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31
031화
사방에서 화약이 터져나가는 소음이 숲을 메운다.
전투에서 이는 당연한 일이지만 문제는, 내 예상보다 소음이 조금 더 많다는 것. 바로 앞에서 들리는 소음이 말이다.
“시발! 적이 얼마나 되는 거야!”
체급이 안 맞다. 우린 라이트 플라이급 연대고, 저건 최소 슈퍼 미들급은 되어 보이는 사단이다.
비단 그 규모에서만 문제가 발생하는 게 아니다.
“적이 가까이 오면 안 된다!”
“막기만 해! 적의 전진만 막아! 죽일 필요도 없다고!”
우리는 필사적으로 적의 전진을 막아야 한다. 사살이 아닌 막는 데 주력한 공격.
당연히 참호에 숨어서 총구만 내밀고 쏘는 걸론 어림도 없다.
방어의 입장임에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니 피해는 실시간으로 늘어갔다.
그럼에도 지금 불과 1~2분이면 뛰어올 이 거리가 삶과 죽음의 경계라는 것을 잘 아는 33연대 지휘관들은 몸을 불살랐다.
“숨어 있는 적을 노리라는 게 아니다. 오직 전방의 적만 노려!”
두 진영 사이에는 좁은 길목을 제외하면 나무가 빽빽하다 못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이는 전진하려는 적에게는 최적의 방어물이었고, 막으려는 우리한테는 최악의 알박기 건물처럼 보였다.
“파비앵, 몇 시야!”
“17시 25분! 5분만 버티면 됩니다!”
5분. 이 5분이 내 머리 위로 탄이 날아다니는 전장에선 영겁의 시간처럼 흐른다.
실시간 플랭크를 하는 느낌. 이렇게 폭탄머리 센세가 또 한 번 옳았….
콰광!
“다들 대가리 집어넣어!”
콰과과광.
쉬지 지축을 뒤흔드는 충격과 폭음. 드디어 시작이다.
저번 공준사에서도 그랬지만 예상보다 아군 포격의 오차가 크다.
특히 적을 막기 위해 이리 가까이 있는 경우라면 자칫 우리도 휩쓸릴 수 있다.
심지어 거의 유산탄. 피해 반경이 고폭탄보다 넓다.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곳도 상황 인지는 했는지 더는 적을 막기보단 몸을 숨기길 택했다.
그리고 이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날아와 인지하기도 전에 터지는 포탄은 내가 보기에도 공포 그 자체였다.
적의 총구를 보고 나무 뒤에서 싸웠는데 갑자기 내 옆에 있던 전우들이 무더기로 몸에 구멍이 뚫린 채 쓰러진다면 과연 이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본능적으로든 여전히 공격을 위해서든 우리 쪽으로 뛰어오는 독일 병사들이 있었으나 그들은 소총 선에서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나름 살겠다고 산개하거나 도망치는 이들도 부지기수.
이어지던 포탄 사격이 잠잠해지자 우린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여태껏 엄마 배 속처럼 흙구덩이 속에서 어떻게든 머물려고 애썼다면 이번만큼은 우리 연대조차 엘랑 비탈 사상에 지배당했다.
쌍방의 교전에서 일방적 학살로의 전환.
저들의 총구가 전부 우리를 향하고 있지 않은 순간부터 이미 독일군은 와해된 거나 다름없었다.
“적이 도망친다!”
“절대 추격하지 마라!”
극적인 전세 역전에 적의 꽁무니를 따라가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았으나 즉각적인 통제로 그런 실수는 범하진 않았다.
해가 져가는 리아흐 입구. 우리 연대에게 남은 것은 수많은 시체와 몇십의 포로.
살아남았다는 감격과 승리의 기쁨이 슬슬 퍼지려 했지만 난 마냥 저들처럼 순수하게 웃을 수 없었다.
“저희가 이겼습니다.”
“그래, 파비앵 자넨 오늘도 살아남았군.”
“헌데 표정이 안 좋으십니다?”
