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254
#254화
“후우, 후우.”
“항복?”
“지금의 이 자리에서 당신의 발언. 하나하나 잘 유념해 두겠소.”
“이제와서 외교적 문제로 번지기엔 상을 엎은 사람은 본인인데?”
외교 문제는 진작 뒷전으로 치우고 나이에 소수점 하나 찍혔는지 유치함의 끝판을 달리는 두 사람.
끝도 없는 고집과 철벽 사이에 놓인 난 어느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신사답게 식사를 마치고 찻잔을 들이켰다.
“자자, 처칠 경. 느꼈겠지만 이 자리에서 나와 둘이 이야기를 해봤자 미국 없이는 아무것도 진행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 딴지를 걸면 우리 연합만 금이 가지 않겠습니까?”
난 진짜 힘없는 허수아비라니까? 주도권도 아시아 전역이 열리면서 미국으로 다 넘어갔잖아?
“어디 좀스럽게 뒤에서 홀라당 다 먹으려고.”
“좀스럽게? 지금 내게 한 말이오?”
“허허, 찔렸소?”
이거 봐. 저 더글러스만 봐도 미국이 마냥 유럽에 눈을 뗀 게 아님이 확 드러나지 않나.
“그러니 나중에 다시 자리를 가집지요. 지금 확언을 바란다면…. 전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그게 언제란 말인가? 저 아시아 전쟁이 언제 끝날 줄 알고?”
“아, 그러니까 그짝도 파병 병력을 좀 늘리라고. 해군력 투사 좋아하잖아?”
“좀, 닥쳐!”
“허허, 우리 미합중국 헌법이 보장하는 내 발언권이 이리 억압당하는구먼!”
아무튼 힘없는 프랑스는 미국 눈치에 전전긍긍해야 해서 여기서 아무런 말도 해줄 수가 없네.
아쉽지만 어쩌겠어? 우린 아직 전쟁 중인 국가고 저 아시아에 끌려다녀야 하는 판인데.
“다음에, 다시 뵙겠습니다.”
끝까지 서로 멱살 잡을 기세인 두 사람에게 만남이 끝났음을 알리고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록 15년이 흐르고 어느덧 나이와 함께 각국의 높은 자리에 오른 우리지만.
“퉤, 아무튼 아시아에서는 늦지 마시오. 또 늦으면 홍콩이고 뭐고 국물도 없어!”
“지금 해전이 누구 덕인데! 우리 대영제국의 왕립 해군 덕에 상륙전 겨우 시도나 하는 마당에!”
“에라이, 그놈의 해군, 해군! 우리가 눈 딱 감고 반년이면 생산하고도 남는다!”
“해! 하라고! 싯팔 어디 해군이 먼저 생기나 미국이 파산해서 다시 알래스카 매물로 나오나 보자고!”
그닥 어른스러워지진 않았나 보다.
아직 우리는 어린아이와도 같았다.
***
갈리폴리가 담당일진에 정신 못 차리고 준비한 주장도 다 펼치지 못한 채 만남이 종료되고, 오늘도 한 건 했다는 생각으로 건물 밖에서 담배를 피는 내 옆에 뒷짐진 채 더글러스가 다가온다.
“성능 죽이지?”
“깽판 실력은 여전하군.”
“다 자네를 보며 연구했네.”
“난 처칠이 아니니 헛소리는 그만하지.”
아시아 전역이 펼쳐지고 모든 미군이 그쪽 전장에 맞춰 형태를 바꾸는 와중, 더글러스는 유럽 원정군 총사령관직을 이어받았다.
“기어코 총사령관직에 앉았군. 앞으로 볼일 많겠어.”
“다 자네 때문이지. 허나 저 필리핀이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니 계속 있지만은 못할 게야. 운명의 이끌림은 거부할 수 없으니.”
그거 개인의 바람이 아니라 미국의 뜻인 거지? 아직도 필리핀에 대한 열망이 살아있는지 모르겠던데.
‘돈도 안 되고 괜히 도덕성만 더럽히는 물건 아닌가?’
뭐 더글러스 맥아더란 상표가 그쪽 지역에서 꽤나 잘 먹힌다고 듣긴 했다만.
“내가 왜 자네의 요청에 한달음에 달려왔는지 아나?”
“모르겠는데.”
“어허, 이러면 섭섭해. 우리 아직 계산할 게 남지 않았나? 오늘 일도 더해서 말이야.”
개인적인 이야기인지 아니면 공식적인 이야기인지 분간이 어려웠으나 더글러스의 표정을 보아하니 딱히 구분 지은 것 같지도 않다.
‘자기가 미국 그 자체야 뭐야.’
전시 미국이 사람이었다면 바로 눈앞의 이 인간이 아니었을까 싶긴 하다만 아무튼 난 우리 사이에 남은 계산 따위 기억나는 건 없다.
“하아, 내 이럴 줄 알았네.”
“이 모헬에게 채무가 있다니, 웃기는 소리는 그만하게.”
