그런 거 다 제외하더라도 근본적으로 보자면.
‘…. 가스파르 없이는 은퇴가 어렵겠네.’
가장 먼저 대육군.
지난 20년간 국민들의 자존심이자 애국심의 근간이 되어버린 집단.
어느 순간부터 대육군은 자아 없 는 전쟁기계가 되어버렸다.
단순히 휘두르는 것만으로 국가 하나를 멸망시키기 충분한 무력 집단이 일말의 자아조차 남아 있지 않단 거다.
이 정도면 존재하는 것만으로 사방에서 돈과 권력이 달려들고 아직 시민 권력이 설익은 시대에 충분히 온갖 망상을 실현할 법도 한데…
그저 ‘존재’만 한다. 마치 쓰임을 기다리는 도구처럼.
이 구도를 처음 설계한 인간이 바로 페르디낭 포슈.
기억을 뒤져보면 아마 처음부터. 그러니까 1919년 전후 구도가 확립된 순간부터 그 인간은 대육군의 자아를 차근차근 제거해 갔다.
아무리 제거된 자아라도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다시 생기길 마련이겠으나….
그 작업을 페탱, 베이강이 이어받아 수없이 반복한 거다.
그리고 마지막 종점을 찍은 게 우습게도 바로, 나.
군부 출신으로 권력을 잡은 주제에 직접 군정 분리를 한 내가, 이 대육군을 완벽한 도구로 전락시켰다.
“…. 포슈 원수, 진짜 죽어서도 무서운 양반이야.”
이걸 진짜 포슈 원수님이 계획했다고? 그럼 내가 독재를 하는 것까지 전부 그 인간의 손바닥 안에서 이뤄진 그림이었단 말인가?
만약 그런 것이라면. 그래서 정말 초기 이 구도를 설계한 게 전부 다음 대전쟁을 위해서라면 진지하게 포슈 원수님이 회귀를 하지 않았는지 고려해봐야 할 것 같다.
현 대육군의 다음 문제는 이거다.
절대 해체할 수도, 축소해서도 안 되는 집단.
여전히 프랑스 패권의 근간이자 독일과 소련이 존재하는 한 절대 축소해서 안 되는 곳.
내가 전후에 시민들에게 권력을 돌려주겠다고 대통령직에서 내려왔다고 치자.
과연 다음 권력자가 저 대육군이라는 거대 방망이를 단 한 번도 안 휘두를까?
다룰 수만 있다면 독재는 기본에 역사에 기록될 권력자가 되는 것인데?
반대로도 문제다. 이제와서 대육군에 자아를 불어넣기에는… 늦었다. 최소 두 세대 정도 물갈이되어야만 해볼 만한 일인데 그때까지 내가 살아있을지도 모르겠다.
비단 대육군뿐만 아니라 이 나라 전체가 그러하다.
오를레앙 당. 사실상 일당 체제로 가까워지고 있는 프랑스 제1 여당.
통합된 정보부. 본래 군사 목적으로 듀시엠 뷰로와 프리미어 뷰로로 나뉘어 전쟁 수행을 돕는 집단이었으나 반공 체제 이후 방첩과 간첩 활동까지 뻗다 보니 제 손에 전 세계 정보를 쥐게 된 곳.
불의 십자단. 겉으로는 재향군인회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준군사조직이자 나치 슈타지와 다를 바 없는 비밀 경찰. 국가 권력의 비호 아래에 합법과 불법을 오가는 놈들.
헌법 위에 군법이 있다는 프랑스 공화국.
모든 국가 조직이 도구화되어버렸다.
바로 다음 세계 대전을 준비한다는 명목 아래에 말이다.
여전히 생각할수록 소름이 돋는다.
이 모든 것을 처음 설계하고 구상한 페르디낭 포슈가.
옆에서 잘 시행되고 있는지 지켜보던 필리프 페탱이.
그리고 현장에서 두 원수의 뜻을 받들어 행동하던 막심 베이강까지.