“아무것도 아니네. 우리는 재정비를 위해 다른 대대에게 자리를 내주고 뒤로 빠진다. 수습 끝나는 즉시.”
“…알겠습니다.”
더는 우리 애들이 선두를 달려줄 이유가 없기에 난 과감히 뒤로 잠시 빠질 것을 명령했다.
아마 여기 그 누구도 이 정도 요청 사항에 반발할 순 없을 거다.
“후방으로 가십니까?”
“지금 즉시.”
난 급히 몸을 움직였다.
지금 난 페탱을 만나야 했다.
***
야전 지휘관이 전투가 한창일 때 자리를 빼고 뒤로 온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건 일반적인 대위일 때 말이고, 난 조금 달랐다.
언제부터인지 다들 날 야전 지휘관으로 평가하기보단 참모로 보는 시선이 더 많은 거 같더라고.
고작 하루 만에 다시 만난 페탱의 얼굴은 빛이 나고 있었다. 내가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소식을 들었는지 10년은 더 젊어 보였다.
“모헬 대위! 아니지. 틀림없이 다음 진급은 자네가 될 테니 미리 소령이라 불러줄까?”
침착할 줄 알았던 페탱조차 말투에서부터 흥분을 숨기지 않았다. 그만큼 내가 편하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으나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단 의미이기도 했다.
“페탱 준장님.”
“불안하게 왜 또 계급으로 부르고 그러나.”
“전투 보고 들으셨습니까?”
“들었네.”
“그럼 그 규모가 심히 이상하다는 것도 아시겠군요?”
“사단 규모였다며. 예상보다 적이 아르덴 숲에 더 큰 힘을 주고 있단 의미 아닌가. 그렇다면 더더욱 숲 깊숙이 안 들어가….”
당연하다는 듯 상황을 풀던 페탱은 말을 끝까지 뱉지 못했다.
“저희 목표는 샤를루아입니다. 아르덴이 아니라.”
승리에 취할 때가 아니다. 우리 제5군은 아르덴 휴게소에 들렀다 고속도로 타고 벨기에 국경을 넘어 우익을 막으러 가는 게 최종 목적이었다. 예상지는 샤를루아였고.
‘원 역사 샤를루아 전투가 일어난 곳. 우리 5군은 그곳으로 향해야 한다.’
헌데 발이 묶였다. 아르덴에 내 생각보다 바퀴벌레가 너무 많다.
그저 튀어나온 몇 마리 잡아 페탱 이름에 불광만 내고 위로 이동하려 했더니 딱 봐도 한두 마리가 아니잖아.
“예정대로 샤를루아로 향할 수 있는 겁니까?”
이번 전투에 눈이 가려져선 안 된다. 우익, 기동. 비록 저들이 예상보다 벨기에 점령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으며 우익의 병력 비율을 줄이고 있다 들었지만 여전히 주공은 주공.
여전히 전쟁의 핵심은 독일의 제1군과 2군이다.
“영국? 그 머저리들이 몽스에서 운으로 이긴 걸 실력이라 믿으십니까?”
몽스 마을에서 전투 중 주위가 하얗게 변하는 현상으로 영국은 기적적인 승리를 일궈냈다. 소문은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참전용사들을 도왔다는데 그건 교황도 안 믿을 개소리고.
“이젠 우리 뒤에 숨어서 전투에 참여조차 안 하는 존 프렌치 사령관입니다.”
“내 설마 미쳤다고 한 줌도 안 되는 병력으로 정치질이나 하려는 놈을 믿겠나.”
육군이면서 자국 해군을 대변하는 듯이 움직이는 프렌치. 여전히 영국이 자랑하는 함대가 꿈쩍도 안 하는 걸 생각하면 입만 나불거리는 놈일 뿐이다.
“아르덴, 과감히 버립니다. 그리고 저희는 지금이라도 샤를루아로 향해야 합니다.”
강력한 주장을 내비쳤으나 페탱으로부터 평소처럼 즉각적인 동의가 튀어나오지 않는다. 되려 책상에 기대 뜸을 들이는 게 심상치 않다.
