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38
038화
파리 방어를 위해 여전히 많은 군이 남았지만 은밀히 전선의 변화는 일어났다.
길게 준비할 시간도, 복잡한 전략을 세울 시간도 없었다.
갑작스러운 명령에 우리 6사단은 후방에서 방향을 틀어 파리에서 조금 떨어진 남동쪽에 집결하였다.
따로 설명을 듣지 않아도 난 이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독일 제1군과 2군 분리 작전.
과연 프랑스인들은 알고 있을까. 이 결정이 프랑스의 멸망을 막아준 희대의 사건이라는 것을.
제6군의 위치는 여전히 루흐끄(Ourcq). 변한 것은 오직 포슈가 지휘하는 군사뿐이다.
페르디낭 포슈가 이끄는 직속 9군단과 그 아래 사단들을 다 합치니 더는 군단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수준이 되었다. 편제도 이미 9군. 포슈는 역시나 개전 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야전군 급의 사령이 되었다.
우리는 긴급하게 제5군의 뒤를 지나 5군과 4군 사이로 향했다.
프랑스를 기준으로 군 배치를 보자면 수도 파리 바로 우측에는 모우리 장군의 제6군이.
그 바로 옆에는 프렌치 경이 이끄는 영국 원정군, 데스페레가 이끄는 제5군, 페르디낭 포슈의 제9군이 위치하게 되었다.
더 우측으로 나가면 제4군부터 3군, 2군 순으로 쭉 배치되었지만 2군부터는 소모적인 대치만 유지되는 수준이니 논외로 치고.
9월 8일 아침. 원 역사대로 페르디낭 포슈가 이끄는 9군이 5군과 4군 사이에 배치되었다.
그럼에도 내가 걱정을 떨칠 수 없는 이유는.
‘여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다르다.’
원래라면 일주일 전부터 포슈는 이 위치에 서서 전투 준비를 했어야 한다. 그리고 3일 전에는 적 11군단과 본격적으로 투닥거렸어야 한다.
무엇보다 독일 11군단 선봉을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던 제18사단은 어디 가고 우리 6사단이 배치되었다. 이에 난 원인을 알 수 있었다.
“나 때문이네···.”
왜, 왜 이렇게 된 거지? 포슈가 날 싫어하나?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원인과 결과가 반복되어야 이리 변하는 거지?
4년간 이어질 전투에서 하루 이틀 차이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니다.
만약 조프르가 3주 전 제5군 투입을 며칠만 더 미뤘다면 파리는 무너졌을 거다.
그나마 결정적인 순간에는 제9군이 제 위치를 찾아 자리를 잡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자꾸 머리를 들이민다.
만약에 마른의 전설을 써 내려간 포슈가 실패한다면? 그 결과는 과연 무엇일까.
‘무엇이든 나한테 좋을 건 없겠지.’
돌고 돌아 결론은 같다. 5군에서 뼈를 묻을 줄 알았던 난 어느새 제9군, 그것도 선봉부대로 배치되었다. 우리의 든든한 옆구리를 책임져줄 바로 이웃 사단은?
“···21사단.”
로렌 공세 1주 만에 전멸했다가 다시 부랴부랴 만든 사단. 이름만 21사단을 이어받았지 사실상 서부전선 뉴비나 마찬가지다.
“불행 중 다행은 우리 뒤를 10군단 포병이 봐준다는 거야.”
바로 옆에 있던 5군의 10군단 포병들이 우리 뒤를 봐주기로 했다. 이들과는 이미 아르덴 숲에서 손발을 맞춰봤기에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내게 주어진 임무는 간단하다.
우리 33연대 애들이 수많은 적 사단 사이를 뚫고 들어가는 것. 그러면서도 최대한 다치지 않는 것.
이 두 조건을 만족할 방법은 내 머리론 오직 이 길밖에 없다.
“원래라면 로베르 니벨 장군이 2년 뒤에나 제대로 선보일 전술이지만, 지금 그걸 가릴 때가 아니니까.”
1차대전 최전선 사단급 전투의 전설을 써 내려간 로베르 니벨(Robert Georges Nivelle).
허나 집단군급 전투에서는 부정적인 의미로 전설을 써 내려간 장군.
니벨 장군에게는 아쉽게 되었지만 사람 생명을 다루는 전술에 특허가 있는 것도 아니니 지금은 내가 시초가 되어야겠다.
이동 탄막 사격.
이거라면 우리 애들 기관단총 사거리 안으로 적이 손쉽게 들어올 수 있다.
***
한 달 사이 프랑스군의 전술 교리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그렇다고 프랑과 파운드 총합 36만을 지불해 얻은 수업 한 번으로 핵심 보병 교리가 변하진 않았다.
보병은 여전히 착검돌격이 전부. 그러나 포병은 달랐다.