나조차 이질감을 느낄지언정 깨닫지 못했는데 과연 프랑스 시민 중 알아챈 사람이 존재하긴 할까.
아니, 없다고 장담한다.
왜냐면 나 이전까지 우리나라 의회는 서로 갈라치고 선동과 날조로 박터지게 싸우기 바빴거든. 지금 돌아보면 그놈들은 지금의 내 존재를 정당화해주는 과정일 뿐이었다.
“시발, 거 어깨 더럽게 무겁게 만드시네.”
원망하는 것은 아니다. 되려 감탄과 존경이 우러나올 정도로 두 원수님이 세운 계획의 성과는 ‘바르샤바 점령 임박!’이란 소식만으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페르디낭 포슈가 생각지 못한 것.
그건 바로 세계 대전이 끝난 다음이다.
어차피 그분이야 전쟁이 일어나기도 훨씬 전에 돌아가셨으니 딱 여기까지만 생각하셨겠지.
근데 나는? 그다음 시대까지 살아갈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너무나 견고하게 지어진 건물을 아무 피해 없이 무너트릴 방법이 존재하긴 하나?
그에겐 지금의 프랑스가 최종 완성형이었을지 몰라도 내겐 탈피해야 할 번데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근데 그 허물이. 이제와서 보니 미친듯이 두껍다.
외부의 공격 따위로는 어림도 없고 내부에서 뚫고 나오는 수밖에 없는데 어라, 애초에 탈피할 의지 자체가 박멸되어버렸네?
의지도, 자아도, 목적이나 종착지도 없는 국가, 프랑스 공화국.
그 어떤 사상도 이 나라에 들어오면 자연발화하며 외세 따위는 발조차 들일 수 없는 불가침의 땅.
백지? 아니. 이건 검은 도화지다.
이미 너무나 까매져서 빛을 비춰도 반사광조차 볼 수 없는 그런 도화지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포슈 원수님의 계획은 성공했다.
그는 끝내 자신의 계획을 완벽히 내게 물려줬으며 독일의 멸망, 프랑스 패권 구축, 명실상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의 주춧돌을 세웠다.
그가 세운 주춧돌 위에 설계대로 집을 지은 건 나다. 다만, 이제 재개발 시즌이 와도 아무도 허물 수 없는 집이 되었다.
집무실 의자에 늘어지게 기대 눈을 감고 하나하나 되짚어보며 ‘어쩌다가 프랑스는 이리되었는가?’를 상기한다.
‘리프 공화국으로 모자라 아시아까지 날 내쫓은 이유도 결국 이거였어. 고작 국방 개혁 따위가 아니라.’
이젠 지겨워져버린 엘리제 궁. 마지막으로 들린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는 오를레앙 저택으로 돌아가 지하에 저장되어 있는 와인 하나 꺼내 샤를로트랑 잔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독재자의 가족’이란 프레임 안에서 생활해야만 하는 가족들에게도 미안하다.
막중한 책임감에 짓눌릴 정도로 무르진 않지만 때론 나도 그만하고 싶다.
이제는, 조금 쉬고 싶다.
허나 포슈 원수님이 세운 계획 안에는 내가 쉬는 경우 따위 고려되어 있지 않다.
어찌해야 할까. 알아버린 이상 이 감정은 점점 심해져 종국에는 감옥처럼 느껴져버릴 수도 있는데.
“빌어먹을 늙은이들. 내가 집에서 쉬는 꼴을 못 봐.”
나한테 이딴 짓을 해놓고 자기들은 편하게 집에서 뒷방 늙은이 라이프를 즐겼단 말이지.
이제 겨우 전쟁 시작한 지 1년. 2년 차에 막 접어들어 아직도 포슈 원수님의 설계가 활발히 돌아가고 있다.
“아.”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며 방금 깨달은 것.
프랑스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보다 더 큰 게 있다.
