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232
#232화
바르샤바 함락 이후 또 한 번. 나치군은 둘로 나뉘었다.
여전히 항전을 주장하는 소수와 소련이 조국을 되찾아 줄 수 없음을 확인하고 모든 것을 포기한 다수로 말이다.
“총통은 자살, 나머지는 무조건 항복.”
천만이 넘는 병력이 뒤쫓던 총통을 멈춘 것은 제 스스로 박아넣은 한 발의 총알이었다.
“총통의 자살과 함께 대부분이 항복을 택했습니다.”
“허무하군.”
20년간 프랑스의 대척자로 여겨졌던 국가수장의 결론이 겨우 죽음으로 도망치는 것이라니.
결국 조금의 책임도 지지 않은 채 나치 총통은 자살로 결과를 마주하길 피했다.
“영미는 당장이라도 전범 재판을 열고 싶어 합니다.”
“아직이야. 전범 재판을 자기네들 지지율 올리는 용도로 쓰려하면 되나.”
“그것도 있지만, 아마 여기서 마무리 짓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분위기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연합 내부 다수의 국가. 정확히는 과반이 넘는 국가들이 동토 진입을 꺼려한다.
반대로 동토 진입을 원함에도 즉각적인 재판을 원하는 인간이 있긴 한데….
“리츠시미그위 그 양반이 이해 안 되는 건 아니야.”
“누구보다 프랑스가 피의 복수를 해주기만을 바라고 있을 겁니다. 요즘 하루가 멀다하고 절 찾아와서 닦달하는 게 여간 곤욕스러운 게 아닙니다.”
수백만 폴란드 국민들이 양쪽에서 몰려오는 추축군에 어디로 피난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을 때 홀로 수도를 버리고 항전을 택한 리츠시미그위.
그걸로도 모자라 슬로바키아, 체코로 도망쳤고 끝내 파리까지 도망 와 라디오로 항전 방송밖에 할 수 없던 자.
누구보다. 어쩌면 지금의 나보다 더 복수에 눈이 먼 인간이 리츠시미그위가 아닐까 싶다.
바르샤바와 함께 나치가 무너진 시점에서 연합군 내부에는 두 가지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죽여! 죽여! 죽여!’
‘참아! 참아! 참아!’
도덕과 이성을 외치는 원정군 중심의 윤리 샌님들.
그리고 지성과 이성 따위 진작 C레이션에 말아먹은 개백정들.
그 뒤에 숨겨져 있는 수많은 정치적 계산을 뒤로하고 딱 프랑스의 상황만 봤을 때.
‘우린 관성적으로는 다 죽이는 게 맞지.’
대전쟁부터 이어진 대육군의 기조가 무엇이든가.
무자비. 죄에는 그에 걸맞은 형벌을.
직접 권총을 뽑아 사람을 죽였던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부터가 그 증거다.
듣기로는 해방시켰던 유대인 수용소에 역으로 친위대를 닥치는 대로 잡아 처넣느라 바쁘다고 한다.
그런 행위가 무슨 이득이 있냐고. 되려 점령지 통제에 방해만 되는, 아주 낭비적인 일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으나 난 들은 체도 않고 수용소를 채울 것을 명령했다.
‘그래도 본인들이 많이 지어놔서 다행이야.’
지역별로 하도 많이 지어놨고 운영 노하우도 많이 남아있어 참으로 편리하다.
다만 여기서 전범 재판을. 그러니까 딱 선을 긋게 망설이는 요소가 있으니, 역시 소련이다.
“후우, 빅터. 일본 제국이 존재하는 한 아무래도 스탈린을 법정에 세우는 건 어려워 보여.”
“모스크바를 점령해도 쉽지 않을 겁니다.”
“전쟁 피해로 스탈린의 권력이 흔들릴지언정 내 손으로 직접 처벌하긴 어렵지.”
동토 깊숙이 도망치면 어떻게 잡을 것인가. 그때는 진짜 슬라브 민족을 말살해야만 실마리가 보일 거다.
‘마음 같아서는 협상장에 불러서 죽여버리고 싶은데…. 될 리가 있나.’
삐끗 내가 선을 잘못 그으면 몇천 명 죽을 거 몇십만 명 죽어야 할 상황으로 바뀔 수도 있다.
‘뭐 전범이 한둘이어야지.’
차라리 군인이면 나은데 ‘민간’이라는 단어가 개입되는 순간 ‘저, 저 전부 처죽일 놈들!’로 변질되니 선을 잘 그어야 한다.
그리고 역으로 살려야 하는 놈들도 많다.
“전향한 놈들은 어때.”
“여전히 의심이 많습니다. 회유한 군부 내에서도 애매한 인간들이 참 많은지라.”
“이 시대에 군복 입었는데 오물 한 방울 안 튄 놈이 어디 있겠나.”
독일국방군 비시 버전의 효과가 내 기대보다 더욱 커진 지금, 솔직히 당장 처벌하기보다는 약간의 당근을 통해 확실하게 뽑아먹고 싶다.
