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280
#280화
어딜 가나 군복 입은 양이들이 총을 든 채 사방을 경계하게 된 동쪽의 땅.
얼마 전까지 시체를 보기 어렵지 않았으며 극심한 기아와 억압이 머물던 이 땅은 전쟁이 끝났다고 마냥 세상 살기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비록 식민지들은 해방의 기쁨에 모두가 거리를 뛰쳐나와 목이 나가라 소리를 질러댔지만.
오랜 전쟁이 휩쓸고 간 땅이 사람 살기 좋은 곳으로 변하는 것은 하루 이틀 만에 될 일이 아니었다.
황인들 중 가장 큰 세력을 자랑하던 일본 제국이 무너지고, 다시 양이들의 세상이 도래한 이곳.
새로 맞이할 미래에 황인들은 저 양이들의 모든 것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프랑스는 어째서 저리 강력한 것인가?’
‘우리나라가 맡게 될 역할은 과연 무엇이지?’
‘과거를 씻어내고 미래로 새로이 나아갈 방법은?’
각자 처한 상황과 시작점이 다를지언정 그들 모두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한다는 명제는 똑같았다.
그리고 모두가 하나 발견한 점이 있다면.
‘소련, 답은 소련이다!’
‘이건 저 흰놈들 주머니를 열 수밖에 없을 게야!’
‘빨갱이 네이노오옴!’
바로 나치에 감염되었다가 폐허가 된 독일이 그러하듯.
한때 프랑스와 전쟁하던 이탈리아가 지금 뒷짐 지고 세상을 가르치는 것처럼.
패망했던 폴란드가 당당히 유럽을 호령하게 될 게 뻔하듯.
답은 전쟁이다. 전쟁으로 빠르게 무너졌다면 다시 전쟁으로 일어나야만 한다.
“장제스가 군대를 키우고 있다고? 우리 대한 건아들이 더 잘 싸울 수 있다!”
“할복할 의지가 있다면 다시 총을 들어 공을 세워 죄를 덮으라. 야마토 민족이 만주에서 러일 전쟁을 재현하리라!”
“인해전술이라고 들어는 봤나 몰라.”
이미 여러 차례 증명된 방법.
미국은 몰라도 프랑스는 전향한 국가를 살뜰히 보살펴 주다 못해 함께 손을 번쩍 들어 승자로 인정해 준다.
저 미리견은 평화를 가장해 경제 수탈을 계획할지 모르지만 구라파의 나라들은 사회주의와 같은 하늘 아래에 공존할 수 없어 보인다.
아직 전쟁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프랑스의 거두들이 입을 다물고 있지만 때론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법.
실제로 전쟁이 끝나자마자 연합군이 제일 먼저 한 일들 중 하나가 만주에 병력 주둔할 곳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이미 프랑스는 최후의 전쟁을 이겼다고 선언하지 않았나?”
“아니지. 곧 모헬 원수가 유럽으로 돌아가면 진짜 최후의 전쟁이 시작되는 거요.”
“근데 일본이 항복하며 최후의 전쟁이 끝난 게 아닌-”
“이번에는 진짜 진짜 마지막 종점 찍는 최후의 전쟁인가 보지!”
이미 아시아는 사람 목숨이 경시되다 못해 무가치해진 상황. 또 한 번의 전쟁은 비극일 게 뻔하나 그것이 필요하다고 보는 시각까지 존재했다.
그리고 최후의 전쟁을 끝냈다 생각했던 모헬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이름 모를 기대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시발 평화라고. 내가 평화를 만들어서 너희한테 줬다니까?”
더는 명분도 실리도 없는 전쟁을 프랑스가 일으킬 거라 확신하는 이유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정말 아시아를 이용해 피해를 줄이며 소련을 칠 거라 생각한 걸까.
유럽도, 아메리카도, 아시아도 전부 4년을 내리 싸워 지치다 못해 국력이 다 탈진할 상황인데 왜 다들 총을 못 들어 안달일까.
처음에는 무시했고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밝히기까지 했음에도. 풀리지 않는 오해에 모헬도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 잘못된 느낌이 확신으로 변한 것은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극동 군관구의 병력이 남쪽 진지 건설에 들어갔습니다!”
