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262
#262화
각 사람마다 독특하게 강력한 욕구가 있듯, 난 나라마다 특이하게 강한 욕구가 있다고 본다.
이것이 민족성인지 아니면 과거 역사로부터 비롯된 관성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대표적으로 영국. 처칠이 끝내 아프리카 식민지를 넘겨받기로 했듯 저들의 제국주의적 욕망은 참으로 강력하다.
식민지 곳곳에서 제국주의는 철 지난 유행, 겨울을 앞두고 떨어지는 낙엽이라고 말해도 저치들은 듣지 않는다.
대서양 건너편의 미국은 섬나라보다 더 고립돼서 그런지 아시아에 뒤틀린 욕망을 해소하려고 한다.
“입 벌려! 민주주의 들어간다!”
“앙? 어째서 바로 투표하지 않냐고? 아아, 그건 너희가 아직 우리가 바라는 적정 수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 일단 여기 서류에 다 사인하시오. 어허, 읽지 말고 그냥 사인하라고!”
제국주의 한 스푼, 민주주의 한 스푼, 도덕심 한 스푼, 경제 수탈 한 스푼. 마구마구 섞어 만든 포션을 일제 지배에 허덕이던 환자들의 목구멍에 들이붓고 있다.
물론 우리 프랑스라고 확장주의나 민족주의, 제국주의에서 마냥 자유롭다고 말하진 못하겠으나.
그보다 프랑스에는 최근 유행하는 아주 전례 없는 욕구가 있으니.
“다를랑, 이 색별로 기밀 도장 찍혀 있는 서류는 뭐지?”
“각 국가별 전쟁 시나리오입니다. 전력 차, 전쟁 양상, 주위 국가들이 하나씩 편이 바뀔 때의 경우까지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건 바로 ‘대비하고자 하는 욕구’가 아닐까 싶다.
이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싶지만 지금 그 욕망의 결과물이 내 눈앞에 있다.
하나 펼쳐 읽어보니 구체적인 내용도 한가득 담겨 있다.
[만약 아시아에서 미국과 완전히 적대하게 될 경우, 영국을 끌어들여 대서양으로 전장을 옮겨야 한다. 유럽 전역에 있는 해군력을 끌어모아 한 번에 대서양에서 함대결전을 통해 승리하거나, 아니면 약 4년에서 5년에 걸쳐 해군 생산을 늘려 이기는 경우가 있다. 다만 정말 최악의 경우, 소련의 봉쇄를 풀고 아시아로 남하시켜-]탁.
눈을 더럽히는 이 망측한 글자들의 조합을 난 더 읽을 자신이 없다.
“설명.”
“총참모부 인원들이 몇 달에 걸쳐 만든 전쟁계획입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국가, 지역별로 일어날 수 있는 분쟁 및 전쟁. 그리고 이에 대한 대비 방법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니까 이런 짓을 왜 하냐고.”
“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를랑마저 당연하다는 듯 저 ‘대비’라는 말을 입에 올린다.
‘왜. 왜 이런 망상병이 도진 거야?’
내용이 현실성이라도 있으면 그래. 도대체 소련과 미국이 손을 잡을 경우를 대비한다는 건가.
현실성 문제를 떠나 이게 과연 무언가를 준비한다고 막아지는 것인가?
‘가능성은 없지만. 소련과 미국이 손잡았으면 그냥 아시아 버리고 유럽에 짱박혀 있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다시 연합군을 조직해 모스크바를 위협한다고? 아니, 그 전에 모든 이권과 패권을 군사력 하나만으로 지키려는 것부터 문제 아닌가?
왜 이딴 내용이 중간에 안 짤리고 내 책상 위까지 올라왔는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것도 내 탓이야?’
다들 모헬 중위 시절처럼 보고서 하나 위에 올려서 인생 펴보고 싶은 건가.
그게 아니라면 그냥 세계 대전 동안 철저한 대비의 힘을 느껴서일까.
분명 프랑스 정부는 평화를 외치고 있는데, 군은 전쟁을 대비하고 있다.
더 웃긴 건, 군이 딱히 다른 의도가 없다는 점이다.
파요레 국장에게 새로운 신호가 걸린 것도.
딱히 동맹국들에게 이상징후가 포착된 것도 아니다.
그냥 이것들은 당연히 다음 전쟁이 있다고 믿고 있다. 마치 그게 본인들의 존재 이유처럼 당연히 생각하고 있단 말이다.
“분명 저희의 근본적인 국력이 밀릴지도 모릅니다. 허나 동맹들의 힘과 충분한 대비를 거치면 어떤 전쟁이든 승리할 수-”
“그만! 그만하지.”
