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39
039화
9월 10일, 트로이 목마가 서부 전선에서 재현되었다.
기원전 12세기나 지금 20세기나 새로운 게 나타나면 자기 상식대로 해석하는 건 똑같아서 포격을 문자 그대로 구경만 하던 독일의 32사단은 가루가 되었다.
무리하게 들어온 하우젠의 3군은 딱 9군 바로 앞 코낭트르 벨만 눌러보고 집 안으로 들어오진 못한 채 부리나케 튀어야 했다.
안 그래도 없는 식량, 화포, 전쟁 물자 다 두고 야반도주해버린 독일 제국의 제3군.
마른강을 등지고 있는 제3군 총사령부는 포슈의 무자비한 구타에 모든 군을 물리며 웅크렸다. 딱히 추진력을 얻어 반격한다기엔 머리카락까지 꼭꼭 숨는 모습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짜파 불닭보다 더 좋은 합을 맞춘 포슈-베이강 콤비는 멈추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대로 눈이 돌아가 뷜로의 2군한테 덤볐다간 열심히 기동하던 두 다리가 몽둥이로 빠따질 당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럼 다음은 어떻게 하느냐. 간단했다.
뷜로는 데스페레랑 쎄쎄쎄 하면서 놀라 하고 포슈는 그 옆의 만만한 친구들하고 놀기로 결정했다.
하우젠의 3군이 물러나니 눈에 보이는 건 우측의 무방비한 제4군. 어찌 이 탐스러운 옆구리를 물어뜯지 않고 버틸 수 있겠는가.
이번에는 방향을 돌려 4군을 열심히 헤집어 놓으며 2군과 떨어트려 놓았다.
여기서도 우리 6사단이 한 건 했다면 전설이 되었겠지만.
“다시는 선두 안 선다! 내가 지인짜! 공세 앞장설 바엔 차라리 할복하고 말겠소!”
“진정하게 진정. 할복은 또 뭔가.”
“지금 프랑스처럼 적한테 배를 발라당 내준 다음 제 손으로 째는 겁니다.”
“모욕적이군.”
“하지만 사실이죠.”
언제나 그렇듯, 가볍게 한번 조국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해주고 우린 오랜만의 대화를 시작했다.
오랜만이라지만 불과 며칠 떨어진 게 전부였다. 그러나 목숨이 오가는 전장에서 며칠 만에 본 페탱의 얼굴은 임자의 그것이었다.
정확히는 그의 어깨에 걸린 저 견장이.
“영롱해··· 짜릿해··· 늘 새로워···.”
“베르게르, 예의 없게 어딜 보나. 대화할 땐 상대를 봐야지.”
지금 내가 누구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대화할 정신이나 있겠나.
이 순간에도 드는 생각은··· 살았다. 씨발, 공세 선두에 섰는데도 살았다.
소령 달았다고 적 포탄이 피해 가나 총탄이 휘어가나. 그냥 병사나 나나 똑같이 전장에 서서 고놈의 확률론에 모가지를 맡길 뿐이다.
어느 날 말 안 듣는 독일 병사가 포 각도 잘못 틀어서 내가 죽을 수도 있는 파리 목숨이었다.
그럼에도 일단은 살았다는 사실에 난 감읍했다.
별을 단 견장을 너무 오래 쳐다보면 눈이 멀 수도 있어 고개를 드니 페탱은 날 다양한 감정과 함께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또 뭐라 하려고.”
“그냥 자네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생각하고 있다네. 이번에 보여준 그 신박한 포병 교리는 어디에서 배운 건가? 아군의 공격 속에 아군을 숨긴다라.”
“이거 봐, 또 금칠하시네. 이러면 분명 뭔가 큰 걸 시킨다는 의민데.”
“이건 진심이네. 여태껏 수많은 군사사상가들을 만나왔지만 자네는 달라.”
군사사상가라기보단 표절가라는 표현이 맞지만. 뭐, 그건 내 양심이 잠잠하니 괜찮다. 베르게르 모헬, 무죄. 땅땅땅!
“사단장님 믿고 들어간 겁니다. 전 잠시 길만 열었을 뿐이고요.”
이는 마냥 상관에 대한 아부가 아니다. 페탱의 신들린 지휘와 포슈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최상의 결과가 만들어진 거다.
아니었다면? 그냥 난 32사단과 잘 싸운 걸로 끝났을 거다.
페탱은 내가 돌격함과 동시에 과감히 21사단을 6사단 따까리로 붙여버렸다.
솔직히 우리 옆 21사단은 가만히 놔뒀으면 지구 반대편 산으로 진격해버렸을걸? 마른강까지 뻥 뚫린 평지 놔두고 왜 우측 아군으로 방향을 틀려 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굳이 추측하자면 쫄려서겠지만.
