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256
#256화
본토가 섬이기에 모든 점령지가 따로 노는 일본 제국.
중화 대륙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식민지끼리 육로로 이어지지 않는 점령지를 일본이 잇는 방법은 둘이었다.
바로 해상을 지키는 해군력과 각지에 지어진 공군 기지였다. 특히나 초기엔 공군 기지의 역할이 아주 지대했다.
진주만에서 항공력의 힘을 톡톡히 본 일본은 이후 항공 전력만이 점령지 간의 상호 방호가 가능한 유일한 방법이라 여겼다.
실제로 정답에 가까운 이 방법을 알고, 시행하려 했으나….
“아시아 전역에서 서로 상호 보완하는 항공 전력? 장난하냐! 그럼 도대체 얼마나 필요한 거야?”
“그 많은 기체에 주유할 기름은? 하나부터 열까지 키워야 하는 조종사는? 여기저기 날아다닐 성능 좋은 기체는? 공군의 소속은?”
“그냥 닥치고 당장 야전에서 먹을 식량이나 보내라고!”
답이 훤히 나왔으나 도출해내는 과정 사이에는 너무 많은 문제점이 있었고, 공군이란 게 마냥 단기간에 키워지는 게 아니었다.
그나마 항모 전력이나 육군산하 항공대가 간간이 그 역할을 하려 했지만 역시 턱 없이 부족한 기체 수.
전쟁이 길어지고 협상의 기미가 안 보이니 수백만 일본군에는 크나큰 변화가 생겼는데.
가장 먼저 현지.
“…이게 뭡니까?”
“쟁기다. 들어.”
“저희 농사짓습니까?”
“자급자족! 우린 이제부터 땅을 갈아 식량을 직접 생산한다!”
“전쟁 끝나면 저희 다 돌아갈 거 아닙니까?”
“이 땅은 영원토록 우리 일본 제국의 영토다! 돌아가긴 어딜 돌아가!”
급격하게 커져버린 영토와 점령지는 겨우 징집병 따위로 감당할 수준이 아니지만 어쨌든 이미 삼킨 일.
단기 협상에서 장기간 버티는 전략으로 변경된 이후, 현지 수탈로는 절대 전쟁 물자를 메꿀 수 없다 판단. 일본군은 아예 현지에 대놓고 눌러앉기 시작했다.
“땅굴 파! 모든 방어진지는 전부 땅굴로 연결한다!”
“2년 차 되니까 식량이 잘 생산되는구먼! 이왕 이렇게 된 거 현지인까지 써서 플랜테이션 농장으로 만든다!”
“우린 이곳에서 영원히 살거나 죽는다는 각오로 임한다! 후퇴하는 경우? 아아, 그런 건 없다!”
3년간 유렵에서 쉬지 않고 싸우는 동안 일본군이 할 일이라곤 점령지 늘려서 이런 짓 하는 거밖에 없었다.
특히나 섬의 경우, 해군이 구해주는 게 아니면 탈출할 가능성도 없다.
그러니 그냥 섬 전체를 요새화 시켜버린다.
일반적인 군대였다면 ‘자기 스스로 죽음을 정한 건가?’ 싶겠으나 이들의 뇌는 비틀어진 애국심과 과대하게 부풀어진 자긍심으로 가득 차 정상적인 판단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결과만 보자면 파푸아뉴기니에서의 전투는 엄청난 전적이었다.
비록 다수의 전함과 항공모함이 바다에 수장되었으나.
비록 땅은 빼앗겼으나.
주둔 병력이 몰살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으나.
“이건 엄청난 승리야! 적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피해에 전진하길 주저하고 있다!”
“과연 이대로 지속되면? 분명 연합군은 협상을 자처할 수밖에 없을 거다!”
이미 유럽 전쟁으로 지칠대로 지친 연합군 아닌가. 물도 제 끓는 점이 있듯 연합군에도 전쟁을 지속 능력이 끊기는 지점이 있으리라.