‘소련군 목숨 1개당 형량 1년, 대충 이런 느낌으로.’
결국 돌고 돌아 전범 재판조차 연합군 내부의 힘겨루기로 결정될 판.
강력히 주장. 그러니까 억지를 부리면 무조건 나중에 돌아오는 동맹 관계에서 한 발 더 나가도 될까.
미국은 정의구현을 위해서라도 즉각 재판을 열라고 한다.
영국은 방관, 기 싸움에 끼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고.
“이런 기싸움에서 밀리고 싶진 않은데. 아직 아시아로 가고 싶지도 않고.”
미국이 정의를 바로잡자고 우리한테 말하는 날이 오다니, 웃기지도 않지만 겉으로는 틀린 말도 아니라서 반박하기도 애매하다.
별거 아니라 생각한 문제에 외통수가 걸리니 골치가 아파오는 가운데,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다를랑이 입을 열었다.
“각하, 그…. 이런 말씀 드리기 뭐하지만.”
“그냥 말해.”
“원래 하시던 대로 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원래 하던 대로? 뭐, 나보고 예전처럼 눈에 보이는 대로 죽이라고?”
“흠흠, 꼭 그건 아닙니다. 굳이 각하께서 직접 하실 필요도 없고요. 다만, 이왕 재판을 할 거면 적당히는 없다는 정도의 신호만 보내면 됩니다. 배우야 다른 인물을 세우면 되겠지요.”
“…. 다를랑, 자네 천재인가?”
역시 정치 짬밥은 괜히 먹은 게 아닌가. 나 같은 군바리들이 이지선다 사이에서 고민할 때 정치인들은 세 번째 방법을 만들어 낸다니까.
‘역시 넌 보내줄 수가 없다.’
본래는 재판 과정을 다를랑에게 맡길 생각이었는데 보내면 안 되겠다.
“혹시 생각나시는 인물 있으십니까? 필요하시면 제가 만들어 보겠습니다.”
“되었네. 그런 거 잘하는 사람은 대육군에 널렸어.”
대충 옛날 모헬 향수 좀 느끼게 해주고 대놓고 발뺌하는 거 커버 정도만 쳐주면 되겠지.
과연 그때도 우리 샌님들은 정의를 외칠 수 있을까.
***
“…. 그래, 이게 우리 원수님이지.”
원수님이 이제 나이 좀 먹어 성숙해졌다고.
그래서 더 이상 비인간적인 행태는 없을 거라고 말하는 놈들.
그런 불신자들과 본인은 종자부터가 틀리다 여기는 파비앵은 파리에서 날라온 한 명령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변하면 죽는 거여.’
나이를 먹어도 호랑이는 호랑이. 개새끼는 개새끼인 법이다.
짬 먹고 계급 오르면 ‘어라, 좀 변했나?’ 착각하는 놈들을 수도 없이 봐온 파비앵은 지금과 같은 분위기가 매우 익숙했다.
‘또 한 번의 착각이 깨질 때지.’
다만 과거처럼 직접 하시지 않는 것을 보니 그래도 대외 이미지를 챙기긴 하시는 것 같다. 혹은 그냥 가정이 생겨서이거나.
해독된 종이를 촛불에 태운 파비앵은 곧장 오트클로크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오트클로크, 만슈타인 중장을 불러주게. 조용히.”
“늦은 시간 약속을 잡겠습니다.”
눈치 빠른 부관이 적당한 시간과 장소로 만슈타인을 불러올 때 파비앵은 앞으로 그려질 그림을 떠올려봤다.
‘종종 하시는 판 엎기는 아니고…. 분위기 바꾸기? 딱 그 정도인가.’
바르샤바 이후로 이렇다 할 공세가 없는 지금 최전방은 약간의 혼란이 퍼져 있다.
과연 여기서 멈추는 것인지. 아니면 1년 내내 눈과 비로 진흙탕 투성이인 라스푸티차에 몸을 담그러 가야 하는지 알 수 없다.
후방이라고 크게 다를 바 없을 거다. 다를랑이 회의에 회의를 거듭해도 프랑스와 미국의 좁혀질 수 없는 대립은 분열까진 아니어도 감정 싸움 이상으로 번질 테니까.
그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라도 모헬 원수님은 다시 한번 모두를 일깨워 주고 싶어 하신다.
홀로 파리로부터의 명령을 해석하며 소화의 시간을 가진 파비앵은 늦은 밤, 독일국방군의 최고사령관, 에리히 폰 만슈타인과의 밀담을 시작했다.
“먼저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자면, 전쟁은 여기서 끝이 아니오.”
“후우, 예상은 했소. 모스크바?”
“글쎄, 난 그러면 좋겠는데 아직 정해지진 않았소.”
“그럼 전쟁 이야기는 아니고. 은밀히 부른 것을 보면 역시 처분에 관한 이야긴가?”
고개를 차분히 끄덕인 파비앵은 눈 앞의 만슈타인에 대한 평가를 다시한번 떠올려봤다.
‘인망이 좋고. 따르는 자가 많다. 다만 구심점이 될 위험이 있고 그래서인지 본인도 당장은 고분고분해.’
