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230
#230화
바르샤바로 향하는 전역은 셋.
막심 베이강이 총사령관으로 있는 서부 연합군.
모리스 가믈랭 육군 대장을 필두로 체코 브루노를 지나 대각선으로 치고 올라가는 중앙군.
마지막으로 아래에서 피가 굳기 전에 새로운 피를 뒤집어쓰며 치고 올라오는 발칸군과 필리프 페탱.
어디가 주공이라 할 것 없이 삼 방향으로 오는 적을 막기 위한 지옥 같은 나날이 소련군에게 이어지고 있었지만 단순히 비슷한 수준의 병력만으로는 점점 조여오는 적을 막을 순 없었다.
“A집단군이 포위당했습니다!”
“곧 구원군이 향할 것이다! 진격을 멈추고 버티며 반격을 준비하라!”
“쏟아질 적에 대비해!”
겨울 폭풍 작전을 통해 대치를 깨고 나온 막심 베이강은 바르샤바가 곧 그의 손에 들어올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 뭐야, 이 새끼들은 생각이란 게 없나?”
다른 두 전역에 비해 순탄한 진격을 하고 있던 가믈랭은 얼떨결에 바르샤바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거점 도시들을 손쉽게 점령하며 신문 헤드라인을 매일같이 갈아치웠고.
“죽어라, 그냥 다 죽으란 말이다!”
“후퇴? 그 나이 처먹고 산타 믿는 것도 아니고 이쯤 되면 너희도 알만하잖아? 자, 적진으로 후퇴!”
“고향 생각을 왜 하지? 어차피 우린 다 여기서 죽는다! 그 시간에 적 하나 길동무로 끌고 갈 생각을 해야지!”
페탱은 다른 의미로 기록을 경신하며 바르샤바로 향했다.
언뜻 보면 과거 바다로의 경주를 떠올리게 할만한 광경.
소련의 열세가 확인되자 세 전역의 레이스 종이 울렸다.
무식한 소모전에 반전은 없다. 공식처럼 정석적인 전쟁 속에 동화 같은 한판 뒤집기는 펼쳐질 수 없단 거다.
결과가 정해졌고 다만 누가 트로피를 차지하느냐의 싸움으로 변질된 폴란드.
베를린이 전쟁의 승기를 손에 쥐여줬다면 바르샤바는 승패를 정해주는 신호였다.
점점 밀려나는 적.
좁혀올수록 강해지는 압박.
어느덧 붉은 군대의 소모전마저 통하지 않는 순간이 찾아왔다.
“쯧, 나도 병력 지원 좀 해주지. 그럼 더 빨리 왔을 텐데.”
겨우 바르샤바에 도착한 가믈랭은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병력들을 볼 수 있었다.
천천히 다가가니 외각에 총사령부 마크가 보이는 거대 막사가 쳐져 있다.
“오랜만이군.”
“여기서 뭐하고 계십니까?”
“대기.”
한때 누구보다 활기차던 선배가 저 나이에 대기하고 있단 말에 가믈랭은 약간의 의문을 품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오신답니까?”
“오늘 해지기 전에 도착하신다더군. 바르샤바는 손에 넣었지만 전선은 유지해야지.”
막심 베이강의 설명에 바르샤바로 향하려던 가믈랭 또한 총사령부 막사에 눌러붙었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원수님 도착하셨습니다.”
“나가지.”
한 장교가 막사로 들어와 도착소식을 알렸다.
병력이 대기하고 있는 병영 주둔지 입구까지 나와 서서 기다리는 두 사람 앞으로 자동차 한 대가 멈추었다.
가믈랭은 눈치껏 나서서 뒷문을 열었다.
“충성, 고생하셨습니다.”
“그리운 얼굴들이군.”
손을 내밀며 한 사람 한 사람 악수하며 지나치는 필리프 페탱 원수.
막심 베이강이 전쟁 직전까지만 해도 느꼈던 페탱 원수님은 모든 것을 후배들에게 넘기고 후련하게 떠난 노인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앞에 서 있는 원수는 전쟁 속에서 누구보다 날카롭게 신경이 갈린 명실상부 대전쟁 시절의 원수님이었다.
