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281
#281화
개인적으로 난 내 말의 무게를 잘 안다고 자부한다. 적아 가리지 않고 지켜지는 발언 하나하나가 신뢰로 연결된다고 믿기에 애당초 난 대중 앞에서 쉽게 입을 열지도 않는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난 내 말에 아주 큰 무게감이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대놓고 ‘내가 또 전쟁할 인간으로 보인다’고 답하는 루스벨트의 모습에서 난 내 착각을 발견했다.
나에 대한 신뢰는 오직 전쟁 한정이다.
잘 싸울 거라는 믿음.
적을 이길 거라는 신뢰.
전쟁에 관해서는 적아 가리지 않고 철저할 거란 생각.
반면 평화에 관해서는 저들은 날 조금도 믿지 않는다.
“왜 제가 소련과 싸울 거라 생각하십니까?”
“반공 포위망은 사실상 예비 전선입니다. 그 전선을 강화할 생각이 한가득인데 전쟁의 가능성이 진정 없다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전선이 아니라 방어선입니다만.”
“저도 솔직해졌으니 우리 모헬 원수님도 조금은 진솔하게 나와봅시다. 지금은 아니겠지만 차후에 소련과 유일하게 분쟁 가능성이 있는 국가가 어디입니까?”
“분쟁 지역은 널렸지요.”
“허나 전쟁할 국가는 프랑스 단 한 나라입니다.”
그거야 의도된 바잖아. 그렇다고 소련이 태평양 건너 미국이랑 본토 점령전 할 리는 없고, 진짜 극닥적으로 미국과 사이가 틀어져봐야 대리전 정도일 테지만 우린 아니라고.
“그럼 소련이 무너졌을 때 가장 큰 이득을 얻는 국가는?”
“없습니다. 소련이란 나라가 사라진다고 좋을 나라가 어딨습니까.”
“이제 육전으로 모든 것이 해결가능해진 프랑스입니다. 교통이 점점 발달하는 요즘 시대에 땅으로 연결된 아시아와 유럽이라…. 감히 상상하기도 어렵군요.”
상상이 아니라 망상이니 대가리 안에서도 구체화하기 어려운 거라고 말하고 싶다만, 루스벨트는 지금 진심이다.
“난 전쟁의 양면성을 아주 잘 압니다. 무의미한 대전쟁도 겪어봤고 전쟁으로 무너진 나라도 많이 봤습니다. 그런 내가 무모하게 동토를 점령하려 들것이라 넘겨짚지 마십시오.”
“천하의 모헬 원수께서 무모하게 전쟁할 리가요. 분명 이번에도 얼마가 걸리든지 철저히 준비해 소련의 목을 단숨에 끊어버리겠지요.”
끝났다. 이건 대화를 이어갈 가치가 없는 수준이다.
무슨 대답을 하든, 무엇을 약속하든 동맹인 미국부터 저리 다음 전쟁이 존재한다 맹신하는데 당사자인 내가 어떻게 해명할 길이 없다.
“만에 하나 말입니다. 그러니까 설령 모헬 원수께서 당장은 전쟁을 원치 않아 하신다 한들…. 미래의 프랑스가 전쟁을 안 한다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입이 안 열려 가만히 있는 내게 루스벨트는 마지막 칼까지 쑤셔 넣었다.
‘하하, 씨발 우리 프랑스가 전쟁에 미친 줄 아나.’
저 아시아 국가들의 착각도 알겠고 미국의 두려움도 이해된다.
저들 눈에 프랑스는 누가 봐도 역사의 대계를 이룩하기까지 한 발짝 남은 상태.
마치 다음 전쟁이 정해진 운명처럼 보이며 그 원인, 과정, 결과까지 무엇 하나 전쟁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 보이는 거다.
“결국 프랑스가 전쟁을 하고 나서 남은 껍데기 러시아는 미국이 차지하고 싶다?”
“그래야 다음 전쟁을 우리가 도울 수 있습니다.”
루스벨트는 나름대로 큰 베팅을 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러시아까지 삼킨 프랑스라면 미국이란 나라의 패권은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 전쟁을 돕고 소련의 잔재를 자신이 가지겠다고 말하고 있다.
‘전쟁은 하지도 않았는데 전후 구도를 짜는 중이라는 거지?’
처음에는 우스웠고 그다음에는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던 이번 일이 이제야 조금 현실로 보인다.
이 사태는 나와 프랑스가 불러온 재앙이다. 원 역사를 떠올리면 절대 가능성이 없다고 넘겼지만 아니다. 다음 전쟁의 가능성은 실존하고 그 결과가 지금의 내 앞에 나온 미국의 최초 4선 정치 괴물, FDR이다.
“하아. 그래서 내가 소련의 전후를 약속하면 끝나는 겁니까?”
“아시아 주둔군 줄이지 않겠습니다. 미군정 또한 짧지 않을 겁니다. 혹여나 다음 전쟁이 언제가 될지 모르니.”
