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275
#275화
이승만이 추축국 동맹 결성 이후 아예 모든 좌파를 친일파로 취급하고 악의 대상으로 규정할 때, 김구는 하루아침에 같은 민족이 악으로 변했다고 보지 않았다.
비록 말을 타냐 당나귀를 타냐의 차이일 뿐, 그들이 조국을 생각하는 마음은 진실되었기 때문이다.
‘우남은 너무 과격하다. 같이 독립운동하던 동지들을 어찌 하루아침에 버릴 수 있단 말인가?’
잘못되었다면 바로잡아 올바르게 해야지 척결만으로 해결할 순 없다.
진짜 친일파들만 잘 솎아서 잡아내도 부족할 판에 독립운동가가 독립운동가를 때려잡는 사태만큼은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향후 연합군의 방향성부터 하나씩 알아봐야 한다.
정확히 저들이 말하는 군정통치가 어떤 형태일지.
과연 저치들이 친일 척결에 얼마나 적극적일지.
과연 미국과 프랑스가 어떠한 형태로 아시아에서 동행할지를 알아야만 어떻게든 최악의 사태를 막을 수 있다.
굳게 마음먹고 연합군 총사령부의 문을 두드리자 일단 쫓겨나는 일은 다행히 없었다.
다만 환대받지도 않았다. 정확히는, 누구도 그를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당연하다. 아직 전쟁이 한창이니. 그러나 늦은 것보다는 민폐이더라도 이른 것이 나아.’
제발 높은 사람 누구라도. 가능하다면 군통 시기에 아시아에 남을 만한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잠시 기다리라며 안내를 받은 백범은 물잔을 홀짝이며 최대한 주위를 살피며 분위기를 파악해 보았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아직 군통이 시작하지 않았음에도 하나같이 가슴팍에 알 수 없는 서류들을 품은 채 뛰어다니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 사이에서 셔츠 하나만 입은 채 느긋한 채로 경례 받는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마치 홀로 전쟁을 안 하는 것처럼 한 손에는 담배를, 다른 손에는 커피를 든 채 남의 고생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한 사람.
‘저자가 높은 자이겠구나.’
잠시만 기다리라던 안내인은 벌써 한 시간째 돌아오지 않았다. 당연히 백범이 한 시간 동안 지켜본 인간이라곤 한 시간째 놀고 있는 단 한 사람뿐이었다.
그는 유리문을 통해 보이는 벤치에 앉아 담배를 쉬지 않고 피우며 경례 받는 역할에 충실했다.
당연히 이어지는 궁금증. 과연 누구일까. 연배가 있으며 바지만 군복인 걸 보아 필시 복장에서 자유로운, 높은 자일 터인데 정작 누구보다 일과는 떨어진 채 놀고 있다.
이윽고 길고 긴 흡연을 마쳤는지, 그는 다시 백범의 앞을 지나가려 했다.
그리고 그때, 그가 먼저 백범을 돌아보았다.
“어라, 나 저 얼굴 아는데.”
다만 불어로 말했기에 백범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지나가는 한 장교를 부른 그.
“야, 너! 가서 통역 데려와!”
“어, 어느 언어 말씀이십니까?”
“조선.”
“어… 조선이 그, 통역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찾아와. 내 방으로.”
“알겠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백범은 어눌했지만 ‘조선’이란 단어를 정확히 캐치해냈다.
그러곤 벌떡 일어나 다가가 말했다.
“조선! 조선!”
스스로를 가리키며 조선을 외치는 백범. 잘은 몰라도 이 인간이 필시 높은 자인 것이 분명하다.
최소한 대화만이라도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자꾸 조선을 외쳤다.
잠시 고민하던 남자는, 이내 따라오라는 손짓과 함께 등을 돌렸다.
‘오, 오라는 건가?’
그의 뒤를 따라 한 시간 만에 다시 이동하기 시작한 백범은 부디 눈앞의 인간이 높은 자이길 바랐다.
***
‘조선 문제는 나도 생각 없는데.’
진짜 대놓고 말하자면, 정말 아무런 가치가 없는 땅. 유일한 가치라면 대륙과 일본을 이으며 머리 위에 소련 영토를 이고 있다는 점 정도?
이게 장점인지 단점인지도 나도 잘 모를 만큼 조선은 연합군 내에서 존재감이 없다.
차라리 저 동남아 섬나라들이 더 비중 있게 다뤄지면 다뤄졌지 조선은…. 냉정히 평가해 아프리카 여느 식민지랑 다를 게 없다. 어쩌면 그보다 못할 수도 있고.
“영어는…. 못하시는 것 같고. 통역을 기다려야 하나.”
건물 1층 입구 소파에 누가 앉아있나 봤더니 동양인이었고 흰색 옷까지 눈에 띄어 확인하니 우연히 아는 얼굴이었다.