페탱을 중심으로 좌 가믈랭, 우 베이강이 나란히 걸어간다.
그 모습에 페탱은 피식 웃으며 물었다.
“뭐야, 설마 두 사람도 날 기다리고 있었나?”
“이번 승리는 원수님의 것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저희가 그 정도로 뻔뻔하진 않습니다.”
후배들의 깍듯한 예우가 그리 나쁘진 않았는지 페탱은 앞장서서 걸어갔다.
페탱의 시야 안에 들어오는 모든 프랑스 군인이 조용히 손을 올린 채 부동자세를 취한다.
뒷짐을 쥔 채로 바르샤바에 입성하는 노장의 위엄은 보는 것만으로 엄중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저분이 장군들의 스승, 원수들의 원수!’
‘프랑스의 대부님이시다!’
이 기이한 광경을 지켜보는 연합군 지휘관들에게도 계급 위의 계급의 고요한 입성식은 전율을 선물했다.
마침내 도착한 바르샤바 왕궁. 빼앗긴 폴란드인들의 중심이자 동맹의 심장.
아무 말 없이 뒤만 따르던 모리스 가믈랭과 막심 베아강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뭐야, 저놈.”
“저, 저 새끼가 왜-”
“아니, 왜들 이리 늦으셨담? 어라? 페탱 원수님?”
“야, 야 이 새끼야!”
“…….”
대육군 장성급 누구도 감히 먼저 발을 들이지 못한 바르샤바에 홀로 별 세 개 반을 단 놈이 왕궁 계단에 걸터앉아 있다.
“어…. 설마 입성식이 일종의 깜짝 이벤트였습니까?”
“허, 허허. 누가 모헬놈 부관 아니랄까 봐.”
“흠흠, 그런 거라면 죄송합니다! 추웅, 성!”
먼지를 탈탈 털고 일어나 뒤늦게 각 잡고 경례하지만 가믈랭과 베이강은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 거짓말. 자기가 1등이라고 좋아해 놓고.’
수도 컬렉터의 거짓말을 지켜보던 만슈타인은 여전히 대육군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었다.
“하핫! 아무튼 원수님의 입성을 축하드립니다! 뭐해? 다들 박수우!”
진짜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
바르샤바 점령 이후 가믈랭은 누구보다 먼저 파리로 돌아왔다.
발칸군이나 서부군에 비해 가믈랭이 이끌던 군은 규모도, 수준도 떨어졌기에 해체-흡수 수순을 밟을 터였고 그 과정에서 그가 있어 봐야 좋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돌아온 파리의 첫 분위기는 딱 그의 예상대로였다.
언제나 그래왔듯 승전보에 열광하는 시민들.
승리에 익숙해질 법도 하다만 매 순간순간이 새로운 역사이다시피 한 이 시대에 열광하지 않고 버틸만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가장 먼저 발걸음을 옮긴 곳은 과거와 달리 수도방위, 즉 혹시 모를 반란 진압 역할만 하는 파리 총독부였다.
파리 총독부뿐만 아니라 다양한 군부 시설이 위치한 파리 남쪽의 오브세바투아르 지역.
그곳에 발을 들이자마자 가믈랭은 전체적으로 뜨겁게 달궈진 파리와는 사뭇 다른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충성, 가믈랭 대장님 오셨습니까!”
“수고 많네. 헌데 오면서 듣기로는 요즘 꽤나 바뀌고 있다던데?”
“아…. 음, 그렇습니다.”
“파리 총독, 왜 그런가? 우리 사이에 그런 말투. 나 섭섭해?”
“그, 실은….”
이어진 총독의 설명에 가믈랭은 단번에 기시감을 느꼈다.
“불의 십자단, 그쪽 친구들 있지 않습니까.”
“그쪽이 왜?”
“일단 상부에서 전후 전역자가 쏟아질 것을 우려해 개혁을 진행한다고 합니다. 이게 내부 개혁이라 저도 자세히는 알지 못하는데 꽤 많은 게 바뀔 것 같습니다. 아마… 전처럼 파리 골목을 주름잡는 짓은 못 할 겁니다.”
