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48
048화
모헬이 눈을 감고 쉬는 사이, 쉬지 않고 움직이는 세상은 격변하고 있었다.
이유는 바로 아라스에서 시작된 이상 전운 때문이었다.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전과.
아직 랑스의 전투 같은 대치는 계속되고 있지만 분위기는 아라스의 압승 덕에 매우 긍정적이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챙겨서 북부 전선 총사령관으로 파견된 포슈가 아라스의 상태를 제대로 확인하기도 전에 이 소식은 몇 장의 사진과 함께 민간으로 흘러 들어갔다.
하루에도 수백 번 일어나는 전투. 수없이 죽어가는 병력. 승전과 패전을 오가는 전장의 소식은 보통 군의 손을 거친다. 그 정제된 정보가 민간으로 퍼져가는 거고.
단, 아무리 프랑스군이라도 모든 종군 기자와 전쟁 소식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서부 전선에는 프랑스군뿐만 아니라 영국군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서부 전선 종군 기자로 파견되었던 갓 서른 살의 젊은 기자, 아서 랜섬(Arthur Michell Ransome).
급진적 애국 신문인 ‘The Daily News’의 외신 특파원으로 서부 전선에 자원하여 온 그는 마른의 신화를 써낸 6사단을 취재하기 위하여 왔다.
당연히 군의 통제하에 사진을 찍어야 했고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전장도 가장 뒤에서지만 함께했다.
그 노력의 결과일까.
‘대박이다!’
러시아의 동부 전선과 프랑스의 서부 전선 중 서부로 온 것은 신의 한 수였다.
본래라면 북부 전선에서 용맹하게 싸우는 영국군을 중심으로 프랑스의 최전선을 달린다는 6사단을 곁들여 쓰려던 초고 따위 찢어버렸다.
전초기지에서 싸운 영국군은 한 줄 언급하기조차 아깝다.
아라스에서 일어난 이 기적 같은 일을 다른 누구보다 먼저 알려야 했다. 특종이라 부르기도 부족하다.
아무리 더 데일리 뉴스가 급진적이고 애국을 강조한다지만 아라스에서 일어난 사태는 그딴 신문사 기조 따위를 무시해도 될 정도의 일이었다.
다만 이를 어찌 사진과 함께 담아 본국에 보내느냐가 문제였다.
어느 장면을 찍어서 1면을 장식해야 할까.
과연 군부에서 이를 순순히 용납해줄까.
이런저런 염려와 함께 흥분되는 마음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차.
한 사람이 참호 위에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베르게르 모헬 소령···.’
늙은 지휘관들이 무슨 전략을 세웠고, 어떤 능력을 발휘했다는 소식은 식상하다.
저거다. 저자가 그의 기사를 끝없는 매진으로 이끌어줄 자다.
참호 위에서 그는 권총 하나를 높이 치켜들었다. 이에 주위 병사들은 세상을 다 가진 표정으로 호응한다.
찰칵.
무표정한 눈에 입가만 잔잔히 웃는 그와 대조되는 병사들의 생동감 넘치는 표정.
완벽하다.
이후 참호 앞에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널려있는 독일군 시체와 몇 장의 사진을 더 찍은 뒤 부리나케 타자기 앞에 앉았다.
독자들이 원하는 것.
영국, 프랑스 가릴 거 없이 모든 연합국 시민들이 애타게 찾는 것.
그것은 바로 새로운 영웅이다.
시민들이 바라는 영웅이란 수염을 길게 길러 뒤에서 지도나 펼친 채 손짓으로 병력을 움직이는 자가 아니다.
두 발로 전장에 서서 총을 들고 최전선에서 싸우는 젊은 영웅.
고작 25살의 젊은 소령.
전쟁 전부터 나돌았던 예언에 가까운 식견.
전장에서 보여준 전술. 그의 리더십.
아라스 제33보병 연대의 전투력과 유대감.