얼떨결에 데려오긴 했는데, 나조차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른 일이라 어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 두 사람 사이에는 아주 어색한 침묵이 계속 흘렀고.
이십여 분이 지나서야 통역이 도착했다.
“조선말에 능통한가?”
“조선에서 쫓겨나기 전까지 선교사 활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통역하되, 내용은 전부 잊게. 무슨 말인지 알겠지?”
통역이 도착했지만, 여전히 난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정확히는, 그간 미뤄왔던 숙제가 갑자기 생긴 기분이었다.
‘조선, 조선이라….’
나랑은 관련 없는 국가. 애국심은 고사하고 그냥 기억 속에서도 거의 사라져버린 나라.
내 마음속에 이 나라의 소속감이 조금이라도 있냐고 묻는다면 난 없다고 즉답할 수 있다.
이런 제삼자의 시선으로도 냉정히 지금 조선의 가치를 평가하긴 어려웠다.
‘지금은 쥐뿔도 없긴 한데….’
일단 불러 놓고 혼자 사색할 순 없으니 가벼운 인사로 시작했다.
“안녕하신가, 난 음, 여기서 일하는 프랑스 군인이네.”
통역은 그대로 내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말을 그대로 전했다.
“조선을 잇는 대한민국의 임시정부를 이끄는 백범 김구라고 하오.”
이윽고 통역이 호라는 것과 성과 이름을 세세히 설명하려 했지만 이미 알고 있던 난 저지했다.
“그래서 누굴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나?”
“누구라도 만나기 위해, 기다렸소.”
“무엇을 위해?”
“연합국의 의견을 묻기 위해서요.”
지나치게 막무가내 아닌가 싶지만 그의 태도에서 간절함이 보인다.
“그래, 그럼 물어보게. 내 대답할 수 있는 건 답해주지.”
“조선 독립이 코앞인데 연합국은 군정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이오?”
“음, 대충 경제적 이득 쟁취, 아시아 지역의 군사력 강화, 우방국 확보 및 시장 활성화. 이 모든 것을 위한 기반을 만드는 과정이 전후처리와 함께 이어지겠지?”
통역은 내 대답에 놀랐지만 딱히 비밀도 아니니 난 솔직하게 답해줬다.
“우리도 전쟁을 남 좋자고 하는 것은 아니니까.”
“…아주 솔직하시구려.”
“솔직해야지. 그래야 신뢰가 생기니까.”
내가 거짓을 말할 이유는 없다. 설령 거짓을 말한다면 그건 하얀 거짓말, 아직은 이른 진실이기 때문이리라.
“미국적 선거가 아시아에서 향후 펼쳐질 터인데,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있겠소?”
“정확한 시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니 나도 모르고. 그래도 최소 3, 4년은 지나서이지 않을까 싶네. 그리고 미국식 선거라니, 우리 프랑스식 선거도 있는데!”
국민들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하며 매번 차악을 뽑는 미국식 선거보다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국민들을 규합한 이 프랑스식 선거를 정착하는 게 옳지 않을까.
“비록 프랑스식 선거가 최소 임기가 7년이라 독재자가 자랄 수 있긴 한데, 그거야 그 나라의 한계이지. 4년 단임은 신생국에서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고.”
“…우리 대한민국은 독재의 나라가 되길 원하지 않소. 그것은 정권에 참여하는 계급 하나를 제외하고는 다른 국민들이 노예가 되고 마는 것이니.”
“그럼 현 프랑스는 독재 국가인데 프랑스 국민들은 노예 계급인 것인가?”
“그들은….”
우물쭈물하며 답하지 못하는 게 아마 내가 프랑스인이어서 그런 것 같다.
“뭐, 맞지. 프랑스는 독재 국가가 맞네. 당연히 정치 참여 계급에 군부가 섞여 있는 것도 가장 큰 문제고. 그건 차차 우리도 해결해야 할 문제이니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야.”
“…정말 이대로 전합니까?”
“그래.”
눈앞의 조선인도 아는 문제를 나라고 모르겠나. 누구보다 잘 알고 해결할 의지도 있지만 하루아침에 불가능함을 인정했을 뿐이다.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데…. 연합국은. 아니, 프랑스는 아시아에 독재 국가를 허용할 생각이오?”
“두고 봐야지. 난 독재를 하든 시즌별로 정권이 바뀌든 딱히 상관없는 입장이라. 그래도 가능하면 친프랑스 정권이 오래오래 해먹으면 좋겠지만, 그게 쉽지는 않겠지.”
이제는 순화를 포기하고 아예 적나라한 조선어로 옮기기 시작한 통역의 말에 김구는 또 한 번 질문했다.
“실례일 수 있지만…. 귀관의 계급을 여쭤도 되겠소?”
“아, 난… 음, 대충 별 단 장군이라네.”
