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67
067화
“무슨 일로 불렀…나.”
“자네 왜 요즘 날 피하나.”
“피하긴. 그냥 어색할 뿐이야.”
“그니까 왜 어색한데.”
“…….”
숨 가쁘게 달려오느라 내가 무신경했다는 건 인정한다만 그래도 이리될 줄은 몰랐는데.
“우린 생시르 동기 아닌가.”
“그런 놈이….”
“말하게. 정말 자네의 진솔한 마음을 알고 싶어서 그래.”
“후우… 지금의 자넨 내가 알던 베르게르 모헬이 아니야.”
음…. 분위기만 봐도 대충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거 같다. 입대 동기가 승천하고 있는데 자긴 여전히 중대나 이끌고 있으니 심란했겠지. 질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자괴감만 들 테고 아니라고 하기엔 스스로를 속이는 것밖에 더 되나.
“뭐라도 시도해보고자 전차를 붙여달라고 요청했으나 자네는 무시했지. 차라리 우리 부대를 선두에 세워 달라 할 때도 거절하고. 모헬이란 인간이 어디 상부의 눈치를 본 적이 있던가? 뭐? 아미앵의 허가가 필요해? 그딴 핑계들은 날 더 짓밟을 뿐이야!”
“응?”
“내가 피했다고? 그것도 맞을지 몰라. 그러나 자네 또한 날 피했던 거야. 난… 난, 겁쟁이니까!”
“…에?”
내, 내가 방금 뭘 들은 거지? 순간 귀에서 피가 흐르나 손가락을 가져다 대봤는데 다행히 묻어나오는 건 귀지뿐이네.
‘그 나이 처먹고 눈 질끈 감으면서 부끄럽다는 듯이 그딴 말 하지 마!’
대화 수단을 주먹으로 바꾸고 싶어지니까.
전쟁 직전, 나도 중위이던 시절. 우리 연대에 중위는 총 32명이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살아서 대위 단 사람은 단 8명이다.
죽었거나 승진 못 했거나 다른 데 팔려갔거나 등등… 아무튼, 지금까지 살아서 잘 싸우고 있는 드골은 명백히 탕수육 대짜 이상 하는 고마운 존재라는 건데.
“미안하네, 베르게르. 난 자네처럼 적의 피에 동력을 얻지도, 매 순간 모험에 목숨을 걸지도 못하겠네.”
큰마음 먹고 말한다는 듯한 샤를의 굳은 얼굴.
그런 샤를의 태도에 난 눈만 끔뻑이며 그가 뱉은 단어들의 숨은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무슨 깊은 은유나 언어유희가 아니라면 말이 안 된다.
“어… 그러니까 다시 이해해보자면. 자네 스스로가 부끄러워서다? 근데 자네도 올해 1월에 훈장까지 받지 않았나?”
“훈장? 허울뿐인 남의 인정은 다 의미 없네. 난… 부끄럽게도 이 부대에 적합하지 않아.”
이거 그거지? 포탄에 의한 셸 쇼크나 PTSD 같은 거? 그래, 그런 걸 거야.
그게 아니라면.
‘시발 이 새낀 그간 나랑 우리 부대를 어떻게 생각한 거야?’
뭐가 어째? 내가 동력을 어디서 얻는다고? 저 새끼랑 같은 짬밥에서 영양분을 얻는데 무슨 개소린가.
그리고 목숨을 걸긴 뭘 걸어. 난 그냥 매번 최악에서 차악의 선택을 했을 뿐이라고!
내 부대 밖에서 실정도 모르면서 주저리 떠드는 말은 가볍게 무시하겠다만, 넌 아니잖아.
다 뱉고 나서 후련해함과 동시에 침울해하는 샤를의 모습에 난 다 오해라는 설명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아니, 저 모습은 익숙하다. 자기의 선택에 후회도 미련도 없는. 다 털어내고 난 뒤 잠시 뇌를 비운. 이른바 현자 타임.
나 또한 그 기분을 잘 알기에 길게 주저리 떠들길 포기했다.
“자넨 어느 전장에서든 나와 함께하지 않았나. 절대 겁쟁이가 아니야. 자네 왼손이 이를 증명하네.”
그저 굶주린 천하의 샤를 드골한테 용기인지 위로인지 모를 말만 건넸다. 어차피 내 말은 귀에도 안 들어오겠다만.
