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52
052화
“이, 이 건방진 새끼!”
조용히 호텔을 빠져나와 돌아가던 에두아르는 분이 안 풀리는지 욕설을 쉬지 않고 뱉었다.
불과 몇 달 전이라면 필리프 페탱이란 이름 따위 신경 안 썼을 거다. 아니, 알지도 못했겠지.
그런 주제에, 전쟁 통에서 운 좋게 몇 번 이겼다고 그런 시건방진 태도를 보이다니.
이에 에두아르는 매우 분노했지만, 그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왜냐면 이미 총참에선 페탱과 모헬의 성장을 용납하기로 결정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놈의 정치, 정치, 정치!’
군인이면 상명하복. 능력이 있다면 그 능력을 명령에 따라 쓰기만 하면 될 것일진대 현 정치 상황은 군인이 군인으로 남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는 조프르를 시작으로 내려온 업보 때문이었다.
국경에서부터 졸전의 끝을 달려온 현 지휘부. 그런 그들이 터질 듯한 민심과 정권을 달래기 위해 선택한 것이 바로 영웅 만들기였다.
포슈가 그 덕을 보았고, 조프르와 갈리에니 또한 이를 통해 스스로를 띄울 수 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수혜자가 등장했으니.
바로 페탱과 모헬.
어디서 굴러먹던 것인지 모를 두 놈도 수혜자가 되어버렸다.
만약 여기서 조프르 파벌이 싹을 자르겠다고 나섰다면 현 지휘부를 아니꼽게 보는 갈리에니 군정장관과 클레망소 의원, 심지어 푸엥카레 대통령도 가만히 있지 않았을 거다.
아니, 그 전에 영웅들은 추잡한 정치군인으로 전락할 거다.
그런 이유로 조프르 총사령관은 아직 페탱을 적대하지는 않았지만 에두아르는 달랐다.
‘그놈들은 분명 지금 육군을 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왜 다들 모르나!’
전부터 가져온 의심은 오늘을 기점으로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이리 주장해봐야 남이 볼 땐 질투에 눈먼 소리일 뿐이다.
에두아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따로 찾아와 경고하는 것뿐.
당연히 페탱은 중지를 치켜들며 존중 따위 개나 줘버렸다.
“이래선 안 돼. 저것들을 가만히 놔둬선 안 된다고.”
마치 스스로에게 강조하듯 에두아르는 끊임없이 되뇌었다.
필리프 페탱.
베르게르 모헬.
“그래도, 내년에 전쟁이 끝나면… 너희도 끝이다.”
지금이야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날뛰지만.
물이 빠져나가고 다시 늪이 드러난다면 둘은 물 밖에서 퍼덕이며 죽어가는 생선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 굳게 믿으며, 에두아르는 화를 삭였다.
실제로 에두아르의 말은 반쯤 맞는 말이었다.
모헬과 페탱은 현 지휘부를 적대하고 있었고.
내년에 전쟁이 끝난다면 페탱과 모헬의 자리는 붕 뜨게 될 거다.
내년에 전쟁이 끝난다면 말이다.
***
“진짜?”
“진짜로.”
“으음, 믿어도 되는 거지?”
“진짜야. 이제 전선이 변할 일은 없어. 그러니 적진 한가운데서 공격하는 일 같은 건 없을 거야.”
난 거짓말하지 않았다.
전선이 변할 일은 이제 없다. 여전히 안 믿는 눈치지만 그렇다고 ‘앞으로 한 4년은 모가지 걸어야 할 듯’이라 말할 순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난 전선에 복귀 안 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어. 다들 영웅이라고 치켜세워주면 뭐 해. 이건 재판 때보다 더 위험하잖아.”
“아냐, 안 위험해.”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 오빠들이랑 아빠도 전장에 있거든?”
“…….”
음, 솔직히. 나도 그냥 다 내팽개치고 후방에 눌러앉고 싶다.
원래부터 그냥 대전쟁 내내 오를레앙에 박혀 있고 싶단 생각만 했지만 샤를로트를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샘솟는다.
그러나 나도 이젠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이미 달리는 기차 맨 앞 칸에 올라탔다.