공격 준비 사격. 그러니까 보병이 나서기 전의 사전 포격.
그간 세 번의 대공세와 수십만 병력을 말아먹고 참모부는 ‘아, 포병이 먼저 해줘야 하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참으로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의 차이가 너무나도 큼을 모두가 느끼기엔 충분했다.
“결정적인 원인은 아르덴 숲에서 보여준 10군단 소속 포병과 6사단의 연계였지만.”
6사단의 전설 뒤에는 10군단의 포병이 있었음을 모두가 보았다.
포슈 또한 조프르 총사령관으로부터 보병 투입 직전에 대규모 포병 운용술에 대한 명령을 받았다.
그리고 명령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이 모든 변화의 선두에는 모헬 소령이 있다는 사실 또한 알았다.
“전과 비교해서 최소 2할 이상의 전진 효율을 보여준다라···.”
한 번 부딪힐 때마다 몇만씩 죽어나가는 걸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변화다.
그렇기에 포슈는 데스페레 5군 사령관으로부터 뜯은 10군단을 6사단 페텡에게 붙여주길 주저하지 않았다.
“베이강, 자네가 보기엔 어떤가. 모헬 소령의 전술이 단 한 달 만에 아군 전체에 퍼졌네. 심지어 저 섬나라 놈들도 이젠 사전 포격이 없으면 움직일 생각을 안 해.”
“미리 대기 중인 중기관총을 무력화하고 진지를 파괴하며 전열을 흩트려 주니 보병 진격에 엄청난 도움을 주겠지요.”
“그래, 근데 말이야. 왜 이번에는 모헬 소령이 사전 포격을 안 할까?”
“그건 저도 잘···.”
“잘 생각해보게. 그나마 자네가 모헬 소령에 대해 잘 알지 않은가?”
탁월한 전술을 만든 원작자가 정작 안 쓴다? 이상하지 않은가. 이럴 경우는 오직 하나. 더 나은 선택지가 손에 쥐어졌을 때다.
10군단에서 뚝 떼어내어 받은 포병을 모헬 소령은 사전 포격에 쓰지 않으려 한단 보고에 포슈의 관심이 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으로 궁금하군. 이미 나가 싸우는 장교를 부를 수도 없고.”
“그 친구가 일반 상식이 통하진 않지만 언제나 그렇듯, 결과가 말해줄 겁니다.”
“그러겠지. 결과. 모헬 소령이 만들어 올 그 결과가 참으로 기대되네.”
지금쯤 독일 11군단 선봉과 마주하고 있을 6사단이 부디 또 한 번의 전설을 써 내려가 주길, 포슈는 진심으로 기원했다.
그래야 영예로운 공세 선봉을 내준 의미가 있을 테니까.
***
“씨이바아알!”
최전선에 선 병사의 입에서 욕이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 그도 그럴 게 여기 모두가 제 발로 지옥을 걸어가는 기분이기에 그랬다.
이동 탄막 사격.
공격 준비 사격이 포격 선빵으로 적이 헤롱거릴 때 달려드는 거라면 이동 탄막 사격은 우리도 머리가 돌아버릴 거 같단 차이가 있다.
“아군 포탄 낙하!”
“숙여!”
콰과과광.
적 포탄이 아닌 등 뒤에서 날아오는 아군 포탄에 목숨을 위협받았다.
가까우면 불과 40m 앞에 아군 포탄이 떨어진다. 그런 진풍경이 좌우 200m 가까이 벌어지고 있다.
10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포탄이 전부 떨어지고 나자 33보병 연대는 포탄이 떨어졌던 그 자리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잠시 뒤, 또 전방 근거리에 포탄이 줄줄이 떨어진다. 다시 모두가 몸을 웅크리며 구덩이에 몸을 숨긴다.
“똑바로 숨어라! 아군 포탄 파편에 곤죽 되기 싫으면!”
“씨발, 윌리암! 이거 고폭탄이라며! 파편 없는 고폭탄이라며!”
“닥쳐, 로만. 고폭탄 맞아. 날아오는 건 전부 돌 파편이라고.”
값싼 산탄류와 달리 비싼 고폭탄은 땅을 파고들어 터지며 엄청난 흙먼지로 시야를 가려준다.
적은 그저 잘못된 포격으로 알고 있겠지만 그 흙먼지 뒤로 제33보병 연대는 꾸준히 전진하고 있었다.
‘그저 좌표 오류라 생각하겠지.’
선두에서 기관단총과 나무 막대에 감겨있는 투척탄만 들고 전진하는 윌리암은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불과 몇 주 사이에 뒤바뀐 프랑스군의 공세 방식. 당연히 독일 또한 이를 인지하고 있을 터.