“으음, 역시 그때 에콜 폴리테크니크로 보냈어야···.”
“다 들립니다. 거긴 죽어도 안 가요.”
이 시대 포병학교? 가보진 않았지만 언제나 내 결론은 그딴 곳 ‘몰라도 된다’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떻게 됩니까.”
별 달았으면 나와는 ‘카더라 통신’ 수준이 다르겠지. 아직 포슈의 기동은 실시간이지만 난 그다음을 생각해야 했다.
언제나 그렇듯 우리의 토론은 물 흐르듯 자연스레 이어졌다.
“제2군의 전진은 막혔네. 이틀 전 5군의 새벽 기습도 성공적이었고 모우리 장군도 파리 방어에 성공했지. 조프르 총사령관을 필두로 한 2, 3군 또한 긍정적인 소문만 들리더군.”
마른 전투.
딱 일주일 이어진 전투는 8월을 압축한 것만큼 피해가 쏟아졌지만 어쨌든 적을 밀어내고 있다는 사실에 모두 희망을 그렸다.
“자네가 들었다면 비웃었겠지?”
“사단장님, 저도 승리에 기뻐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내 눈에도 벨기에 국경까지는 어림도 없어 보이는데 무슨.”
포슈가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는 페탱이 나를 떠본다. 이걸 손쉽게 간파해낸 나도··· 슬슬 짬이 찬 게 아닐까?
‘으음···.’
잠시 내 아래 상병들이 하던 착각을 해본 뒤 난 신중히 답을 골랐다.
“어디가 될진 몰라도 막히겠죠. 여전히 우리는 피해 입길 두려워하니까.”
“웃기는 소리야. 벌써 평시 상비군 규모를 잃었는데도 피해 입길 두려워한다니.”
개전 두 달도 안 되었는데 누적 피해 60만을 가볍게 넘겼다. 이 정도면 프랑스 의무복무 2년 시절 상비군 규모다.
‘그래서 더 무섭지. 개죽음이 뭔지 알게 되어버렸으니.’
차라리 여전히 무식했다면. 저 러시아 우라(Ypa) 돌격처럼 여전히 프랑스군이 La patrie(조국 만세)만 외치며 나아갈 수 있다면, 정말 국경까지 노려볼 법하다.
그로 인한 피해를 생각하면 뭐가 옳은지는 나도 모르겠다만.
“이젠 전투가 아니라 정치입니다. 아시죠?”
“흐으, 씁쓸하군.”
이후 참호전이라 불릴 로댕의 ‘지옥의 문’이 이 땅에 강림하게 된다면.
그리된다면 더는 전투의 승리가 생존으로 직결되지 않을 거다.
정치. 이젠 줄광대마냥 정치를 미친 듯이 잘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물리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아마 이 부분은 나보다 높으신 페탱이 더 잘 느끼고 있을 거다.
이번 마른 공세가 끝나고 나서 논공행상이 시작됨과 동시에 군부는 거대한 변화를 맞이하게 될 거란 것을.
매번 혀를 차며 욕하지만 난 절대 정치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사람이 셋만 모여도 시작되는 게 정치질인데 군대가 어찌 정치 없이 이상으로만 돌아가겠어.
“어디로 붙을지 고민하신 건 아니죠?”
“조프르와 적대할 만큼 멍청하진 않네. 적어도 당장은.”
“갈리에니 장군이 파리의 구원자로 명성이 높아진 건 사실이지만 한번 은퇴한 사람이죠. 실권을 쥐기엔 기반이 이미 다 무너졌어요.”
“자네 입에서 그 말이 나오니 이상해. 여태껏 그리 씹어댄 조프르를 옹호하는 것 같으니.”
내가 왜. 조프르? 졸장이면 어때. 난 발전형 인간을 무시하지 않는다고.
“처음부터 완벽한 인간이 어딨습니까? 다 하나씩 배워가는 거지요.”
“하긴, 다 말아먹고 아무것도 못 배우면 그게 사람인가.”
조프르는 모든 잘못을 고위 장군들에게 떠넘기며 칼춤을 췄지만 여전히 불완전한 정권이다.
안 그래도 감투나 씌워준 군정장관을 뼛속까지 잘 활용한 갈리에니가 부담스럽겠지.
“그래도 갈리에니는 여기서 끝입니다.”
아무리 역사가 틀어질 조짐을 보인다지만 난 조프르의 승에 모헬 주식회사와 손모가지를 걸어도 안 쫄린다.
“페르디낭 포슈. 그와 견줄만한 패가 갈리에니한테 없습니다.”
