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300
#300화. 원수의 노후는 그리 평안하지 않다(2)
전간기 이후로 생겨난 수많은 독재. 변화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지금의 강대국들은 여전히 한목소리를 외칠 수 없었다.
여전히 제국주의 놀이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영국은 아예 입을 꾹 닫고 눈과 귀를 막았다.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족장도 투표할 게 아니라면 영국은 본인들 인성논란이 터지기 전에 먼저 입을 열기 거부했다.
그럼 내부 혁명을 제외하고 이 독재 시스템을 외부에서 깨부셔줄 나라는 딱 두 곳.
프랑스와 미국뿐인데….
“이 버러지들! 너희 민주당 새끼들은 지금까지 뭐 한 거야! 전쟁 끝나자마자 밀어붙였어야지! 이제 와서 자기네 대가리를 다시 뽑으라 하면 하겠냐고!”
“그때는 여유도 없고 프랑스가 꺼낸 반공 문제와 핵무기의 등장으로 정신이 없었던 때라….”
“그럼 아예 다시 꺼내질 말든가! 4백만 미군은 다 집으로 돌아가서 4분의 1토막 났는데 다시 패권놀이 해보자고? 지금 장난하나?”
53년, 오랜 민주당의 집권이 끝나고 다시 공화당의 시대가 도래했다.
천하의 FDR도 트루먼의 재선까진 예상했을지 모르나 그도 전혀 몰랐던 일이 있었으니.
미국 34대 공화당 출신 대통령.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핵무기가 매해 늘어나고 프랑스는 이제 하루아침에 모스크바를 포함한 소련 도시 수십 개를 지워버릴 힘이 생긴 현시대에 미국 또한 ‘군부 출신 정권’의 마수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은 운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렇다. 최초 민주주의 국가 프랑스마저 독재로 타락해버리자 자칭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미국조차 그 ‘강력한 지도자’에 매료되어 버렸다.
맥아더가 뽑힌 과정이 어떻든 간에, 그는 임기 시작과 동시에 너무나 거대한 민주당의 유산을 떠안게 되었다.
“씨발…. 이제 와서 독재를 다 밀어내자고? 덜레스 국무장관, 자넨 이게 가능하다고 보는가?”
“대통령님! 이럴 때일수록 더 강경한 정책! 더 강력한 주장을 밀고 나가셔야 합니다! 먼저 유럽과 그 근처의 독재자들부터 건드리십시오! 그리하면 결국 그 기운이 아시아까지 퍼져 종국에는 중화민국 총통마저 독재를 포기하게 될-”
“나가.”
“예?”
“그냥 꺼지라고!”
공화당에 몇 없는 골수 친프랑스라 국무장관에 앉혀놨더니 덜레스는 주야장천 강경책, 과격 외교, 전쟁 직전까지 적을 몰아붙여 항복하게 만드는 전술이 필요하다고 매일같이 떠든다.
“국무장관이란 놈이 프랑스를 알기는 개뿔. 좆도 모르는 소리나 하고 있어.”
뭐, 롤백 정책(Roll Back)? 소련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을 방치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공세해 전쟁 불사를 외쳐야 한다고?
“그러다가 모헬이 복귀하면? 진짜 그놈이 미국에 호응해 다시 병력을 집결시킨다면?”
그 집결된 병력 다수가 프랑스 동맹 어느 독재자의 군대인 것은 둘째치고, 진짜 세계 3차 대전 열리는 소리하고 있다.
독재는 분명 문제가 된다.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독재를 방치한 미국은 차후 독재를 반대하는 세력과 마찰을 빚게 될 것이다.
그래서 최악 중의 최악, 그러니까 현시점에 살아있는 독재자가 미국을 반대하는 경우만 제외하면 미국은 반쯤 독재자들을 방관해 왔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이전까지 독재는 더 큰 문제 앞에서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전후 처리도 얼추 마무리된 지금.
“하필 천년만년 해처먹을 줄 알았던 모헬이 은퇴를 해버렸지.”
독재자들의 독재자. 자국내 민주화 운동으로는 절대 이룩할 수 없는 것을 ‘음, 전쟁 시즌이 돌아왔군.’이라고 한번 마음먹는 것만으로 단숨에 어떤 독재자도 힘으로 끌어내릴 수 있는 유일한 놈이 사라졌다.
어쩌면 지금 이 타이밍에 독재자도, 민주화 세력도 누구 하나 양보 없이 날뛰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
모헬은 독재자들을 다수 생산한 만큼 제제와 억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모든 의도가 프랑스의 이익 때문일지언정, 그의 존재는 아주 많은 왕정, 독재 세력을 존재만으로 눈치 보게 만들었단 말이다.