부딪히면 가장 먼저 죽을뿐더러.
‘나만 보고 기다리는 새끼들이 있는데 어떻게 버려.’
찝찝해서라도 안 되지. 그러니 딱 이번 대전쟁까지만. 정말 전쟁 끝나는 순간 나 몰라라 하고 도망칠 거다.
그런 내 마음을 그녀도 잘 아는지.
“막진 않을게. 내가 뭐라고 남의 앞길이나 막아. 그냥 살아만 있어. 팔다리 하나 없어도 난 괜찮으니까.”
“…너무 고맙네.”
음, 역시 샤를로트는 평범하진 않아. 생각이 진보의 끝을 달리는 것 같다니까.
“샤를로트. 정말 나로 괜찮아?”
“그럼. 이제 와서 선 자리라도 알아볼까?”
“아니. 그럴 필요 없어. 나랑 결혼하면 되니까.”
멋들어진 프러포즈 따위 준비하진 않았지만 진심이었다.
내 말에 샤를로트는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답을 줬다.
“너… 재산 다 날렸다는 소문이 진짜구나.”
“뭐? 아니. 그딴 소문은 어디서 들은 거야!”
“뭐 알음알음? 전쟁 전에 미국에 투자했다가 다 날렸다고.”
아니, 무슨 개소리야. 그리고 그 돈 없이 남은 재산으로도 충분히 먹고살 만한데.
“뭐, 상관없지만. 돈은 우리 집도 충분하니까.”
“와….”
원래 이런 말은 내가 하고 샤를로트가 막 감동해서 눈물 흘려야 하는 거 아닌가?
‘무슨 몸만 오라는 것도 아니고.’
겨우 진지하게 분위기 잡으려 했는데.
“좋아. 나 과부만 만들지 마.”
“…진짜?”
“응.”
“포슈 장군 옆에만 붙어 있을게.”
대악마 포슈의 옆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할 테니까.
“포슈 장군 아들하고 사위는 전쟁 시작하자마자 죽었다던데?”
“…….”
음, 실종. 아직은 실종이라고. 시체도 못 건졌으니.
지금은 마냥 전쟁을 잊은 것처럼 그녀와 함께하지만, 난 파리에 그리 오래 머물지 못한다.
얼마 뒤면 야전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결혼식은커녕 같이 지낼 시간조차 없다.
허나 그녀의 가벼운 수락에 난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 근데 아버님한테는….”
“우리 아버지? 여전히 북부 해안포대 쪽 일이 바쁘셔서 당분간 못 돌아오신대. 대신 오빠는 지금 파리에 있어.”
북부 해안 포대라면… 어찌 되었건 북부 전선이랑 가깝다.
“음, 혹시 묻는 건데. 나랑 교제하는 거 아셔?”
“알면 마른의 기사는 존재하지 않았을걸?”
“…….”
“그래도 오빠들은 알아.”
그거 위로 맞지?
‘후우, 최대한 마주치지 말자.’
만약 레몽 장군이 날 죽이려 한다면 페탱도 ‘어쩔 수 없군. 그게 네 명줄인 게지.’라고 고개를 흔들며 날 포승줄에 묶어서 내줄 거다.
‘살아남으려면… 진급. 진급해야 해. 그러면 최소한 살려는 주지 않을까.’
모르겠다. 이런 종류의 위협은 나도 속수무책이라고.
또 다른 일로 골머리를 앓게 생겼지만 그보단 지금의 달콤함에 빠져 있고 싶었다.
허나 세상은 내가 조금이라도 행복할 기미가 보이면 기가 막히게 방해한다.
방 안에 설치된 전화가 울렸다.
-모헬, 당장 정복으로 차려입고 나오게. 가야 할 곳이 있으니.
“예? 지금 말씀이십니까? 오늘 일정도 없지 않습니까.”
-파리까지 와서 그럼 호텔에 처박혀 있을 생각이었나? 갈리에니 군정장관 만나러 가야 하니 바로 나오도록.
뚝.
응?
‘갈리에니 군정장관?’
군정장관보단 여전히 파리 총독으로 불리는 육군 최대 짬킹.