누굴 탓하겠나. 대가리가 나니까 전부 내 탓이지.
다른 놈은 몰라도 다를랑마저 당연히 대비라 읽고 오만이라 읽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먼저 다를랑. 만약에 우리가 전쟁을 대비. 아니 준비하는 척이라도 하지. 그럼 바로 미국은 발작하기 시작할 거야.”
“그러니 더욱 아시아에 정신팔린 틈을 타서 전쟁 대비를-”
“그게 아니라고. 이해 못 했나? 우린 애초에 다음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되는 입장이라니깐?”
내가 왜 소련을 가둬놨는데. 왜 영국에게 아프리카를 내주고 미국과 양념반 후라이드반처럼 아시아를 나눠 먹는데.
지금 당장 발언권 좀 세다고 주제넘게 다 안 먹는 이유가 도대체 뭔데.
바로 다음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되니까. 그딴 게 있으면 그냥 프랑스는 다시 유럽 구석에 처박혀 있어야 하니까 그런 거다.
“시나리오야 쓸 수 있지. 근데 내용을 읽어보면 하나같이 국가를 갈아넣자는 소리로밖에 안 들리는군.”
“들어가는 재원이 적지 않음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모헬 각하께서 읽어보시고 결정을 해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음?”
왜 결론이 또 그렇게 나지? 내가 여기 올라온 서류 중 하나 고르면 그게 곧 미래가 되는 거야?
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생각 없는 행동이란 말인가.
프랑스라는 국가가. 이 나라의 민족이 여기까지 올라온 것만 해도 기적이다.
이미 우린 전성기. 주제에 비해 더 올라갈 곳이 없다고.
“빅터. 자넨 이 꼬라지가 펼쳐지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었나?”
“저, 각하. 저희 프랑스 단독 국력이 저 미국에 비해 부족하다고 보신다면 오히려 더 대비해야만-”
“자네도 시끄러.”
부족하니 더 먼저. 더 멀리까지 대비한다.
지금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유지하려면 더욱 빡세게 준비해야 한다.
이런 논리라면, 난 그냥 과감히 다 내다 버리고 유럽 대륙에 가만히 있겠다.
여기 올라온 모든 가정들은 전제부터가 잘못됐다.
가장 먼저, 다음 세계 대전은 없다.
그다음으로 설령 거대한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냥 우리의 패권은 사라지는 거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프랑스가 선제공격하는 일은 없다네. 그 어떤 상황에도, 절대로.”
“예?”
둘 다 충격받은 표정 짓지 마. 그 표정에 내가 더 충격받을 것 같으니까.
내 측근이란 것들이 이런 수준이라면 이 나라 군대는 말 다 했다.
폭주 안 한 게 대단할 지경.
‘포슈 원수님. 당신은 어디까지 보고 숙청을 하신 겁니까?’
오늘도 앵발라드에 묻혀있으실 우리 포슈 원수님이 참으로 대단하게 느껴진다.
이럴 줄 알고 미리미리 싹을 자르신 건가? 분명 그러실 거야. 그게 아니라면 말이 안 되잖아.
우리가 대단해서 여기까지 올라온 줄 아나. 아니, 우리가 잘 싸우긴 했지만 그렇다고 총탄이 피해가고 적 포탄이 휘어지는 건 아니잖아.
상식적으로 미국 자체의 국력은 인정하면서 거기에 소련이 더해지는 경우의 수를 우리 프랑스가 ‘대비’ 한다고? 꼬리 말고 도망가는 게 아니라?
과연 이게 정상적인 국가에서 나올 수 있는 결론인가?
“저, 저희가 선제공격할 가능성조차 없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오히려 불리할수록 선제 타격으로 적을 꺾어야 하지 않습니까?”
“전력 차를 정확히 인지하고 인정하는 것은 중요하나 아무리 그래도 저희가 그 정도로 약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디서 익숙한 냄새가 난다더니 잽스한테서 나던 건어물 냄새구먼.
‘이게 원래 모든 패권국가의 망상인가?’
혹시 미국도 비슷한 생각 중일까? 그런 거라면 진짜 골치 아픈데.
“다 닥치고 들어. 다음으로 혹여나 프랑스의 외교적 실수가 수십 번 축적되어 영국, 미국, 소련과 전부 적대하게 되었다면. 그냥 아시아 장사는 접어야 한다네. 알겠나? 어쩌면 지중해도 접어야 할 거야.”
