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290
#290화
장장 일주일간 끊임없이 서로의 의지를 확인하고 문제들의 답을 도출해내고 나서야 난 파리로 돌아왔다.
전쟁 의지와 가능성.
평화와 양국 구도.
서로의 영역과 차후 경제 협력.
많은 부분에서 유의미하다는 표현으로 부족할 만큼 많은 대화가 오갔고, 세간의 집중이 된 만큼 우린 곧장 결과물 발표에 들어갔다.
“미국과 프랑스는 3년 내로 국제 기구의 군사력을 대폭 강화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이들의 존재목적은 오직 평화. 평화를 위해 전쟁 결정을 지을 권한이 있으며 우리 미군은 4만의 병력을 투입할 것입니다.”
“UN에게 독자적인 외교권을 부여하고 특정 국가를 전쟁 위협 국가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은 과거 국왕을 파문하던 교황 달리, 오직 국제 투표에 의해서만 결정될 것입니다.”
투자와 함께 이뤄진 막대한 책임 부여.
기존 국가 간의 외교 역사를 기반으로 국제 기구는 ‘국제법’이라는 법률까지 다룰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자유무역과 전쟁 위기를 공평하게 갈라내겠다는 의지였다.
당연히 식민지를 한껏 끌어안은 처칠은 이를 불편하게 여겼으나.
[너무 나간 거 아닌가? 국제 기구에게 국가적 권한을 넘어 안보 문제까지 떠넘기다니.]“그러니 더욱 국제 기구에 회원국들이 진심으로 변할 겁니다. 정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다면. 혹은 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이제 국제 기구에 호소해야 할 겁니다.”
[쯧, 새로운 권력 기관의 탄생이군. 심지어 내정간섭의 여지까지 아주 많이 남겨둔.]“저는 정당성 확보라고 하겠습니다.”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처럼 단기적 이득이 아닌 장기적 관점으로 전환한 영프는 기꺼이 자기 발에 가벼운 족쇄 하나쯤은 차줄 용의가 있었다.
조직 체계를 갖추기도 전에 국제 기구를 키우는 움직임에 세간이 떠들썩했지만 발표는 끊이지 않았다.
“이스라엘 건국에 관해 우리 미국은 참전하지 않겠습니다.”
“미국에 산다면 그는 미국인이고, 영국에 산다면 그는 영국인입니다.”
미국은 최소한의 인도주의적 지원과 국제 중재 같은 빈소리나 외쳤고 우린 ‘성경에 기록된 2천 년 전 약속된 땅 같은 거 프랑스는 모르는 일이다.’라고 못 박았다.
허나 앞서 발표된 국제 기구의 평화 보장만으로는 우리가 원하는 바에 도달하기엔 힘들었다.
“미국과 프랑스는 아시아의 관세를 통합하기로 약속합니다. 앞으로 일본에 세워진 기업이 조선에 공장을 짓고 중화민국에 수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자를 하향 조종하겠습니다. 저금리와 저유가 유지를 플랑댕 내각이 유지하겠습니다.”
전후 원자재 가격 하락과 국가적 재건축이 맞물려 건설업의 호황을 자극했고 이는 집으로 돌아온 장병들을 흡수하는 효과를 낳는다.
전시에 최고 금융 상품이던 채권 가격이 하락하고 그 빈자리를 사금융이 채우는 분위기.
대담이 끝나자마자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져나오는 정부 정책들의 기조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이거…. 20년대 시절이랑 똑같은데?’
‘호황! 정부가 광란의 시절을 재현하려 한다!’
‘몇 년간 억압되었던 소비가 드디어 터지는구나!’
수천억 달러의 채권이 도래하기 전 미국 정부는 한 번쯤 경제 호황이 필요하기도 했고 프랑스는 유럽 경제 통합을 위해서라도 프랑스 주도 아래에 경제 성장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시장 상황이 잘 들어맞았고.
각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했으며.
전후라는 시대 흐름도 순풍을 불어주는 상황.
승전국들의 정신 집체, 포스트모더니즘.
승전국들의 도덕심, 탈식민지화.
승전국들의 성향, 소비주의.
이 모든 것들은 세계 대전의 어두운 면을 천으로 덮어 보이지 않도록 해버렸으며 시민들의 눈에 더는 ‘반공’과 ‘식민지’란 단어가 지겹게 들어오지 않도록 했다.