“별 몇 개 말이오?”
“오, 눈치.”
그래도 내가 하나짜리로는 안 보이나 봐? 몇 개로 구라칠까 고민하던 차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원수님, 총사령관님께서 연락 달라고 하십니다.”
“아, 벌써 걸렸네.”
하긴, 내가 어느 동양인 데리고 사적 만남을 가진다는 소리에 아이젠하워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그 인간이 임정 수장이라면 더더욱.
“이거 오래 만나기엔 날 찾는 사람이 많아서. 이래 봬도 꽤 바쁜 몸이라. 마지막 문답을 나누고 다음 만남을 기약하도록 하세.”
마지막 질문이란 소리에 백범은 한 차례 고민을 한 뒤 물었다.
“조선은 미군정이오?”
“정해지지 않았네. 미군정이길 바라나?”
“어디든 조선이 자주독립이 되는 길이었으면 좋겠소.”
“응원하지.”
시종일관 가벼움과 여유로 백범 김구를 대했지만. 그가 나가고 홀로 남은 방에서 난 그 어느 때보다 깊은 고민에 빠졌다.
“지금은 정말 일말의 가치도 없는 나라인데….”
그 옆에 일본과 중국이라는 너무나 맛있는 먹거리에 미국조차 조선에는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비유하자면 사은품 정도로 여기고 있다는 소리.
반대로 먹고자 한다면 우리 프랑스에 얼마든지 양보할지도 모른다. 대신 다른 곳에서 더 내줘야겠지만.
“음, 역시 너무 멀다. 태평양 하나를 두고 미국이 행사하는 영향력 이상으로 우리 프랑스가 조선에 힘을 쓰려면 사실상 군사 주둔 정도는 되어야 가능하겠지.”
말이 병력 주둔이지 그것도 시골 소작농이 생산하는 농작물 외에는 자원도 없는 땅에 투자해야 한단 의미.
다만 정말 먼 미래를 보고는 투자할 가치가 있지 않을까 고민하며 난 아이젠하워를 만나러 발걸음을 옮겼다.
도착하니 ‘분명 저번에 전쟁 끝나기 전에는 독단으로 행동 안 하기로 했잖아!’를 안면 근육으로만 표현한 아이젠하워가 있었다.
“이거 총사령부에 첩자가 많아. 기밀인 내 행보를 이렇게 일러 바치다니.”
“정확히 말씀하셔야지요. 통역을 뺏어가지 않으셨습니까?”
“뭐? 내가?”
“저희 쪽에 있던 조선인 통역 말입니다.”
“아.”
그 말인즉 아이젠하워 또한 조선인을 만나거나 만날 생각이었단 건데.
“프린스 리라고, 한때 미국 생활하던 조선인입니다. 근데 만나보니 통역이 필요하진 않더군요.”
“뭐야, 자네도 만나고 있었구먼.”
“전 예정된 공식 만남이었습니다만?”
“난 우연히 만났는데?”
내가 뭐 몰래 조선에 친프랑스 정권 심으려고 만난 줄 아나.
담배 피러 나갔다가 방치된 사람 데려와서 사정이나 들어본 거라고.
“설마 조선을 원하십니까?”
“고민 중이야. 괜히 이렇게 말했다고 루스벨트한테 쪼르르 달려가 과장되게 말하진 말고.”
객관적으로 볼 때, 먹기 좋은 건 일본. 가장 파이가 큰 건 중국이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일본의 지분 대부분은 미국이 가져갈 거다. 당연히 태평양 전쟁의 주인이자 해전의 핵심, 그리고 지리학적으로 태평양 하나만 사이에 두고 있으니 아주 정당하다.
동남아는 양분하게 될 거다. 대충 반반으로 보고 있고 우린 인도차이나 쪽을 가져갈 것 같다.
‘조선. 조선이라….’
어찌 될지 모르는 미래는 제외하고 지금 어떤 가치가 있을까?
‘조선은 소련 바로 아래에 있는 국가다. 군사력을 키워볼 가치는 있어. 중국 통제에 한 축이 될 수도 있고, 이리저리 쓸모가 있을 것 같긴 한데…. 너무 투자금이 많이 들 것 같단 말이지.’
인도차이나처럼 우리 쪽에 가까운 것도 아니라 너무 애매하다.
“애매하다면 손대지 말고 가만히 놔둬야 하나.”
“아, 오늘 만난 프린스 리가 그러더군요. 지금 빨갱이가 반도 전체에 숨어 있어 하루빨리 청소하지 않으면 언제 적화될지 모른다고. 마냥 방치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 프린스 리는 누군가?”
“본명은 승만 리로 현지 세력에 큰 영향력을 펼치는 자입니다.”
“아하.”
이승만. 친미주의자이자 독재자.
이거 자라나는 독재자 새싹이라니 나도 한번 만나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