일본군 수뇌부 모두가 그 지점이 멀지 않다고 믿었다.
‘이대로 딱 몇 번만 더 잘 싸워준다면!’
‘설령 해군력에서 밀려도 점령 자체를 못 하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더 유리해질지도 모른다!’
아니, 그리 믿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콰달카날.
산타쿠르즈.
타사파롱가.
비스마르크 해.
콜롬방가라.
글로스터 곶.
미국과 일본 연합 함대와의 교전은 남태평양 지역에서 끝도 없이 이어졌고 날이 갈수록 일본에게 패배의 기운이 드리웠지만 그럴수록 육군은 견고해졌다.
‘그래서 점령지 탈환, 너희가 어떻게 할 건데?’
‘오냐, 너희도 어디 천만 징집해서 와보거라. 기꺼이 받아쳐 줄 터이니!’
할만한 싸움.
끝까지 가면 모르는 전쟁.
어디 갈 때까지 가보자는 마음을 되려 심어준 미국의 지상군 수준.
언제나 승자는 미국이었지만 일본군의 사기를 꺾을만한 대승은 없던 와중.
“뭐냐, 저것들은.”
“안다만 니코바르 제도를 통치하는 자유 인도 임시정부군입니다. 병력은 최소 8만에서 10만입니다만, 무장 수준은 매우 낮습니다.”
“그니까, 저 섬 몇 개에 바글바글 하다?”
“으음, 장술 제독.”
“말씀하십시오.”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중심. 여기에 식민지 때문에 해군력을 억지로 키워온 벨기에, 네덜란드, 포르투갈까지 더한 유렵 연합군.
“저긴 지나가는 길에 하루 정도 폭격 좀 퍼붓고 가도록 하지. 지금 상륙하기도 아까워.”
인도차이나 전역 총사령관으로 부임한 필리프 페탱은 가만히 서서 생애 첫 상륙전을 나름 철저히 준비했고, 그만큼 자신이 있었다.
“뭐 별거 있겠나. 그냥 더럽게 많이 죽어나가는 거지. 안 그렇겠소, 만슈타인 중장?”
“그렇습니다!”
“좋아, 전장이 다 거기서 거기지.”
남태평양에 비해 허술했던 버마 해를 손에 넣자마자 시작된 연합군의 인도차이나 상륙전.
“상륙전은 연달아 시행, 재빠르게 인도차이나를 탈환한다.”
여름이 오기 전에 끝내겠다 다짐한 페탱은 지체하지 않았다.
“얘들아, 포격 끝나면 다 내릴 준비 해라!”
“우와아아아아!”
“우리가 선두가 아니면 누가 선두란 말인가! 자, 드가자아아!”
버마부터 말레이시아 북단까지 순식간에 시작된 대규모 상륙.
시작부터 전선을 너무 크게 잡은 게 아닌가 싶지만, 페탱은 다르게 생각했다.
“가장 어려워야 할 해안이 이리 취약하다고? 혹시 적의 기만이 아닌가?”
“대신 내륙 방어가 강력할 것으로 보입니다. 방어진지가 허술할지언정 숫자가 많고 익숙해진 지형을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럼 상륙전이 아니라 육전이란 뜻이군?”
“그…렇긴 합니다.”
“됐네, 그럼.”
저번 세계대전, 혹은 발칸이랑 달라진 점이 무엇인가.
극단적으로 넓은 전선.
발달하지 않은 도로와 대규모 병력 운용이 힘든 지형.
끊임없이 밀어 넣어야만 진격이 가능한 전선과 적이 방어에만 치중한다는 점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전장에 미칠 요소들을 고려해봐도.
“음, 없군.”
변수가 없다. 그럼 된 거다.
그의 시대가 많이 흘렀지만.
페탱이 볼 때 야전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
아드리아 해의 주요 항구중 하나인 알바니아의 두러스(Durres) 항구.
알바니아 독립의 시작과 끝이 프랑스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곳에 프랑스 군함이 정박하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평소처럼 유고슬라비아의 내전이 없었다면 말이다.