“그, 그리고. 그게 전부인가?”
“아, 또 있습니다.”
이게 전부일 리 없단 가믈랭의 확신대로 총독은 설명을 이었다.
“불의 십자단하고 연계되어 있어서인지 정보부도 바뀐답니다. 듣기로는 이제 동맹국 쪽에서 지부 설립 협상을 진행 중인데 쉽게 말해서 확장입니다. 이상한 점은… 이게 확장이긴 한데 뭐랄까, 내부 인원들이 다수 외부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그럼 그 빈자리는 또 어떻게 채울지, 과연 국내 방첩 활동은 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자네, 이 이야기 다른 사람한테 했나?”
“안 했습니다. 요즘 분위기 좋은 시국이긴 한데 약간 이상해서 저도 숨죽이고 있습니다.”
“좋아, 나 이외에 누가 물어도 절대 모른다고 하게. 아니, 그냥 나한테 말했단 이야기도 하지 마. 알겠나?”
“알겠습니다.”
기시감의 정체, 가히 대육군의 변화를 초기부터 지금까지 전부 지켜본 가믈랭이 모를 수가 없다.
‘또 한 번의 개혁! 내부 청소다. 다시 바뀌는 거야!’
전군이 전쟁을 위해 나가 있을 때. 직접 그들을 통솔해 제 주인이 누군지 머릿속에 똑똑히 각인시킨 모헬이 파리로 돌아와 빗자루를 든 것이다.
수많은 전투는 장교들을 쑥쑥 키우는 양분이다. 엄청난 진급자와 사망자가 동시에 나타나며 전쟁이 길어질수록 변화는 커진다.
이럴 때 변화는 딱 두 가지.
엉덩이 무거운 놈들은 더욱 무거워지고, 가벼운 놈들은 저 멀리 날아간다.
기존 상부에 양극화가 일어나는 거다.
냉정하게 스스로의 위치를 평가한 가믈랭은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필리프 페탱, 그리고 막심 베이강 원수.
둘 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은퇴할 사람이다.
다만 가믈랭 본인은 은퇴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있다.
‘이, 이럴 순 없다! 여기까지 와서 쓸려나갈 순 없다고!’
이제 겨우 그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데. 진짜 이번에야말로 육군의 정점에 설 수 있게 되었는데 거대 권력의 흐름에 비참하게 걸러질 순 없다.
더 소름 돋는 것은 무려 육군 대장인 본인도 이 소식을 파리에 와서야 알게 되었단 거다.
즉, 최전방에는 알려지지 않은 채 진행된 개혁과 숙청.
돌아온 이들에게 반발할 틈도 없이 이미 정해진 ‘명령’이 그들의 미래를 정해줄 것이다.
도대체 무엇일까. 무엇이 위대하신 후배님의 심기를 건드려 이런 짓을 하게 만들었을까.
‘심지어 직접 키운 육군을 숙청하는 일이다. 평화롭던 시절 포슈 원수님이 하시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잔인할 터!’
냉정히 말해 가믈랭은 본인이 모헬의 친위 세력에 끼지 못한다고 여겼다.
언제나 애매한 위치. 이도 저도 아니기에 언제나 그의 군생활은 불안 그 자체였다.
일단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경우의 수는 두 가지.
하나는 계승.
가스파르의 나이가 어느덧 이십 대 중반. 모헬의 이십 대를 생각하면 차근차근 권력을 물려받아도 이상하지 않다.
그 물려받을 권력이 너무나 커서 오래 걸릴 것을 생각하면 타이밍도 나쁘지 않다. 이번 전쟁을 통해 모헬은 완벽한 국민들의 지지까지 얻으며 후계자를 공표할 수 있을 테니까.
허나 그게 아니라면 범인인 그로서는 짐작할 수 없는 전후 구도 때문이리라.
비록 어떤 체제인지, 구도인지, 동맹과의 관계가 어찌 되고 차후 프랑스의 사상이 어찌 될지 모르지만 베르게르 모헬이 설계하는 전후구도를 위한 정비. 그것밖에 없다.
무엇이 되었든.