“지바이칼 군관구가 병력을 집결합니다!”
진짜 소련이 움직였을 때였다.
“…씨발, 가만히 있음 반이라도 간다니까. 니넨 또 왜 이래.”
연합군 총사령부에 소련군이 국경에 모습을 드러냈단 소식이 퍼지고 정해진 수순처럼 맥아더가 일본에서 날아와 모헬을 막아섰다.
“참아! 전쟁 끝난 지 두 달도 안 되었잖아!”
“난 화 안 났네만.”
“그래, 그래. 화는 안 났지만 다 죽여버리고 싶겠지. 설령 전쟁하고 싶다 해도 아시아는 써먹을 수준이 못 되니 지금은 진짜 아니야.”
“흐음, 그래도 무시하긴 자존심 상하니 우리도 만주 병력 살짝만 위로-”
“카아아악! 악귀가 또 피를 찾는다! 만주가 베르됭이 되게 생겼다! 아이고 미군 다 죽네! 독일국방군 집 못 돌아가게 생겼네!”
“…….”
이쯤 되니, 모헬은 진심으로 의문이 들었다.
‘그냥 나 빼고 다 전쟁하고 싶어 미친 게 아닐까? 아니면 진짜 최후의 전쟁은 아시아가 아니었나?’
외눈박이 세상에 홀로 두 눈을 가진 기분.
분명 전쟁을 끝냈더니 모두가 그에게 또 전쟁하라고 등 떠미는 상황. 그럼에도 다들 입은 솔직하지 못하여 오랜만에 맛보는 평화가 달콤하다고들 말한다.
‘그렇다고 내가 대놓고 소련한테 안 쳐들어간다고 말해? 반공 포위망을 만든 장본인이?’
눈깔 달려 있고 정세 좀 볼 줄 아는 인간이라면 이제 승자의 만찬을 즐길 프랑스가 굳이 동토에 국력을 소모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잘 알 텐데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그럼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상황이 다 해결 되느냐.
“진실된 파시스모 자본주의와 허구의 공산주의와의 전쟁은 불가피하다! 미래의 우린 진실이 무엇인지! 이념의 실체가 무엇인지 낱낱이 까발리리라!”
“아아, 한때 잘못된 길을 걸었던 몸으로 지금의 소련의 비겁한 행태를 용납할 수 없다. 나 티토는 오늘부로 소련과의 영원무궁한 전쟁을 선포한다.”
“노동자는 일을 미루지 않는다. 지식인은 눈을 감지 않는다. 그리고 군인은, 전쟁을 피하지 않는다. 무스타파 케말의 의지는 굴복하지 않으리.”
아시아의 의지에 감동한 유럽 또한 호응하며 자신들이 흐름의 선두주자임을 눈도장 찍으려 했다.
잠시 방심하고 방관한 죄를 달게 받게 생긴 모헬은 위기의식이 극심하게 고조되었다.
“좆됐군. 선거가 아니어도 빨리 유럽으로 돌아가야겠어.”
그리고 살살 눈치 보며 모헬을 쪼아대는 헐 국무장관은 오늘도 말한다.
“핫라인, 그거 진짜 물건 괜찮은데….”
“나보고 빨갱이 직통 번호를 개설하라고?”
헐은 의심도 놓지 않지만 포기 또한 모르는 남자였다.
***
내가 느끼는 위기 의식은 전쟁에 대한 의식이 아니다.
여전히 프랑스가 움직이지 않으면 언제라도 불타는 들판처럼 들고일어날 것 같은 이들도 다시 자리에 앉아서 일상을 살아갈 거다.
첫 번째 문제는 진짜 판이 깔려버려 반공의 선두주자 프랑스가 기대를 받고 그 기대감이 실망으로 바뀌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어찌 되었든 발작하는 소련과 주제 모르는 일부 국가들 사이에 군사적 문제가 일어날 경우다.
‘만약 지금 국경에 미세한 충돌이라도 일어난다?’
모두가 프랑스 원수들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또 한 번의 전쟁을 외칠 기세다.
우린 원수 두 명이 은퇴작품 준비 중이고 난 전후처리에 치여 살고 있는데 말이다.
