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46
046화
파벡의 선택과 행동은 즉각적이었다.
여러 곳으로 분산된 적의 포격.
참호에 떨어지는 포탄 세례에서 독일군의 진심이 느껴진다.
이 모습에 난 쾌재를 불렀다.
“역시 단 한 발도 철책으로는 안 쏘는군.”
철조망 대비책이라고 나무판자로 대충 못 박아 만든 듯한 사다리가 보인다만 그걸론 역부족이다.
질서 정연하게 저 사다리 타서 넘어도 하루 종일 걸릴 텐데 우리가 바보도 아니고 그걸 가만히 두겠나.
내가 볼 땐 저 판자에 발을 올린 이들이 가장 먼저 죽게 될 거다.
일부 철조망이 없는 구역도 있지만 이는 의도적이다. 좁은 틈을 내줘 그곳으로 적이 밀집되도록 유도한다면 전부 기관총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테니.
“적의 거리가 가까워졌는데 아군도 근거리 포격으로 전환해야 하지 않겠나? 척 봐도 숫자가 적지 않아 보이네만.”
지켜보던 슈티른 대령은 염려를 표했지만, 모르는 소리다.
“조금은 몰라도 모든 포격을 근거리로 돌리면 안 됩니다. 괜히 근거리 포격했다 철조망 제거해주고 지뢰만 해체해주는 꼴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포병의 화력 없이 대보병전을 치러도 괜찮나?”
“중앙 지휘 막사에서도 아무 말 없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지금 선발대에 포격을 가하는 순간 후발대는 더 가까이 다가오게 될 겁니다.”
근거리 포격을 해선 안 되는 가장 큰 이유가 철책이고 그다음이 구덩이의 생성이다.
아무리 유산탄이어도 화포는 화포. 터지는 것만으로 땅에 구덩이를 남기는데 이는 전진하는 적에게 엄폐물이자 소형 참병호가 될 수 있다.
적 포병이 자기 보병 위에 고폭탄 쏴줄 게 아니라면 저 철책은 이제 완벽히 사람이 손으로 제거해야만 한다.
적은 프랑스군과 싸우기 전에 철선과 사투를 벌이게 생긴 거다.
‘선발대가 어느 정도 가까워지니 후발대도 슬슬 움직이는군.’
적 선발대의 역할이 용맹한 돌격이라면 후발대의 역할은 비열한 기습이다.
뭐가 되었든 내 눈에 전장에서 일어날 추가적인 변수는 없는 것으로 확인된다.
“교전 깃발 올리도록.”
“알겠습니다!”
전통적이지만, 음성이나 유무전이 쉽지 않은 전방에선 가장 효율적인 일방 통신 방법.
바로 기수다.
깃발로 명령이 오가는 것은 명령 노출부터 실수 위험까지 문제투성이다만 그 효과만큼은 이 시대 최고다.
교전 깃발이 펄럭이자 1분도 안 되어 내가 보는 시야가 소리로 가득 찬 느낌이 들었다.
한 발 한 발 정확하게 조준하여 쏘는 소총부터 일대 초토화를 목적으로 하는 중기관총까지.
이 모든 총소리를 잠깐씩 뒤덮는 폭음이 울렸지만 이내 소리는 멀어졌다.
파벡 또한 참호에 독일 병사들이 가까워지자 포병의 사격 목표를 우리 뒤로 변경한 거다.
“그래, 아군 머리 위에 포탄 쏘려는 놈이 어딨어. 사기 떨어질라.”
그럴 줄 알았다는 미소로 중얼거리자 옆에서 이상한 시선이 느껴진다.
“….”
아무 말 없이 날 쳐다보는 슈티른 대령님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무것도 아니네.”
잠시 방해가 있었지만 난 다시 살육의 장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아라스에 흐르는 강이 스카프강(Scarpe River)뿐이라고? 오늘부턴 아니다.
그 옆에 게르만의 피로 이뤄진 강이 하나 더 생길 참이니까.
***
“포신 방열! 준비 끝!”
“거리는 똑같잖아! 몇 각이야!”
“680입니다!”