발칸에서 설설기고 아래 스페인, 이탈리아. 거기에 옆으로는 영원한 숙적이었던 독일마저 사라지니 눈이 너무 높아져서 그런 줄 아는데.
사실, 우리 그렇게 안 강하다.
분명 지금은 좀 강하긴 한데 그거야 재정, 인력에 전쟁 경험치까지 무지막지하게 몰아 먹어서 그런 거고.
그냥 프랑스. 그리고 그 프랑스가 어울리는 군의 규모만 딱 보자면.
우린 별거 없다고.
“저 영국이 만만하고, 소련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나? 미군이 쉽게 죽으니 약해 보이고?”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의 능력을 인정하기에-”
다를랑의 변명 아닌 변명에 난 고개를 계속 젓기만 했다.
“다를랑, 분명 내가 없을 때를 대비하라고 말한 적이 있지. 그 결과가 이거라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네.”
국력 그래프가 자꾸 상한가를 치니까 계속 그렇게 될 줄 아나 본데.
평화가 도래하면. 그러니까 그 기간이 얼마나 될지 나 또한 변한 역사로 장담하지 못하지만 여하튼 또 한 번의 전간기 비스무리한 기간이 찾아오면, 진짜 프랑스가 드러나게 된다.
국토 70만 제곱킬로미터에 인구 5천만따리 국가의, 진짜 국력이.
“…그럼 어찌해야 합니까.”
“이긴다는 생각을 버려.”
전쟁이 터지면 전시에 어울리는 방식이 있듯, 평화에는 평화에 어울리는 방식이 있다.
“예를 들면, 아시아에서 프랑스를 축출하려면 모두 망한다. 대충 이런 느낌으로. 대전쟁으로 충분히 배웠잖아. 이겨도 이긴 게 아닌 전쟁이 무엇인지 말이야.”
“…….”
왜, 이게 맞다니까. 이게 최선이라고.
프랑스 아래에 평화를 이룩한 유럽이 마음에 안 들어서 분탕치고 싶어? 그럼 아예 아무도 못 먹게 되는 거다. 아주 폭싹 다 같이 망하는 거라고.
이렇게까지 했는데 안 되면 그때는 뭐 이류 국가로 돌아가는 거지.
이런 방식으로 접근해야만 겨우 패권을 지킬까 말까 하는데, 어디서 되도 않게 이길 가능성을 계산하고 있어.
‘하아, 다들 멀었다, 멀었어.’
다들 나이도 오십은 넘게 먹었으면서 현실을 모르면 어쩌잔 말인가.
이래서 내가 어떻게 편히 오를레앙으로 돌아가겠어. 가스파르는 또 어떻게 하고.
‘이게 힘든가? 왜 먹을 수 있는 거, 못 먹는 거 구분을 못 하지?’
설령 유럽 전체가 국력을 끌어모아 워싱턴 D.C.를 불태웠다고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 그러면 뭐, 우리가 미국이랑 싸워서 이길 수 있어?
차라리 ‘아, 프랑스는 건들면 손해다.’라는 인식만 똑똑히 심어 주는 게 상식적이지 않나?
“전부 치우고. 다시 짜와. 여기서 무언가를 더 얻을 필요도 없네. 앞으로는 지키기만 해도 충분하니.”
고슴도치는 빨리 달리는 법을 연습하지 않는다. 오히려 위험에 처하면, 가만히 서 있는다.
“다시 돌아왔을 때는 부디 이딴 내용으로 채워져 있길 바라지 않네.”
“…다시 만들어 오겠습니다.”
“그래.”
어깨 처진 다를랑이 방을 나가고, 빅터마저 침울해 있지만 사실 울고 싶은 건 나다.
‘나까지 아시아로 가면 이 새끼들 누가 막지?’
다시 베이강 원수님이라도 불러와야 하나. 이것들 헛짓거리 못 하게 잘 틀어막을 만한 사람 어디 없나.
고민하던 찰나, 한 사람이 떠오른다.
“가믈랭 지금 어딨나.”
“폴란드에 있습니다.”
“딱히 바쁜 일 없지?”
“소련 측의 협약 이행만 감시하고 있습니다.”
“파리로 불러.”
그래, 원수들끼리는 쫄보 가믈랭이라고 놀리지만 명색이 유일한 대장 계급장 달고 있는데 없는 것보단 낫겠지.
오래 안 걸린다. 딱 1년. 어쩌면 그보다 짧을 수도 있고.
부디 그때까지 아무 일도 없이.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사고도 치지 말고 가만히 존재만 해주길 바란다.
그러면 알아서 지구 반대편에서 마무리 짓고 돌아와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