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49
049화
페탱이 악당처럼 ‘너 나랑 일 하나 하자.’라고 내민 제안서에 난 당황했다.
“제가… 얼굴마담입니까? 아니, 최고지휘관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도 부족할 판에 일개 소령이 왜요?”
조금 이르긴 하다만 페탱은 어차피 권력 잡을 팔자다.
차기 군단장 증명도 이번에 충분히 했으니 내년에는 진짜 군단장 지휘봉 잡을 거 같은데.
“일단 가장 큰 이유는 이거야. 난 자네가 차린 스테이크에 포크 얹을 생각이 없다네.”
우리 사단장님이 갑자기 왜 이리 삭막하게 선을 그으신대.
우리 관계가 이건 누구 덕이고 저건 누구 공이고 나눌 사이는 아니잖아.
“그럼 다음 이유는 뭡니까.”
“아직 내가 나설 시기가 아니야.”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페탱이 언급한 ‘시기’. 말마따나 아직 그의 세상이 오긴 이르다.
조프르가 언제 무너졌던가.
바로 국민들의 지지가 사라졌을 때다.
몇 년간 이어질 참호전은 아무리 조프르라도 어찌할 방도가 없다.
그룹 중앙에서 화려하게 스포라이트를 받던 아이돌은 인기가 사라지는 순간 온갖 질타와 함께 역사 뒤로 사라진다.
당연히 페탱이 여기까진 모르겠지만 최소한 자신의 때를 기다리는 모습은 몸을 낮추며 빈틈을 노리는 늑대처럼 느껴졌다.
“이전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지. 과연 내가 포슈 장군과 견줄만한 상대가 되는가.”
“그땐 비교조차 안 되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거군요?”
“그래.”
이번 아라스 방어전은 서부 전선의 타넨베르크 전투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충분히 개연성이 있지만 멀리서 보면 가히 기적과도 같은 일.
기적에 놀란 사람들의 경탄과 찬사가 향할 거다. 페탱은 그 자리를 피하려고 하고 있다.
“루덴도르프와 힌덴부르크가 타넨베르크 전투 이후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했습니다. 그 정도는 아닐지 몰라도 아르덴도 충분한 효과가 있으니….”
믿어지는가? 일개 참모였던 루덴도르프는 타넨베르크 이후 동부 전선을 총괄하는 자가 되었다.
“자네가 막연히 욕하는 조프르 총사령관. 사실 난 그가 고집스럽고 탐욕적이라 생각할 뿐 절대 정치적으로 무능하다 생각하진 않네. 필시 그는 회유 혹은 견제를 날릴 거야.”
페탱의 말 속에는 근심이 드러났다. 이쯤 되니 나도 그가 고민하는 바를 이해했다.
“조프르와 척을 지면 진급을 떠나 죽을 자리만 보내질 수도 있죠. 아마 책임이나 뒤집어씌우고 추락시키려 할 테고. 마치 제5군의 란레작 장군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독일 제2군과의 여러 교전에서의 패배를 이유로 해고되었다가 얼마 전 조용히 복귀한 란레작 장군.
그나마 유능한 집단군급 지휘관이던 그가 다시 야전에서 지휘권을 행사하는 일은 없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린 잘 알지.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첫 번째 조건이 뭔지.”
“조프르의 실각.”
조프르의 목적은 프랑스의 진정한 승리가 아닌 독일에 대한 복수가 전부다.
그의 아집이 프랑스군을 끝없는 수렁으로 밀어 넣고 있다.
그리고 당당히 외치겠지.
우리의 원수는 더 많이 죽었으니 좋은 일이라고.
내 귀엔 자신의 상처에 아파하는 게 아닌 남의 상처에 더욱 공감하는 미친놈의 개소리로밖에 안 들린다.
어중간한 종전? 조프르는 죽어도 이를 용납 못 할 거다.
반면 눈앞의 페탱은 지독한 현실주의자다.
현실이 시궁창이면 그 시궁창을 뒤져서 그나마 먹을 수 있는 걸 찾아 꾸역꾸역 먹고 살아남는 그런 현실주의자.
최악의 상황에서는 기꺼이 매국을 택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게 국가에 이득이라 생각된다면 말이다.
“그리고 솔직히, 자네가 중추로 야전 지휘한 거 맞잖아? 전략도 자네가 짰고.”
“얼굴에 금칠은 그만해주시죠. 그보다 한번 대중에게 나서는 순간 뒤가 없다는 게 문제인데….”
대중의 인기로 얻은 권력은 무료가 아니다.
끊임없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크리에이터처럼 그들을 즐겁게 할 ‘전과’를 신문에 실어줘야 한다. 최소한 전쟁이 끝날 때까지는.
자칫 여타 지휘관들이 종종 그렇듯 전과를 위해 소중한 병력만 사지로 내모는 그런 딜레마에 빠질 수도 있다. 물론 페탱이 그런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만.