“내 대화하다가 하나 궁금해서 말입니다.”
미국마저 이런 생각에 잠식되었다면 다른 나라들이라고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그럼 응당 그 나라가 빠질 수가 없는데.
“처칠 경은 지금 우리 대화의 내용을 일부라도 알고 있습니까?”
“으음, 처칠 총리가 얼마 전 제게 프랑스가 무슨 짓을 꾸미든 다음 전쟁에 끼고 싶지 않다고 하더군요.”
“어쩐지 고분고분하게 아프리카로 만족하더니.”
전쟁이라면 질릴 대로 질려버린 대영제국은 아예 연합국 탈퇴에 가까운 길을 걷게 될 것 같다.
‘영국마저 절대 다음 전쟁에 안 끼겠다고 말할 정도인데….’
어째서 세상은 아직도 전쟁을 그토록 외치는 것일까.
설령 평화를 원하더라도 그들의 욕망과 행동은 다음 전쟁을 바라는 것만 같다.
모두의 기대감과 두려움을 한 몸에 받으니 몸 둘 바를 모르겠으나.
“돌아가자.”
머리를 정리하기도 전에 난 프랑스로 돌아가야 했다.
11월 마지막 주. 선거를 이주 앞두고 내가 돌아왔다.
***
무지한 외부인들은 프랑스가 무서운 독재의 나라라고 하지만 달라디에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세계 최초로 민주화 혁명을 이끈 나라.
세계 최초로 공산화 혁명을 당한 나라.
이 둘 다 프랑스의 멀지 않은 역사다.
미국? 바다 건너면서 프랑스의 정신을 다 까먹고 적당히 따라는 아류에 불과한 녀석들이다.
소련? 그것들은 이미 프랑스가 한번 써버고 내다버린 공산주의를 주워서 맛있다고 계속 먹는 멍청이들이다.
여차저차 험난한 역사를 통해 공화국 정부를 이룩한 지금, 무려 모헬 각하도 철저히 그 공화국을 존중하고 있으니 프랑스는 절대 독재가 아니다.
‘우리가 투표를 조작했나, 이념을 국민들 눈앞에 들이밀었나?’
그 어느 때보다 프랑스인들은 자유를 느끼며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이번 16대 대통령 선거에도 다른 후보들이 존재하긴 했다.
어차피 승리하기 위해서라기보단 얼굴을 알리기 위해 나오는 후보들이 대다수지만 여하튼, 프랑스는 여전히 민주 공화국이다.
다만 선거에서 그냥 이기는 것이 아닌 압도적이길 바라던 달라디에는 약간의 꼼수를 썼다.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은 국민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에 가깝지 않나?”
“어…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투표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약간의 벌금을 부과하는 법안은 어떤가?”
그 안건을 들은 드라로크 의원이 기립 박수를 치며 곧장 오를레앙 당을 소집한 것은 비밀도 아니었다.
“이전에 발의되었던 극단주의 금지법 말이야. 전시도 끝났으니 다시 손볼 때가 되지 않았나? 너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 같군.”
“아, 그렇습니까?”
“그래. 국가전복 공산화는 안 돼도 좌파 전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네. 당장 나만 봐도 중도좌파 출신이지 않나?”
“검토해보겠습니다.”
본래 의도는 다양성을 넓히기 위해서였지만 이 소식을 들은 왕정복고주의자들과 (구)보나파르트주의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공화국을 제국이라고 명칭을 바꿔서 불렀다.
달라디에는 푸엥카레 시절도 겪어봤고 밀랑과 두메르그 시절에 정치도 해봤다.
다양한 정치 이념들이 돌아가며 정권잡던 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작금의 대모헬 시대를 평가해보자면.
‘프랑스는 다시 없을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비록 본인은 이번 임기를 끝으로 사임하게 되겠지만.
저 프랑수아 드라로크 당수도 모든 것을 내려놓을 준비를 하고 두 원수님도 은퇴를 계획하시며 대육군마저 수십 년 만에 군축에 들어가겠으나.
절대 베르게르 모헬만큼은 변해선 안 된다.
더는 과거 고통스럽고 혼란스럽던 시절로 프랑스를 되돌리고 싶지 않다.
국민들은 거짓에 둘러싸여 모두를 불신하게 되고 정치인들은 이념에 취해 대화가 단절되었던 시절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
지금의 프랑스가 역사에 다시 없을 전성기다.
‘베르게르 모헬, 정말 당신 하나만 있으면 되는 거야.’
만약 그가 다음 전쟁을 하자고 한다면 국민들은 기꺼이 다시 집총을 해 모병소로 모여들 것이다.
그것이 정답이니까. 무려 모헬이 정한 일이니까.
이것은 이념이나 사상과 무관하게 달라디에가 평가한 한 인간의 가치이자 존재감이었다.
