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255
#255화
단순 평시였다면 외교에 누구보다 빠삭한 플랑댕만 불러도 즉시 미국이 변심한 이유와 그 근거까지 줄줄이 설명을 들을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전시다.
엘리제 궁으로 돌아오자마자 난 다를랑을 비롯해 몇몇 인사들을 호출했다.
이젠 다른 사람이 저들의 자리를 대신하는 게 어색할 만큼 익숙해져버린 얼굴들.
고인물은 썩기 마련이라고 하지만 안 썩게 분위기만 잘 잡아주면 능력은 매일 성장할 수밖에 없다.
미국 측 제안과 현재 상황, 그리고 저 아시아 소식까지 한번 훑은 다음 난 각자의 의견을 기다렸다.
“일단 하나는 확실합니다. 미국은 영국보다는 저희와 손을 잡고 싶어 합니다.”
“플랑댕,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전쟁을 차치하고 보자면, 역시 시장 아니겠습니까.”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프랑스와 독일의 경제적 융합이 예고된 것만으로도 전 세계 자본이 들썩이고 있는데 전쟁 끝나기도 전에 독일-폴란드 재건 계획을 발표했으니 얼마나 애가 탈까.
다 치우고 대륙별로 나눴을 때 유럽의 시장은 압도적이다.
지금 일본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가 수십 년에 걸쳐 전후에 성장하면 또 모르는 일이나 최소 반세기는 유럽의 시장 규모를 넘볼 수 있는 곳은 없다.
그리고 그 유럽은.
‘우리가 꽉 잡고 있지.’
저 섬나라 녀석들은 절대로 불가능하지만 대륙에 푹 박혀있는 우리 프랑스는 가능한 시장 장악.
심지어 대륙 내 우리에게 대적할 만한 국가 후보도 없는 상황이니 유럽 시장을 움직이는 건 우리 프랑스다.
당연히 프랑스 혼자 독식은 말도 안 되고. 적당히 내외부 잘 조절해서 끼워맞춰야 할 텐데 이곳에 미국은 침투하고 싶은 거다.
“아시다시피 작년에 미국과의 마찰을 겪을 때 한번 보여 주지 않았습니까. 진정 유럽의 주인이 누구인지. 심지어 몇몇 국가를 제외하면 저희와 관계가 나쁜 국가는 없습니다.”
“단순히 그게 전부인가?”
“아닐 겁니다.”
다음으로 끼어든 건 다를랑이었다.
“미국 홀로 아시아를 전역을 수복하고 재건하고 성장시킨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결국 저희가 유럽 시장을 일정 부분 개방하는 만큼 미국 또한 아시아를 내줘야 하는데, 그 파트너로 저희를 정한 겁니다.”
“그니까 왜. 해군력하면 역시 대영제국일 터인데.”
“저희가 해군을 키우며 미국의 가장 큰 고객이기도 하나, 이유는 크게 둘일 겁니다. 하나는 소련.”
스탈린과 내가 살아있는 한 절대 멈출 수 없는 관계. 우리의 악연은 둘 다 죽는 그날까지 이어질 테고, 이는 미국도 잘 아는 사실.
“소련이 감히 넘어오지 못하도록 하고 싶을 겁니다. 솔직히 말해서 또 한 번의 세계 대전을 무릅쓸 수 있는 국가가 세상에 저희와 소련 제외하면 어디 있겠습니까?”
또 한 번의 세계 대전. 벌써 두 번째다. 당연히 그다음이 없다고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그리고 그 세계 대전을 일으킬 만한 사람은 이 행성에 딱 둘밖에 없는데, 그게 나와 스탈린이란 뜻.
“다를랑, 나 그런 사람 아니야.”
“중요한 건 미국이 그리 믿는다는 겁니다.”
“그래, 뭐.”
아무리 독재라지만 타국이 어찌 믿는지까지 내가 뭐라 할 순 없지.
“두 번째는 전쟁 그 자체입니다.”
“전쟁 그 자체라면?”