“더러운 자식. 뻔히 사방에 산더미처럼 쌓인 문제가 보이는데 그걸 다 무시하고 도망쳐?”
그것도 꼴랑 내세운 후임이 샤를 드골? 그놈은 과거 원수들과도 대적은커녕 눈도 못 마주치던 피라미다.
세계 대전 승전에 그리 큰 지분도 없고, 마냥 순수 군부라고도 보기 어려운 놈을 앉혀놓고 도망친 거다.
본래 FDR과 모헬이 세계에 새로운 원칙과 규율을 소개할 때 함께 손을 잡고 움직였다.
그러나 프랑스가 아무런 행동을 보일 기미가 없는 지금, 역설적으로 이는 맥아더마저 함부로 경거망동할 수 없게 만드는 요소였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하나.
“우린 프랑스로 향한다.”
한시가 급했던 맥아더는 곧장 프랑스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최근 해외 국빈들이 그렇듯 맥아더 또한 적당히 파리에서 며칠을 보내고 오를레앙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먼저 온 손님이 있었으니.
“원수 각하! 어서 대원수에 오르셔야 합니다! 이대로 가만히 계시다간 버러지들이 더 날뛸 것입니다!”
“아오, 좀 그만하게. 내가 뭐 별 하나 더 모아 7성이 되면 누가 소원이라도 들어주겠다던가?”
“그렇습니다! 제가 함께하겠습니다! 어서 대업을 이루소서!”
“야야, 옷 늘어나잖아!”
“…….”
스페인의 카우디요, 절대 무너질 수 없는 독재의 성벽을 건설한 프랑코가 있었다.
모헬의 옷자락을 늘어질 정도로 잡고 애원하며 말이다.
***
프란시스코 프랑코. 맥아더가 알기로 그는 젊을 적 페탱의 아래에서 수학한 적이 있고 이후 20년대 북아프리카에서 모헬과 함께 전장에 서 왔다.
같은 스승. 같은 전장. 같은 독재. 애초에 프랑코의 철권통치를 처음 만들어준 게 모헬이었으니 두 사람이 친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만큼 ‘어서 독재 체제를 없앨 방법을 내놔라!’하고 소리치려 온 맥아에게는 그리 좋지 않은 일이었다.
‘벌써 일주일째 오를레앙에 있었다고? 미친 거 아닌가?’
독재자라면 보통 본국을 비우기 매우 두려워하는데 이렇게 죽치고 앉아 있다니.
“저 친구 너무 민폐 아닌가?”
“민폐지. 근데 어쩌겠나. 내가 타국 수반한테 이래라저래라 할 순 없으니.”
정작 모헬은 태연한 게 역시 독재자에 대한 반감이 전혀 없는 인간 다웠다.
“내가 왜 왔는지는 알지?”
“처칠 없이 자넬 보려니까 어색하군. 아직 의원활동 열심히 하던데 불러야 하나.”
“이젠 나를 처칠로 막겠다? 그러기엔 난 너무 거물이라네.”
편안한 바지에 셔츠 하나만 걸친 모헬의 모습에 맥아더는 어색함을 느꼈다.
정확히 그의 차림새보다는, 바로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태도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맥아더는 독재 문제보다 다른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정말 역사 뒤로 사라질 생각인가? 이제 겨우 내가 대통령이 되었네. 드디어 자네와 합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고.”
“내 시대는 끝났어.”
“그럴 리가. 자네 시대를 끝낼 수 있는 인간은 오직 자네뿐이야. 아니? 어쩌면 자네도 마음대로 끝낼 수 없지. 그 증거가 샤를 드골 아닌가. 자네는 아니지만, 얼추 비슷하게 자네를 흉내 낼 수 있는 인간.”
“…그럴지도 모르지.”
10초에 한 번씩 홀짝이는 게 꼭 섬나라 놈들 따라 하는 것 같아 맥아더는 내심 불편했지만 참고 대화를 이어갔다.
“당장 이번 문제만 봐도 그래. 자네가 있었다면 애초에 터질 문제도 아니었잖아. 저 아시아의 독재 문제? 알게 뭔가. 그래봤자 국내에서나 날뛰지, 국제 사회에서는 민주 국가랑 똑같이 행동해야 할 터인데.”
“나 21년이나 했어. 그 정도면 됐지.”
“알지, 고생했지! 자네만큼 고생한 사람이 어딨나? 근데 그게 왜 하필 지금이냐 이 말이야. 모헬이란 이름이 가장 많이 들려야 하는 지금, 왜 난 듣도 보도 못한 이름 ‘드골’이 귀에 들리냐고.”
“그렇지, 매번 내가 필요하겠지. 아주 그냥 내가 죽기 전날에도 며칠 더 일하다가 죽으라고 하겠지.”
“그 말이 아니지 않은가!”