“바로 준비해!”
박격포. 360도를 또 나눠 720도나 되는 각도로 조절 가능한 신비한 물건.
쾅!
“오탄 났네. 바닥 고정 똑바로 했는데 왜 안 맞는 거야! 다시 준비해!”
페리스 병장의 지시에 아래 분대원들은 재빠르게 사격 절차를 밟았다.
“준비 끝!”
“쏴!”
투쾅.
작은 포신에서 났다고 생각하기 힘든 거대한 폭음이 울려 퍼지고 페리스는 곧장 관측에 들어갔다.
콰광.
“명중.”
잔해 뒤에 숨어 있던 적 경기관총 하나와 소총병들 머리 위로 정확히 떨어졌다.
“다음은 전방 280m 1시에 쓰러진 나무 뒤로 조준한다. 이번에도 1분 넘겨봐. 너흰 내 손으로 죽여줄 테니까.”
진심을 가득 담은 경고에 분대원들의 손은 더욱 빨라졌다.
“준비. 쏴!”
투쾅.
또 한 번의 박격포탄이 적에게 날아갔다.
***
압도적인 포격으로 시작한 아라스 전투.
‘약간의 출혈’을 제외하면 압도적일 거라 생각하던 독일군의 예상이 무색하게 전장은 그리 우세하지 않았다.
포격의 효과인지 선발대의 접근은 순조로웠다.
딱 철조망 앞까지는.
“사다리로 넘어가! 넘어가라고!”
“아냐! 넘어가지 마! 지금 위로 올라가면 죽어!”
철조망은 그리 높지 않았다. 일부는 사람 키보다 낮은 곳도 많았기에 쉬울 것처럼 보였지만.
“젠장, 옷에 걸렸어!”
“옷 벗어! 빨리 숙이라고!”
“벗고 있는 중-”
탕.
온몸을 노출한 채 수많은 적 총구 앞에서 옷을 벗는 게 가능할 리 없다.
그나마 생각 있는 이들은 사다리를 과감히 버린 채 일자형 철조망 아래를 뜯어 통과했다.
그런 그들에게 기다리는 것은.
철컥. 쾅.
폭발력이 그리 크지도 않은 지뢰. 해봤자 발목 정도까지만 날아가는 폭발력이지만 이는 행운이 아닌 절망이었다.
지뢰를 밟은 이들은 타깃이 되지도 않는다. 그저 과다 출혈로 죽기 전까지 고통에 울부짖을 뿐.
이를 지켜보는 주위 독일군은 공포감에 휩싸였다.
“전진! 당장 앞으로 달리라고!”
“나, 난 저렇게 되기 싫어!”
무의미한 죽음. 안타까운 희생이라 부를 수조차 없다. 그저 개죽음이기에.
그렇다고 프랑스군의 분위기가 좋은 것은 아니었다.
투두두두.
타앙!
이마에 난 구멍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그와 동시에 기관총 사수의 신형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졌다.
“젠장! 알렉스, 네가 이제부터 탄띠 맡아! 내가 기관총 잡는다!”
“테포 하사님, 적 저격수가 너무 많습니다!”
바이에른 왕실의 근위사단이란 위명답게 조준조차 하지 않고 중구난방으로 쏘는 어중이떠중이와는 수준부터 다르다.
저격을 위한 이들이 적 보병 속에 섞여서 기관총 사수를 최우선으로 제거하고 있다.
테포 하사는 이를 잘 알았지만.
‘화력이 비면 중기관총 사수가 아니라 아군 전체가 위험해진다고!’
위험하다. 아마 몇 분 내로 영혼을 잃어버린 시체가 될 수도 있겠지.
그럼에도, 해야 한다.
“닥쳐! 적 저격은 아군 저격수에게 맡기고 우린 기관총 잡는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기관총 총구가 다시 적을 조준한다. 고작 화력이 몇 초 비었을 뿐인데 적이 더 가까워진 기분.
아라스, 이 땅은 저들의 발자국 하나 남아선 안 되는 땅이다. 빈틈이라 생각해 접근하던 적 보병들이 순식간에 편육이 되어 쓰러졌다.