“저희가 소련을 찍어 누른 것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본 미합중국입니다. 저치들은 아마 일본을 똑같이 만들고 싶어 하지 않겠습니까?”
국가의 방향성이라기엔 이유가 너무 단순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보통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아물고 나아가 과거를 잊기 마련이지만 이 분노라는 감정은 때론 다르다.
처맞는 그 순간보다 이후 맞은 기억을 떠올릴 때 더욱 열불이 나듯, 분노는 숙성될수록 치욕이니 모욕이니 온갖 가지까지 뻗어가며 덩치를 키우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볼 때 지금 미합중국은.
‘여전히 화났네. 그것도 아주 많이.’
그전까지의 모든 전쟁이 적당히 이기고 땅과 배상금 받은 뒤, 마무리 지었다면 이번만큼은 일본 본토 자체를 잿더미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러니 수도 점령 경험 많은 우리를 단순히 손 좀 거드는 수준을 넘어 끝까지 함께할 동료로 만들려는 게 아닐까.
“이런 말을 내 입으로 하긴 그렇지만, 우리가 좀 전쟁을 잘해. 그것도 좀 과격하게.”
다들 떨떠름하게 끄덕이나 나도 알 건 안다. 지난 3년의 실전까지 더해진 우리 대육군은 아주 전쟁을 잘한다.
단순히 개개인의 전투력은 당연하고 지휘 능력과 하급 간부들의 판단력은 매우 냉철하고 신속하다.
‘사람을 제일 잘 죽이는 집단이란 거지.’
어째 용병 취급당하는 것 같다만 사실인 걸 어쩌나. 나라도 손 덜덜 떨면서 총 한 발 쏘고 패닉오는 병사들보다는 총알이 머리 옆을 스쳐도 침착하게 방아쇠를 당기는 군대와 싸우고 싶을 거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어찌해야 한다고 보나?”
“전 반대입니다.”
“플랑댕은 반대. 이유는?”
“단순히 지금 저희가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입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어진 플랑댕의 설명은 현 프랑스가 놓인 상황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전쟁과 곧장 이어진 재건으로 인한 재정 부담.
아시아 전역에서 입을 피해와 이후 계속 이어져야만 할 투자.
영국과의 관계 악화와 당연히 그와 함께 불안해질 지중해와 유럽.
마지막으로 식민지까지 불거질 문제.
“솔직히 말씀드려서, 아시아에서 미국이 망해도 저희가 알 바는 아니지 않습니까?”
“어허, 플랑댕.”
“죄송합니다. 다만 미국을 적으로 돌릴 필요는 없으나 굳이 이 이상 가까워질 이유도 없다고 봅니다.”
어색한 친구. 플랑댕이 바라는 위치는 딱 거기였다.
반면 다를랑은 달랐다.
“이번 전쟁을 통해 저희가 충격받은 게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미국의 생산 능력일 겁니다.”
“나도 잘 알지.”
“농업, 자원, 기술력, 생산 능력까지. 고루 갖춘 미국과 척을 지고 경쟁한다? 차라리 이번 전쟁을 기점으로 적대할 수 없는 관계로 만들어 놓는 건 어떻습니까?”
“지금보다 더 확실하게 가자?”
“그렇습니다. 대신 영국의 식민지에서 연합국들이 눈 돌리게 만드는 작업도 필요하겠습니다만 결국 미국도 동의할 겁니다. 그치들이 원하는 건 영국의 추락이 아닌 본인들의 부상이니까요.”
이어진 빅터는 기권을, 에두아르와 프랑수아는 두 사람 사이에서 절충된 의견을 내놨다.
다를랑의 말마따나 만약 우리 영토가 좀 더 컸더라면. 그리고 인구가 그래도 1억은 넘겼더라면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디 하나 포기하지 않고 전부 처먹어도 세상 누구도 막을 수 없었을 테니까.
허나 지금 프랑스에게는 주어진 과제가 너무나 많다.
패권위의 평화 싹 틔우기.
