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288
#288화
그간 핵실험의 성과 보고는 틈틈이 들었으나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루스벨트는 2월, 뉴멕시코 알라모고도의 사막에서 이뤄진 실험에 모든 정신을 빼앗겨 버렸다.
‘이, 이 미친 인간들이 뭘 만든 거야!’
발전된 무기 하나가 전장의 판도를 얼마나 뒤바꾸는지는 두 번의 세계 대전이 충분히 증명했으나 이번 건 이전까지의 모든 무기, 그 개념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무려 160km 떨어진 곳의 사람까지 충격을 느끼게 만들 수 있는 무기.
실험의 여파로 뉴멕시코 전역이 떠들썩해졌지만, 정부는 앨러모고도 공군 기지의 탄약 창고가 폭발했다는 보도로 모든 의문을 무마했다.
민간은커녕 군에서도 실험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처음 루스벨트가 실험 결과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만약 이 무기가 전쟁이 끝나기 전에 완성되었을 경우였다.
‘모스크바? 이미 잿더미가 되었겠지.’
잽스와 붉은 군대가 전황이 불리해지면 언제나 가장 먼저 포기한 게 제공권이니 저 거대한 폭탄은 필시 그들 머리 위로 떨어졌으리라.
그다음은 현 프랑스의 손에 핵무기가 들어갔을 경우다.
“…드디어 전쟁을 끝냈는데, 또 할 수는 없다.”
그건 바로 반공 포위망이니 평화를 위한 국제 기구니 다 때려치우고 핵무기를 양산해 동토를 녹여버리는 모습이었다.
과연 그렇게까지 할까 싶기도 하나 39년도 들어 하루아침에 국가 방향성 자체를 ‘반공’으로 설정한 국가다.
당시 프랑스는 본인들의 손해까지 감수해가며 소련을 압박했다. 전시도 아니고 총탄 한 발 오가지 않는 평시였는데 말이다.
‘모헬, 그 미친 자라면 무조건 핵무기를 휘두른다. 젠장, 드디어 조금 안정을 찾아가나 싶었는데!’
차라리 중단할 것을. 어째서 이 빌어먹을 무기는 지금 완성되어 세계의 평화를 깨려 한단 말인가.
막무가내로 아예 프랑스 측에 무기를 제공하지 않을까 싶었으나 어림도 없는 소리.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프랑스인이 몇 명이고 지금까지 공유한 정보가 얼마나 많은데, 프랑스는 이미 자체 개발할 역량이 충분할 터.
결국 이도 저도 못 하고 세 번째 세계 대전의 공포를 루스벨트 홀로 감지하고 있을 때, 모헬의 순방이 시작되었다.
몇몇 나라들을 들렀으나 마지막 차례가 미국임을 미루어 보아 저 전쟁귀는 자신의 무기를 챙기러 오는 것이 분명했다.
이미 실험은 성공했다. 프랑스 손에 핵무기가 쥐어지는 걸 막을 순 없다.
즉, 저 텍사스만 한 나라에 또 한 번 홀로 전쟁할 힘이 생긴다.
혹시나 프랑스가 핵무기를 쥐고도 휘두르길 주저하는 상황? 저 중동에서 일어나는 개판과 중국 내부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만 봐도 알 수 있다.
프랑스가 외치는 평화는 자신의 적이 모두 죽었을 때뿐이라는 것을.
끝내 미국을 방문한 베르게르 모헬. 루스벨트는 아무리 프랑스가 전쟁을 잘해도 세계를 주물럭거리는 건 쉽지 않다는 점을 부각하며 말을 꺼내보았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코웃음.
“제가 또 한 번 전쟁할 인간으로 보이십니까?”
저번에는 어이없다는 듯이 물었다면 이번에는 생일선물을 기대하는 어린아이처럼 희망이 부푼 표정.
“…….”
그 속에서 진정한 광기를 발견한 루스벨트는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끝났다. 핵무기의 전쟁 억제력이니 상호확증파괴 같은 소리는 이 인간 앞에서 겁쟁이들의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테니.
이제 세계는 세 번째 대전쟁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핵무기의 공포에 살아가야 하리라.
***
‘뭐 시발. 뭐. 내가 약 처먹고 핵발사 명령이라도 마구 남발할까 봐?’
눈깔이 아주 그냥 음습하고 불순하기 그지없으나, 이 모헬. 저딴 저급한 불신에 수도 없이 시달려 봤기에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 믿는다.
“지금 이 방 안에서 우리 둘만 있으나, 우리 손에는 아주 많은 이들의 운명이 걸려 있습- 아니 잠깐. 왜 결연하게 눈을 감으십니까?”