어찌 되었든 소련이 존재함으로 가장 이득을 보는 국가 중 하나가 프랑스다.
반대로 소련을 누구보다 혐오하고 없애고 싶어 하는 나라 또한 프랑스고.
그 사이의 절묘한 위치를 유지하는 것에 만족하는 난 역시 전쟁을 하고 싶지도, 할 수도 없다고 본다.
물론 이 생각을 누구에게도 말할 순 없지만.
“파비앵, 넌 아시아에 몇 년 더 남아야겠다. 어차피 군축 시즌에 국내에 있어 봐야 골치만 아플 테니 나쁘지 않을 거야.”
“뭐로 말입니까?”
“조선 군정 사령관. 유일 육군 대장직 다음은 너로 보장해주마.”
“원수님은 귀족 아니라고 한사코 부정하시더니 이게 그거 아닙니까? 잘 싸운 기사한테 주는 거 그 뭐냐, 영지 하사-”
“야 이놈아. 아직도 조선이 식민지로 보여?”
“…아닌가?”
“키울 거야. 알아서 자라나야 하겠지만.”
몇 번의 만남이 더 있고 이후 아랫 사람들끼리도 충분히 대화가 오간 뒤.
백범은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정확히는 아직 반만이지만.
‘통합에 저해되는 세력을 제거하겠다, 다만 자신이 독재에 가깝겠으나 그 권력을 나한테도 받겠다니.’
프랑스가 조선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싶다면 그만한 혜택을 줘야만 한다는 거래와도 비슷하다고 본다.
“재미는 있을 거야. 화폐 개혁, 토지 개혁, 과거 청산, 기득권의 부상과 추락, 군과 정부 설립까지.”
“뒤지게 힘들어 보이는데요.”
“그냥 해.”
“…아오, 나도 두 원수님 따라서 전역해버릴까 보다.”
나열해보면 백범 선생이 왜 외부 권력까지 끌어다 쓰겠다는지 알 것 같긴 하다. 내부 통합으론 저 일들 중 하나라도 제대로 추진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니까.
‘지금 시대에 조선의 권력은 외부에서 살짝만 건드려도 무너지는 모래성과도 같지.’
옆나라 미군정이 고개만 까딱 틀어도. 조선은 긴장감에 멈춰버릴 거다.
“어디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고. 못하면 곧장 원금 회수해버릴 테니까.”
그의 애국심과 별개로 조선의 미래는 곧 프랑스의 이익으로 이어져야만 할 거다.
“군정 하게 되면 욕먹을 짓만 하지 마라. 무언가 큰일이다 싶으면 조선 자체적으로 할 수 있게 놔둬.”
“실무에는 개입하지 말라는 소리십니까?”
“그래.”
“뭐야, 대육군 시절 그대로네. 눈과 귀 꼭 닫고 숨만 쉬기. 저 그건 잘합니다.”
“…넌 진짜 강등 준비해라.”
내 저 새끼 어깨의 별 반 개짜리는 미군 보기 쪽팔려서라도 꼭 뜯어내고 만다.
어느 것 하나 중대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는 사안들이었지만 날이 지날수록 나의 선택은 시간에 쫓기듯 점점 과감해졌다.
다음에 와서 마무리 지어야 하나 고민하며 슬슬 귀국 일정을 잡던 어느 날.
“전쟁과 함께 진작에 이긴 선거인데 뭐 그리 바쁘셨을까나.”
“하하, 보통의 민주주의는 국가수반이라도 여기저기 불려다닌답니다.”
“나도 그 국가수반이라 곧 귀국해야만 하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습니까?”
“…….”
루스벨트가 11월 선거에서 당당히 승리를 거머쥐고 아시아로 찾아왔다.
그리고 나보고 일하라고 붙잡는다.
***
“소련과 소통할 의지도 없으십니까? 대화의 단절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오해는 분쟁을 번지게 하기 마련입니다.”
“대화는 없습니다. 전쟁 발동 조건은 소련이 동토에서 기어나오는 것 하나입니다.”
“음, 사실 저희 측에서 얼마 전 소련과 만남을 가졌습니다. 정확히는 막심 리트비노프 주미 대사가 절 찾아왔지요.”
“뭐라던가요?”
