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62
062화
점점 커져가는 사단 규모.
새로운 예비 사단을 신설하기보단 그냥 원래 있던 뼈대에 살붙이는 게 낫다는 판단으로 생겨난 현상이다.
나폴레옹 시대 때부터 생겨난 사단 규모.
본래라면 보병으로 꽉꽉 채워진 사단이어도 1만을 넘지 않는 게 소위 프랑스 편제 국룰이었지만···.
뭐랄까, 아무리 국룰이 무시되는 시대라지만 우리 6사단은 조금 비만이 되어버렸다.
지난 3개월 동안 쉬지 않고 전선에서 살짝 물러나 보충 병력 처먹기만 했다. 명백한 북부 사령부의 힘 실어주기.
신병 보충도 하고 전투 경험이 있는 와해 부대들도 우리한테 붙여줬다. 나름 편애라면 편애고 투자라면 투자.
현재 6사단은 77연대, 201연대, 그리고 우리 33연대로 구성되어 있는데 형태는 조금 비상식적이다.
먼저 201여단은 사실상 지원 여단 성격이 강하고 페탱이 ‘음, 이거 좋아 보이는데?’ 싶은 거 다 붙여놓은 여단.
77연대는 본래 전쟁 전부터 존재했던 국경 근처의 연대로 무지막지한 벌크업에 성공한 케이스. 중기관총 같은 지원도 빵빵하게 받아서 정예 여단이다.
그럼 마지막 우리 33연대는?
“···일단 이름처럼 보병연대은 아니야.”
포병··· 연대도 아니고, 아직 기갑은 아니고. 음, 아무튼 라면이긴 한데 무슨 맛인지 먹어봐도 모를 그런 부대다.
총인원 2만 1천. 일개 사단이 2만 1천에 육박하는 기적이 일어났지만 영관급 이상의 장교는 몇십 되지도 않는다. 그마저도 대령급 이상은 한 손 채우지도 못하고.
육중해진 몸을 이끌고 여차저차 1월 말부터 투입된 릴 전선.
아직 우리는 맛만 보는 단계라는 듯 무미건조한 참호전만 이어갔다.
그리고 2월이 시작되고 며칠 뒤, 잠잠하던 베이강한테 연통이 왔다.
아미앵에서 전방으로 시찰 왔다 해도 거리가 꽤 있을 텐데 1915년에 ‘전화’로 연락이 온 것.
옆에서 통신병 하나가 풀링기와 육중한 쇳덩어리 통신 장비를 들고 있어야 하지만 어쨌든 혁명이 따로 없다.
수화기를 드니 걸걸한 목소리가 치지직- 거리는 음질을 뚫고 귀에 박힌다.
[오랜만에 느끼는 야전 공기는 어떤가? 가슴을 들끓게 하고 손에 피땀이 쥐어지지?] “······.”손에 피땀이 쥐어지는 건 뭔데. 상대 피냐고.
난 여전히 포슈 장군이 왜 이 인간을 참모장으로 쓰는지 도저히 모르겠어.
“전선만 지키니 바쁠 건 없습니다만, 곧 바빠질 것 같습니다.”
[왜? 특별히 예정된 일은 없을 터인데?]
“릴 전선으로 양 진영 군이 자꾸 몰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희 6사단도 혹시 몰라 투입시킨 거고.”
저번 달에 내가 전선에서 느꼈던 이상함. 그 기분은 야전에 오니 더욱 확실해졌다.
북부 전선의 중요성이야 말해서 입만 아프지만 최근 들어 적은 ‘굳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군이 몰리고 있다. 특히 참호전으로 군대가 전선 따라 길게 흩뿌려진 와중에 말이다.
‘전쟁인데 당연히 노림수가 있겠지.’
그에 맞춰 프랑스도 추가 배치를 주저하지 않았지만 괜히 생성되는 태풍의 눈에 들어선 기분이다.
“그래서 무슨 일로 전화하셨습니까?”
[아, 다름이 아니라 내가 흥미로운 소식을 동부 전선으로부터 들어서. 독일이 처음으로 대량의 가스탄을 썼다고 하더군.]
“···동부 전선에서요?”
최초의 대규모 화학전은 서부 전선 2차 이프르 전투일 터인데? 이는 변한 역사 덕에 매우 높은 확률로 우리 릴 전선 어딘가가 될 테고.
[바르샤바 서쪽의 로카강에서 독일군이 무려 1만 8천 발이 넘는 신무기 탄을 쐈다는군. 화학 가스가 포함된 걸로 보아 아마 가스탄이 확실해.] “그거 확실한 정보입니까?”[러시아 측에서 오는 정보니 절반은 걸러 들어야 하지만··· 없는 사실은 절대 아닐 거야.] “그로 인한 피해는요?”
