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236
#236화
돌아오는 전용기 안에서 끊임없이 이번 대금 결제안에 관해 고민해봤다.
정말 이 방법이 최선이었을까.
독일인들에게 모든 핏물을 뒤집어씌우고 대육군은 한 발 빼는 게 맞는 걸까.
‘그 희생을 다 우리 애들로 채울 순 없다.’
아시아 전역이 어찌 펼쳐질진 모르지만 엄청난 희생이 일 것은 확실하다.
미군이 원하는 것. 대놓고 말은 못 해도 아마 우리 대육군이었겠지.
그 피를 대신하기 위해서 난 독일군을 제물로 바쳤다.
바르샤바 이후로 나는 징집을 멈추고 모든 인력을 북부-루르 공업 지대 복구에 힘쓰고 있다.
독일과 폴란드 재건의 주역이 되기 위해서. 유럽 대륙의 새로운 공급자로 거듭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니 지금 모든 경쟁자들이 전쟁에 눈이 돌아가 쇠퇴하고 있을 때, 우리 프랑스는 조용히 후방을 키워야 한다.
어찌보면 루스벨트의 우려는 마냥 비현실적이지 않다. 유럽 전쟁이 끝나고 아시아 전쟁이 시작될 때가 한 턴 쉬면서 도약을 준비할 최고의 기회이기도 하니까.
그런 프랑스를 대신해 피를 흘려줄 나라로 독일을 택한다.
적당히 우리 쪽 물자와 랜드리스 섞어서 덕지덕지 발라주면 누구도 부정 못 할 정예군이 독일국방군이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할 거라 여기진 않는다.
‘…내가 좀 더 독해져야겠네.’
독일이 더 겁먹고 순순히 아시아로 향할 수 있게.
사실 난 전혀 살려줄 의향이 없었다는 것처럼.
그래서 아시아가 독일의 유일한 미래처럼 보이도록 말이다.
“이거 역사에 히틀러보다 더한 놈으로 기록되는 거 아닌가 몰라.”
자국민 대신 타국민을 탄압하는 꼴이 나치 총통이나 조지아 인간백정과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일지도.
“뭐, 이제와서 상관없나.”
그게 독재 정권의 매력이지. 국민들은 아무런 권리도, 책임도 지지 않은 채 한 개인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는 것.
한 나라 자체가 악해져선 안 되니. 내가 조금 더 가혹해져야 할 것 같다.
“바르샤바에서 화재를 낸 게 만슈타인 중장이었나. 빅터, 그 친구는 지금 뭐하고 있지?”
“독일국방군 총참모장으로 현재 폴란드에 있을 겁니다.”
“베를린으로 부르지.”
“직접 가십니까?”
“직접 가는 게 좋겠군.”
가서 보여줘야 한다. 너희의 수도에 라 트리콜로르 깃발을 꽂은 게 누구인지.
연합군이란 이름 아래에 모든 국가가 평등해 보이지만 실제 유럽의 주인이 누구인지.
직접 보여주고, 직접 말해야 잘 듣지 않을까.
게르만 민족의 목에 걸린 개목줄 끈을 굳이 거칠게 당기지 않아도 만슈타인이라면 잘 알아들으리라 믿고 싶다.
그렇지 아니하면 지금의 난 전보다 무서워져야만 할 테니까.
***
모헬이 새로운 다짐으로 마음을 더럽히고 있을 때.
루스벨트는 피폐해진 정신을 이끌고 백악관으로 돌아와 다시 악몽에 시달려야만 했다.
자나 깨나 그를 괴롭히는 수많은 고민.
‘우리의 요구가 과했나? 혹시 독일을 이번 기회에 완전히 독식하려는 것이 아닌가?’
과연 아시아로 향하게 될 독일이 자신들을 보낸 프랑스를 원망할까 아니면 파병 자체를 꺼낸 미합중국을 원망할까.
마지막으로 본 모헬 원수는 이미 눈의 초점이 사라져 과거 마셜이 말했던 ‘죽음을 받아들인 눈’을 하고 회담장을 나서던데 저 독재자가 또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
프랑스의 영향력을 떠나 현 유럽에 아시아로 향하고자 하는 국가 자체가 영국을 빼면 없다시피 하다는 점.
그 영국조차 본국과 단합 대신 단독으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점.
아니, 위의 우려들을 다 치워도 가장 걱정되는 것은.
“마셜 총장. 부디 자네라면 알고 있다고 말해주게. 제발 자네만큼은 알고 있어야 해. 도대체 저 전쟁귀가 그리는 전후는 무엇인가?”
미합중국이 원하는 바는 아주 간단했는데.
유럽을 프랑스와 영국이 갈라먹기 위해 박터지게 싸우는 동안 미합중국은 아시아를 독식하는, 아주 간단한 그림이 전부인데.
왜 레닌그라드에 집착하는지도, 식민지에 무관심한지도, 굳이 감쌀 필요도 없는 국가를 감싸는지도, 어째서 전쟁 피해가 커질수록 프랑스의 날개 아래로 동맹들이 더 깊숙이 들어가려는지도 모르겠다.
