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44
044화
내가 원 역사의 모든 전투 지휘관을 기억하진 않지만 적어도 이건 안다.
‘네가 왜 여기서 나와?’
독일이 어떠한 이유로 인선을 이렇게 짰는지 알 게 뭔가 싶지만, 이건 아니다.
막스 폰 파벡(Max von Fabeck) 중장. 그가 아라스 최전선을 무너트렸단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라스로 아군이 흘러들어 온다. 절반 이상이 예비 사단이지만 병력의 수는 많을수록 좋은 거 아닌가. 약간은 든든한 마음도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원 역사에서도 어쨌든 막았으니 내가 개입하면 더 쉽게 막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한 것도 사실이다.
다만 고려하지 못한 것은 바로 저 인간. 아르덴 숲에서의 인연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볼 일 없을 줄 알았는데 왜 하필 여기로 온 거냐고.
엄연히 말하자면 그가 먼저 바다로의 경주에 참여했고 내가 이후에 온 거지만 분명 아라스가 아닌 아미앵으로 향한다 들었는데?
‘그럼 이번에도 원인은 시발 나냐.’
달라지면 당연히 나지만 이건 날 노린 건지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법하지 않나. 아니, 이 시대 상식과도 같은 비합리적 사고와 판단을 근거로 할 때 저거, 나 저격한 거다.
아르덴의 복수인지 아니면 나의 위명을 꺾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만 분명한 것은 독일은 지금 아라스에 과투자를 하고 있단 거다.
“독일 북부 전선의 사령부 캄브라이에 있던 나머지 13군단까지 이끌고 아라스로 향했습니다. 원래라면 그 아래 솜으로 향할 것으로 봤으나 더 가까운 저희 쪽으로 온 걸로 보입니다.”
“13군단이 왔다면 빠진 이들은?”
“현재 정보로는··· 없는 걸로 보입니다.”
“마르비츠가 이끄는 군대도 여전히 아라스에 있는데 여기에 13군단이 추가된 격이군.”
아니, 왜? 아라스에 뭐 먹을 거라도 숨겨놨어? 애초에 과거 아라스 점령 당시 13군단은 북부에 있지도 않았잖아.
브루제르 장군과 페탱 사단장을 필두로 아라스 지휘관들이 다 모인 자리의 분위기는 한층 암울해졌다.
잠시 침묵이 이어진 전략회의실. 갑자기 다들 나한테 시선이 쏠린다.
“···왜 다들 절 쳐다보십니까?”
“파벡 장군은 노련한 전략가로 소문이 났지. 그러면서도 전투는 짧고 굵게 밀어붙여서 언제나 승리만 해왔네. 단, 아르덴 숲에서만 빼고.”
“모헬 소령, 이 자리에서 파벡의 13군단과 제대로 싸워본 사람은 자네뿐이야.”
무슨 소리야. 난 파벡 중장이랑 싸운 게 아니라 그 아래 따까리들이랑 투닥인 건데.
지금은 루프레히트 왕세자를 위해서 붙여진 인물이다만 파벡 중장은 전공만 더 세우면 대장 달아도 이상하지 않을 유능한 사람이다.
답 없는 문제를 어서 해결해 보라는 식으로 이어지기 전에 난 바로 가드를 올렸다.
“전 당시 페탱 소장님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을 뿐입니다. 적에 대해서 저보다는 페탱 소장님이 더 잘 아실 겁니다.”
페탱, 막아줘.
이제 와서 전략적으로 달라질 건 없기에 회의 끝날 때까지 입꾹닫하면 될 거다.
“당시 난 아르덴 숲 안으로 한 발짝도 들어가 보지 않았소. 다들 들었겠지만 그때 전략을 낸 것도 우리 젊은 모헬 소령이지. 부끄럽게 내 아랫사람 명예를 내 가슴팍에 달고 싶진 않소. 모헬 소령, 정말 괜찮으니 자네 직급이나 위치는 신경 쓰지 말고 편히 발언하게.”
음, 가드가 스스로 내려가는 건 예상 못 했는데. 페탱은 날 윗사람 생각해주는 예의 있는 놈으로 만든 뒤 다시 발언권을 떠넘겼다.
다시 회의실 탁자는 내게로 기울어 시선과 관심이 쏠렸다. 여기서 다시 밀어내긴 힘들어 보인다.
회의를 주도하는 두 장군 페탱과 브루제르.
브루제르가 잡아 고정하고 페탱이 두 손으로 찢으니 내 입이 열릴 수밖에 없다.
“적이 추가로 북부에 투입한 군은 군단 세 개 규모. 군단 하나가 아라스로 왔다면 다른 전선에 가는 부담이 줄었다는 의미입니다. 즉, 저희는 막기만 하면 됩니다.”
“그 막는 걸 어찌하겠단 의민가?”
“준비된 아라스 외곽에서 적과 대치하여 싸우는 게 최선입니다.”
“그럼 된다고? 음? 더 없나?”
“어··· 다른 전략 말씀이십니까?”