“난 개인적으로 열렬한 친프랑스 파벌이라고 여기네. 자네가 미친짓을 해도 열심히 변호했고, 자네가 자존심 살살 긁어도 내가 다 커버쳐줬지. 베를린 봉쇄? 그거 누가 덮었지? 수용소에 역으로 나치를 가둬버린다는 의견도 내가 수용해줬고 자네가 모스크바로 진짜 가지 않을 거라고도 이 맥아더가 모두를 설득했단 말이네. 어때 더 해봐?”
그냥 ‘미국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잖아.’라고 퉁치고 싶지만…. 솔직히 저 맥아더가 자기 이름값을 여기저기 발산하며 프랑스를 최대한 정상국가로 보이게 만든 공 하나는 인정한다.
‘여기서 아니라고 해봤자 저 새끼만 더 발작한다.’
난 처칠이 아니다. 미친놈 앞에서는 적당히 고개 끄덕이며 무시할 줄도 안다. 그거 못한 게 히틀러고 스탈린이니까.
“후우, 그래서 바라는 게 뭔데.”
“비록 필리프 페탱 원수께서 직접 행차하셔서 프랑스의 진심을 표현하셨지만…. 난 아직 부족하다 여기네. 발칸의 소국들이 아시아까지 대규모 파병을 할 국력은 안 되고 독일 놈들이야 남의 땅에서 죽고 싶어 하지 않지. 무솔리니? 그자는 식민지 해방이 아니라 식민지 탈환을 목표로 하더군.”
“서론이 길군.”
“자네가 한번 와주게.”
…결론이 이렇게 난다고? 언제는 대통령이 피 맛을 못 잊어 야전으로 기어나왔다고 지랄발광을 떨더니 갑자기 지구 반대편으로 출장이라니?
“내가 가면 기관총 성능이 좋아지거나 폭격이 정밀해지나? 헛소리 집어치워.”
“대신 유럽이 진심이 되겠지.”
유럽의 진심이란 표현에 그제야 난 더글러스가 바라는 바를 알 수 있었다.
‘주인공 하라고 치켜세워 줬더니 부담스럽다는 건가.’
이미 계획된 병력이 4백만을 훌쩍 넘는다. 그중 미군이 6할을 넘기지만 여하튼 잽스 머리통 깨기엔 충분한 병력이란 말씀.
그럼에도 미국은 불안한 거다.
피해가 커질까 봐. 혹여나 아시아에서 유럽 힘을 끌어다 썼다가 사상자가 늘어나면 다 갚아야만 할까 봐. 그것도 아니면 아예 유럽이 아시아에서 설렁설렁 발을 뺄까 봐.
“아시아에는 비단 일본만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붉은 군대가 블라디보스토크 아래로 기어나온다면 장담하지. 그날부로 다시 유럽 전쟁 시작이야.”
우리가 왜 소련에게 배상금 한 푼 안 받는 대신 동토에 가두기로 결정했던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아시아 아니었나.
혹여나 유럽 전쟁을 겨우 끝냈는데 소련이 아시아에서 다시 활개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연합국 모두가 동의한 바였다.
일본과 소련의 연합군이라니.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지상병력이 투입되어야 할지 모르겠다.
“유럽 전쟁 끝난 지 반년도 안 되었네. 아직 안심할 수 없어.”
“더글러스, 내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지만 이건 자네들이 들어야 하는 짐이야. 내가 격전지를 미군에게 온전히 떠넘긴 적이 있던가?”
“알지, 내 잘 알지. 그러나 세상만사가 그리 돌아가지 않지 않나. 베를린 공세 때처럼 딱 한 번이면 되네.”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아시아 전장은 유럽보다는 조금 더 지저분하고, 비인간적일지도 모른다.
최소한의 포로 조약 따위도 없고 현지 세력의 친일 여부와 존립 결정까지 아주 하나하나가 복잡하고 귀찮은 여정이다.
지금 더글러스의 요구 속에는 아마 그런 답답한 요소까지 전부 계산되어 있을 거다.
전쟁을 진행하면서 전후 그림도 조금씩 그리는 동시에 전쟁이 길어지는 것도 방지하고.
이리저리 계산을 두들겨 봐도, 이건 빚 계산이라기엔 너무 이자가 사채 수준이다.
“안 되는 건 안 되네.”
“아, 왜!”
어우, 시발 떼를 써? 나보다 형이라면서. 역겨워서 올라온다, 우웩.
“중국! 자네 친중 세력이 꽤 남아 있어! 그리고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은 우리 두 나라를 해방자로 여기고 있고! 이 기회를 포기하고 내뺀다? 아주 땅을 치고 후회할 거야!”
“미안한데 지금 난 유럽만으로도 정신없어. 그리고 자넨 알지 않나. 난 절대 무리하는 법이 없지.”
과격한 것과 분수 모르고 날뛰는 건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난 철저한 계산을 통해 ‘아 이 나라는 없어도 되겠네.’ 싶어서 전쟁한 거지 절대 침 질질 흘리며 전후 생각에 전쟁을 하진 않았다.
“내 이런 말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아까 처칠 봤지? 온 지구에 아주 침을 바를 기세야! 자넨 그걸 가만히 두고 보려는 건가?”
“왜, 함께 협력하면 좋지.”