‘그렇기에 더 잘 먹힌다. 절대 이 뒤에 우리가 있다고 생각 못 하지.’
설령 안다고 해도 대대적인 돌격이라고 예상하는 건 어렵다. 그도 그럴 게···.
“윌리암, 앞으로 얼마나 남았냐?”
“방금 제외하면 12번 정도.”
“씨발, 점심 먹고 나서 전진하면 안 되나? 죽기 전에 밥이라도 먹고 죽게.”
“로만, 닥치라니까.”
진격 속도가 거의 걸어가는 수준이나 다름없으니까.
300m 거리를 성인 남성이 질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1분 남짓. 반면 이동 탄막 사격 속도에 맞춰 보병이 전진하면 그에 몇 배에 달하는 시간이 걸린다.
1914년 포병은 나폴레옹의 전열 보병 시대로 회귀했다. 순서에 맞춰 쉬지 않고 후방에서 조금씩 앞으로 포탄이 날아간다.
이에 포탄 낙하지점에 맞춰 보병은 전진한다.
과연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적 앞까지 ‘차근차근 진격’을 할 줄을.
지난 한 달은 기관총의 무서움이 프랑스군 전체를 관통하기 충분한 시간이었음에도 말이다.
문제는, 그게 먹힌다. 그것도 너무나 잘 먹힌다.
터지는 포탄 사이로 눈먼 총알이 날아오지만 이에 맞아 죽는 아군은 거의 없다.
“이게 된다니, 어이가 없네.”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전략. 윌리암은 슬슬 모헬 소령님이 과연 자신과 같은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이건 적괴 헬무트 요하네스 몰트케가 아니라 죽은 헬무트 카를 몰트케가 와도 못 알아보지.’
고지 하나를 넘기 위해 사단 절반을 가져다 바치는 다른 부대와는 다르다. 그 믿음이 윌리암이 또 한 번 발을 내딛길 주저하지 않게 만들어주었다.
“얼마나 남았어!”
“약 이백 미터! 다다음 포격부터는 본격적인 적지 타격이야!”
마지막으로 탄창과 총기를 확인하고 달릴 준비를 했다.
지축을 뒤흔드는 진동과 고막을 찢으려는 폭음이 지나가자 33보병 연대원들은 모두 포탄 구덩이에서 몸을 일으켜 달려 나갔다.
“돌겨어어억!”
이번에는 포탄이 땅을 터트리는 소리 대신 공이가 화약을 터트리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포격에 몸을 숨기느라 제대로 준비조차 못 한 적이 당황한 모습이 보인다.
그 순간 윌리암은 확신할 수 있었다.
적의 선봉을 달리던 제32사단은 오늘로 끝이라는 것을.
***
9월 8일 저녁에 시작된 제9군의 전투는 시작부터 좋지 않았다.
진격의 가속도를 낼 틈도 없이 다음 날까지 포슈의 제9군에서 우익을 담당하던 11군단은 폰 하우젠의 제3군의 기습에 무려 12km를 후퇴했다.
불과 이틀 만에 팔 한쪽이 잘려 나가 버린 제9군의 전선.
무모한 공세로 하우젠의 군도 피해가 막심했으나 11군단의 이탈에 가까운 후퇴는 포슈에게 치명상이었다.
그런 3군이 11군단을 뚜드려 패는 맛에 중독되길 3일 차. 9월 10일, 이변이 일어났다.
팔이 잘린 제9군단에 새로운 팔이 돋아난 거다.
처음에는 작은 연대가. 그다음에는 사단 하나가. 그 뒤로 수많은 사단이 뒤따라서 팔은 점점 거대해졌다.
작은 점이 선이 되고 그림이 되듯. 포슈는 이것이 적 분리의 시초가 될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 전에 주제 모르고 깊게 들어온 3군을 잘라주는 것도 잊지 않았고.
“2군을 완벽히 고립시키려면 바짝 붙어 있는 3군부터 제거해야지. 적 2군은 데스페레 장군이 대대적인 공세로 붙들어줄 거네. 우린 지금부터 3군을 밀어냄과 동시에 2군을 포위한다.”
적 3군의 위치를 아군이 차지하는 즉시 제2군의 전진은 막힐 뿐만 아니라 남과 동이 막히며 반쯤 포위된다.
“어디까지 말씀이십니까?”
“마른강 너머로. 다시는 넘어오지 못하도록.”
포슈는 더는 3군이 날뛰도록 놔둘 생각이 없었다. 명령을 받은 모두가 이를 시행하기 위해 자리를 뜨자, 그제서야 포슈는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후우···. 좆 될 뻔했군.”
근엄한 표정 대신 죽다 살아난 사람의 표정이었다. 어차피 아무도 이를 듣거나 보지 못했다.
“자넨 안 가나?”
“갑니다!”
베이강 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