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286
#286화
법과 제도는 이념이란 뼈대에 역사화 문화를 발라 그럴듯하게 사회를 유지하는 방식이다-라고 굳게 믿는 파리의 신정부, 플랑댕 내각은 여느 정부가 그렇듯 인수인계가 끝나자 새로운 대외 대응 방식을 발표했다.
어차피 큰 줄기는 이미 국가정상급 선에서 정해졌고 그 흐름에 자의적으로 탑승조차 어려운 약소국들을 대상으로 한 이번 발표.
이를 한 줄로 정리하자면 ‘마지막 기회’였다.
“프랑스 정부는 국경 간의 분쟁에 민감하게 대응할 것이며 최소한의 자정능력이 있는 한 내정간섭은 없다고 약속합니다.”
이탈리아가-프랑스 전쟁 이후 기고만장하던 유고슬라비아 왕국이 어찌 무너졌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본 나라들은 저 말을 곧이곧대로 믿진 않았으나 여태껏 이어져 온 프랑스의 기조를 생각하면 플랑댕 총리의 의도만큼은 확실히 파악했다.
‘저번처럼 무제한 내전 승인은 아니야.’
‘이건 유예 기간 사이 자리잡은 권력자들을 겨냥한 말이다!’
미국과 프랑스 모두 민주적 선거를 통해 국가의 방향성과 권력자를 정한다.
당연히 연합국의 기조에 맞춰 왕정 국가조차 보여주기식 선거라도 해야 하는 상황. 그런 그들에게, 프랑스는 새로운 약속을 했다.
너희가 최소한의 국정 수행 능력만 가지고 있다면 내정을 어떤 기괴한 형태로 운영하든 신경 안 쓰겠다고.
정치에 종교를 접목해서 운영하든 국가를 기괴한 형태로 개조해 환경에 적응해도 터치하지 않겠다고.
이에 세계 대전을 통해 강대국들의 힘을 엿봐버린 소국들은 찌그러져 있던 몸을 펴고 할 말, 못 할 말 다 하기 시작했다.
“아아, 우리 튀르키예의 이슬람이여, 무스타파 케말께서는 전쟁터에서도 예배를 드리셨다! 그 의지를 이어 우리 동지들을 보호하자!”
“중동의 시아파들아! 우리 한 형제, 한 나라 되어 아라비아반도를 정화하자!”
“소련이 탄압한 정교회! 우리가 다시 일으켜 세운다!”
“이탈리아는 프랑스와의 협정을 존중하여 바티칸의 모든 권한을 무제한적으로 존중하는 바이다. 오늘부로 이탈리아와 바티칸은 별개의 국가로 인정한다!”
철저한 정교 분리를 고집하는 프랑스의 허가가 떨어지니 그간 눈치만 보던 종교계가 들썩였고.
“프랑스는 모든 민족의 궁극적 독립을 지지하는 바이다. 이것은 민주적 자유를 일으킨 최초의 나라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책무이다.”
“씨발, 투표해! 소 믿는 것들아! 우린 인도가 아니다! 우린 파키스탄이다!”
“나가 다른 건 모르지만 하나는 알제. 우리 부족이란 니네 부족이랑은 한 가족이 아녀. 우린 남남이여!”
“우린 한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는 가족이라고!”
“아녀! 우린 투르크멘인이여!”
별것도 아닌 부족에서부터 영국 핵심 식민지까지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와, 프랑스 폼 미쳤네?”
“누가 반대함? 자유민주투사 미국? 식민지 과다 포식해서 배 터지려는 영국?”
“누군지 몰라도 내 하나는 알지. 이걸 반대하는 놈이 무조건 악당이야.”
이걸 지켜보던 국가들은 약소국들의 새로운 질서 정립 과정의 혼탁함에 혀를 내둘렀다.
“이건 기회야!”
“남미가 끝인 줄 알았으나 우리를 기다리는 국가들이 저리 많구나! 파시스트들이여, 어서 일어나 파시즘을 전하자!”
물론 아닌 국가도 있었지만 어쨌든, 반공의 의무에서 한 걸음 벗어난 프랑스의 다음 행보는 역시 파격 그 자체였다.
그러나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고, 평화를 사랑하는 플랑댕은 한 가지 조건을 추가했으니.
“단, 내전 발발이나 민족 학살이 우려되니 무력 분쟁은 절대 불허한다.”
이에 그 혼란을 오직 대화와 협상으로 해결해야 하는 미치고 팔짝 뛰는 상황이 탄생했다.
“씨바아알! 우리 땅인데 현지주민들이 투표하면 독립시켜 줘야 한다고? 우린 같은 나라라니까?”