나치의 꿈에서 깨어난 독일 국민들에게 몇 없는 선택지로 꼽힐 만한 사람. 오히려 가치가 있기에, 파비앵은 이번 일에 적합하다고 느꼈다.
“독일국방군의 모든 전공은 차후에 지난 과오와 상쇄될 것이오. 다만 아무리 그래도 재활용도 못 할 놈들이 있지.”
“친위대.”
“꼭 친위대만은 아닌데…. 일단은 친위대라고 해두겠소. 그래서 말인데, 부탁이 있소.”
본인부터가 친위대를 철저히 국방군과 분리하는 스탠스를 취한다. 이건 아주 긍정적인 신호다.
“내가 들은 바로는 딱 이렇소. 우연히 무기를 빼돌린 친위대가 배신자 독일국방군에게 총탄을 퍼부은 게지! 그럼 국방군은 가만히 있나? 어쩔 수 없이 교전이 일어난 것이오. 그리하여 친위대와 국방군 사이의 분란이 일어나 국방군은 다수의 사람들을 사살할 수밖에 없었소.”
“…. 그게 무슨 망발이오. 내전을 하라니.”
“어우, 내전이라니. 우발적 사고가 커졌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지.”
흔들리는 만슈타인의 눈빛이 파비앵의 시나리오를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되풀이 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중장, 국방군이라고 그리 깨끗한 것 같지 않소만. 당장 중장도 민간인 학살을 한 이력이 있지 않소?”
“…. 하고자 하는 말이 뭐요?”
“아니, 그냥 그런 일이 있을 거라는 뜻이오.”
“그딴 연극으로 얻을 게 뭐요? 어차피 그런 일이 여러 차례 일어나면 모두가 프랑스를 의심할 거요.”
“그게 핵심이오. 우리가 뒤에 있다는 것이. 절대 공식적으로는 아니겠지만.”
“…….”
웃으며 당당히 배후로 등극하겠단 말에 만슈타인은 할말을 잃어버렸다.
‘우리라고 친위대를 좋아한 것은 아니다만….’
프랑스의 사주를 받아 친위대를 ‘징벌’한다면, 만슈타인의 뒤에는 오직 프랑스만이 있게 되는 거다.
연합국 내에서도 오직 프랑스만을 뒷배로 두며, 여전히 현실을 부정하는 나치 지지자들에게 민족을 배신한 인간이 될 터.
“…. 안 하면 어찌 되는 거요.”
“같은 이야기에 주인공만 바뀌겠지.”
“젠장.”
만슈타인이라고 프랑스와 미국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를 모르진 않았다.
이건 프랑스식 시위다. 미국이 정의를 명분으로 외치면 학살로 답하는, 아주 잔인무도한 그들만의 방식이란 말이다.
“너무 걱정 마시오. 주인공은 시련을 겪어도 마지막에 서서 웃는 존재이니.”
파비앵 소장이 하는 말의 범위는 비단 전후 재판에서 빼주는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동앗줄 하나만 잡으라. 그리하면 높은 곳으로 올려주겠다.’
만슈타인을 고민하게 만드는 것은 저들이 내민 손에 올려진 욕망 따위가 아니었다.
오직 내민 손이 단 하나뿐이라.
설령 미국이, 영국이 다른 손을 내밀어도 프랑스가 내민 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 같아서.
그래서, 고민이 되는 거다.
저걸 잡으면, 과연 독일에 미래가 있을까. 이딴 더러운 뒷거래 하나가 문제가 아니다.
‘한번 시작한 관계는, 절대 내 의지로 끊을 수 없다.’
독일국방군의 연합군 합류만으로도 이미 민족내전에 가까운 비극이었다.
여기서 저들의 손을 잡으면 과연 본인은 독일을 지키는 입장이 될까, 되려 자국민을 착취하는 입장이 될까.
“고민할 게 뭐가 있소?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오. 연합국의 추궁에 겉으로 부정만 해주면 누구도 뭐라할 수 없을 거요. 아니, 오히려 좋은 거 아닌가? 새시대에 과거를 청산하는 참된 군인!”
“…. 당신들은 미쳤어.”
“흠, 내가 말해줬었소? 나도 한때 전쟁을 혐오하는 일개 부사관이었다고. 근데 어째? 이 시대가 그런 것을. 우리 중장도 너무 고민하지 마시오. 그냥,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그런 거요.”
“그런 합리화는 역겨울 뿐이오.”
“그 말은 스스로에게 하는 건가?”
“…….”
“좋아, 그럼 하는 걸로 하지. 이왕이면 이번 주 내로 크게 한번 질러보자고?”
악수를 위해 내미는 손을 만슈타인은 차마 맞잡지 못했다.
그럼에도 파비앵은 웃어 보였다.
마치 너도 자신과 다를 바 없다는 듯이.
이해하고 싶지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인간. 그런 인간의 나라 프랑스.
만슈타인은 전쟁의 패배를 처음으로 제대로 맛보았다.
이보다 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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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전역 따윈 없다-23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