“각하께서 갑판에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귓가에 비서의 소식을 듣자 달라디에는 위대한 전쟁영웅의 귀환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복장을 점검했다.
저 극단주의 우파처럼 개인숭배를 하는 것은 아니나, 이것이 프랑스를 사랑하는 에두아르 달라디에라는 인간이 모헬에게 갖추는 최소한의 예의였다.
남부인 전체가 모였는지 거대한 항구 자체가 좁아 보일 만큼 인파는 대단했다.
구축함 르 말랭이 거대한 몸을 마르세유 항구에 드러낸다.
봉쇄 돌파선이라는 쓰임처럼 르 말랭은 모헬 원수의 귀환을 참으로 잘 표현한 것 같았다.
이윽고 갑판에서 줄이 내려와 선박을 묶고 브릿지가 육지와 갑판을 연결하자 국민들조차 신문과 라디오로만 볼 수 있던 베르게르 모헬 원수의 모습이 드러났다.
“와아아아아!”
“모헬 만세! 프랑스 만세!”
“알제 프랑스! 비바 프랑스!”
뱃고동 소리보다 더 큰 함성 소리가 등 뒤로부터 달라디에의 온몸을 감싸 안는 것 같았다.
만약 지금 국민들이 외쳐대는 환호가, 그들이 느끼는 감동과 감화가 자신이 느끼는 것과 동일하다면.
“달라디에 총리. 고생 많았네.”
“제가 한 게 뭐가 있겠습니까.”
“같이 걸어가지.”
감히 누가 투표소에서 다른 이름을 찍을 수 있을까.
어깨에 살짝 손을 올리며 함께 카펫 위를 걸어갈 것을 말한 것만으로 감동이 밀려오는데.
도열해 있는 사열대의 얼굴 하나하나가 감격에 무표정을 유지하기 어려워 보이는데.
세상 무엇이라도 가능해 보이는 저 사람의 자신감이 가득찬 발걸음은 지켜보는 군중들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무언가가 있다.
어느 정도 걸어가던 모헬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봐 자신을 기다려준 국민들을 바라봤다.
“이게 나라지.”
비록 들은 자는 가까이 있던 소수의 사람뿐이었나 그 순간 달라디에는 확신했다.
선거는 끝났다.
프랑스가 이겼다.
***
미뤄뒀던 16대 대통령 선거가 시작되었다.
어쩌다 보니 대통령인 나는 국외로 돌아다니고 총리가 내정을 담당하다 보니 권력의 분리가 이행되어 버렸다.
“이러고 있어도 돼? 막 연설 같은 거 안 해?”
“안 될 건 뭐야. 그리고 프랑스 돌아와서 파리 입성식 때 한 번 했잖아.”
“그건 선거 연설이 아니었잖아.”
“그게 그거지.”
난 원래 비밀주의 컨셉이라고. 막 국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이미지가 아니라 차가운 군인이라니까?
그러니까 투표 당일에도 밖에 돌아다니며 위엄 떨어지는 짓 대신 집구석에 박혀 있는 게 내 평판에 도움되는 일이다.
“할 일 많다며. 출근 안 해?”
“개표 전에는 나갈 거야. 오랜만에 봤는데 왜 이렇게 재촉해?”
“파리에 와서는 누구누구 만났어?”
“딱히 안 만났지? 다들 보고할 게 한가득이긴 할 텐데 내 선까지 올라올 일이 얼마나 되겠어. 다들 호들갑이야.”
“독일 소식은?”
“전후 처리는 조율 잘 해봐야지. 그리 가혹하진 않을 거야. 아니 근데 오늘따라 질문이 왜 이리 많아?”
보통 소파에 이렇게 늘어져 있으면 알아서 피하시던 분께서 옆에 딱 앉아서 잔소리 비슷한 대화를 이어가니 참으로 어색하다.
“설마….”
“….”
“오랜만에 봐서 그런 거야? 샤를로트 미안. 내가 너무 오래 비웠지?”
“하아, 됐다.”
“왜? 이게 아냐?”
“됐습니다. 독재자 씨. 난 이 집에서 7년을 더 살게 생겼네.”
경고등이 번뜩 켜진다. 분명 무언가 문제가 있는데 내가 못 알아챈 거다. 분명 첫날부터 삼 일은 긴장의 끈을 안 놨는데 어디서 놓친 거지?
“당신까지 왜 그래? 내가 잘못했어!”
“아, 당신 그냥 누워 있어.”
“일단 잘못했다고! 설명 좀 해달라고! 내가 고친다고!”
등에다 대고 말할수록 그녀가 더욱 멀어져만 가는 것 같으나 진짜 모르겠다.
개표보다 더한 긴장감이 식은땀을 생산한다.
‘뭐지? 씨발, 뭐지?’
더 먼 과거를 떠올려봤자 나 아시아에 있느라 딱히 문제 될 게 없는데.
“…아 분명 좆됐는데.”
근데 뭐가 좆된진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