소련 동토에 잘 가둬놓기.
망해버린 나라 재건하고 동맹들 키우기.
새로운 질서 정립과 지켜지는지 잘 감시, 통제하기.
식민지 해방하고 현지 정부 설립하기.
곳곳에서 일어나는 내전과 분쟁 관리하기.
지구 반대편에서 전쟁하기.
국외만 대충 이렇고 국내까지 더해 세세히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최고의 파트너는 누구인가.
바로 옆에 사는 음침한 이웃, 대영제국인가 아니면 그냥 지구 찐따였다가 요즘 좀 어울리는 미국인가.
고민이 되지만, 답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난 개인적으로 미국 쪽에 힘을 실어주고 싶군.”
지금이야 아직 독일국방군도 ‘에휴, 전쟁 지지리도 못하는 병신들.’이라고 욕하지만 미국은 그냥 그런 나라가 아니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난 안다. 저 나라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고, 얼마나 강대해질 수 있는지.
그에 비해 영국은….
‘떨어지는 주식이지.’
단언컨대 영향력만 보자면 내일의 영국은 오늘의 영국보다 더 위축되어 있을 거다.
그래프의 방향은 앞으로 한 세기 동안은 절대 위로 꺾지 못할 것이고.
“무엇보다 우리와 무력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 자체가 없다는 점이 좋네.”
이게 진짜 소련이 생각하는 그 관계다.
우리가 워싱턴 D.C.를 점령 못 하는 것처럼, 미국도 파리에 병사 하나 마음대로 못 들이는 관계.
“혹시 다른 이유도 있으십니까?”
“내가 보니까 미국이 돈이 그렇게 많지 않아. 정확히는 달러를 마구 찍어낼 수가 없지. 경제력 하나만 믿고 우리와 힘겨루기할 능력이 압도적이지 않단 의미야.”
달러보다 프랑의 힘이 강한 시대. 과연 얼마나 유지될지는 나 또한 알 수 없으나 일단 하나는 확실하다.
‘채권 놀이도 끝이네.’
군의 아가리에 무제한 채권을 쑤셔넣던 미국의 채권의 끝발도 점점 약해지고 있다.
즉, 저기가 마냥 참으면서 외부로 돈을 쓰는 것도 무제한적으로 가능하진 않을 거란 이야기다.
작년에만 8백억 달러를 채권으로 꼬라박은 미합중국.
우리야 뭐 21년 저축한 적금 타는 기분으로 전쟁했지만 저 나라는?
‘하루아침에 다 준비하려니까 조금 빡세긴 했을 거야.’
너도나도 아직 위대해지는 과정 속에 있는 국가일 뿐이다. 다만 우리가 지금은 조금 더 빛나고 있을 뿐이고.
“소련이 힘을 투사한다면 아시아밖에 없다고 여기네. 그리고 한 10년만 지나면, 저 소련은 다시 기어나오려고 할 거야.”
“저희가 그 10년을 못 막겠습니까?”
“아니, 굳이 우리만으로 막을 이유는 없다는 이야기라네. 지난 21년간 군비에 세금 쏟아부었으면 되었지 이젠 그만 해야 할 때야.”
돈 들어갈 곳이 얼마나 많은데 또 한 번 그 지옥 같은 전간기 대육군 키우기를 하자고? 난 못 해. 아니, 안 해.
‘진짜 세계 대전이라서 뽕 뽑은 거지 아니었으면 본전도 못 찾았다.’
일각에서는 그거 때문에라도 프랑스가 선제공격했다는 주장이 있다는데 여하튼.
“난 역시 미합중국으로 하는 게 옳게 느껴지는군. 당연히 영국을 버리진 않겠지만.”
이번만큼은 난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확신을 담아 주장을 펼쳤다.
여전히 어디까지 수용하고 어디에서는 반발해야 하는지 정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영국과 미국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난 미국이다.
“그리되면….”
눈치 보던 달라디에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혹시 아시아까지 가실 생각이신지.”