“젠장, 알아들었으면서 그러지 좀 말게! 아시아에서 영국을 빼고, 우리 두 나라가 함께하자고.”
“오.”
이제야, 좀 끌고 당길만한 이야기가 나오네.
“그러니까, 자넨 지금 내게 영국을 아시아에서 배제하자는 아주 음험한 음모를 제시한 게야, 그렇지?”
“…….”
왜, 이거 미국 공식 입장 아니야? FDR한테 연락해야 하면 말하고. 직통 번호로 콜 때려줄 테니까.
미국과 프랑스가 급부상하는 것과 달리 자꾸만 나락으로 가는 영국.
분명 우리 프랑스는 삼파전 구도로 하하호호 웃으며 평화를 원했는데….
저런.
‘미국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나 봐.’
영국이 타락한 제국주의자여서일까나, 아니면 미국이 제국주의자로 변하고 있어서일까나.
유럽에 민주주의를 설파하느라 바쁜 난 잘 모르겠네.
일단 아시아 가서 확인해봐야 하나.
***
사실 마셜은, 딱히 공산주의자들을 배제하고 싶지 않았다.
좀 더 진솔해지자면.
‘충분히 소련을 아시아 전역에 끌어들일 만했다.’
종전 협상하는 과정에서 조금만 풀어줬다면 역으로 저 붉은 군대가 잽스과 부딪히는 구도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대일에 소련이 끼게 되면 자연스레 만주, 조선, 중화 일대 전체에 일본군은 병력이 묶인다.
그럼 바다로 떨어져 있는 나머지 지역들이 취약해질 테고, 이는 미국의 힘만으로 온전히 아시아를 해방. 나아가 전후에 독식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물론 마셜의 계산은 협상이 시작되자마자 막혔는데.
“언제라도 전쟁할 기세면서 무슨 평화라는 거냐.”
바로 전쟁광의 나라, 프랑스가 ‘우린 협상이 틀어지길 바라! 어서 모스크바 가고 싶거든!’이라는 식으로 나와 마셜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본인은 나치 군대까지 써먹으면서 정작 소련은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그럼 남은 숙제는 어느 순간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미군에게 남았는데….
‘교전 비율 1대2만 나와도 지옥이지.’
단순 계산으로 미합중국의 건아들이 두 배 더 잘 싸워 전쟁을 이겼다 한들 얼마나 많은 숫자가 더 죽어야만 한단 말인가.
젊은이들이 멸종해 결혼적령기가 파괴되는 미래를 원하는 게 아니라면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선 안 된다.
국내 정권과 정치를 떠나 그냥 지금 성장하는 미합중국은 그런 피해를 손쉽게 감당할 수 있을 리 없다.
진짜 최악은, 전쟁 다 이겨 놓고 큰 피해 때문에 먼로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거다.
그렇게 내린 다음 결론은 결국 유럽에 투자한 투자금을 회수해 아시아에 쏟아붓는 것.
즉, 완전한 독식 대신 과반의 지분 정도로 만족하는 방법이다.
대충 해군력 우위로 일본 본토와 그들의 점령지를 끊어놓으면 손쉽게 이길 수 있단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미군 주도로 파푸아뉴기니와 뉴브리튼 섬에 상륙하면서 무참히 깨져버렸다.
본토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아주 쉬워 보였던 파푸아뉴기니 지역.
호주군과 미군을 주도로 이뤄진 뉴브리튼 탈환전.
적은 고작 10만에 불과한 병력이었고 호주과 미국 두 나라는 무려 40만에 이르는 병력을 준비했었다.
허나 지난 2년간 모든 섬 요새화와 경작지까지 만들고 지하 방어 시설까지 지은 일본군은 그리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교환 비율 1대2에 훨씬 못 미치는 결과.
‘고작 섬 몇 개였다. 지명도 이상한 섬 몇 개가 우리 미 육군의 집단 묘지가 되었어.’
미군의 힘만으로 탈환? 말도 안 되는 망상이었다.
저 잽스들은 항복도 하지 않는다.
당연히 포로 또한 잡지 않았고 마치 지난 세계 대전을 연상케 하듯 지독한 방어전을 맹신하고 있었다.
태평양 아래에서부터 섬나라 위주로 하나씩 탈환해 치고 올라가 종국에는 아시아 대륙과 일본 본토를 점령하는 것.
이 장대한 여정의 첫발이 나머지 여정에 얼마나 많은 피를 연료로 소모할지 알려준다.
그래서 파푸아뉴기니 섬에서의 전투 결과를 들은 마셜이 내린 결론은, 아주 간단했다.
“일제 괴뢰국인 자유 인도 임시정부를 비롯한 인도차이나 반도의 탈환 작전의 총사령관은 필리프 페탱으로 임명한다.”
여기에 하나 더.
“베르게르 모헬, 그자를 아시아로 불러들여야 합니다.”
“…총장, 굳이 그래야만 하나?”
“일단 엉덩이라도 이쪽에 앉혀 놓으면 뭐라도 됩니다.”
“으음, 내 더글러스를 보내보도록 하지.”
바로 저 잽스들이 방어전에 미치도록 가르친 선생 놈을 데려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