“자네, 이번 전투가 얼마나 의미 있는지 모르지? 아니, 정확히는 참모부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조프르, 그 개자식이 또 뭔 짓을 한 겁니까.”
불안하다. 불과 내가 며칠 자리를 비운 사이에 무슨 일이 있던 거야.
“리아흐에서 첫 교전이 있고 나서 내려온 특별 명령 15호네.”
내가 떠날 때 특별 명령 13호 듣고 야전으로 나갔는데. 그때 명령이 벨기에군, 영국군 끌어다가 독일 우익 막으라는 명령이었다. 물론 중간에 일부는 아르덴에 들르고.
“내용은 즉, 적 제2군의 규모는 약 18사단으로 추정.”
“네?”
“끝까지 듣게. 제5군 단독으로 제2군을 충분히 막을 수 있어 보이니 아르덴 공세에도 부분적으로 참여할 것.”
“…….”
도대체 무슨 근거로 저딴 개 풀 뜯어 먹다 역류성 식도염 걸리는 소리를 하는 거지? 설마 소거법이야? 막, 좌익과 중앙에 적이 많아 보이니 우익은 얼마 없겠지 이런 생각이냐고.
“다행히 최종적으로 샤를루아에 가라는 명령은 여전하네. 다만 그, 알지? 자네의 전과가 전혀 영향이 없진 않다는 걸?”
“아니, 제가 뭘 했다고?”
와, 이젠 내 탓도 있는 거야? 왜 그냥 보슈들 기관총 앞으로 북 박자 맞춰서 진격하다가 털린 것도 다 내 탓이라고 하지?
“자네, 지금까지 우리 군 교전 비율을 아나?”
“처참하지요. 1:3에서 1:2 왔다 갔다 하지 않나요. 선방해봐야 동수로 죽고요.”
참고로 독일이 1이다. 현재 프랑스군은 1km 전진을 위해 피를 뿌리면서 내주기는 또 엄청 쉽게 내주고 있다.
자기가 공세라고 주장하지만 자꾸 국경 근처에서만 서성이고 있으니 훗날 국경 전투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다니까.
“반대로 자네는?”
“잘은 모르지만 선두였던 저희 애들도 큰 피해 없으니 통계는 보기 좋게 나왔겠죠. 근데 그건 포병 지원과 저희….”
“그건 안 중요해. 위로 올라간 작전경과보고와 전투보고서에는 그 통계만 올라가니. 자, 생각해보게, 모헬 대위. 일개 연대가 같은 규모의 연대를 격파하고 사단 규모 하나를 내쫓았네.”
다 까고 말해서 내가 끌어다 쓴 10군단 포병이 얼만데 못 이기면 그게 병신 아닐까.
“그 사단 애들이 많이 안 죽고 다 살아서 도망쳤단 이야기는 하셨습니까? 적 8사단 절반 이상이 보충 병력이고 저희는 대부분 현역 병력이라는 말도?”
“다시 말하지만, 그딴 사실이 저 윗대가리의 귓구녕에 조금이라도 처박힐 일은 없다네.”
“그래서, 뭐 아르덴 들렀다가 떠나지 말고 더 머물러라? 아르덴 공세 성공을 위해서?”
이래서 군대는 열심히 하면 안 된다는 걸까.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닌 걸 알지만 또 이리 들어맞는 상황이 없다.
“뭐, 부분적으로는 그리될 판이란 말이지. 란레작 장군님이 카를이 이끄는 제2군은 사단 18개 따위가 아니라고 화내니까 앙리 베를틀로(Henri Berthelot) 참모부장이 뭐라 했는지 아나?”
“걔는 또 입으로 어떤 배설물을 내뱉었답니까?”
“크흠, 그럼 오히려 자기들 입장에선 적군의 중앙을 돌파하기 쉽지 않겠냐더군.”
“와아… 진짜.”
어이가 없어 머리만 쓸어 올리며 들끓는 화를 한숨과 토해내자 페탱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동의를 표했다.