구리 탄피가 바닥을 채워간다. 코를 찌르는 화약 냄새가 피 냄새를 뒤덮어주는가 싶었지만.
탕!
“어?”
어디서 날아온 건지 모를 탄 하나가 그의 귀를 스쳐 지나갔다.
순간 자신이 맞았나 싶었지만 사고가 이어지는 걸로 보아 아니었다.
대신.
“…어?”
“야, 야! 정신 차려!”
“하, 하사…님.”
탄띠를 잡아주던 병사의 오른쪽 눈에 초롱초롱한 안광은 사라지고 검붉은 홀이 생겨났다.
뒤이어 사방으로 튄 피에서 혈향이 코를 찌른다.
그걸로 기관총 부사수는 죽은 선임 옆에 쓰러졌다.
“씨발, 씨발!”
욕을 내뱉어도 그를 따르던 병사는 이미 죽었다.
테포에겐 이 고통을 인지하고 느낄 틈도 없었다.
적은 여전히 철조망을 어떻게든 넘어 참호로 다가오고 있다.
기관총의 총열이 식어선 안 됨을 테포는 잘 알았다.
투두두두.
“느그 나라로 돌아가라고오!”
저들 또한 누군가의 자식이고 가장이란 사실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 미칠 거 같은 감정의 폭풍을, 살육으로 조금이라도 씻어내고 싶었다.
그게 되려 제 손을 더럽히는 일이어도.
***
프랑스군의 피해가 없다면 거짓말이다.
유리한 전장, 유리한 상황, 유리한 대치 구조.
그러나 피해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축적되고 있다. 이 축적된 피해가 터지면 방어선이 뚫리는 것이다.
베르게르는 적의 선발대가 정확히 얼마인진 몰라도 최소 1만은 넘을 거라 생각했다.
‘후발대는 더 되겠지.’
적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직접 총을 들고 싸우진 않아도 베르게르는 사방에서 일어나는 교전을 최대한 눈에 담으려고 애썼다.
단 한 곳이라도 적에게 내주면 끝장이다.
완벽에 가까운 지금의 화망 구성도, 병력 배분도 참호와 함께 무너질 수 있다. 특히나 적의 숫자가 우월할 때는 더욱 손쉽게 말이다.
베르게르의 의지가 반영되듯 참호는 버텨주고 있었다.
마치 독일군 한정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도 되는 것마냥 그들의 출입을 허용치 않았다.
시간이 지나도 선발대가 다가가지 못하는 모습에 파벡은 못 볼 것이라도 본 것처럼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어찌 제대로 뚫은 곳이 하나 없단 말인가!’
적지에 겨우 도달하는 병사가 있어도 그 뒤를 받쳐줄 분대가, 그 분대를 받쳐줄 소대가, 그 소대를 받쳐줄 중대, 대대가 없다.
그저 이 짧은 경주를 완주한 몇몇 독일 병사에겐 죽음이란 영원한 휴식이 기다릴 뿐이었다.
지나치게 압도적인 적의 화력.
기관총이 저리 많을 리는 없다. 아마 아르덴 숲에서 사용한 기관단총이란 물건이 섞였겠지.
그렇다 한들… 이리 차이가 날 수 있단 말인가.
프랑스군 병사 하나가 참호에 겨우 가까워진 독일군 소대 하나를 몇 초 만에 전멸시킨다.
마치 한여름 길거리에 놓인 얼음처럼 선발대가 참호 앞에서 문자 그대로 녹아버리고 있다.
예상치 못한 이 상황에, 파벡은 잘못된 판단을 해버리고 말았다.
“적이 선발대에 정신 팔린 지금. 후발대 투입을 서두르게!”
“하지만 사령관님, 어디로 투입한단 말씀이십니까! 아직 적지에 뚫린 곳이 없습니다!”
“최대한 빈약한 곳이라도 찾아! 찾아서 한시라도 빨리 비집고 들어가 해! 자네 눈엔 안 보이나? 지금 이 순간에도 선발대는 죽어가고 있다고!”