난 조용히 머릿속의 정치 계산기를 열심히 두드렸다.
조프르의 실각. 과연 얼마나 서두를 수 있을까. 우린 어디까지 나서도 되는 걸까.
일단 우리가 포슈처럼 조프르에 완전히 붙는 순간 전쟁 끝날 때까지 어림도 없다.
반대로 적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최대한 빨리 집에 보내주고 싶다.
‘후우… 전투보다 이게 더 어렵다니까.’
겉으론 아군인데 적군보다 더한 적군이 될 수도 있지만 당장은 아군이 되려는 제스처가 강하고 이를 예의 바르게 거절하면서도 뒤에서는 날카롭게 칼을 갈아 한 번에 딱 모가지 딴 다음 파벌 싸악 흡수해버리는 그런 방법….
머리 터지겠네. 어쩌지.
정치는 내 영역이 아니다. 다만 하나 확실하게 아는 건 있지. 바로 정치적으로 위험한 자리 피하기.
내가 또 포탄 낙하는 기가 막히게 잘 피하거든.
“일단, 역할 분담부터 하시죠.”
“역할 분담?”
“날카로운 칼날은 제가. 칼자루는 페탱 사단장님이.”
“호오….”
이런 방법은 생각 못 했는지 페탱은 턱에 손을 가져다 대며 진중해졌다.
“굳이 이제 와서 바꾸지 말고 차라리 서로 밀고 나가자는 겁니다.”
“속된 말로 자넨 미친놈이니 그대로 나가고. 난 자네를 제어하는 놈으로?”
“제가 제 입으로 정상이라고 말하면 누가 믿어준답니까?”
나도 안다고. 다들 나 이상하게 쳐다보는 거. 아무리 눈치 없는 나지만 어찌 모르겠어.
회의만 하면 다들 ‘저, 저 새끼 입 열려고 한다! 모두 피해!’라는 눈빛인데.
이건 진짜 억울하다. 마치 내 가슴팍에 노란 스마일 배지라도 달려있는 것 같다니까?
민간에는 살육에 미친놈으로.
군에서는 건들면 미친놈으로.
그래. 이왕 나락 간 이미지, 아주 잘 활용해주마.
그리고 이게 나와 페탱의 관계에도 건강하다.
이로써 약간은 우려하던 페탱과 나의 관계가 갈라질 일은 없으며 설령 조프르라도 갈라놓을 수 없게 된다.
파벌들이 공유하는 상호 이익을 넘은 공동 생존의 관계. 깨지려야 깨질 수가 없다.
‘어차피 나야 전쟁 끝날 때까지만 잘 버티면 그만이야.’
이게 핵심이다. 관심 병사 배지? 평생 달 것도 아니잖아.
차라리 분노조절장애에 정신과 약까지 먹고 있다고 어필한 다음 원하는 걸 얻어내는 이등병처럼 이야기하는 게 낫다.
내가 말뚝 박을 것도 아니니까.
“좋아, 자넨 이전처럼 행동하기만 하면 되겠군. 슈티른, 자네도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있게.”
“모헬 소령이 너무 날뛰지만 않으면 전 상관없습니다.”
“……?”
뭔가…. 슈티른 대령님은 잘못 이해한 기분이지만 우린 어느 정도 각자의 역할을 정했다.
이젠 대중들에게 보여줄 차례다.
***
불과 일주일.
프랑스군이 제 입으로 떠벌리지 않아도 지구 반대편까지 아라스 전투의 결과가 퍼지는 데 걸린 시간이다.
모헬이 하나 착각한 게 있다면, 바다로의 경주를 끝맺은 아라스 전투는 그의 생각보다 더한 폭풍을 몰고 왔단 거였다.
극적인 결과에 혼란스러운 독일.
같은 아군임에도 믿기 힘든 결과에 경악한 영국.
그러나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단연코 프랑스군이었다.
“…사고 쳤군.”
“그렇습니다.”
나름 몇 번의 만남을 통해 모헬 소령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자신하던 포슈는 자신의 생각을 뜯어고칠 필요성을 느꼈다.
“아직 마른 전투에 대한 포상도 제대로 못 했거늘.”
부대 재정비만 끝내고 자신이 책임지게 될 북부 최전선으로 보냈다.
그간 그가 알게 된 모헬은 잡초 같은 자였다.
다른 종자라면 며칠 물 안 주면 시들거리다 죽겠지만 모헬은 사막에 던져놔도 선인장 쪼개 그 내장에서 수분을 찾아 살아남을 그런 사람.
근데 문제는 그 잡초가 이젠 자신이 마음대로 뽑거나 심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하게 자랐다는 것이다.
불과 며칠 만에.
‘참호전의 양상을 직접 고안해낸 장본인이니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겠지.’