“아.”
그건 아직 나도 못 정했는데.
“나도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네.”
“사모님과 잘 이야기 해보시지요.”
“…….”
그 시간 말고. 아니, 그것도 하긴 할 건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솔직히 나도 가기 싫긴 한데…. 꼭 가야만 한다면 안 갈 수도 없고.
정작 가장 중요한 고민은 이들이 전혀 도와줄 수 없는 문제였다.
***
“가스파르 오빠.”
결국 데려왔다.
프리아의 오빠는 즉시 병원에 입원 시킨 뒤, 가스파르는 짧은 여정 동안 프리아와 함께하게 되었다.
‘무슨 지뢰밭을 다시 간다는 소리를 해.’
그 말에 일단 알겠다 했더니 어느새 폴란드를 떠나는 기차 옆에는 프리아가 앉아 있었다.
“근데 오빠 성이 뭐예요?”
“모….”
“모?”
“몽포르.”
어째서인지 가스파르는 그 자리에서 모헬이라고 당당히 말하지 못하고 다른 이름을 뱉었다.
“헉, 귀족 가문이에요?”
“어, 예전에 백작직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다 지난 이야기라 난 잘 몰라.”
“어쩐지. 다들 깍듯하다더니!”
“그래봤자 몰락 귀족이지.”
어차피 모헬 가문도 귀족제도가 사라지면서 오를레앙 지역 유지로만 남았었으니 거짓은 아니다.
“그런 너는. 너도 이름에 ‘폰’이 들어가잖아.”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말아요. 돌 맞을라. 전 프리아 벨라우치일 뿐이에요.”
몰락한 융커 출신. 프리아가 꽤나 교육받은 신여성임은 알았으나 차마 가스파르는 그녀의 과거를 묻지 못했다.
그런 배려를 알았을까, 먼저 가볍게 과거 이야기를 꺼낸 것은 프리아였다.
“아주 어렸을 때는, 그러니까 십대 초반? 그때까지만 해도 부모님이 계셨어요.”
“뭐 하시는 분이었는데.”
“시골에서 땅 팔고 올라오셔서 방직 공장을 여셨다고 들었어요. 물론 태어나기 전에 망했지만.”
“방직 공장이 망할 수 있나?”
“그때 루르 지역이 무슨 분쟁 때문에 망했었데요.”
“…….”
산업이 발달하면서 시골에 돈 좀 있는 자들이 가산을 팔고 도시로 올라오는 경우는 흔했다. 대부분 자본의 우위로 성공하는 경우도 허다했고.
그러나 망한 이유가 루르 분쟁 때문이라면….
“아무튼 어머니가 그때부터 아팠고 아버지는 술을 가까이하게 되셨죠. 그래도 학교는 보내줬어요. 문제는 오빠가 자주 아프면서-”
“그만. 다른 이야기 하자.”
“숙녀가 가슴 아픈 이야기를 겨우 꺼냈는데 듣기도 싫어요?”
상처받은 척 똘망똘망하게 가스파르를 올려다보는 프리아의 시선은 가스파르에게 양심을 죄여오는 느낌만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억지로 인상을 살짝 찌푸린 가스파르는 냉정한 척 답했다.
“어, 듣기 싫어.”
“와, 진짜 나빴다. 다시는 안 해줄래.”
“하지 마라. 괜히 아픈 과거 어쩌고 하면서 나중에 들러붙을 생각은 꿈에도 꾸지 말고.”
“피이, 누가 뭐래요. 나도 자존심이 있거든요. 오빠가 병원에서 퇴원할 때까지만 따라다닐게요.”
“그러든가.”
왜인지 아버지가 만든 업보를 자신이 마주하게 된 듯한 상황.
‘그래도 루르 당시에 별짓 안 하셨었겠지.’
한번 따로 정보 조사를 해볼까 했으나 이내 가스파르는 고개를 저었다.
왜인지 그의 아버지라면 조용히 뒤에서 팔짱 끼고만 있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