몇 달 전, 저 거대한 키에 무조건 중대장이 나서서 지휘해야 사기가 오른다는 생각으로 참호전에서 싸우던 드골은 왼손에 총상을 입어 약지에 반지 끼긴 글러 먹게 되었다.
“그래서 말인데, 내 자네한테 부탁을 좀 하려 하네.”
“자네가 나한테?”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자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침울함에서 곧장 기대감으로 바뀐 샤를의 표정. 생각보다 현자 타임이 짧은 친구구먼.
“나는 고발한다, 이걸 터트릴 생각이네.”
“결국 이리되는군.”
“시간문제였어.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고. 다만 내가 당장 신문사 문 두드리며 소식을 알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랬다간 그림만 이상해질 뿐이지. 무슨 말인지 알겠네. 내가 해야 할 역할이 딱 보여.”
“도와주겠나?”
인정하기 싫다만, 이놈은 내 몇 안 되는 인맥이다. 생시르 동기고 임관도 같이했으며 친분이 있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니까 딱 적당하다.
게다가 33연대의 대위까지 지냈으니 말 다 했지.
무엇보다 샤를 드골의 친화력과 말발이라면 언론을 휘어잡는 건 총기 분해보다 쉬울 거다.
“곧장 파리로 가주게. 도착하면 준비는 끝나 있을 게야.”
“좋아, 천하의 모헬이 내게 이런 부탁을 다 하는군. 내 기꺼이 자네의 파견의원이 되어주지.”
“이젠 내가 억울한 미친개, 야전 사냥개라는 이미지는 없애버리고 싶어.”
“알지, 잘 알지.”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비열한 미소와 함께 곧장 일어나는 샤를. 약간 불안하지만 난 믿는다.
말재간도 없는 나보다는 샤를 드골이 지인이자 전우로 입을 여는 게 그림이 좋지 않은가.
그리 드골이 ‘나는 고발한다’의 운명을 떠안고 파리로 떠나고 나흘 뒤.
결과물이 나왔다.
[아르덴의 악마가 끝없이 피를 탐하게 된 불가피한 이유. 단독 보도!]탁!
“야, 이 개새끼야아아!”
날 몇 년간 옆에서 봤다는 새끼가 거짓 증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
“이번 일은 억울합니다. 저는 진짜 몰랐습니다.”
“정치하다 보면 참으로 줄을 잘못 서는 이들이 많은데, 꼭 배신자들이 그런 말을 하더군요. 아, 절대 모헬 중령님이 그런 자라는 말은 아닙니다. 하하.”
아니, 시발. 이 새끼는 나중에 라디오만으로 국가를 배후 조종하는 놈이라니깐?
샤를 드골, 드디어 그의 재능을 발견했다.
사실 대중 앞에서 쇼를 펼치기 위해 태어난 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놈, 쇼맨십의 대가다.
접촉사고 당하면 뒷목 잡고 내려서 할리우드 뺨치는 쇼로 노후자금까지 챙길 새끼란 말이다.
“일단 참모부의 무능을 고발하는 방향으로 핀트를 잡긴 하셨던데. 솔직히 쓰시면서 알고 있었잖습니까? 절대 안 먹힌다는 거.”
아주 잘 알았지. 일개 중위가 써재낀 문장에 국가 계획이 바뀐다면 설령 상관이 페탱이어도 난 탈영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알지요, 참으로 잘 알았지요. 근데 어쩝니까. 이 불타는 애국심이 제 눈과 귀를 막고 방관하는 건 허락하지 않는 것을.”
“음, 모헬 중령님은 군인이 아니라 정치를 하셨어도 되었겠습니다. 제 손에 이런 패가 있었어도 중령님처럼 써먹진 못했을 것 같거든요. 참을성? 아니, 아니. 틈을 노리는 집요함과 지독함. 아, 칭찬입니다.”
“하하, 군인이 정치라니요. 문민 통제는 공화국의 근본 아닙니까.”
여유롭게 차를 홀짝이며 마시는 젊은 남성. 나보다 많아 봐야 네다섯 살이다만, 난 절대 그를 무시하지 않았다.
물론 그 또한 나를 일개 중령으로 대하진 않았고.
우린 서로의 뒷배가 너무나도 컸기에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중을 담았다.
레온 마틴. 그의 이름은 내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다만 조르주 클레망소의 비서란 이유만으로 시간을 할애하긴 충분하다.