일단 가믈랭은 엘리제 궁으로 달려갔다.
“각하를 뵈야겠어! 지금 당장 충신 모리스 가믈랭이 왔다고 전해주게!”
“일단 숨 좀 고르시지요.”
“지금 당장!”
“어…. 네. 알겠습니다.”
산발된 머리로 땀까지 흘리며 헐떡이는 가믈랭에 빅터는 아무런 인사말도 못 건네고 모헬에게 소식을 전했다.
1년 만에 집무실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
빅터가 방을 나가고 단둘이 있게 되자마자 가믈랭을 철푸덕 무릎을 꿇었다.
“후배님! 아니, 각하! 부디 전쟁에서 세운 공을 생각해주십시오!”
“에? 뭐가 어쨌다고요?”
“이 모리스 가믈랭의 이름을 걸고 한평생 역심을 품은 적이 없으며 언제나 각하의 따스한 안배 속에 만족하며 살아왔습니다! 머지않아 은퇴할 놈, 부디 불쌍히 여겨 말년에 은총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 선배님 요즘도 골든 브라운이 전장에 돌아다닙니까? 내가 분명 진통용 외에는 엄금했는데.”
혹시 약했냐는 질문에 순간 가믈랭은 ‘너무 과했나?’ 싶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과한 게 안 하는 것보단 낫다. 숙청만큼은 피해야 할 거 아닌가.
여전히 바닥에서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믈랭의 태도에 모헬은 크게 한숨만 내쉬었다.
“거 시발, 다른 놈들은 오해해도 선배님이 오해하면 안 되죠. 진짜 억울해 죽겠네.”
“오, 오해 말씀이십니까?”
“일단 앉아서 이야기합니다. 이게 쪽팔리게 뭡니까?”
제 목숨줄을 쥔 인간이 부축까지 해주니 가믈랭은 주춤거리며 일어나 의자에 앉았다.
“뭐, 대충 예상은 갑니다. 어디서 개소리 듣고 달려와서 이러는 거겠지요.”
“크흠, 절대 아니네. 난 우리 각하를 의심하지 않았어.”
홀로 ‘우리 각하는 또 뭐야 시벌’이라 중얼거리는 모헬의 모습에 가믈랭은 일단은 안심했다.
‘아, 아직 명부에 내 이름이 없구나!’
그의 경험상 숙청의 날에는 모두가 세 종류의 인간으로 분류된다.
처형당하는 죄인.
처형하는 망나니.
그리고 처형을 구경하는 군중.
칼을 잡은 망나니와 칼을 피해간 군중은 살아남지만 죄인은 목이 잘릴 뿐이다.
‘정보부와 불의 십자단을 통해 분류하고 있을 거야. 비록 칼은 못 들어도 죄인으로 분류돼선 안 돼!’
지금 파리로 돌아온 것은 어찌 보면 엄청난 행운이었다.
최소한 무죄를 주장하며 군중으로 남을 순 있지 않겠나.
“내, 내게 시킬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말하게. 아니다. 그냥 인도차이나 내가 가는 건 어떻나? 한 1년 정도면 되겠지? 내 식민지 근무 이력은 후배님께서 더 잘 알 거 아닌가?”
“아 좀. 그만 하시죠. 자꾸 이상한 망상을 머릿속에서 꺼내지 마십쇼.”
“흠흠. 아무튼, 난 언제나 준비되어 있어!”
이미 살았다는 안도감과 충성하겠단 의지를 두 눈에 박고 본인을 바라보는 가믈랭의 모습에 모헬은 설득하기를 포기했다.
‘육군 대장이란 사람이 뭐 이리 겁이 많아? 당신이 그러면 어쩌자는 건데.’
무슨 말을 해도 본인의 경험으로만 판단할 테니 설득은 먹히지도 않을 거다.
조금만 구조를 바꾼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본인은 뇌를 뺐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겠다’고 자진선언하는 육사 선배의 모습은 모헬에게 또 다른 절망을 선사했다.
‘씨발….’
육군 대장마저 달려와 이 지랄인데.
도대체 나머지는 또 어떻게 반응하려나.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오는 모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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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전역 따윈 없다-23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