“좆같네. 내가 겨우 인형이었다고 생각하니.”
이유 모를 반발심이 내면에서부터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끓어오른다.
분명 어떤 면에서 도와준 건 고마운데, 그 늙은이가 마지막에 나보고 다음 전쟁 어쩌고 했던 말에 괜히 마음 흔들렸던 걸 생각하니 자꾸만 짜증난다.
사실 그때의 아련한 미소가 ‘풉, 뺑이 쳐라’였다는 사실도.
그걸 이제서야 깨달은 것도.
그럼에도 아직 난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것도.
“거어 씨이발 아주 좆같네에!”
“각하! 무슨 일이십니까?”
“아니야! 들어오지 마!”
이 정도면 나라는 인간을 나보다 더 잘 알아 제 마음대로 써먹은 거 아닌가.
화를 가라앉히고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끊임없이 생각하지만 이 비좁은 집무실에서는 포슈의 대계를 깰 실마리조차 잡히지 않는다.
그럴수록 내면에서 더 뜨거워지는 무언가.
오늘따라,
진짜 삐뚤어지고 싶다.
***
파리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없다 판단한 마셜은 필요한 업무만 마치고 곧장 본국으로 향할 준비를 했다.
무슨 배려인지 프랑스는 항공기에 경호기까지 준비해 국빈 이상의 항공단을 꾸려줬다.
결국 참모총장으로서 그가 준비해야 하는 것은 유럽이 아닌 아시아.
연합군이 바다 위의 일본 함대를 정리하는 즉시 전방위적인 상륙으로 빠르게 적을 몰아내고 마지막 일본 본토 상륙으로 전쟁을 끝낸다.
이것이 유럽 전쟁이 끝나자마자 마셜이 계획한 가장 빠르고, 깔끔하게 이기는 방법이었다.
일각에서는 징집된 잽스가 6백만을 넘어간다고 한다. 당연히 전염병처럼 아시아 전역에 퍼진 잽스들을 온전히 미합중국의 힘으로만 쫓아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가능해도 해선 안 되지. 몇 년이 걸릴 줄 알고.’
폴란드 땅에 있는 병력의 절반만이라도 아시아에 옮겨 놓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문제는 힘이 남아도는 프랑스가 기어코 바르샤바만으로 만족할 생각이 없다는-
“아저씨 무슨 생각을 그리하세요?”
“흠흠, 일 생각하고 있단다.”
“아빠가 그러는데 해결 안 될 일은 생각해봐야 의미 없데요. 그냥 머리 비우고 와인 한 병 마신 다음 발 닦고 자는 게 낫데요.”
“여기서 나보고 그러라고?”
“이거 아빠 전용기라 씻는 시설도 있어요. 너무 깊게 고민해도 해결 안 될 문제는 안 된다고 알려드린 거예요.”
“…충고 고맙구나.”
“심심해서 그냥 한 말이에요.”
군복을 입고 공식 업무차 프랑스를 다녀왔는데 왜 옆자리에는 은발 소녀가 앉아 있는 걸까.
육십을 넘은 그의 나이에 손녀뻘 되는 아이와의 대화는 모헬 대통령과의 대담만큼이나 어려웠다.
엘리나 리 모헬.
프랑스 최고권력자의 막내딸.
‘차기 권력은 가스파르 리 모헬에게 돌아가겠지만 그럼에도 모헬이란 이름값은 무겁지.’
이혼도 경력으로 치는 소돔과 고모라의 나라에서 드물게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하는 독재자의 딸이 해외로 나간다니. 그것도 전시에.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안전을 위해 대피시키는 것인데 그건 절대 아닐 거다.
“왜, 하필 지금 미합중국행을 택한 거니?”
“파리는 답답하거든요. 우리 아빠 이름만 들어도 다들 벌벌 떨면서 멀어져요. 그것도 아니면 아빠 이름만 보고 달려들거나. 근데 미국은 자유의 나라잖아요?”