접촉이 있을 수도 있단 생각은 했으나 이리 곧장 만나게 될 줄이야.
그래, 갈리에니면 당연히 만나야 하긴 하는데….
스윽 옆을 보니 그녀가 아직 말도 안 꺼냈는데 한숨을 쉬고 있다.
“하아, 갔다 와.”
“…미안.”
만나자마자 ‘나로 괜찮아?’ 따위의 찌질한 말로 시작해, 프러포즈하고 다시 사라진다라. 누가 들으면 쓰레기가 따로 없는데.
급하게 정복을 다시 차려입은 난 방을 빠져나왔다.
파리의 구원자가 나까지 지옥에서 구원해줄 수 있는지 봐야겠다.
***
파리에 온 지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갈리에니를 만나러 가는 길.
그러나 가는 도중에 이보다 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으니.
“어… 그래서. 제가 아는 그 카스텔노 사령관이 찾아왔었다?”
“그래, 자네가 여자 향수 냄새 맡는 동안 난 뒷방 늙은이나 만나고 있었지.”
“그럼 사단장님도 만나시면 되지 않습니까.”
“….”
뭐야, 왜 갑자기 대답이 없는 건데. 평소라면 욕이 날아왔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그저 물끄러미 길거리로 시선을 돌리는 모습에 순간 흠칫했다.
‘아 맞다… 우리 사단장님 모태솔로지.’
예전에 몇 차례 시도는 있었으나 진지한 만남은 단 한 번도 없으셨단다.
젊을 적부터 15살 연하인 외제니 하든 여사님을 좋아했는데 여사님 부모님이 ‘진급도 못 하는 주제에 어딜!’이라며 반대했단다.
그래서 외제니 하든은 외제니 에랭이 되어버렸단다. 근데 얼마 전에 여사님 이혼하셨다고 좋아하시지 않았나?
게다가, 지금의 페탱은 무려 중장(진)이라고? 내년엔 집단군 총사령관급 아니면 경례할 일도 없을 거 같은데.
“그, 파리에 왔으니. 외제니 ‘하든’ 여사님께 연락이라도 해보시죠.”
“내 알아서 할게. 다 복잡한 사정이 있어.”
어휴 그래라. 요즘 MG(Modern Generation)들이란. 20세기 감성을 이해할 수가 없다니까.
이대로 가만히 저 노인이 어디까지 시무룩해질 수 있나 시험해보고 싶지만 우린 지금 패턴도 모르는 보스 레이드를 앞둔 2인 파티나 다름없다.
난 다시 에두아르에 대해 물었다.
“그 엉덩이 무거운 귀족 카스텔노가 왜 찾아왔을까요?”
“뻔하지. 만약 우리가 군부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면 가장 먼저 칼을 맞을 인간이니까.”
“그렇다 한들, 굳이 아무 의미도 없는 협박을 위해서?”
에두아르가 감정적인 인간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만 이건 비효율을 넘어 자기가 먼저 적대시하고 있잖아.
‘이건… 너무 정직하잖아?’
에두아르는 사실상 능력치 스테이터스를 정치에 몰빵한 인간인데 정직한 감정이라, 어불성설이다.
그렇다고 대화 한번 안 나눠본 에두아르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판단할 순 없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
‘확실히 거물이 되긴 했네.’
비록 야전에서는 인정받진 못했으나 여전히 프랑스군을 앉은 자리에서 주무르는 에두아르 중장이 찾아왔다는 의미는 단 하나.
우리가 그만큼 위협적이라는 것.
그리고 에두아르가 떠나자마자 갈리에니가 찾아왔단 의미는 확신을 더해준다.
현재 6사단이, 프랑스군의 캐스팅 보트다.
마치 팽팽한 줄 위로 떨어지는 칼날과도 같은 존재.
그게 우리다.
이 오묘하고도 짜릿한 위치를 어찌 써먹어야 베를린 골목까지 소문이 날까.
이것도 나름 고민이네.
***
파리 총독. 왜 사람들은 갈리에니를 파리 총독이라 부를까? 총독이긴 하지만 사실상 그의 권한은 제3공화국 정부 이후 극히 축소되어 파리를 기반으로 주둔하는 군만 부릴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모두에게 군정장관이나 다른 직책보다 총독이라 불리는 이유는 바로 9월 3일 복직 후 첫 공개선언문 때문이다.
