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293
#293화
새로운 시대를 창조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핵무기, 과연 이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단순히 수십 킬로톤의 폭발을 일으키는 최종결전용 폭탄?
단 한 발로 전황을 바꿀 수 있는 전쟁의 조커 패?
모두가 그 위력에 입을 벌릴 때 화학 공식도 잘 모르는 모헬은 이 폭탄의 가치를 비단 그 위력에서만 보려고 하지 않았다.
“이젠 전술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고! 그냥 핵 한 방이면 다 끝이잖아? 재래식 무기의 종말! 대핵전쟁의 개막!”
미국과 프랑스 패권의 완성이자 유일한 약점이 될 수 있는 무기.
그리고.
“우리 각하께서는 핵무기를 그랑다르메 원수 대체제로 생각하시는 모양이야.”
샤를 드골의 말마따나, 본인이 만든 체제 탈출용 선전 무기. 모헬이 핵 무기를 대하는 자세를 아랫사람들은 정확히 파악했다.
“고작 폭탄 쪼가리가? 체제와 패권과 전쟁을 설계하는 위대한 원수를 대체한다고?”
“웃기는 소리 말라고 하십쇼. 그러다가 안 터지면, 뭐 우리 프랑스도 망하는 건가?”
당연히 이 위대한 과학의 산물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것은 말도 안 되는 핑계에 불과했다.
포슈가 갔고, 페탱도 갔는데, 모헬마저 간다면? 과연 오를레앙 체제를 누가 이어가고 누가 보수 공사한단 말인가?
“분쟁이 일어날 때마다 핵무기를 들이밀어서 해결하라고? 설령 저딴 몇 톤짜리 폭탄이 그리 위력적이어도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우리 프랑스를 전쟁국가로 만들 셈이야?”
“흐음, 근데 모헬 원수님이 나서도 결과는-”
“시끄러!
핵무기가 존재만으로 전쟁 억제력을 가진다고? 그래서 저 폭탄 네 발이 과연 베르게르 모헬이란 인간보다 더 큰 억제력을 보여줄 수 있단 말인가?
수차례의 분쟁과 두 번의 세계 대전을 두 손으로 끝장낸 인간보다?
심지어 이 인간은 외교, 경제, 패권까지 두루두루 써먹을 수 있다. 오직 ‘전쟁’ 한정으로만 효과를 보이는 폭탄 따위는 대체할 수 없단 말씀.
“내 비록 후계자는 잘 키우지 못했지만, 핵무기는 만들어두고 떠납니다. 원수님들도 나중에 나 만나서 뭐라고 하지 마십쇼.”
오늘도 앵발라드를 찾아 떠날 준비를 점검하는 모헬이었으나.
“빅터, 가져왔나.”
“…제가 줬다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쯧, 자네도 내 말에 동의하지 않았나. 이제와서 내빼지 말게.”
몰래 모헬의 최측근, 빅터에게 노란 봉투를 받아든 샤를은 얼른 꺼내 제목을 훑었다.
“체제 전환과 헌법 개정안이라…. 뻔하구먼. 떠날 생각이 한가득한 게 아주 비겁하기 짝이 없어.”
“다시 말씀드리지만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
“자넨 계속 각하의 동향을 파악해서 알려만 주게. 무슨 준비를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누굴 만나고 어떤 혼잣말을 했는지 까지도.”
“하아, 이거 걸리면 우리 못 살아남습니다.”
“오히려 걸리면 우린 숙청 당해도 모헬은 떠나지 못하겠지.”
설령 모헬이 분노해 주동자들을 쳐내려 한다 해도 그 빈자리는 본인이 채워야 할 거다.
‘베르게르, 네놈이 먼저 우리를 버리려 한 거다. 그러니 날 탓하진 말게.’
체제 위에 우뚝 선 인간은 내려올 수 있어도 체제를 두 손으로 번쩍 들고 있는 인간은 힘들다고 내려놓을 수 없다.
건물 지붕은 갈아 끼울 수 있어도 그 건물이 지어진 반석은 바꿀 수 없단 말이다.
그러니 이건 반항이 아닌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저항.
그러니까, 애국이다.
샤를 드골은 본인이 애국자란 생각에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
은퇴를 발표한 모헬이 저지른 첫 실수, 그건 모든 인간이 욕망에 의해 움직인다는 착각이었다.
“드골 의원님, 근데 차기 대통령을 제시했다면 덥석 받아도 될 터인데… 그게 왜 독이 든 성배입니까?”
“국장, 나보고 앞으로 터질 모든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당해 저 바닥으로 추락하라고? 내 정치 짬밥만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 그것 하나 눈치 못 챌까.”
모헬은 본인이 적당한 인간에게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권력을 넘긴다고 생각했지만, 넘겨받는 입장에서는 절대 아니다.
‘굳이 1인자가 될 필요가 있나? 어차피 엘리제 궁에 들어가도 베르게르 모헬이 죽지 않는 한 프랑스의 대통령조차 2인자다.’