감상에라도 취한 그의 태도를 가만히 두려 했는데 적당히 해야지. 마치 죽음을 앞둔 사형수처럼 행동하니까 괜히 내가 망나니처럼 보이잖아.
휠체어에 앉은 건지 전기 의자에 앉은 건지 구분하기 어려워질 즈음, 루스벨트는 자신의 본심을 토로했다.
“우리 미국은 소련과의 전쟁을 반대합니다. 지금 그럴 여력이 없을뿐더러, 핵으로 점령해서 얻을 것은 없습니다. 오직 폐허뿐.”
“…허.”
“만약 빨갱이들에게 벌주는 것이 목적이라면 신성한 전쟁을 추악한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행위입니다. 우린 제국주의에서 탈피해 영원한 평화를 외치지 않았습니까. 새로운 칼이 생겼다고 죄수에게 그것을 실험하지 않듯, 핵무기는 우리의 평화를 공고히 해주는 수단이 되어야지 절대 우리가 핵무기로 승리하는 수단이 되어선 안 됩니다.”
“와아….”
만약 내가 핵무기가 잽스들 정수리에 두 발이나 떨어진다는 걸 몰랐다면 루스벨트의 일장연설에 잠깐이나마 흔들렸을지도 모르나.
‘이거, 너희들이 유일하게 쓴다니까? 그것도 완성하자마자 바로 도시에다 바로 쐈다고!’
어디 감히 내 면전에 도덕과 신념을 들이밀어. 사람이 급하면 눈에 뵈는 거 없이 핵무기 발사 버튼 연타한다는 걸 보여준 게 너희인데.
하나 동의하는 게 있다면 루스벨트의 발언에서 돋보이는 핵무기의 정치적 가치다.
핵무기를 가졌으나, 사용하지 않음으로 우린 우월한 위치에 설 수 있는 정당한 명분을 손에 넣는다.
심지어 소련한테까지 안 쏘면 더 완벽해지는 명분이.
냉전이 단순히 미소 대립이 아닌 위축된 소련 vs 하나로 뭉친 서방 세계로 생각보다 일방적인 지금, 딱히 핵무기를 써서 소련을 없애야겠단 목표는 없다만….
“하나, 소련의 손에 핵무기가 들어갈 경우. 둘, 설령 소련이 아니어도 핵무기 개발에 성공해 연합국이 세운 구도를 망가트리려는 세력이 등장할 경우.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국과 프랑스가 갈라져 서로에게 핵무기를 겨눌 경우. 우리가 신경 써야 할 시나리오는 크게 셋입니다.”
“잠깐, 그럼 바로 모스크바에 쏘지 않는 겁니까?”
“제가 소련을 즉각 없애고 싶어 한다면 동의하실 겁니까? 저 소련을 진짜 없애려면 마지막 남은 민간인까지 죽여야 할 텐데?”
빨갱이란 그런 거다. 민간인인데도 자비를 베풀 수 없는 존재. 순진무구한 아이조차 싹이 노래 방심할 수 없게 만드는 국가 불치병 같은 거.
“난 확실히 끝낼 수 없다면 시작도 안 합니다.”
“…인도주의적인 이유가 아니었군요.”
“나라고 1억 슬라브 민족을 전부 죽일 순 없습니다. 되려 와해된 소련이 아시아와 유럽으로 퍼지게 되겠지요. 다시 돌아와서, 저 시나리오의 대응을 어떻게 하실 겁니까?”
연합국을 명백히 적대하는 소련의 손에 핵무기가 들어간다고 가정해보자.
소련은 분명 이를 활용해 다시 한번 동토에서 나오려고 발버둥 칠 거다.
“…기밀을 잘 유지하면 저들의 핵개발을 막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핵무기 존재를 숨기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고 개발이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소련은 잠재적 핵무기 보유 국가입니다.”
“원수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제가 볼 때 핵무기는 오직 그 자격을 입증한 미국, 프랑스, 영국만이 보유해야 한다고 봅니다.”
“세계 대전 승전국이군요. 만약 이를 어기려는 국가가 있다면요?”
“철저한 보복으로 본보기를 보여야지요? 경제적, 군사적, 외교적인 고립으로 제2의 동토로 만들어 버릴 겁니다. 핵무기를 얻은 대신, 모든 것을 잃을 수 있게.”
첫 번째와 두 번째 시나리오. 그러니까 주요 승전국이 아닌 국가에 핵무기가 들어갈 경우의 결과는 뻔하다.
그들은 자기파괴 위험에도 핵무기를 발판 삼아 우리에게 도전장을 내밀 것이다.
“사실 세 시나리오는 전부 한 가지를 의미합니다. 바로 미국과 프랑스가 손을 놓지 않는다면 위치는 무너질 수 없다는 것이지요.”
“핵으로 위협해서 자리를 지켜낸들 무슨 소용입니까?”