“영국! 영국은 뭐하는 거야! 저 새끼들 놔둘 거야?”
“대화? 지금 대화가 안 통하는데 대화? 이건 말도 안 된다! 우리도 독립 못 했는데 우리 땅을 독립시키라고?”
유럽은 흔들리지 않았다.
아프리카엔 프랑스의 전언이 전해지지도 않았다.
동아시아는 딱히 변한 게 없었다.
남미는 프랑스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았다.
그러나 이를 제외한 국가들은 흔들렸다.
미국이 일련의 사건에 대해 ‘이거 반공 포위망 안 하니까 힘이 남아도시나. 번지지 않게 잘 단속하쇼’라고 짧게 경고했다면, 어느 한 나라는 게거품을 물고 발작했으니.
“우리 식민지 안 건든다며! 우리가 알아서 군정통치하게 둔다며!”
“허허, 이거 레임덕 오신 분께서 아직도 날아다니시네. 역시 비행기의 시대가 좋긴 한가 봐.”
“이보게 원수, 승전국 사이의 분쟁 방지는 자네가 꺼낸 말 아닌가? 어째서 인도까지 흔들리게 두는 게야?”
“인도까지 흘러들 줄은 몰랐습니다.”
“플랑댕의 말은 체제를 만들고 프랑스의 승인을 받아라. 그럼 인정해주겠다, 이거 아닌가!”
이젠 수염까지 희게 변한 처칠은 두꺼운 턱살을 진동하며 모헬에게 득달같이 달려왔다.
언제나 그렇듯 일 키운 놈은 태연한 법, 모헬은 자리에 앉아 느긋하게 설명했다.
“첫 단계입니다, 첫 단계. 아직 너희는 성숙하지 않았다. 너희는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민주적 능력이 부족하다. 그걸 인지하게 해주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무얼 얻는가?”
“군축하기 전에 그랑다르메 움직일 있으면 얼른 끝내야지요.”
연합국이 언제든 병력 모아 전쟁 치를 능력이 있다지만 미국의 참전 과정만 봐도 그것이 절대 쉽지만은 않았다.
“힘은 있을 때 휘둘러 놓는 겁니다. 그리고 총리님, 우리 대놓고 말해서 제가 어디에 개입하든 지금 영국군은 신경 쓸 틈이 없을 텐데요?”
아프리카 대륙을 인수인계 받고 막 경영을 시작한 대영제국. 그들은 과거 전성기 식민지 크기를 아득히 넘겼으나 그 과정이 너무 갑작스러워 국고가 뿌리부터 뽑힐 기세였다.
‘아직도 영국이 전시 체제 안 푸는 이유가 있지.’
가히 계엄령에 버금가는 사회적 경제적 변화에 시민들이 따라가질 못하고 있으니까.
모헬의 눈에 현 영국은 식민지 뽕을 과다 투여해 국가가 실려가기 직전이었다.
그 말인즉 영국은 반공 체제에서 자유로워진 프랑스처럼 외부에 힘을 투사할 여력 자체가 없다는 뜻.
“정확히 어디. 어디를 노리고 있나.”
“아라비아 반도. 이곳은 솔직히 영국의 영향권이라기엔 애매하지요?”
“괴뢰국을 세울 작정인가. 아니지, 튀르키예를 비롯한 일부 국가와 협력할 생각이군. 그리해서 아시아 내륙지방까지 여차하면 영향권을 늘릴 생각인가?”
“선수 쳐서 기분 나쁘십니까?”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모헬의 말에 처칠은 처음으로 시뻘게진 눈을 돌렸다.
“…파요레 국장의 능력이 좋군.”
“유대인에게도 국가를 세워주겠다. 아랍인들에게도 지역별로 독리분립을 해주겠다. 아라비아 반도 부족들에게는 뒤에서 싸우도록 부추기고 계시던데. 이 많은 약속들을 어찌 다 지키시려고 그러시는 걸까. 심지어 땅도 겹치던데.”
기약 없는 약속만 남발하는 영국 대신 모헬은 그랑다르메의 힘이 전성기인 지금 그쪽 지역을 깔끔히 정리할 생각이었다.
“분쟁을 유도해놓고 분쟁하지 말라는 자네가 날 비꼴 처지는 아니야.”
“어차피 크게 관심도 없지 않습니까?”
인도처럼 경제적 이익 창출이 가능하지도. 아프리카처럼 잘 가꿔 써먹지도 못할 지역.