그의 업적과 적에게 떨친 악명.
아르덴, 마른, 아라스를 잇는 전설의 서사시.
아서는 모헬 소령에 관해 써 내려갈 내용이 넘쳐나자 행복감에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의 원고는 이내 세상으로 퍼졌다.
***
“떫? 쓰읍···.”
볼 옆을 타고 흘러 모포를 흥건히 적셔대는 침을 닦아낸 뒤 주위를 둘러봤다.
분명 잠깐 잔다고 파비앵을 옆에 두고 잠들었는데 나 혼자 남았다.
“으으, 얼마나 잔 거지?”
간이침대에서 일어나 겉옷 하나만 챙겨 개인 막사를 나왔다.
가장 먼저 보이는 하늘은 해가 져간다.
“뭐야, 얼마 안 잤나.”
푹 잔 거 같은데 두세 시간 정도 잤나 보다. 조금 찌뿌둥하지만 정신은 개운하다.
“충성!”
“어, 그래.”
손만 들어 지나가는 병사들 경례를 받아주는데 뭔가 이상하다.
어딘가 나만 빼고 세상이 쪼오금 늙은 느낌.
전투 직후라 어지럽던 부대가 약간 정리된 것 같다. 괜히 내가 농땡이 부린 기분이랄까.
“어, 소령님. 일어나셨습니까?”
“파비앵, 뭐야. 언제 다 치웠대?”
“어제부터 작업했거든요.”
“어제? 잠시만. 오늘이 며칠이지?”
“8일입니다.”
“뭐라고? 나 설마 지금까지 계속 잔 거야? 깨웠어야지!”
“슈티른 대령님께서 쉬게 두라고 하셔서. 하하.”
“내 7일. 내 10월 7일은 어디 간 거야···.”
배려는 고마운데 지금 내가 처자고 있을 때냐. 하루 쉬면 그다음 날 할 일이 배로 가중되는 거밖에 더 되겠냐고. 그래도 그 마음은 고맙다.
어젠 진짜 피곤해서 죽을 뻔했으니까.
그러고 보면 군 생활 하루 날먹한 거니 좋은 건가? 나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데.
“아, 맞다. 주요 일정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일정? 무슨 일정.”
그딴 게 어딨어. 이대로 아라스 며칠 더 지키다가 다른 사단한테 자리 내주고 우린 빠져야지.
지금 철도 남는 자리에 애들 후송 보내고 전투 물자 재정비하고···.
아니 그 전에 부대 재편부터 해야 할 판인데?
“정확히는 지휘관들 일정인데. 북부 사령관님과 만남이 있으십니다.”
“북부··· 사령관?”
그러고 보니 중앙 지휘가 물리적으로 힘드니 10월부터 전선 분할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북부 사령관으로 오는 양반은···.
‘포슈!’
개밥에 말아먹어도 시원찮을 새끼. 마른에서 개처럼 구르고 숨 좀 돌리려니까 ‘어딜 감히!’를 시전하며 날 여기에 처박은 장본인.
그나마 아라스 방어전이 잘 풀려서 다행이지 릴 같은 데로 갔다면 지금 난 죽었을지도 모른다.
‘적 13사단이 아라스 최전선에 나타났으면 바로 지원부터 보냈어야지 솜 조금 뺏겼다고 잔류 병력을 전부 솜으로 보내냐!’
전술적으로 맞는 판단일진 몰라도 아무튼 우리 33연대에서 포슈는 천하의 쌍놈이다. 물론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전부지만.
“갑자기 또 왜 그러신다냐. 삼성 장군씩이나 되시는 분이 우리 같은 마룻바닥 벌레들은 왜 찾으신대?”
“안 찾는 게 이상하지 않을까요. 어차피 우리가 후방으로 빠지는 건 확정입니다. 전장 지휘 중도 아니시니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아, 그렇게 되네.”