“전략이든 뭐든 말이야. 내 확신이 없네, 확신이.”
결재 서류 읽지도 않고 반려하는 상관처럼 행동하는 브루제르.
아, 이제 알겠다. 우리 브루제르 장군이 내 입에서 듣고 싶은 소리가 뭔지.
‘하아··· 패배하고 밀린 놈이. 아니, 그래서인가?’
브루제르 장군이 후퇴했어도 무능하단 생각은 안 해봤는데 더 최악이네.
“제 자리를 걸고 장담합니다. 적은 아라스 외곽 절대 못 뚫습니다. 저길 뚫었다? 그럼 이미 전멸 직전인 상태일 겁니다.”
“호오, 역시 적을 제일 잘 아는 이의 말이라 그런지 믿음이 가는군. 역시 철저히 대비해온 6사단의 영웅다워!”
책임 전가. 다른 말로 방패막이 세우기.
“내 자네에게 거는 기대가 크네!”
“하하···.”
그래, 요즘 시국이 좀 무섭긴 했지. 뭐만 하면 다 실각시키고 다음 날 출근하려고 보니 책상이 사라진 풍경이 흔했으니.
반대로 나와 페탱이 나서서 싸웠는데 졌다? 그럼 역시 질 만한 싸움이어서 진 거라는 핑계가 생기는 거다.
즉, 나에게 약간의 주도권을 주는 듯하나 결국 지휘관이란 새끼가 처음부터 패배 이후의 자기 보신이나 걱정하고 있다.
그 옆의 페탱 사단장님의 의도는 다르겠지만.
저 입가의 은은한 미소를 봐. 몇 번 봤지만 역시 적응 안 된다니까. 또 머릿속에서 얼마나 치졸하고 더러운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우 소름 돋아.
이후 이어진 것들은 이미 내 관심 밖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일개 소령한테 기대려는 놈인데 무슨 토의를 하고 전략을 짜. 그냥 적당히 1인분이나 하길 바랄 뿐이었다.
사단장님 훈화 말씀만큼 따분한 겉보기식 회의가 끝나고, 난 곧장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착, 착.
성냥을 꺼내 불을 붙이려는데 전부 박스 옆을 스크래치 내다 부서진다.
“에이 시발, 이젠 불도 안 붙어?”
“이젠 나 들으라고 화도 내나?”
“어이쿠, 계셨습니까? 전 몰랐습니다요?”
그가 성냥에 불을 붙여 내게 내밀었다.
뒤따라 나온 페탱은 여전히 흥미진진함을 잃지 않았다. 저게 더 짜증 나서 일부러 들으라고 욕부터 박았다.
“아까 보니 브루제르 장군이랑 아주 손발이 잘 맞던데 이참에 아주 함께 살림을 차리시지 그러셨어요?”
“쯧, 상관한테 하는 말투하고는. 내일부터 고생할 거 생각해 이번만 봐주지.”
“후우···.”
한번 내뿜으니 이성이 조금은 돌아온다.
페탱한테 여기까지 깝쳤는데 여전히 웃는다면 더욱 뭔가 있다는 의미다.
“뭡니까 그래서. 내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한테 뒤집어씌우는 판이던데.”
“그렇지. 자네가 만든 참호고, 그거 만든다고 자넨 최전방 합류를 거부했잖은가.”
“단어 선택이 조금··· 아니, 그럼 사단장님은요?”
“나? 난 그걸 허락한 상관이지.”
“···.”
툭.
물고 있던 담배가 바닥에 떨어졌다. 뭐지? 노망인가?
“흐흐, 이보게. 모헬 소령. 자넨 이런 부분에서 꼭 약하더군. 잘 생각해보게. 아까 그 자리에서 브루제르가 떠넘긴 게, 과연 책임인가?”
“책임이라면서요.”
“더 있지. 그자는 단지 무서워서 명예와 영광도, 전후의 공도 다 넘긴 걸세.”
“그자, 너무 우리 6사단을 믿은 거 아닙니까?”
“믿었다고? 아니지. 못 믿어서 떠넘긴 거라네.”
페탱의 말에 난 곰곰이 아까의 대화를 상기해봤다.
정리하자면, 적 13군단이 온다는 소식에 급한 대로 한 게 패전 시 책임 떠넘기기. 나한테 하는 말이 대충 그런 느낌이긴 했다만.
“그럼 왜 사단장님은 이를 두고 보신 겁니까?”
“우린 패배하지 않으니까. 저런 머저리 같은 자식이 승리 후 머리를 들고 다닌다 생각하면 벌써부터 화가 치밀어 오르네. 그래서 조금 부추겨 봤지.”
“살살 긁으니 브루제르는 옳다구나 하면서 넘어왔군요.”
“그래.”
이 사람은 전생에 곶감이라는 이름의 여우였을 거야.
그래, 내가 정치질 할 때라 말하긴 했다만 이리 적극적으로 모략질 할 거란 생각은 못 했다.