그렇다면 차라리 플랑댕 이후 총리직을 노리는 게 현실적으로 옳다.
비단 드골뿐만 아니라 오를레앙 당 의원들 대부분은 비슷한 생각을 했다.
‘아무리 당이 쪼개진다 한들 과연 모헬 각하라는 전통성이 사라지는 것만큼 타격이 클까?’
‘우리 우파는 각하를 지지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좌석을 유지하고 있는데 각하가 사라진다니?’
‘과연 모헬의 암묵적 방관이 사라지면…. 또 한 번 애국주의 물결과 함께 좌파 숙청이 시작된다!’
이미 너무 오랜 시절 현 체제에 익숙해진 정치계는 굳이 모험에 가까운 새로운 체제로 변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건 인간의 본성이자 어찌 되었든 권력층인 이들의 기초적인 심리였다.
“어째서 파리에서 걷은 세금이 베를린에 다 쓰이고 있단 말입니까! 제가 한번 나서서 프랑스의 국가 기반 산업을 바꿔 보겠습니다! 오직 산업 개혁의 길만이 이 나라의 미래입니다!”
물론 의례 어느 정치인이 그렇듯 입으로는 개혁을 외치긴 하지만….
“엥? 당신 설마 모헬 원수 각하의 아드님이 일하는 재건위원회를 지금 비판-”
“즉, 우리 프랑스에도 재건위원회가 필요합니다!”
“아하.”
그래봤자 레볼루숑의 나라에서는 ‘바뀌었다’라고 표현하기도 민망한 수준의 개혁뿐.
“내 퇴임 시기와 군정 통치의 종료도 맞아떨어지는군. 가기 전에 파비앵을 육군 대장으로 올리고, 베이강 원수님께 죄송하지만 핵무기 실전 배치도 맡겨야겠네. 다를랑 총장 임기도 연장하고 가면 완벽해!”
모헬은 최대한 본인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도록 이곳저곳에 자신의 흔적을 지우며 새로운 인사 후보들을 끌어올리는 데 여념이 없었으나.
“…다시 말해보시오.”
“제대로 들으셨습니다. 원수직을 포기해 주시길 바랍니다.”
“지금 이 모리스 가믈랭에게, 그랑다르메 원수를 포기하라, 이 말인가.”
“한때 군에 몸을 담았던 저로서도 가믈랭 대장님의 위명은 잘 알고 있습니다. 아마 차기 원수직을 뽑는다면 유일한 후보이시겠지요. 그러나 감히 말씀드립니다. 대장으로 전역해주십시오.”
“…왜.”
“이 나라의 원수직은 지금보다 더 높아질 예정이니까.”
한 박자 빠른 손길은 어느새 군까지 뻗어버렸다.
***
비록 한 점 부끄럽지 않은 군생활을 했냐고 묻는다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일 순 없겠으나 이 자리까지 올라오며 굳어진 가믈랭의 여러 사고들은 어느새 신념이라고 부를만한 수준이 되었다.
그리고 눈앞의 입법 기관 최고권력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만큼 가믈랭은 멍청하지 않았다.
“지금 스스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고 있나. 원수직을 여기서 더 높이 올린다? 당신은 이 나라의 최고권력을 헌법에 적힌 민주적 방식이 아닌 군문에서 찾고 있단 말이다.”
“정확합니다. 이미 7성 장군으로 페탱 원수께서 추서되었으나 그건 현실 계급으로 반영하긴 어렵지요. 그러나, 이미 명예와 권력. 그 이름만으로 군인의 한계를 뛰어넘는 원수라는 계급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난 이번 기회에 아예 원수직을 단 하나로 줄일 것입니다.”
“…베이강 원수께서 은퇴하시고 나면 대통령께서 유일무이한 원수가 된다 이 말인가.”
살아있는 모헬을 대원수로 만들지 못한다면 원수직을 줄이면 그만 아닌가? 드골의 논리는 아주 간단명료했으나 한평생을 이 자리를 위해 달려온 가믈랭은 쉬이 납득할 수 없었다.
“당신들이 뒤에서 무슨 일을 꾸미는지 모르겠으나 우리 군은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일이네. 의견을 묻지도, 어쭙잖은 제안을 하지도 말게. 아니, 그냥 그 더러운 손길로 접촉하지도 말게.”
영혼 없는 군대답게 가믈랭은 오랜 원리원칙을 고수했으나 드골은 되려 비웃었다.
“그냥 당신의 오랜 욕망 아닙니까? 저 위대한 원수들과 같은 선상에 오르고 싶은, 아주 추악한 욕심.”
“…말 조심하지.”
“내 친우 모헬은 비리투성이었던 인간을 감옥에서 구해 권력의 희생양으로 잘 포장해줬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맞을 줄이야. 아주 배신감이 크겠어.”