“난 이제 알 수가 없네. 이 흰머리가 다 빠지도록 고민해도 알 수가 없단 말이네. 식민지? 독립 해방? 국가 분할? 동맹 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체제? 대서양을 건너가고 나서는 내가 아는 모든 상식까지 의심스러웠단 말이야.”
진짜 아시아로 대육군을 안 보내려는 이유가 새로운 정복전쟁을 시작하기 위해서일까?
정말로 나치가 제거된 독일을 식민지로 안 만들고 동맹으로 대우하려는 걸까?
꼭 식민지 이야기는 나오기만 해도 피하던데 혹시 해방할 생각이 있긴 한 걸까?
여전히 그놈의 ‘말 안 들으면 죽인다.’ 외교 방식을 버리지는 않았던데 평화를 원하기는 하는 걸까?
좌우뇌를 꽉 채우는 이 의문들을 백악관으로 돌아와 무엇하나 해치우지 못한 루스벨트는 점점 무기력해질 것만 같았다.
“대통령님, 저치들의 판 위에서 우리가 춤출 이유는 없습니다. 결국 저희는 원하는 바를 얻지 않았습니까?”
“정말 그런 거겠나? 또 저 전쟁귀가 새로운 귀신이 들려 미래시를 보고 홀로 무언가를 준비하는데 우리 미합중국만 당장 손에 쥐어진 것에 백치처럼 좋아하고 있는 건 아니고?”
“염려가 지나치십니다. 프랑스군이면 좋았겠지만…. 독일군도 나쁘지 않습니다. 죽어도 아무런 책임을 저희한테 물을 수 없다는 점에서는 말입니다.”
독일군이면 어떠하고 프랑스군이면 어떠한가? 잽스만 잘 죽이면 그만 아닌가?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저 유럽 내부의, 특히 프랑스 내부의 사정은 잘 모르지만 최소한 아시아 전장만큼은 미합중국이 원하는 그림이 한 피스씩 퍼즐처럼 맞춰지고 있다고 봤다.
‘모헬 원수가 준비하는 거라면 가능성은 세 가지 정도밖에 없을 터인데.’
새로운 전쟁, 전후 체제, 혹은 숙청과 계승.
당장은 뒤 둘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엘리나 모헬은 후계자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어. 그럼 결국 가스파르가 후계자일 터.’
그 가스파르를 후계자로 올리고, 가스파르 모헬의 시대에 걸맞은 패권을 구축하며, 동시에 발목만 잡는 동맹과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힌 식민지 같은 문제를 전부 정리하려 한다.
이 거대한 그림을 전쟁이 끝나는 시기에 맞춰 해결하려는 베르게르 모헬.
과연 그런 방법이 존재는 하는가 싶지만 세계 대전이 끝나자마자 새로운 세계 대전을 준비한다는 미친 발상을 한 괴물이라면 가능하리라.
이게, 마셜이 내린 결론이었다.
“잠시 동안 프랑스는 혼란스러울 겁니다. 그러나 흔들리지는 않겠지요. 복잡하게 생각하실 게 있습니까? 저희는 아시아에 집중하며 적당한 해군력만 유지하면 그만입니다.”
“후우, 그렇긴 하지.”
겨우 추스르는 듯 했으나 아직 루스벨트의 정신은 회담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아무런 기대도, 흥미도 없다는 듯한 그 눈빛. 정말 잊을 수가 없군.’
그는 그날 하루 동안 정말 많은 것을, 거의 스스로까지 포기한 남자처럼 보였다.
모두가 그를 욕하지만 마냥 대화가 안 통하는 고집불통이라 여기진 않았던 루스벨트는 그날따라 그냥 요구를 수용해버린 모헬의 태도가 못내 마음에 걸렸다.
“만약에 말이야…. 정말 최악의 경우 독일국방군이 아시아로 다 나가 있는 사이 프랑스가 독일 탄압을 시작하면 어찌 되겠나?”
“저항군이 생길 틈도 없이 국가가 사라지겠지요. 조지아 꼴 나지 않겠습니까. 허나 그럴 가능성은 없습니다.”
“리츠시미그위 원수는 딱 폴란드인들이 죽은 만큼만 죽이자고 소리치던데?”
“얼마입니까?”
“대충 3백만 넘는다더군.”
“…….”
“저긴 그런 곳이야. 이딴 말이 실현 가능한 곳이라고.”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루스벨트 본인도 잘 모르는 듯했으나 마셜도 프랑스의 현 정세를 예의주시할 필요성은 느꼈다.
‘엘리나 모헬이 우리 측에 있는 것은 어쩌면 다행이라고 봐야 하나.’
최소한 미합중국을 적으로 돌릴 가능성은 적을 테니까.
“레닌그라드 상륙 전까지는 조용히 있는 게 좋겠습니다.”