페탱 사단장님의 강력한 후방 요청은 곧장 수리되었다. 남아서 싸우라고? 싸울 적이 다 뒤졌는데? 적이 새로운 군단을 아라스로 파견할 만큼 여유롭진 않아 보인다만.
교대의 시간이다.
“우리가 아라스에 있는 건 다음 주까지로 보입니다. 빠르게 움직인 덕에 랑스에서 적도 한발 물러나게 되었다 하더군요.”
랑스.
아라스랑 얼추 비슷한 수준의 도시지만 여기가 중요한 이유는 딱 하나다.
아미앵에서 아라스를 거쳐 랑스까지 철도가 이어지거든.
이 시대 보급은 딱 두 가지 방법밖에 없는데 그리스의 알렉산더가 그러했고 로마의 카이사르가 써먹은 전통의 말 수송이 첫 번째 방법.
그리고 두 번째로 문명의 이기와 근대 과학의 결정체인 철도 수송이 있다.
당연한 소리지만, 기차 수송 없이 전선 유지는 어림도 없다.
몇 톤씩 하는 대포를 말로 어떻게 옮길 건데?
무지막지하게 소모하는 포탄, 총알은?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먹는 식량은?
철도 없이 보급하라면 장담하는데 각 부대 보급관들의 대대적 반란이 시작될 거다.
아마 내가 틀어버린 가장 큰 역사가 아닐까 싶다. 내가 알기로 랑스도 뚫려서 아라스에서 최종 방어하고 끝나거든.
그래, 좋은 소식이긴 한데···.
‘젠장! 포슈가 이번에는 왜 또 보자는 거야. 난 안 보고 싶다고!’
설마 또 다른 데서 굴리려고? 일말의 상식과 양심이 있는 사람이면 어찌 그러겠냐만 내가 아는 포슈는 진정한 의미의 악마다.
아마 내가 하루 종일 잤다는 소식 들으면 당장 침대에서 내 엉덩이를 걷어차기 위해 달려올 그런 치졸한 인간이라고.
그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권력에 침 흘리진 않지만 자기 아래 누군가 땀을 안 흘리면 잠 못 이루는 사이코패스.
‘이래서 역사에 기록된 대로 믿으면 안 된다니까.’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고 온갖 빈약한 근거로 결과만 해석해놓은 소설이다.
적어도 내가 겪은 역사는 하나같이 나사가 빠져있다고.
세상에 누가 알았을까. 벨기에, 영국, 프랑스를 아우르는 원수께서 이리 비겁하고 치졸하며 타인의 고통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차가운-
“모헬 소령님,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소령님 일어나시면 바로 사령부로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날? 또 왜.”
다들 왜 날 찾는 거야. 베르게르 모헬은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어요.
아니, 솔직히 나 이제 필요 없잖아. 전장 한정으로 월권 행사한 거지 슈티른 대령님한테 가서 해결하라고 좀.
슬슬 프랑스 노동총연맹(CGT: Confédération Générale du Travail)에 가입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항의 내용은 독일군 때문이 아니라 블랙 기업의 과도한 업무 지시로.
가고 싶지 않다는 내 마음이 드러났는지 파비앵은 단호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마치 엄마가 아이한테 ‘떼쓰면 안 돼요’라고 눈을 부릅뜨는 느낌이다.
나 진짜 힘들다니까? 나도 너희랑 똑같은 인간이라는 인지는 하고 있냐.
짧은 눈싸움에서 진 건 나였다. 에휴, 이게 부사관한테 잡아먹힌 장교의 삶이란 말인가. 서러워서 입 안에 주먹이라도 넣고 울고 싶다.
쫄래쫄래 파비앵 뒤를 따라 도착한 사령부 막사는 오늘따라 칙칙해 보인다.
‘들어가기 싫다. 들어가기 싫다. 들어가기 싫다···.’
일개 소령한테 소령이 손도 못 댈 법한 일이나 시키겠지. 페탱도, 슈티른도 그런 양반들이니까.