프랑수아 드라로크.
제1 여당이자 사실상 유일무이한 집권당이 되어버린 오를레앙 당의 당수, 그리고 불의 십자단의 실질적인 수장이라고 불리는 그는 오랜만의 출장에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알바니아 국왕 조구 1세가 급히 맞이하며 프랑수아를 환대하려 했으나 프랑수아는 정중히 거절했다.
그가 이곳으로 온 이유는 단 하나.
차를 타고 몇 시간이나 내륙으로 달려가 세르비아 남부의 어느 산골에 도착한 프랑수아는 한 사람을 마주할 수 있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요시프 티토라고 불러주십시오.”
“프랑수아 드라로크요.”
베오그라드를 코앞에 두고 있는 티토의 반란군, 그리고 프랑스 정계의 거물 프랑수아의 만남.
두 사람은 일면식도 없었지만 프랑수아는 어째 익숙한 향기를 티토에게서 맡았다.
‘강인하고 딱딱한 인간.’
과거의 자신을 보는 것만 같은 기분. 우습다기보다는 티토라는 사람 자체를 알기도 전에 이미 친숙하다.
반대로 티토는 내전 지역에 와서도 여유를 조금도 잃지 않는 모습에 불의 십자단에 관한 소문을 진실로 받아들였다.
‘비밀 경찰, 방첩과 첩보, 전쟁 지휘관 배출과 전역자 관리까지 한다더니. 역시 겁이 없군.’
이번 만남 자체는 공식적인 행사가 아니다. 다른 단체의 습격이나 티토 본인의 변심으로 죽을지도 모를 텐데 프랑수아는 자기 집 앞마당이라도 산책하는 것처럼 여유로웠다.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누시지요.”
“좋습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산골의 허름한 오두막.
자리에 앉아 다리를 꼰 채 품격 있게 차를 마시던 프랑수아를 향해 티토는 먼저 입을 열었다.
“이번 달 내로 베오그라드에서의 마지막 전투가 열릴 테고, 그 뒤로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사라질 겁니다.”
“호오, 누가 정한 사안입니까?”
“전 국민이 간절히 바라는 결과입니다.”
“또.”
“…누굴 지칭하시는지?”
“또 누가 그걸 원합니까?”
겉으로 보기엔 무례하지 않은, 진짜 순수하게 궁금하다는 듯한 태도.
순간 표정관리에 실패한 티토는 찻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무엇을 원하는 거냐. 이미 우리의 내전은 승인한 거 아니었나.’
‘더 꺼내봐.’
냉정히 프랑스가 막 내전이 끝난 유고슬라비아에게 무언가를 바랄 만한 게 있는가.
이탈리아나 독일처럼 파병을 바라는 것도, 막대한 이권이나 특정 위치를 바라는 것 또한 무리다.
신생 유고슬라비아는 불안정한 내부를 통합하는 데에만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할 터.
티토는 이 자리에서 프랑수아에게 당장 제시할 만한 것이 없다고 느꼈다.
그 대신에 한 가지는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발칸은, 영원히 프랑스의 우방으로 남을 겁니다. 적어도 유고슬라비아가 존재하는 한 말입니다.”
“이미 발칸의 대부분 국가는 우리와 군사 동맹까지 체결한 상태입니다. 헝가리, 알바니아에서 저 최남단 튀르키예까지.”
이미 얻은 것에 보험을 더한다고 그 가치가 달라지진 않기에 프랑수아는 고개를 저었다.
“얼마 전에 본인을 파시스트라고 선언하셨더군요.”
“두체의 사상에 꽤나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래 봬도 제가 파시즘을 잘 압니다. 평생을 골수 파시스트로 살았기 때문이지요.”
그의 젊은 날 전부를 파시스트로 살았음을 프랑수아는 부정하지 않았다.
비록 타국의 국가원수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내진 않았으나 파시즘이란 사상 자체엔 꽤나 심취했었단 말이다.