“아니.”
장담한다. 미합중국이라고 그녀의 삶이 크게 달라지진 않을 거다.
소련과 나치가 미국에 한 마리라도 있는 이상 그녀는 철저한 경호와 보호 속에서 살아가게 될 거다.
“그래서 딱 대학만 해외로 보내달라고 했죠.”
“그래, 유학은 좋은 거지.”
다만 왜 하필 본인에게 따라붙었냔 말이다.
‘이젠 보모 역할까지 해야 하나.’
떠나기 전 마셜의 손을 꼭 잡고 부탁한다던 모헬 대통령의 눈빛은 그냥 부탁이 아니었다.
‘외교 문제로 키우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잘 좀 해줄 거라 믿습니다.’
‘에?’
이걸 루스벨트 대통령에게는 뭐라고 보고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건 양국 관계의 선물이 아닌 폭탄이다.
어디 다치기라도 하는 즉시 가족을 끔찍이 아끼는 독재자가 아시아 파병을 취소해도 이상하지 않단 말이다.
‘대학 입학은 알아서 한다고 했으니 데려다주고, 경호 병력만 붙여주면 되겠지?’
“아, 저 보고 싶은 분이 있어요! 저희 아빠랑도 아는 사이라고 그랬는데!”
“누구?”
“블랙 잭! 페탱 할아버지 친구래요!”
“아….”
“아빠가 어른들한테 찾아가서 인사하는 게 예의라고 했거든요.”
맞는 말이긴 한데, 굳이 모헬 대통령이 퍼싱 원수님과의 관계가 있긴 한가?
그놈 인맥은 해봤자 맥아더나 패튼 정도로 아는데.
“그, 그래. 한번 연락은 해보마.”
“걱정 마세요! 제가 직접 찾아가서 인사드릴 거예요.”
저 빌어먹을 악마 밑에 이런 순진무구한 딸이라니.
마셜은 대꾸하는 대신 조용히 눈을 감고 어찌해야 할지만을 생각했다.
‘일단 언론에는 철저히 숨기고, 적당히 대우해주면 모헬 대통령도 만족하겠지. 그래, 프랑스 공주님 한 명 대동했다고 생각하자. 아무 문제도 없을 거야. 어린애가 알아봐야 뭘 알겠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긍정적인 말을 불어넣으며 마셜과 엘리나는 미합중국의 수도 워싱턴 D.C에 도착했다.
전용기에서 내리자마자 마셜은 다수의 부릅뜬 눈과 마주해야 했지만 그 또한 이건 불가항력이었다고 억울함을 역으로 호소했다.
‘워런, 자네가 직접 함께 가게.’
‘저, 저요? 그럼 총장님 부관직 수행은 그럼 누가 합니까?’
‘자네 아버지 찾아 뵙는다잖아. 어서!’
본인 말대로 D.C.에 오자마자 월터 리드 종합병원으로 향한 엘리나 리 모헬.
다행히 퍼싱 원수의 허락 아래에 엘리나는 고대하던 블랙 잭을 만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엘리나 리 모헬이라고 합니다!”
“…그래, 내 오랜 벗, 페탱 원수는 어찌 지내는가?”
“아직 한창 전장에서 데굴데굴 구르고 계세요! 한 1년째 집에 못 돌아오고 있다고 아빠가 좋아하더라고요!”
“…. 음?”
노쇠한 퍼싱은 기억을 더듬으며 페탱 원수의 정보를 떠올려봤다. 그가 알기로 페탱 원수가 본인보다 네 살 더 많은 걸로 아는데.
“내 친우는…. 아직 은퇴를 안 했나 보군?”
“아니요. 예전에 했는데 아빠가 다시 불렀어요. 뭐라더라? 군자의 복수? 합법 하극상? 아무튼 현역으로 활동하고 계세요!”
“허, 허허.”
퍼싱은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다만 오랜만에 페탱 원수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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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전역 따윈 없다-22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