[-파리 군사정부-파리의 군대,
파리의 주민들,
공화국 정부는 국방에 새로운 자극을 주기 위해 파리를 떠났습니다.
나는 침략자로부터 파리를 방어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 명령을 끝까지 수행하겠습니다. 1914년 9월 3일 파리.
파리 총독,
파리 육군 총사령관
조제프 시몽 갈리에니]
당시 파리는 모두가 피난 가려고 미쳐 있을 때였으며 군인이 장악한 도시였다.
정부와 총사령부가 이전했으며 파리 무력화가 공식화된 이후다.
그럼에도 갈리에니는 파리를 지켰다. 심지어 조프르가 지원을 거절했고 주둔군은 한 줌도 안 되었지만 갈리에니는 떠날 기미조차 없었다.
파리의 모든 시민들이 떠나는 순간까지도 그 모습을 지켜봤으며, 돌아오고 나서도 여전히 파리를 지키는 갈리에니를 보았다.
그 이후, 그는 파리에 한해서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남아서 그와 함께 파리 무력화를 돕고 바리케이드를 세우며 철조망과 콘크리트 타설을 함께한 파리 시민들은 갈리에니를 절대적으로 신뢰하였다.
‘뭐 한평생 식민지 총독만 하며 지낸 사람이라 그런 면도 있지만.’
아무튼, 현 파리 총독은 마치 파리에 한해서는 정부보다 더한 권력 행사가 가능해졌다.
물론 갈리에니가 손에 쥐어진 대로 휘두르는 인간은 아니다만 그 사실 자체만으로 정치계의 거물이자 조프르의 견제를 받는 존재가 된 거다.
만약에, 이 파리 총독 자리가 갈리에니가 아닌 조프르 파벌의 누군가에게 들어갔다면,
‘어우, 끔찍하지.’
돌조각 다섯 개 다 모은 조프르가 손가락을 튕기는 환청이 들려온다.
아마 6사단과 33연대는 이미 분대 단위로 쪼개져 넓은 서부 전선에 흩어지지 않았을까.
그리 생각해보면 에두아르와 페탱 소장님의 만남이 끝나자마자 우릴 부른 게 놀랍지도 않다.
파리에 한해서는 그의 손바닥 안이니까.
총독사까지 버젓이 보유한 파리총독부.
번화가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은 청사로 들어가니 예상보다 정중한 대우를 받았다.
역시 파리 주둔군답게 각 하나는 시퍼런 날처럼 서 있는 게 멋들어지긴 했다.
‘다만 군복이 여전히 알록달록한 건 거슬리네.’
어디 총 한 발 못 쏘는 부잣집 도련님 같은 느낌이랄까.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정복이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보자마자 ‘비효율’이라는 단어가 머리를 울리는 걸 보면 나도 비정상이긴 한가 봐.
‘물감 마렵다.’
몸이 막 알러지처럼 자꾸 근질근질거려.
지나갈 때마다 받는 선망의 눈빛. 날 알아보는 것부터가 신기하다만 이젠 그러려니 한다.
친절한 안내를 받아 들어간 방 안에는 갈리에니가 다리를 꼰 채 시가를 피우고 있었다.
계급에 대한 예의를 차리기도 전에 갈리에니는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 베르게르 모헬.”
“말씀하십시오.”
“자네의 고발 접수는 잘 받았네.”
“…….”
어, 이거 그거지? 내가 쓴 ‘나는 고발한다’.
“근데 고발을 했으면 처벌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고발. 범죄 사실을 신고하여 범인의 처벌을 구하는 의사 표시.
이걸 현재 정치적인 상황으로 전환하면.
‘네가 고발했으니 너도 조프르 족쳐야지?’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난 당당하게 한 손에 허세용 투표용지와 펜을 들고 왔다. 왜냐면 갈리에니의 공약이나 듣는 자린 줄 알았으니까.
그러나 갈리에니는 오래전 고발장을 들고 내게 말한다.
아직 공소시효 안 끝났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