[그게 놀란 부분이야.]
당연하지. 무려 화학탄인데. 연막탄만 잘 활용해도 참호전에서는 혁명이다. 1만 8천 발? 사망자를 고사하고 지역 자체에서 물러나야 했을 거다.
[없어.] “예?”[피해가 거의 없다고. 듣기론 최루탄의 일종인 거 같은데 효과는 거의 없었다는군. 몇몇 증언과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보면 영하의 기온과 거센 바람 때문이라고 추측되네.] “······.”
러시아. 너흰 도대체 어떤 전쟁을 치르고 있는 거냐. 독일군과 싸우고 있는 거야 추위랑 싸우고 있는 거야.
최루탄이면 바람 한번 불면 홀라당 날아갈 텐데 바르샤바? 거긴 과장 살짝 더하자면 겨울바람에 사람이 서서 얼어 죽는 곳이잖아.
최루탄도 ‘에잇 싯팔’ 하면서 거르는 곳에서의 전투라. 난 그냥 모르겠다.
[자네가 화학탄에 관심이 많잖아. 그 때문에 방독면도 도입했고.] “정보는 고마운데, 설마 이 소식 듣고 방독면 필요 없다 어쩐다 하는 사람은 없죠?”[오, 잘 아는군. 굳이 북부 전체에 방독면을 보급할 필요는 없다는 이들이 아미앵에 많아.]
나름 근거 있는 개소리라고 뱉은 거 같은데.
“하아···.”
[아무튼, 이번 달 말쯤엔 자네한테 전차가 배달될 거야. 다 내 덕이니 얼마든지 감사하게. 내가 이거 지키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지?]
“말은 바로 하셔야지요. 애초에 저 아니면 써먹을 줄 아는 사람도 없지 않습니까.”
[이봐 모헬, 때론 먹지 않는 사탕도 뺏으려는 나쁜 아저씨도 있는 법이야.]
음, 맞는 말이긴 해.
베이강의 전폭을 넘어 광기에 가까운 지원이 없었다면 1915년에 전차? 진짜 어림도 없는 소리다. 그냥 적당히 내년 하반기에 괴상한 영국제 전차나 봤겠지.
“제 손에 넘겨준 건 고맙게 생각합니다. 전 솔직히 당장이라도 전선으로 튀어나와 직접 전차 몰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자네도 들었나? 젠장, 벌써 거기까지 소문이 퍼진 건가. ]
“뭘요.”
[포슈 장군님이 전차에 탑승이라도 하는 순간 해치를 용접해서 가둬버린다고 하셨네. 나 원 참! 날 뭘로 보고.]
“······.”
프랑스 버전 뒤주냐고. 그래도 다행히 포슈 장군이 뒤틀린 베이강의 욕망을 잘 알고 있구나.
순수하게 기병을 위한다던 마음은 어디 가고 지금 베이강은 전차 이야기만 나오면 침 질질 흘리며 괴상하게 웃는 게 마약에 중독된 파블로프의 개가 따로 없다.
“아무튼, 소식은 고맙네요.”
[자네도 수고해.]
베이강과의 전화가 그리 끝나고, 난 내 손에 쥐어질 전차에 대해 생각해봤다.
전차. 어쩌면 대전쟁 속에서 나라는 인간이 가진 몇 안 되는 패.
베르게르 모헬이란 인간의 능력만을 파고들자면 사실 페탱, 베이강, 포슈는커녕 조프르가 보낸 모리스 가믈랭만도 못하다.
포슈와 페탱처럼 신들린 군사 배치와 언제나 한발 앞서는 대응으로 거대한 전선을 컨트롤할 능력도.
참모로 매일같이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를 조합해 작전을 구상해낼 수도 없다.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자아 성찰의 시간. 이것도 주기적으로 해줘야 주제에 맞게 행동해 무사 전역이 가능하다구.
위에서 우쭈쭈 치켜세워준다고 나라는 인간의 능력은 변하지 않는다.
남들이 모르는 것을 조금 먼저 아는 평범한 20대 남성. 그게 나다.
그런 나를 포장해줄 포장지. 그게 내가 생각하는 전차의 정치적 가치다.
“오래도 걸리네.”
내가 구상하고 보조했다지만 지난 2년간 베이강이 내 손에 전차를 쥐여 주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 모르지 않는다.
그렇기에 난 전차를 신형 수통마냥 후방에 썩힐 생각이 전혀 없었다.
릴 전선. 공세자에게 피눈물을 쏟아내게 만드는 참호.