평화의 시대에 호황이 도래한다.
“일자리를 원하신다고요? 고용센터에 가서 소개 받으세요!”
“완전고용! 완전생산! 물가안정!”
기술의 발전에도 배급 우표가 널리 쓰이는 시대. 이는 곧 정부가 시장보다 한발 먼저 가격을 통제할 수 있단 의미이기도 했다.
“유가는 17달러. 앞으로 17달러 선을 유지할 것입니다.”
“미 정부는 전시 기간 동안 떨어진 세금을 올리지 않겠습니다.”
“전체 성장을 위해 프랑스는 석탄철강공동체 설립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국가마다 극적으로 차이 나는 원자재 가격을 통일하겠습니다. 이를 위해서라면 관세 인하와 보조금을 지급할 용의도 있습니다.”
식량이나 광물자원같이 자원 수출국. 주로 저개발 국가들은 당연히 양팔 벌려 환영을 표했고 이미 개발된 국가들 또한 나쁠 게 없는 이야기.
[역시 자네야! 그 공동체에 우리 영국 또한-]“식민지에서 쓸어다 오는 거면 관세 내시고 보조금 따위 없습니다. 시장 가격으로 파세요.”
[아프리카는 식민지가 아니라고!]“예, 예.”
게임 체인저들을 쳐내며 철저히 두 강대국이 체제를 주도한다.
국제 환율 시스템.
국가 간의 영해 통항.
국가마다 국경에 배치한 군사력 축소.
“잽스들이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에서 5천만 배럴을 생산한 이력이 있는데…. 갑자기 생산량을 줄이다니 이거 참 제가 아는 모헬 원수님이라면 불편해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당신들이 정유 시설 전부 폭격기로 불태웠잖아! 그리고 우리보고 이젠 동인도 제도에서 나오라며!”
“저런, 그래도 5년의 유예기간이 주어졌으니 다시 생산량을 늘려봅시다.”
물론 그 과정이 전부 정의롭고 모두에게 공평한 것은 아니었지만.
“공산주의 확산 방지를 위한 경제 성장 계획, 플랑댕 플랜입니다.”
“미 국무부의 방향성은 앞으로 단 하나. 루스벨트 독트린입니다. 이 독트린 원칙하에, 미군은 군사원조와 군사고문단을 우방국에게 파견하겠습니다.”
반공방위지대(反共防衛地帶).
유일하게 살아있는 소련을 여전히 ‘악’으로 규정한 연합국은 이 모든 추진력을 소련 때문이라 말한다.
“최근 경제 정책을 너무 남발-”
“경제가 발전해야 공산주의가 확산하지 않거늘! 너 빨갱이지!”
“아시아 주둔군, 평화유지군, 점령지군, UN군, 여기에 군사원조와 고문단이라뇨? 프랑스도 군축하려는 마당에 미군의 군축은 도대체-”
“여기 소련의 확장을 지지하는 반민족주의자가 있다! 넌 애국심도 없냐!”
“아무리 그래도 독일 같은 나라를 다시 살리는 건 좀…. 그냥 재무부 장관의 모건소 플랜(Morgenthau Plan)대로 루르 동쪽은 적당히 쪼개서 전부 농업만 살려두는 게 맞지 않나요?”
“그 말, 자네가 직접 모헬 원수 앞에 가서 할 수 있나? 자네 혹시 제3차 세계대전 옹호론자인가?”
실제로 각종 지표가 소련의 국방비 지출 최소 3위라는 신호를 보낸다.
물론 최전선에서 싸웠던 이들은 다음 세계 대전의 가능성은 오직 연합국이 선공할 경우라는 것을 알았으나.
‘붉은 군대는 실전 경험이 없지. 왜냐고? 실전에 나온 애들이 다 죽었으니까!’
‘독일도 일본도 이젠 엄연히 연합국 소속인데? 전쟁? 감히 고것들이?’
어쨌든 소련은 중대한 위협이 맞았으며 나치와 잽스가 사라졌을 뿐, 여전히 서방 세계의 주적은 공산주의였다.
미국과 프랑스가 지금 하는 일에 의문이 든다면 그건 당신이 심보가 고약해 분탕 치고 싶은 것이지, 절대 국가가 잘못하고 있지 않다- 이 말이다.