한 번의 숨을 내뱉고 들어간 사령부에는 역시나 페탱과 슈티른이 ‘어서 와, 노예야’라는 푸근한 표정으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충성.”
“앉게.”
앉으란 말은 간단한 명령이 아니라 이야기가 길어진다는 신호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헬 소령. 우리가 생각보다 사고를 거하게 쳤네.”
“불안하게 무슨 밑밥을 그리 까십니까. 전투도 이겼는데 무슨 사고요. 설마 아군이라도 오인사격으로 죽였습니까?”
“아니, 다만 파급효과는 더하지.”
아씨, 뭔데 아저씨들아. 당신들은 늙어서 간 떨어져 죽어도 안 억울하지만 난 아니라고.
“너무 이겼어.”
“···예?”
“지나치게 이겼다고. 그리고 이 사실이 외부로 흘러나갔네.”
“고작 5일 만에요? 아니, 실질적인 작전 종료는 4일 전인데요? 통제는 어떻게 된 겁니까?”
“영국 측에서 먼저 터트렸네. 이에 질세라 프랑스 언론도 곧장 베껴서 기사를 냈고.”
“이게 뭔···.”
딱히 내가 잘났다고 벌써부터 나대고 싶지 않다만.
나와 페탱의 일차적 목표는 이걸 토대로 저얼대 참호전에 투입 안 되고 꿋꿋이 버티는 것이었다.
‘아무리 빠르게 움직였어도 어제쯤에 신문이 퍼졌겠지.’
당연히 확인할 시간도 부족했을 테고. 조프르도 이제 겨우 우리가 열심히 만든 보고서 받았으려나 모르겠다.
“그래서, 뭐 어떻게 하시겠단 겁니까?”
민간에 퍼졌다. 이거야 우리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진 않았지만 딱히 변한 건 없지 않나? 크게 나쁠 것도 없고.
“레몽 푸앵카레 대통령께서 조르주 클레망소 전 총리와 지금 권력 경쟁을 하고 계시지. 그런 이 나라의 손 꼽히는 권력자도 왜 조프르 총사령관을 못 건드리는지 아나?”
조르주 클레망소. 언젠가는 전시 총리에 오를 인간. 곧 레몽 푸앵카레 대통령의 파벌까지 집어삼킬 무시무시한 정치 아귀.
그런 그도 지금 조프르는 쉬이 못 건드려 갈리에니 군정장관을 통해 간접적 상호 견제를 하고 있다.
분열의 위험, 조프르의 필요성 등 수많은 이유가 있겠다만 가장 큰 건 이거 아닐까.
“국민의 폭발적인 인기 때문 아닙니까. 특히 부관이 포슈면 말 다 했지요.”
“정확해.”
굳이 비교하자면 미래 한국에서 이순신의 반열에 오른 포슈다.
다만 차이점은 포슈 장군은 지금도 살아 숨 쉬는 전설이라는 점이다.
지금 프랑스에서 포슈를 욕한다? 둘 중 하나다.
간첩이거나, 아니면 반전을 외치는 매국 빨갱이거나.
여기까지 들은 난 저 둘이 무슨 일을 꾸미는지 왠지 알 거 같았다.
“설마···.”
“그래, 권력의 근간은 국민 아닌가.”
“우리도 그놈의 국민의 지지 좀 받아보자고.”
페탱 특유의 최종 보스 같은 비열한 미소가 드러난다.
순수하던 슈티른 대령도 점점 물들어가는 거 같다.
아라스에서 개같이 굴러 겨우 얻은 참호거부권. 근데 온 세상에 ‘6사단이 조커 패다!’라고 떠들어댄다.
페탱은 지금 내게 말하는 거다. 그 패를 최대로 강화해보지 않겠냐고.
누구도 패를 들고 있는 것만으로 건들지 못하도록.
“자네, 한번 유명해져 보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