육군 대장을 앞에 두고도 오를레앙 당수직에 오른 샤를 드골의 입은 멈출 기세가 아니었다.
“과연 페르디낭 포슈 원수님과 대원수 페탱, 개혁가 베이강 총사령관만큼 당신이 뛰어난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답이 나올 텐데. 근데도 감히 모헬과 같은 선상에 서겠다고? 모리스 귀스타브 가믈랭, 당신이?”
“내 능력이 떨어질지언정 군인으로의 삶은 이 나라 원수직에 오를 만큼 했다 자부한다. 일개 대위였던 당신 따위가 평가할 게 아니야!”
“그렇다면 과연 우리 국민들은? 이 나라 국민들은 당신을 어떻게 볼까?”
가믈랭이 발끈해도 뱀처럼 교묘한 드골의 혀는 멈출 줄 몰랐다.
“이 나라의 국민들은 과연 당신이 우뚝 올라서는 것을 용납할까?”
이미 원수직에 오른 인간들은 일개 군인이 아닌, 국부에 가까운 사람들로 취급되고 있는데.
과연 가믈랭이란 이름을 자신들의 머리 위에 얹는 것을 프랑스 국민들은 좋아할까.
“당신도 소문을 들어 알겠지만, 내 친우는 내게 차기 대통령직을 제안하더군. 아마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들이 모헬과 따로 만나 비슷한 제안을 받았겠지. 우리들의 생각은 아주 간단해. 육군 대장, 4성 장군인 당신은 원수가 될 자격이 없다. 총사령관까지는 용납할 수 있지.”
“…….”
누가 내각이 문민통제를 못 한다고 하던가. 군부 출신이 도처에 산재해 있기에, 그리고 대육군이 자체적인 판단 아래에 힘을 휘두르는 법을 잊었다는 것을 알기에 드골은 전혀 군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서로 뱉을 말을 다 뱉고 나서도 의견 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지만, 드골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수는 갈리에니 파리 총독처럼 사후 추서로 받으시오. 그러나 살아서는 감히 꿈도 꾸지 마시오. 당신 정도로는 어림도 없으니까.”
드골의 뒤에는 총리와 장관들, 여당과 야당 의원들, 군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살아남을 장성들과 이 나라의 국민이 있다.
적어도 드골이 모헬을 위한다면 그의 뒷배는 일개 대장 따위는 찍어누를 힘이 있었다.
전후 자신의 원수 임명만을 기대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던 가믈랭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으나.
“…젠장.”
그는 떠나는 드골을 붙잡아 더 따지지도 못했다.
***
핵무기가 원자 단위로 지역을 쪼개버린다면 오를레앙 당은 코뮌 단위로 찢어질 위기에 처해있지만 아직은 그 쓸모가 남아 있었다.
“내가 개혁의 씨앗들을 미리 심어놔야지. 비정상적인 것들도 좀 바꾸고.”
득표 91.9%의 민주 파워를 휘두를 때가 다가왔으니 바로 법을 바꿀 때다.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압도적 여당의 힘은 참으로 대단해서 설령 말도 안 되는 법안도 대통령이 거부만 안 하면 통과되는 기적을 발휘할 수 있다.
그리고 오를레앙 당은… 음, 내가 주도하는 일에 반대한 이력이 없다.
사실상 분산 권력 체제의 파괴. 독재자가 날뛰기 최고의 환경이지만 어쩌겠나, 이게 이 나라 민주주의의 한계인걸.
대신 내 빈자리를 특정 한 인간이나 집단이 아닌, 다양한 색들이 채울 수 있도록 여러 법안을 준비했다.
이걸 오를레앙 당보고 통과시키란 말은 자신들의 입지를 스스로 좁히란 의미이나 어차피 이변 없이 통과될 것이 뻔한-
“찬성 31%, 반대 34%, 기권 35%로 본회의에서는 모든 국가 선거 후보 자격 중 하나였던 군복무를 유지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음?”
고질적인 프랑스 선거의 병폐 중 하나였던 선거 후보의 자격 중 하나인 군복무를 군부 영향력과 여성참정 문제 때문에 없애려 했는데 기각되었다니?
“…이게 무슨 개 같은 소리야. 내가 올린 안건인데 지금 불통이라고?”
누가 반대했고 누가 찬성했는지 따질 것도 없다.
내가 키운 개한테 세게 물려서 아프기보단 어이없다는 느낌.
“불통이라고? 기권표도 사실상 반대잖아. 그럼 야당 빼고 오를레앙 당 대부분이 반대했네?”
혹시 내가 올린 안건인 걸 모르는건가? 근데 그럴 수가 없는데. 내가 분명 군대 안 가는 여성 또한 후보로 나올 수 있도록 군복무 자격을 없앤다고 직접 말까지 했는데. 이거 참 이상하네.
“…자아를 키워줬더니 이것들이 단체로 반항을 하네.”
독재국가 프랑스에, 반역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