“이 참호전을 끝내러 전차가 온다.”
음, 이번에도 대사 맛이 좋아.
느낌이 좋다.
***
릴 전선 북부.
불과 몇 달 전까지 제2 반여단 지휘관이었으나 지금은 북부 최전선에서 제2 외인 보병연대를 이끄는 모리스 가믈랭 중령.
북부에 어느 정도 정해진 전선이란 게 생기고 난 뒤, 그는 끊임없이 노력했다.
멍청한 실수를 한 이들이 어찌 되었는지 개전 이후 수차례 봤고, 그는 스스로는 다르다 생각했다.
그리고 단순히 다른 수준이 아닌, 차원이 다른 수준이 되고 싶었다.
그래, 마치 그자처럼.
‘베르게르 모헬.’
자신보다 훨씬 어림에도 같은 중령. 그간의 공을 보면 딱히 이상하지 않다.
그런 그가, 다시 돌아왔다.
전보다 더욱 비대해진 부대를 이끌고.
비단 그뿐만 아니라 6사단의 등장은, 대육군 전설의 부대의 출현은 시린 겨울의 릴 전선을 달구는 주제였다.
당장 그와 함께하는 지휘관들만 해도 ‘페탱의 야전 사냥개들이 온다!’라고 떠들어대니 말이다.
가믈랭도 잘 알았다. 스스로가 이 북부에 파견된 이유를. 딱히 좌천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 성과 없이 가만히 있어도 된다는 소리는 아니다. 가믈랭의 비교 대상은 아라스 33연대이니.
다만 가믈랭도 이번만큼은 모헬의 등장을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모헬, 아무리 당신이라도 이번에는 쉽지 않을 거야.”
공격자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구조. 그가 자랑하는 기관단총의 사거리는 중기관총 앞에서 무의미할 것이며, 온갖 전술은 압도적인 화력 앞에서 쓸려나갈 것이다.
베르게르 모헬이 명성을 지키는 방법은 딱 하나. 바로 지금 자신처럼 그냥 참호에 처박혀 있는 거다.
전공도 없지만, 피해도 없게.
“허나 당신이 그럴 리는 없지.”
싸웠다 하면 무조건 사지로 걸어 들어가야 만족하고 교전이 일어나면 무조건 선두를 자처하는 사람이니까.
일반인의 시선에서는 죽고 싶어 환장한 게 아닐까 싶지만 모헬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말이 된다. 가믈랭이 보기에 그는 피에 미친 인간이었다.
연쇄 살인마가 한 번의 피맛으로는 만족 못 하듯, 이번에도 모헬은 막대한 적의 피를 보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서사시는 그리 막을 내리리라.
아직도 릴 전선을 모르는 그는 적이 화학전을 할 거라 굳게 믿으며 방독면 보급에 힘쓰고 있다 들었다만.
“이보게 부관, 그 방독면이 정말 효과가 있다던가?”
“어··· 정화 효과는 있다 들었습니다. 다만, 쓰는 순간 전투 지속은 힘들 거라고···.”
“허, 그럼 방독면을 쓰면 총을 쏘기도 힘들다는 말인가? 무력화 상태라는 말이군.”
“사실상 그렇습니다.”
이거 봐라. 방독면 쓰는 순간 제대로 조준도 못 한다면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가믈랭은 내심 허탈한 느낌까지 들었다. 자신과 경쟁하는 상대가 이리 고꾸라진다면 너무 허무하지 않은가.
‘그러게 조금은 수그릴 줄도 알아야 하거늘.’
페탱은 몰라도 모헬 중령은 명백히 참모부를 적대하고 있다.
카스텔노 자작, 노엘 에두아르 장군은 나아가 페탱까지 정치적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만 그는 포슈 장군과도 멀어진 사이이니 총참 내부에서 한낱 중령의 의견 따위는 흘려듣는 분위기였다.
“연대장님, 그럼 저희 부대는 일단 방독면 보급 거절합니까?”
“······.”
거절. 아미앵에서 승인하고 천하의 페탱이 밀어주는 보급품을 거절이라. 마치 방탄모 시절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땐 철모가 로마군 따라 한다는 소리까지 들었지만 지금은 안 쓰면 선임한테 뺨 맞는 물건 아닌가. 꼬장꼬장하던 장군들도 시찰 나올 땐 꼭 철모를 쓴다.
“···일부라도 일단 받아둬. 받아둬서 나쁠 건 없으니.”
“알겠습니다.”
“다 하는 일에 빠져서 밉보일 이유는 없으니까.”
절대 화학전이 일어날 것 같아서 대비하는 게 아니라고 가믈랭은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