사실 식민지라 칭하기도 애매한 수준의 지배력을 가진 영국이기에 모헬은 대놓고 ‘우리 애들 보낸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얻는 건? 자네 말이 다 맞다 한들 쉽게 줄 순 없지. 몇 년 전에는 유전도 발견되었다고 하더군.”
“홍콩 조차지. 아, 여기가 익숙하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던-”
“난 중동인들이 종교적 다름을 인정하고 대화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네. 허나 이리 전쟁을 불사하니 내 믿음이 배신당한 기분이군. 역시 누군가는 그들을 이끌어 줘야만 해.”
순진한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제안을 물릴세라 손을 잡고 뒤흔드는 처칠.
중동 아랍인들은 몰랐지만, 그들을 두고 이뤄진 세기의 거래가 파리에서 성사되었다.
역사에 ‘제2의 루이지애나’라고 불릴 희대의 식민지 거래였다.
***
45년 3월, 날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자 나도 다시 움직일 때가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반년. 영역이 정해지며 새로운 체제들이 자리잡기 시작하고 전후 구도가 명확해진 지금, 난 파리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지난 14년이 넘는 임기 동안 한 번도 한 적 없는 동맹 순방 일정.
대부분의 국정 발표는 총리 선에서 마무리하고 외국은커녕 파리 시민들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일 년에 몇 번 없던 내가 적극적으로 국외활동을 한다니 참으로 많은 연락이 쏟아졌다.
[원수님, 드디어 진짜 마지막 최후의 전쟁입니까!]“…되었네. 프랑코, 자네 쪽은 나중에 한번 들리지.”
앞으로 웬만한 국가들은 한번 동맹 맺으면 최소 수십 년 유지될 텐데 이제라도 알뜰살뜰히 챙겨주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추가하실 방문국이 있으십니까?”
“말이 순방이지 결국 미국이야. 저번과 달리 공식 방문이고.”
“그리스, 인도, 중동 등 각하의 방문을 바라는 국가들이 꽤 있습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이대로 아시아 들렀다가 바로 미국으로.”
하나같이 플랑댕이 대화와 타협으로 알아서 해결하라고 놔뒀더니 점점 얼굴만 붉히는 지역들이잖아.
‘지금은 절대 가면 안 돼.’
첫 취임은 정신없이 전쟁만을 바라봤고, 재임 때는 전쟁통에 살았다. 그럼 마지막 임기 때는 적당히 유종의 미만 거두고 끝나면 되지 않을까.
내가 모든 것에 대비하고 모든 것을 준비하는 인간도 아니고 어떻게 전부 미리 처리하겠나. 역사의 흐름대로, 그때그때 맞춰서 살아가는 거지.
그렇게 선거와 내각 변화까지 확인하고 다시 돌아온 아시아. 순방 계획을 살짝 잘못 짰다는 걸 깨달은 것은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인도 전역에서 폭력 시위가 발발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연합국 소속 네덜란드를 인정하지 않겠답니다!”
“팔레스타인 내전이 발발했습니다!”
“파키스탄이 독립을 선포했습니다! 인도와의 전쟁입니다!”
“어어, 중동 전 지역이 이상합니다. 유대인 학살이 아랍인들의 손에서 재현될 가능성이 농후해 보입니다!”
“종교 제노사이드! 종교 제노사이드가 중동에 열렸다!”
어째서 문제는 꼭 한꺼번에 터지는지.
“…이 정도를 생각한 건 아닌데? 우리 인도차이나 쪽은 괜찮나?”
“예, 아주 협조적이고 평화롭습니다. 버마, 태국, 라오스, 베트남 등 전부 군사통치에 반발하지 않고 있습니다.”
“흐음, 원래 그런 곳이 아니었는데.”
그나마 다행이라면 우리 쪽 기반은 아직 불이 안 붙었다는 점 정도? 가장 우려하던 곳이 조용하니 약간 이상하다만 여하튼.
“결국 대화로는 해결이 어렵구나.”
이해하는 바이다. 우리도 독일과 대화가 안 통해서 전쟁을 했으니.
다만 무력이란 수단까지 동원하는 시간이 워낙 빨라 나조차 놀랐을 뿐이다.
국제 기구의 힘을 가져다 쓸까 했지만 아니다. 반공 관련된 일도 아니고 어쨌든 우리 프랑스의 방관 아래에 일어난 일. 우리가 집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맞는 것 같다.
본인들 스스로 대화로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없음을 증명한 셈.
“빅터, 가믈랭 연결해주게.”
“알겠습니다.”
전쟁 종료와 군축을 동시에 하려니 남아도는 무기가 지나치게 많을 것 같았는데 마침 잘됐다.
프랑스의 다음 전장은 중동으로 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