“가만히 랜드리스나 보내주자고. 어쨌든 이번 기회에 떼먹히진 않을 게 확실해졌으니.”
이번 일은 무사히 넘겼으니 당분간 얌전히 지내기로 다짐한 두 사람은 한 독재자에 대한 생각을 찬찬히 잊어가려 노력했다.
어느새 편안한 잠자리 후 홀로 휠체어로 몸을 옮길 수도 있게 된 루스벨트의 편안함에 하늘이 노했을까.
“뭐, 뭐라고?”
“가스파르 리 모헬이 나치 잔당에게 습격당해서 큰 부상을 입었답니다!”
“그, 그리고 그다음은!”
“…하필 그날 모헬 대통령이 베를린에 도착했습니다.”
“……아.”
짧은 탄식과 함께 이어지는 긴 정적은 루스벨트가 아무런 해답을 도출하지 못했음만 말해줄 뿐이었다.
프랑스가, 더 시뻘게지게 생겼다.
***
파리에 있던 다를랑과 맥아더가 즉각 베를린행 비행기에 올라타고.
후방 전선을 정리하던 대육군 장성들이 베를린으로 밤을 새워가며 달려가며.
바르샤바에서 베를린으로 향하려던 만슈타인의 수송기에 영미 가릴 거 없이 함께 탑승을 할 때.
한 병실 앞에서 손을 꼭 잡은 모헬이 고개를 숙인 채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와 조용히 대화 중이었다.
“상태는.”
“납파편이 아니라 타일과 돌 파편이라 중독 증상은 없습니다. 다행히 모두 제거했고, 생명에 지장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한쪽 눈 시력 회복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애가 숨을 느리게 쉬던데.”
“모르핀 과다투여 증상입니다.”
“나가.”
빅터의 손짓에 의사가 방을 나가고. 빅터는 설명을 이었다.
“정보부가 지하만 빌려 쓰던 베를린 경찰청사를 향한 테러였습니다. 사실 이곳이 반쯤 포로 심문으로 쓰이는 건 모든 베를린 시민들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현재까지의 조사한 바에 의하면 나치 잔당이라기보다는 여기에 잡혀온 이들을 구하기 위한 시도로 보입니다.”
“우리 정보부가 대놓고 활동했고, 겨우 벽이나 뚫어서 도망치려는 조잡한 시도에 당했다라.”
“…. 정보부 탓이라기엔 감히 베를린에서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을 겁니다. 애초에 나치라는 존재는 이미 독일에서 분리되었으니까요. 다시 사건에 관해 말씀드리자면, 가스파르 군의 존재는 아무도 몰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랬겠지. 알았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방치하지 않았겠지.”
“…. 각하, 이건 누구의 책임도 아닙니다.”
“빅터, 그런 말은 나도 할 줄 알아.”
잠자는 가스파르가 깰까 조용히 철제 접이식 의자에서 일어난 모헬은 잡던 손을 내려놓고 병상에서 등을 돌렸다.
“근데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나.”
빅터는 그 누군가라는 단어가 모헬 원수님 본인을 자책하는 것처럼 들렸다.
허나 죄책감조차 찾아볼 수 없는 모헬 원수님의 표정은 감정이 메마르다 못해 죽은 자가 눈만 떴다고 봐도 될 정도.
차마 빅터는 지금 어디로 발걸음 하고 있는지, 혹은 무슨 생각이신지 물을 수도 없었다.
그나마 겨우 입을 떼서 뱉은 말이라곤.
“만슈타인 중장이 오늘 늦은 밤 도착한답니다. 그때까지 쉬시는 게 어떠십니까?”
“아아, 그거. 취소해주게. 내가 지금은 바쁘거든.”
만슈타인 중장과의 만남을 제외하고 베를린에서 잡힌 일정은 없다.
파비앵 소장님이나 샤를 드골 의원님한테 말로만 들었던 젊을 적 모헬 원수 각하.
부관으로 오래 일했으나 처음 보는 지금의 모습이 두 사람이 진저리 치며 말하던 그때와 비슷할까.
“폭사한 자 외에도 분명 협력한 자들이 현장 가까운 곳에 더 있었을 것입니다. 조사를 위해 인근에 있던 이들을 구금해두었습니다.”
“좋아, 거기부터 가지.”
가자고 말하면서 본인 권총을 꺼내 총알을 점검하는 모습에 빅터는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그 권총을 잡아버렸다.
“…. 각하. 조금 진정하시는 게 어떠십니까.”
죽은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지자 순간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빅터는 왜인지 지금 막아야만 할 것 같았다.
총을 막아선 빅터의 손과, 빅터의 안면을 두어 번 번갈아 보던 모헬은 그를 지나치며 조용히 말했다.
“가스파르가 자고 있는 걸 다행으로 여기게. 허나 두 번은 없어.”
그러곤 문을 열고 방 밖으로 사라지자, 순간 긴장감이 풀린 빅터는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허억.”
제발 누가 와서 각하를 막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이 들 뿐, 차마 다시는 막아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