후발대 투입에 시간제한이 생겨버린 순간 파벡에게 선택지는 딱 둘뿐이었다.
잠깐이지만 맛본 적의 압도적 화력에 순순히 꼬리를 말고 물러나든가.
아니면 비록 큰 피해가 예상되지만 압도적인 숫자를 믿고 전 보병을 투입하든가.
고뇌는 깊었지만 고민은 짧았다.
파벡에게 뒤로 가는 선택지란 처음부터 없었다.
오직 전진. 이미 선발대라는 주사위를 던졌기에 그다음 주사위 또한 죽이 되든 수프가 되든 던져서 결과를 봐야만 했다.
원래라면 상처 입은 영양 주위를 돌면서 주시하는 하이에나처럼 움직였을 후발대가, 이리 선발대의 전철을 밟게 되어 버렸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그래, 너희도 어서 와라. 정말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베르게르가 그토록 원하던 그림.
비브 라 프랑스 돌격, 우라 돌격에 이은 세 번째 버전.
바로 후라(Hurra: 만세) 돌격.
복잡하게 선발대니 후발대니 나누는 거 말고 그냥 무식하게 참호로 병사들을 몰아넣은 것과 결과적으로 다를 바 없어지는 모습.
아무리 통제해서 나아가려 해도 딱 철조망을 지나면 모든 게 무너진다. 그저 하염없이 앞으로 내달리는 병사만 남게 된다.
베르게르는 아득바득 버틴 보람이 있다 생각했다.
만약 후발대가 무너지는 선발대를 반면교사 삼아 뒤로 빠졌다면 아라스 방어는 포기해야 했을 수도 있다.
그땐 아라스에서 참호전 자체가 끝이다.
파벡이 진심을 담아 아라스 공세가 아닌 단계적 함락을 목표로 움직일 테니까.
“이 자리에서 딱 한 방에 끝내자고. 딱 남자답게 말이야.”
적이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어서 자신의 목을 따러 가까이 다가와 줬으면 한다.
다가올수록 빠져나가긴 더 어려울 테니까.
“적의 후발대가 왔다. 버텨. 이젠 버티기만 하면 이기는 싸움이야!”
“지금부터는 아무것도 아끼지 마라! 다 쏟아버려!”
참호 앞에서 후퇴는 미친 짓이다. 이를 파벡도 느꼈기에 이미 한 발 빠진 늪에 다른 발까지 넣는 우를 범했겠지. 그러면 늪을 건너갈 수 있다고 착각한 거다.
초가을이라 여전히 해가 늦게 지는 것조차 최상이라 여겼다. 밤이 되면 탁 트인 평야의 이점이 사라질 테니.
“다 퍼부어! 오늘만 지나면 끝나 있을 거다!”
이대로 화력 유지만 할 수 있다면, 이 싸움은 자신의 승리다.
그리고 이 승리의 끝은, 파벡의 손에서 이뤄졌다.
바로 전군 투입이라는 뒤 없는 강수를 통해.
해가 지기 전에 뚫겠다는 그의 의지였다만.
파벡의 의지가 얼마나 간절하건, 저들의 병사들이 얼마나 사기가 높건.
참호 앞에선 모두 무의미했다.
‘그래, 아르덴 숲으론 부족했지. 난 다 이해해.’
참호의 위험성을 인지할 순 있어도 그 무서움은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베르게르 스스로도 안다 생각했지만 이번 전장에서 등골이 서늘할 때가 몇 번이나 있었으니까.
화력이 비어버려 몇몇 참병호가 적에게 점령당했을 때는 그조차 담담히 야전을 지휘할 수 없었다.
곧장 점령당한 아군 참병호에 박격포 공격을 명령하고 이를 재탈환하는 일도 여러 번 일어났다.
하여튼 간에, 이제 변수는 없다.
이젠 전장에 더 올릴 판돈도 내세울 카드도 없다.
파벡 중장과 모헬 소령 둘 다 마지막까지 올인을 선택했으니.
지금은 패를 까야 할 때.
그리고, 해가 질 때쯤 드러난 결과는.
“끝이군.”
모헬의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