여전히 세계 대전이 100% 끝나지 않았음을 저 소련이란 나라가 존재만으로 증명해주니까.
어느 때보다 강력한 추진력을 받은 두 국가의 경제 부흥 계획은 누구도 막을 수 없었고, 실제로 잘만 실행되었다.
‘이번 기회에 일본도 빠르게 재건하는 것이….’
‘막 독립한 국가들을 친프랑스로 키우기 딱 좋군.’
그 과정에 각자의 이득이 먼지처럼 곳곳에 달라붙었지만 큰 축은 틀어지지 않았다.
대호황의 시대.
다만 20년대와 차이점이라면 이번에는 진짜 끝을 알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소련은.
“더, 더 많은 전차! 지금 프랑스는 전차만 3만 대를 넘게 상시 운용하고 있다고!”
“우린 최소 5만. 아니 10만 대의 기갑이 필요하다!”
세계 군사력 1위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딱 미국과 프랑스가 원하는 대로였다.
***
45년도에 시동 건 호황이 정상궤도에 오른 46년.
슬슬 사람들이 세계 대전에서 벗어나 일상에 푹 빠져 있다고 하면 거짓이겠으나, 내 눈에는 어느 정도 상처가 회복된 것처럼 보인다.
“…폴란드가 올해 국방비 4위로 예상된다고?”
“그렇습니다. 약 미화 4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체코슬로바키아가 한 4억 달러쯤 되지 않던가? 10배나 되는군.”
“국방에 대한 폴란드의 집착은 아시지 않습니까.”
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은 군비를 줄이고 달리는 세계 경제에 올라타고 있다고 본다.
한때 세계 1위를 달리던 프랑스 국방비가 3위로 떨어지고 그 자리를 소련에게 내주며 시작한 새해.
‘드디어 군사국가에서 탈출이군.’
이제야 우리 프랑스는 정상 국가의 궤도에 올랐다.
세 번째 임기 2년 차.
처칠이 임기를 마치고 일개 하원의원으로 돌아가고, 함께 세계 구도를 그리던 루스벨트가 건강상의 이유로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여전히 나의 시대는 한창이었으나, 또 한 번의 전쟁이 끝남에 따라 옆에 서 있던 인간들이 역사 뒤로 사라진다.
31년에 오를레앙 당을 세우며 군부가 합법적으로 정치를 시작했을 때 함께하던 초기 인사들.
그중 남은 자는 나와 동년배인 샤를 드골 정도였다.
“오를레앙 당을 쪼갠다고? 언제? 왜 하필 내가 당수로 있는 지금? 내 전쟁부 장관 짓도 잘하지 않았나. 딱 나 총리까지만 하고 당 해체-”
“시끄러.”
시대 변화를 인지한 자들이 자의든 타의든 하나둘씩 떠나고, 다시 내게 과제가 남겨졌다.
그리고 꼭 이런 변화는 한 번에 찾아오더라고.
[페탱, 원수직 사임]“제가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분명 법적으로도 ‘종신 원수’라는 문구가 콱 박혀있는 분이 되도 않는 사임쇼를 펼쳤다. 그것도 기자들 다 불러서.
“모헬.”
“분명 군축까지는 다 하시겠다고 직접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틀만 짠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마무리까지 지켜보셔야지요. 딱 5년. 5년만 더 해주십쇼. 아니다, 그냥 저 임기 끝날 때까지만 하는 걸로 하지요. 역시 그게 좋겠습니다.”
“베르게르.”
“어차피 보낼 보직도 없습니다. 한번 손에 피 묻혔으면 중간에 씻지 마시라고요. 설마 외제니 여사님 때문입니까? 아니면 저번에 말한 양아들, 이름이 피에르 에렝이었나. 그 친구가 또 문제입니까? 또 말썽이에요?”
“내 인지력이 예전 같지 않네.”
“…….”
절대 안 된다고. 그러니 돌아가라고 무한 반복하려던 난 순간 숨이 막혀 말을 잇지 못했다.
별거 아니라는 듯이 웃는 그에게 나 또한 신경 안 쓰는 척 말했다.
“주치의 붙여드리겠습니다. 적당히 건강 챙기시면서 일하시면 되겠네.”