“왜, 걱정되는가? 적 13군단이 추가되어서?”
“지진 않겠죠. 얼마나 큰 승리를 하느냐는 적에게 달렸겠지만.”
패배하지 않는다. 이 부분은 확실해서 아까 브루제르의 말에 장담할 수 있었다. 다만, 이길진 모르겠다.
파벡이 아라스 최전선을 무너트렸지만 과연 그가 아라스에 모든 것을 걸었는지는 난 모른다.
적 13군단의 이동 경로에 따른 경우의 수는 둘.
하나, 아라스로 곧장 향하는 경우. 우리랑 끝장 보겠단 의미다.
둘, 아라스는 무시하고 솜을 파고들어 여전히 아미앵으로 향하는 경우. 이러면 우린 마냥 아라스에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된다.
뭐가 되었든 내일이면 전선에 나타나겠지.
패배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이거다. 난 여전히 13군단이 고작 우리 때문에 과투자했다고 확신하진 않거든.
“이렇게 판 벌였는데 실패하면 아르덴이랑 마른에서 쌓은 거 다 무위로 돌아갑니다. 아시죠?”
민들레처럼 후 불면 날아갈 위치는 아니다만 튼튼한 뿌리 한쪽은 뽑힐 정도의 정치적 타격은 입는다.
“당연한 말을. 자네가 그랬지. 저 위로 가야만 살아남을 거 같다고. 나 역시 같아. 난 저 위로 가야겠어. 저 머저리들이 내리는 명령에 내 목숨을 맡길 순 없다네.”
“그것만은 아니신 거 같은데···.”
나랑 목적이 같다고 하기에는 눈에 비치는 욕망은 생존 욕구로 안 보인다만, 뭐가 되었든 좋다.
“후우, 좋습니다. 말만 참호전이지 어차피 불공평한 참호전 아닙니까?”
우린 참호가 있고, 적은 없다. 근데 상부에서도 열세를 인정하고 수비로 분위기를 돌렸으니 참호 밖으로 뛰쳐나가 줄 이유도 없다. 즉, 난 20세기 최고의 대기충이 될 생각이다.
“아직 전선에는 참호의 무서움을 아는 사람이 없네. 지금이 기회란 말이지.”
“마치 사단장님께선 참호전을 겪어 보신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페탱의 신들린 지휘력은 인정하나 과도한 평가를 하진 않는다. 누구라도, 설령 포슈라도 완벽하지 않거든.
“겪어 보지 않아도 간단히 알 수 있다네. 내가 군단이 있어도 난 이거 못 뚫어.”
“···단호하시군요.”
“이 결론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뇌를 겪었는지 자넨 모르겠지. 처음 참호전이라는 개념을 자네가 제시했을 때부터 난 생각해왔지만 결론은 여전히 똑같아. 참호 공략은 자살이야.”
자기가 못 뚫으면 적도 못 뚫는다라. 오만하지만, 필리프 페탱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요즘의 페탱은 인생 말년에 전성기라도 왔는지 자신의 재능을 막 개화한 사람처럼 날아다녔다.
“참호가 마냥 뚫기 불가능한 물건은 아닙니다.”
“그래, 조건이 한 세 가지 정도 주어진다면 가능하지.”
“그게 뭡니까?”
“적의 병력 보충 제한. 충분한 시간. 그리고 충분한 화력. 다행히 적은 셋 다 없군?”
마지막 조건은 누가 화력제일주의자 아니랄까 봐. 포방부가 좋아할 인재가 여기에 딱 있네. 시대와 조국만 잘 선택하면 딱 한국 맞춤형 인재가 아닐까.
‘뭐, 틀린 말은 아니지.’
되려 참호 공략의 정석에 가깝다.
“아무리 육고기가 충분해도 그 육고기들은 생과 사로 분리될 뿐이지.”
“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근데 말입니다.”
“근데?”
“왜 난 우리 사단장님이 한 방을 노리는 도박중독자처럼 느껴지는 걸까요?”
원래 이런 분이 아니신데 참. 혼잣말 아닌 혼잣말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쳐다봤다.
이거, 사단장님 스타일이 아니잖아.
페탱은 작은 주춧돌 하나도 잘 다듬어 큰 건물을 완성하는 사람이지 125배 선물거래 한 방에 전 재산 몰빵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그의 이런 스타일이 폭발하는 게 바로 베르됭 전투. 대규모 교전에서 페탱은 철저히 작은 이득을 쌓아 서서히 전세를 뒤집으려 했다.
그 때문에 강력한 한 방을 원하는 조프르랑 아예 갈라서게 된다만 아무튼. 난 페탱의 국채와도 같은 리스크와 코인과도 같은 수익률에 투자한 거다.
“후우, 다 자네 때문이야.”
“···?”
음?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이 환갑 보는 노인이 무슨 개떡 같은 소리를 한 거야.
“제 탓이라뇨? 잠시만, 사단장님?”
자기 할 말은 다 했는지 페탱은 내 외침에도 등을 돌려 걸어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