“프랑스를 막아달라. 정확히는 조약을 제대로 이행해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리트비노프 저자에 대해 내가 아는 거라면 소련이 친서방 이미지를 위해 내세운 사람이란 것 하나다.
“미국이 소련과의 외교 라인을 아직도 유지하는지 몰랐습니다만.”
“전쟁이 끝났으니 다시 복구했습니다. 여하튼, 소련은 대화를 하고 싶어 합니다. 진정한 평화를 위해 기꺼이 함께 미래로 향할 의지가 있단 말입니다.”
“지랄.”
“…예?”
“아, 말이 잘못 나왔군요. 흠흠, 기만은 사절, 이라고 전해주십시오.”
소련이 말이 통하는 상대라고 포장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난 애당초 미국의 라인이 살아있는 것부터가 싫다.
‘패권주의가 무너지자 위기 조장 하나로 먹고사는 스탈린이 평화? 평화아아?’
내가 그에게 온전한 단절을 외친 것은 어쩌다보니 스탈린의 권력 집권에 또 다른 도움을 주었다.
자본주의의 맛이 퍼지지 않은 채 동토는 순수 공산주의자들의 땅으로 남게 되었으니까.
그런 그가, 우리와 대화를 나눠 평화를 이룩하고 싶어한다고? 이젠 전쟁 위기 하나로 권력층 전체가 먹고살아야 하는 저것들이?
“우리 동맹국 대통령께서 하실 말씀이 국무장관처럼 핫라인 개설은 아닐 테고. 무얼 가져오셨습니까?”
“역시 눈치가 빠르십니다. 방금까지는 확인하는 시간이었고, 최근 사태에 관한 용건은 간단합니다.”
최근 사태라 함은 실속없이 떠들썩하기만 했던 위기론들을 의미한다.
“우리 미국이 유일한 소련과의 창구가 되고 싶습니다.”
“무엇 때문에?”
“프랑스식 평화는 프랑스가 지켜주는 평화이겠지만, 미국의 평화는 모두가 손에 손잡고 편안한 밤잠을 이루는 거랍니다.”
“어우, 오늘따라 욕설이 입을 오르락내리락 거리네. 왜 이러지?”
대놓고 나보고 ‘넌 소련이랑 놀지 마. 난 놀게!’라는데 슬슬 너희가 동맹국이라는 것도 짜증 날 것 같은데.
“이제 틀어질 수 없는 사이라고 너무 막 나가시는 거 아닙니까?”
“그것이 우리 미국의 새로운 역할이 될 겁니다. 힘을 가진 중재자. 타국을 존중하고 동맹의 든든한 힘이 되며 조금의 전쟁도 원하지 않는, 그런 국가.”
“그렇게 해서 얻는 게 뭡니까?”
“평화지요?”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어 능구렁이 같은 저 인간에 대해 하나씩 떠올리며 분석해보았다.
소련에게 여지를 준다. 즉, 소련에게 이용가치를 발견했다라.
소련이 이용가치가 생기는 것은 언제인가? 전쟁에서 졌음에도 엄청난 잠재력으로 뻔히 강대국이 될 것이 보이는 지금? 아니면 힘을 좀 더 회복한 몇 년 뒤?
아니다. 진짜 소련의 쓸모는, 지금 프랑스와의 구도가 끝나는 순간.
그러니까, 내가 열어젖힌 냉전이 막을 내리는 그 순간이 아닐까?
‘…이거 내가 너무 호구였나.’
이런 관점으로 보자면, 미국은 지금 씨앗을 심고 싶은 거다.
저 소련이란 나라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언제? 바로 프랑스와의 냉전이 끝났을 때.
즉, 이 말을 최근 모든 사태와 다시 한번 돌이켜 보자면.
FDR은 지금의 프랑스와 소련의 구도를 최소 수십 년. 반세기 이상 이어질 길고 긴 겨울로 보고 있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루스벨트 대통령, 내가 진짜 전쟁할 인간으로 보입니까?”
내 질문에 루스벨트는 시종일관 유지하던 정치인 미소를 지우고 짧게 답했다.
“예.”
우리의 신뢰는 여전히 깊지 않았다.
적어도 전쟁 쪽으로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