그렇다 한들 종이에 적힌 숫자들은 여전히 오류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다.
“좋긴 좋은데….”
“걱정되십니까?”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모헬 소령은 지나치게 과격하네. 이 군부에서 그 누구도 받아들이지 못할 만큼.”
원리 원칙을 중요시하는 포슈는 모헬의 지나친 결과 중심적인 생각이 걱정되었다.
군부는 사람의 목숨을 다루기에 보수적이어야 한다.
단일 집단으로 국가를 제외하면 가장 거대한 만큼 규율이 강력하게 적용된다.
법칙 아래에 통제되어야 하고 모두가 동일하게 이를 따라야 한다.
그런데, 예외가 나타나 버렸다.
“모헬 소령이 사령관님 생각처럼 마냥 미친놈은 아닙니다.”
“베이강, 자넨 중위 시절에 국가 계획이 쓰레기라고 공공연히 떠들며 군사재판까지 받을 수 있나?”
“….”
“아니면 국가에서 보급하는 총이 마음에 안 드니 자기가 직접 설계, 제작, 양산할 생각은?”
기껏 모헬을 정상인 범주에 넣으려던 베이강은 할 말이 궁색해졌다.
이젠 반대로 국가가 모헬 소령의 총을 받아 쓰고 있다.
호치키스 사에서 소량 생산하던 모헬의 기관단총은 이젠 정식으로 군에서 대량 군납을 받고 있다.
“능력을 의심하는 게 아니네. 그는 평화에 찌들어 있던 시대에 현실을 일깨워주는 군사혁명가야.”
매우 후한 평가와 달리 포슈의 목소리는 전혀 밝지 않았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 모헬 소령의 능력은 페탱이라는 토양 위에서 만개하고 있다.
모헬이란 젊은이는 세상을 애매하게 살지 않는다. 적과 아군. 필요한 것과 필요 없는 것.
판단을 내리고, 그에 걸맞게 움직일 거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그에겐 아군도 적군이 될 수 있다네.”
“내분을 걱정하시는군요.”
“그래. 지금 육군은 분열되는 순간 끝장이야.”
포슈가 갈리에니를 어떻게든 치우려는 조프르 총사령관을 만류하는 이유다.
정치질은 전쟁 이긴 뒤에나 해야 하지 않겠나.
모헬과 페탱이 상정하는 내부의 적군이 누가 될진 모른다.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이 나아가는 길에 방해된다면 그저 치워버리면 그만이라 생각하겠지.
‘작은 칼날이라도 내부로 향하는 즉시 육군의 균형은 무너진다.’
가까스로 버티고 있다. 그게 현 프랑스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런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포슈는 감히 이 탐스러운 패를 버릴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명확한 장점이 모든 단점을 가려주니까.
이제 모헬과 페탱은 계급에 구애받지 않을 거다. 더욱 날뛰고, 적과 아군을 헤집고 다니겠지.
눈에 뻔히 보이는 미래지만 포슈가 당장 손대서 어찌저찌 곧게 자라는 나무로 키우긴 글렀다.
[전신의 탄생! 북부 신화의 시작.] [압도적 승리, 그 비결은 와인?] [적 북부 전선의 지휘관, 게오르크 폰 데어 마르비츠 경질 예상.]세상이 비틀린 모헬에 열광하고 있기에 그라도 정면으로 꺾긴 무리다.
어디 파벡과 마르비츠가 유약하고 무뎌서 모헬의 칼날에 썰려나갔던가?
이건 그냥 재해에 쓸려나갔을 뿐이다.
다음 페탱-모헬 처형대 앞에 설 독일 지휘관이 누가 될지 모르지만 모가지를 간수하긴 어렵지 않을까.
“훈장 수여식 날짜 잡혔나?”
“아직입니다만 일단 총사령부에서는 파리로 불러들이려고 합니다.”
“쯧, 야전 지휘관이 야전을 떠나게 만들다니. 그 전에 우리가 먼저 만나봐야겠어.”
전과도 전과거니와 국민들은 젊은 영웅이 늙은 꼰대들에게 짓눌린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게 된다면 발작을 일으킬 거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총사령부와 파리 정부는 급히 6사단이 재정비하는 틈을 타 페탱과 모헬을 불렀다.
“그래도 모헬. 그자라면 마냥 멍청하게,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지는 않을 거야.”
“제가 아는 모헬이라면 그렇습니다. 권력이나 전공에 집착하는 자가 아니니 가벼이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확신이라기보단 바람에 가까운 포슈의 발언.
이에 베이강은 ‘원하는 게 없다면’이라는 말은 차마 붙이지 못했다.
독일군 앞에서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던 포슈와 베이강은 불안함을 숨기지 못했다.
부디 제발 입 닥치고, 조용히 훈장만 챙긴 다음 다시 야전으로 복귀하길.
진심으로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