언제나 뒷짐 지고 모두를 깔보듯 비웃어야 할 놈이 왜 하루아침에 지팡이든 노인 행세를 한단 말인가.
답답함에 가슴을 치며 맥아더는 언성을 높으나, 모헬은 여전히 초연했다.
“그 세 번의 임기 동안 하루도 위기가 아닌 날이 없었고 단 하루도 내가 필요하지 않은 날이 없었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나?”
“무슨 말인데.”
“그거 정치인들이 가지는 특유의 정신병이라고. 직업병이라니까? 꼭 군대 선배 중에 자기 퇴임하면 군대 망한다는 놈들 있지? 딱 그거야. 현실은 사람 하나 없어도 잘만 돌아가는데 말이지.”
“…….”
틀렸다. 이 새끼는 이제 홀로 비웃는 단계를 넘어 망하는 꼴을 구경하고 싶은 게 틀림 없다. 그게 아니고서는, 저리 무책임한 발언이 모헬의 입에서 나올 리가 없다.
점점 답답함이 분노로 승화된 맥아더는 기어코 소리까지 질렀다.
“에휴, 역시 인간은 다 자기가 특별한 줄-”
“그걸 너 새끼가 말하면 되겠냐!”
“…왜 화를 내.”
“야 이 자식아! 네놈이 쓸어버린 나라가 몇이고 키운 독재자가 몇인데 그딴 소리를 해! 적어도 네 입으로 외치던 평화는 완수하고 떠나라고!”
“우리 프랑스는 평화로운데?”
“프랑스만 평화로우면 전 세계가 평화로운 줄 아나? 최소한 민주주의 보급은 하고 끝냈어야지!”
정말 자신의 친우는 일말의 사명감도 못 느낀단 말인가? 저놈의 선구안이라면 더 정확히 미래를 알 텐데도 저리 떠난단 말인가!
“…옆방에 프랑코가 서성이고 있네. 목소리 낮추게.”
“허!”
“그리고 그게 민주주의잖아.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어도 한계를 정하는 것.”
“젠장, 배신감마저 드는군. 자네라면 어떤 답이라도. 하다못해 내가 틀렸다고 지적이라도 해주길 바랐는데.”
맥아더는 아예 눈을 감으며 대화를 포기한 듯 보였다.
이제 그는 다시 파리로 돌아가 드골과 의미 없는 드잡이질로 추진력 없는 정책을 억지로 밀고 나가야만 하리라. 혹은 여태껏 그래왔듯, 그냥 방관하거나.
“자네가 매번 미국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비판할 때마다 내 다짐했네. 다시는 그러지 않기로. 앞으로는 가만히 있지만은 않겠다고. 그리 주전파로 살아왔네. 강경파. 정치군인으로 살았다고.”
“그래서.”
“근데 이게 뭔가? 자네마저 가만히 있다면 난… 도대체 뭘 해야 하는 거지?”
“음….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내 알려주지. 밖에, 프랑코 좀 불러주게!”
같은 연합군 소속이었음에도 맥아더를 실증내는 프랑코는 모헬의 말이 끝나자마자 문을 열고 들어왔다.
“뭐야,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나.”
“흠흠,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었을 뿐입니다.”
“자네 말이야, 언제까지 독재할 건가?”
“음, 그래도 노환 오기 전까진 하지 않겠습니까? 최소 15년은 더 할 것 같은데….”
“그럼 그 뒤는?”
“정확히 확정된 것은 없습니다만, 아마 민주화되지 않겠습니까? 일단 제가 죽으면 가장 권력을 물려받을 사람은 아무래도 국왕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는군. 어찌,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했는가?”
너무 빠른 대화 흐름에 갈피를 못잡던 맥아더는 어버버 거리며 모헬의 말에 겨우 호응했다.
“독재자를 지금 당장 끌어내리려면 전쟁뿐이지. 그게 당사국에 좋을 리도 없고. 진짜 준비해야 하는 것은 그 뒤. 그러니까 권력자의 죽음 이후라네.”
“…그렇다면 살아있는 자네는 왜?”
“맞습니다. 하루라도 젊으실 때 대원수에 오르셔서 프랑스를 빛내시는 게….”
처음으로 두 사람이 같은 의견에 동의하며 모헬을 압박해왔으나, 모헬은 손사레를 치며 가볍게 답했다.
“나? 어우, 난 그러기엔 너무 힘들어. 벌써부터 허리가 쑤셔오는 게 쓰읍, 이거 전쟁 후유증인가? 아무튼 난 그만할래.”
“이 개색….”
“각하?”
독재자라고 함부로 내쫓았다가는 큰일 난다고 했지만 본인은 제외.
“나 정도는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가.”
모헬은 지금 생활이 매우 만족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