이제 다른 핑계는 안 먹힌다. 인지력이야 나이가 좀 드셨으니 글자 읽는 속도가 느리고 몸이 굼뜨겠지. 당연한 거다. 원래 노화란 그런 거니까. 사람이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늙어가는 거니까.
“더 필요하신 거 있습니까?”
“내가 말이야, 나이 마흔을 넘어 겨우 소령을 달았어. 만년 대위로 10년을 넘게 살았지.”
“또 뭔 소리래. 이미 지겹게 들었으니까 안 궁금합니다. 가서 일이나 하시죠.”
이런 대화, 너무 익숙하다. 윗세대 인간들 특유의 과거 회상. 이들이 인생을 돌아보듯 내게 꺼내는 구구절절한 이야기의 끝은 언제나 완전한 종점이었기에, 난 진심으로 듣고 싶지 않았다.
“근데 또 북부에서만 군생활해서 그런지 중령에서 바로 막히더군. 어찌저찌 대령을 달았는데, 역시 거기까지였다네. 그래서 은퇴하고 시골 별장도 구매하고-”
“다 압니다. 별장 구매했다가 전쟁 터져서 손실 크게 보셨고 이제 연금 더 받으려면 조프르 쫓아내야겠다고 다짐하셨잖아요. 그만 말하세요. 지겹습니다.”
“흐흐, 그랬지. 뒤돌아보면 참 기구해. 만년 대위가, 이젠 대육군을 지휘하는 종신 원수라니.”
끝났다. 이제 저 다 내려놓은 듯한 태도는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고 있다는 신호다.
반세기 전, 보불 전쟁 때부터 프랑스를 지켜온 군인. 페탱 원수님은 이제 자신의 역할이 끝났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너무 그러지 말게. 나도 나름 다 생각하고 벌인 짓이야. 앞으로 난 대육군에 힘을 거들진 못하겠더군. 내 판단이 발목을 잡고 내 의견이 부담이 되는 순간이 온 게지.”
“그럴 리가 있습니까. 불과 얼마 전까지 전역을 지휘하던 분께서 무슨 농담을.”
루이 나폴레옹 제정의 시대에 태어나 프랑스의 역사를 모두 몸으로 겪은 노인의 담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몰고 온다.
“정 그러시면 좀 쉬십시오. 종종 얼굴을 비추시고요. 이 나라에 셋밖에 없는 원수님이 치매라니. 내가 다 쪽팔려서.”
“으음, 내 누누이 말하지 않았나. 내가 완전히 돌아오면 쿠데타로 자넨 끝난 거라고.”
애써 분위기가 진지해지지 않도록 우린 일정 선을 그어놓고 전혀 다른 대화를 이어갔다.
“말 안 듣는 양아들 놈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군인을 시킬까 했는데, 아니야. 자기 꿈은 영화감독이라고 지금 열심히 투자사 찾고 있다네. 이 페탱의 아들이란 사실도 아무도 모르지.”
“성이 에렝이니까 본인이 말하지 않으면 모르겠지요. 역시 자식은 마음대로 안 되나 봅니다.”
아들 이야기.
“진짜 원수 연금 만들까요? 오직 원수 계급을 위한 군연금 말입니다. 좀 많이 받아도 국민들은 오히려 박수를 쳐줄 텐데요.”
“쯧, 이제와서? 만들 거면 진작 좀 만들든가. 나랑 베이강은 얼마 받지도 못하는 거 만들어 뭐하나. 왜, 요즘 돈 떨어졌나?”
“허허, 우리 원수님이 모헬 가문을 잘 모르시네.”
잡다한 이야기.
“원수직에 종신이란 문구를 만든 놈은 진짜 무슨 생각이었을까요? 일에 미친 놈 아닐까요?”
“그땐 육십 넘어서까지 사는 인간이 적었으니 그랬겠지.”
쓸데없는 불평불만까지.
그런 대화 속에서도 난 끊임없이 노인의 혹여나 숨겨져 있을 내심을 파악하려 노력했고, 페탱 원수님은 끝까지 여유로웠다.
그날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상관의 사임을 수리하고.
또 한 차례 일에 치여 계절의 변화마저 신경 쓰지 못하던 어느 날.
“원수께서 오늘 아침, 타계하셨습니다.”
시린 겨울이 찾아오고, 필리프 페탱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