“쯧.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영원한 평화, 우리가 그걸 만들어낸 겁니다. 사람 사는 세상이니 약간의 마찰은 있겠지요, 분쟁도 분명 끊이질 않을 겁니다. 그러나, 저 잽스들처럼 미쳐서 우리에게 선전포고하는 나라는 없을 거란 소리입니다.”
설령 핵개발에 성공하고 도전장을 내민다? 그래봐야 미국은 거대 섬이고 프랑스는 사방이 동맹으로 둘러싸여 있다. 둘 다 핵 무기를 본토에 맞을 일은 없다는 말씀.
FDR마저 압도적인 힘 앞에 본인들도 똑같이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심을 느꼈을 터.
우리 또한 핵에 당할지 모른다는 그 공포심이.
극히 낮으나 0%는 아닌 그 가능성이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줄 것이다.
“우린 아주 역사적인 순간에 서 있습니다. 영원한 동맹이라니,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순간입니까.”
“…그렇습니까.”
그리 감동받지 않은 듯하나 괜찮다.
난 4선에 성공하신 FDR께서는 핵무기의 폭발력에 눈이 돌아가지 않고 그 이면에 숨겨진 정치적 산물에 집중할 수 있는 인간이라고 본다.
애증의 관계가 될지언정 이제 프랑스와 미국은 한 수갑으로 묶인 사이가 되었다.
핵분열이, 우릴 하나로 만들었다.
***
늦은 저녁까지 ‘우리 친해요!’를 보여줄 수 있는 상황을 몇 번 더 연출하고 모헬과 루스벨트는 각자 헤어져 오늘의 모든 대화를 되짚으며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
‘프랑스가 핵을 애초에 사용하지 않는다면? 진정 우리는 힘을 가졌음에도 사용하지 않은 국가로 거듭나는 건가?’
‘이제 우리의 영역은 절대로 변하지 않으리라.’
더는 서로의 구역을 탐할 수 없는 시대. 루스벨트는 이것이 진정 제국주의의 멸망을 뜻하나 싶었으나 오히려 반대의 발상도 가능했다.
‘이제는 핵을 가지지 못한 국가들의 머리 위로는 보이지 않는 천장이 생기겠군.’
역시 소련이 핵을 가지게 된다면 판 자체가 엎어질 가능성이 없진 않으나 모헬 원수는 아직까진 자신이 내려놓은 반공 포위망을 다시 주워들 생각은 없어 보인다.
‘어쩌면 간을 보는 것일 수도.’
과연 본인들이 어느 날 소련을 지도상에서 지우겠다고 다짐했을 때 미국이 어찌 반응할지 프랑스는 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공산주의를 없애는 것.
혹은 핵을 사용하지 않음으로 진정한 핵무기 보유의 자격을 지니는 것.
두 선택지 사이에서 과연 모헬 원수는 끝까지 후자를 유지해줄 것인가.
혹여나 후대에는 자신과 모헬 원수의 의지가 깨지지는 않을까.
제도, 전통, 자격. 어떤 관문을 이 핵무기 앞에 세워놔야 쉬이 자신들이 세운 미래가 어그러지지 않을까 루스벨트는 밤을 지새우며 고민했고.
‘어우, 시발 진짜 좆될 뻔했네.’
모헬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심하고 있었다.
혹여나 미국이 ‘아오, 네가 그리 원하면 소련 없앨까?’라는 식으로 나왔다면 모헬은 주저앉아서 울었을지도 모른다.
‘빨갱이가 전 세계로 퍼지는 문제는 둘째 치고, 프랑스 패권 무너지는 소리하고 있네.’
단기간에 성장한 만큼 쉽게 무너질지 모른다 생각한 모헬은 소련과 다시 전쟁할 마음 자체가 없었다.
어떻게든 반공 체제를 떠넘겼고 이제 겨우 숨통 좀 트이나 싶은데 핵 몇 발 써보겠다고 국력을 또 한 번 갈아넣을 자신이 없었다.
차라리 핵으로 패권을 공고히 하고 ‘와아, 무려 프랑스가 소련한테 핵을 안 써?’라는 인식을 세상에 콱 박아놓는 게 낫다.
“대신 국제 기구의 반공 포위망은 더 강해져야 하겠지.”
물론 거기 들어가는 재원과 군사력은 순수 프랑스가 내는 것이 아니니 모헬은 딱히 상관없었다.
사실 그에게 진짜 중요한 건.
‘이제 군비 없이도 패권 유지가 가능하다니. 이 얼마나 사기적인 물건이냐.’
유럽 대륙 유일 핵무기 보유국이 될 생각뿐이었다.
영국한테는…. 나아아중에 얻을 거 다 얻고 나면 줘도 늦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