포슈는 조프르 파벌의 핵심이다. 그 포슈가 이번에 보여준 9군의 활약을 뒤엎을 패가 갈리에니한테 없다. 있었다면 나부터 벨기에 국경까지 밀어낼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민했을 거다.
“만약에 우리가 갈리에니 장관님께 힘을 실어주면, 그러면 어찌 되나.”
“참호전에서 다시 시험대에 올라 죽겠죠?”
비유하자면 페탱과 나는 신성처럼 등장한 무소속 의원이다. 캐스팅보트까진 아니어도 상대한테 절대 넘겨줄 수 없는 패.
아르덴에서 구르고 마른 선두에 선 대가로 받은 소중한 한 표, 마땅히 행사해야지.
효력을 확인할 겸 가볍게 그 표를 살랑살랑 흔들어보자고.
“일단은···.”
“일단은?”
페탱은 불안한 눈빛으로 게슴츠레 내 입을 지켜봤다. 누가 보면 내가 사고만 치는 줄 알겠네.
“음··· 가볍게 철모 보급부터 요청해보죠. 절대 무시 못 합니다.”
그제야 페탱은 보이지 않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발 이젠 애들 뚝배기에 캐피 같은 천 쪼가리 말고 방어력 +1이라도 해주는 제대로 된 걸 씌워주자고.
안 해주면? 바로 투표용지에 ‘갈ㄹ···’ 적어서 다시 흔들어봐야지.
어디 이번에도 변명해보라고, 지각대장 조제프 자크 세제르 조프르 씨.
깜지 300번 쓰게 해줄 테니까.
***
아쉽게도 조제프 자크 세제르 조프르 씨가 ‘다시는 철이 부족해서 철모를 보급하지 못한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마른강 서편에 남아서 300번 쓰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정확히는 포슈-베이강 선에서 이미 ‘와우! 철모 조아요우!’라며 쌍따봉을 날려댄 탓에 이미 철모의 보급은 원 역사의 루이 아드리안(Lois Auguste Adrian) 장군이 나서지 않아도 이뤄질 것처럼 보였다.
그 말은 즉, 서부전선이 단기전으로 끝나기엔 글렀다는 것을 연합국 측이 인지했단 소리나 다름없었다.
9월 16일, 2군의 포위 위협을 인지한 독일군은 철수를 결정했고, 당연히 이는 전군으로 순식간에 퍼졌다.
여기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비하인드가 있다.
비유하자면 모 국가의 렌야 센세만큼의 큰 결정을 해주신 헨츄(Richard Hentsch) 중령님이 계시지만 역시 어둠의 투사답게 제 공을 떠벌리시지 않았다.
룩셈부르크에서 마른강까지 몰트케 대리로 파견된 헨츄 중령의 철수 권고를 받아들인 제1군의 클루크가 2군은 포위되었을 거라 판단하여 후퇴.
이에 2군은 1군이 크게 패했거나 불가피한 사정이 있어서 후퇴하는 거라 생각해 후퇴.
나머지 3군부터는 1군과 2군이 후퇴하니 새끼 오리마냥 뒤따라 후퇴.
이것이야말로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이뤄주는 미라클.
파리 시민들은 ‘마른의 기적’이라며 자국의 장군들의 이름을 목청 높여 외치지만 난 알고 있다. 우리 고독하신 헨츄 선생님의 공적을.
난 잠시 눈을 감아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1··· 2··· 3.’
다만 눈을 오래 감으면 어지러울 수 있으니 묵념을 3초 컷 내고 난 다시 상황을 상기해봤다.
독일군은 모두 다시 한번 패전보를 떠안은 채 필립피데스가 될 차례였다. 적어도 모든 프랑스인들은 그리 생각했다.
마른강. 아니 마른주 전체에서 독일군을 쫓아냈고 적은 전방위적인 퇴각을 하고 있다.
파리 점령? 슐리펜? 느그 계획 싹 다 어그러졌으니 이제 반격의 서막이다, 이 그지 깽깽이들···.
이라고 연합군이 외치려는 순간.
도망치던 독일군은 다른 선택을 했다.
도망치며 먹을 식량도 없다. 질서 정연하게 퇴각할 시설은 다 파괴되었을뿐더러 다 가지고 도망치기도 힘들다.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오직 두 손의 전투 물자뿐.
그래서 독일군은 땅을 팠고, 기관총을 설치했다. 더는 물러날 수가 없었다.
그리 독일의 대후퇴(Great Retreat)는 후퇴할 힘이 없어 끝났다.
그럼에도 연합군은 더 쫓아내지 못했다.
파리에서 100km밖에 떨어지지 않았던 독일군 꼬리 누아용은 곧장 최전선으로 변했다.
참호전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