“그리고 이 골수 파시스트인 내가 볼 때, 당신은 진짜 파시스트가 아닙니다.”
“허허, 그게 누군가 아니라고 하면 아니게 됩니까?”
“당연히 아니지요. 그러나 당신의 마음속에는 비극과 비애를 연료로 삼는 근본 파시즘이 불타오르고 있지 않습니다.”
가슴팍을 가리키며 프랑수아는 단언했다.
“다시 말하지만, 당신은 파시스트가 아닙니다.”
프랑수아의 눈에서 일렁이는 광기를 엿본 티토는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그가 진정 하고자 하는 말을 기다렸다.
“다시 돌아와. 왜 좌파였던 당신이 스스로를 파시스트라고 선언했을까 생각해보니, 이유는 아주 단순하더군요.”
“저도 모르는 이유가 있나 봅니다?”
“연방제 공화국.”
현 유럽에서 유일하게 국경을 넘나들며 싸돌아다녀도 연합국이 방관하는 이들, 그게 바로 파시스트다.
오스트리아가 하루하루 지날수록 친이탈리아로 변하는 모습을 옆에서 똑똑히 지켜본 티토와 반란군은 본인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좌파 성향에 파시즘의 편리한 부분을 접목한 거다.
“우리 프랑스는 반란이 시작된 초기부터 알았습니다.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그리고 세르비아 본토까지. 이 정도를 통합해서 연방제를 시행할 생각이었겠지요.”
“….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비난하진 않겠습니다. 다만 그래서는 현 유고슬라비아 왕정체제와 다를 게 무엇인지 모르겠군요.”
이제 수도만 점령하면 반란 성공. 새시대의 개막을 앞두고 있는데.
그 직전에 찾아온 프랑수아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티토는 자신과 동지들이 쌓아온 모든 게 무너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설령 수도를 점령해도 프랑스가 나선다면….’
장담컨대 지금 조용한 모든 국경으로 군대가 쏟아져 들어와 세르비아의 내장을 헤집어 놓을 거다.
갈가리 찢긴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지금보다 더 열악한 현실에 놓이게 될 것이고 그 모든 책임은 반란을 주도한 티토, 본인을 향해 수많은 손가락이 가리킬 것이다.
이는 바로 옆 알바니아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정말 평범한 어느 날 프랑스의 말 한마디에 독립하게 된 알바니아.
발칸이 아무리 혼란스럽고 지중해 패권이 변화해도 알바니아만큼은 누구도 건들지 못했다.
“…하고자 하는 말씀이 무엇이십니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아직 유사 파시스트에 불과한 당신에게 내가 찾아온 이유는 하나입니다.”
한껏 무거워진 분위기를 자기 마음대로 바꿔버린 프랑수아는 그놈의 파시스트 이야기로 돌아왔다.
“어디 한번, 진짜 파시즘. 지금 무솔리니 따위가 주창하는 누아보 파시스모 따위가 아닌. 진짜 파시즘에 대해서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어느새 한 뼘 가까워진 프랑수아 얼굴에는 기이한 희열이 깃들어 있었다.
저건 가르침을 베푸는 스승의 기쁨도.
진리를 발견한 학자의 성취감도 아니다.
순수한 광기.
파시즘을 창시한 무솔리니보다도 파시즘을 더 잘 안다고 자부하는 프랑수아는 티토조차 두려울 정도의 확신에 가득 찬 무언가가 있었다.
당연히 프랑수아 드라로크처럼 되고 싶지 않던 티토는 피하고 싶었지만….
“한번 선생께서 알려주시면 경청하겠소.”
그의 입은 전혀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하하하! 좋습니다! 오늘 저녁은 꽤나 길어질 것만 같군요!”
프랑수아는 자신이 아는 지식을 남에게 알려줄 수 있다는 사실만 하나만으로 아이처럼 순진무구하게 기뻐했다.
그가 지금 느끼는 행복은 진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