프랑스 육군, 넌 도대체 날 얼마나 더 놀라게 할 수 있는 거냐. 이 정도면 그대로 기록해도 후세대가 적대국의 역사 왜곡이라고 화낼 정돈데.
이제 생각해보니 지금 난 잘나서 눈에 띄는 게 아니다.
그냥 육군 수뇌부(首腦部)라는 것들이 전부 뇌(腦) 한 부분씩 덜 달고 태어나서 내가 잘나 보이는 거다.
마치 주식투자 대회에서 전문가란 새끼들이 다 마이너스고 가만히 있던 놈이 0% 수익률로 1등 먹는 그런 거랄까. 그러니까 여윽시 ETF가 진리… 시발. 괜히 안 좋은 기억만 떠올라 더 빡치네. 이게 다아 조프르 탓이야.
“자, 정리하자면. 여전히 샤를루아로 간다. 근데 동시에 아르덴도 맡아라 이거 아닙니까.”
“중간부터 정신 나간 줄 알았는데 잘 이해하고 있었군.”
말문이 턱 하고 막히며 그 대신 박수가 절로 나온다.
대단하다, 프랑스! 자랑스럽다, 대육군!
그래, 너희가 정 그러고 싶다면 내가 어찌 막을쏘냐! 난 다름을 인정하고, 차별을 반대한다. 내 의견도 소중하지만 동시에 너희의 의견도 존중한다.
그렇기에, 난. 아르덴 공세를 털어먹으려고 독일이 군단 10개나 동원했다는 사실을 말하는 대신 입을 다물길 택했다.
‘갑자기 이런 말을 올려봐야 그저 역사적 사실이라 상부를 설득할 만큼의 근거도 제시 못 하지만. 뭐, 믿으면 더 문제다.’
뻔하지. ‘뭐어? 적 군단이 열 개애애? 그럼 너희 5군도 아르덴 공세에 손 더 보태!’라며 같은 아군을 상대로 “해줘” 떼쓰기 작전을 전개하려 할 거다.
“아, 그리고 아까 말하려던 자네 진급 말이야.”
“대위 단 지 두 달도 안 됐습니다.”
“어디 날 속이려 드나. 자네가 통솔하는 건 중대지만 33연대가 자네 뒤만 졸졸 따라다닌다지? 아무튼, 혹시 참모로 올 생각 없나?”
“없습니다. 절대.”
“야전에선 자네라도 눈먼 포탄에 죽을 수 있네.”
“반대로 참모로 가면요? 제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단 하나라도 있습니까?”
참모라,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확실히 야전 지휘관보다 안전하니까. 그 대신 난 뻔히 알면서 죽으라는 작전이나 철면피 두른 채 짜야 할 것이다. 곧 다가올 참호전을 생각하면 무조건 말이지.
이미 제17계획을 들이박았을 때부터 참모의 길은 선택지에 없었다. 갈수록 육군은 조프르의 놀이터가 될 테니까. 그 놀이터에서 시소든 그네든 하나라도 타 보려고 선택한 게 페탱이고.
‘내 전역 소중한 걸 알면 남의 무사 전역도 소중한 줄 알아야지.’
결과를 아는 자로서 마지막 양심이었다. 사실 양심이란 표현도 과하다. 그저 자기만족에 가까운 행위임을 안다. 더러운 물에 손 안 담그겠단 생각이니까.
“전 정치나 하려고 군인 된 거 아닙니다.”
사실 처음부터 선택지도 없었지만 난 적당한 반감을 담아 단호히 거절 의사를 밝혔다.
“생각보다 부정적이군. 뭐, 이해 안 되는 건 아니네만.”
“사단장님이 별 일곱 개쯤 다시면 생각해보겠습니다.”
“허허, 싫다는 말을 그리 돌려 하나. 마레샬 계급이 사라진 지가 언젠데.”
장난처럼 툭 던졌지만 전부 농담은 아니다.
‘조프르가 제 손으로 자기 어깨에 별 더 다는 게 내후년이던가.’
페탱, 당신은 곧 생길 북두칠성만큼 밝게 빛나야 해. 최소한 날 위해서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