딱히 그렇다 할 정치 경력도 없는 상인의 아들이다만 난 파리에서 최전선까지 찾아온 그를 무시하지 않았다.
“먼저 승리 축하드립니다. 아직 군부 내에서도 공로와 과실에 대해 말이 많습니다만 그건 말만 많을 뿐일 겁니다.”
“당치도 않은 말입니다. 군인으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 당연한 일이 참 쉽지 않지요.”
“하하.”
그의 말대로 총참에서도 시불시불 입만 나불거릴 뿐 절대 페탱 소장님을 까 내릴 수 없다.
어느 정도 정찰조 같은 아이스 브레이크 타임이 끝나자 마틴은 분위기를 바꿨다.
“음,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번 일, 어디까지 키우실 겁니까?”
확실히 정치계에 몸담고 있어서 그런가. 대화에서 정확한 주어를 안 밝히네.
“무슨 일을 말씀하시는 건지? 새로 형성된 벨기에 전선은 얼추 나왔습니다만.”
“샤를 드골 대위. 일개 대위의 말에 매일같이 파리가 들썩이고 있지 않습니까.”
“크흠, 그건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저와는 무관한 발언으로-”
“클레망소 의원님께서는 절대 나쁘게 보시는 게 아닙니다.”
답답했는지 드디어 본격적인 물꼬를 트는구먼.
“의원님이 드레퓌스 사건 당시 쓰셨던 ‘나는 고발한다’를 따라 하신 거 아닙니까. 게다가 전쟁 석 달 전까지도 ‘자유인(L‘Homme libre)’ 언론에 독일의 위협을 매일같이 쓰시던 분입니다.”
“저도 익히 알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검열을 받자 ‘사슬에 묶인 남자(L‘Homme enchaîné)’로 제목을 바꾸셨더군요.”
“필리프 페탱 소장님에 대한 부분을 잠시 접어두더라도 지금 모헬 중령님께서는 명백히 클레망소 의원님과 같은 길을 걷고 계신 것 같습니다.”
으음… 그건 쪼오끔 아니긴 한데. 나는 고발한다 제목은 그냥 어그로성이었고 독일 적대 포지션은 전쟁 전까지 모든 정치인들의 메인 테마였잖아?
그리 따지면 클레망소와 반대 정당인 우리 대통령님도 반독사상 하면 한 가닥 하시는 분이라고.
억지로 엮는 건지 아니면 진심인지는 아직 분간이 안 된다만… 하난 확실히 맞다.
우린 영역이 달라도 협조할 수 있다.
당장 클레망소는 푸앵카레 내각에서 책상 하나 없는 외부인 신세다.
아직 완전한 전시내각 체제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고 그는 여전히 국무회의 의장직을 손에 넣지 못했다.
‘우리 대통령님께선 아직은 권력을 내줘야 할 정돈 아니라고 생각하시니까.’
아니면 감이 좋은 걸 수도. 호랑이한테 권력 한번 쥐여 줬다간 자기 역시 꼭두각시로 변할 거란 걸 아는 거려나.
뭐가 되었든 간에 우리 클레망소 전 총리님은 매일같이 언론으로 정부를 물어뜯고 있으시다.
국민들이 읽는 신문 골조는 주로 정부 비판이긴 하다만 사실 여당에게 ‘전쟁 이기고 싶으면 내 자리 마련하는 게 좋을걸?’이라고 사인을 보내고 있는 거다.
이로 인해 현 총참과는 살짝 어정쩡한 관계를 유지 중이시고.
그런 그가 자신의 비서까지 최전선으로 보냈다.
그 의미는 하나.
신문으로 백날 떠들어도 안 끼워주니 다른 방법으로 압박을 주고 싶은 거지.
“전 총리께서 다시 의장 중앙으로 복귀하고 싶으신가 봅니다.”
“당연한 말입니다. 현 폴 팽르베 의장은 눈치만 보며 변화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어찌 총리라는 자가 언론, 군부, 여야당의 의견에 휘둘리고 있답니까?”
“매우 반민주적 발언이십니다만….”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허나 파리 앞까지 당해놓고 평화적 통합 정치? 그딴 게 지금 중요하다고 보십니까. 국운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미쳐 날뛰는 경제, 군부, 언론, 정치를 휘어잡을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 나왔다. 꼭 전쟁 혹은 안보 위기 앞에서 저리 말하면서 다들 독재를 하던데. 혁명의 나라 프랑스에서 얼마나 통할지는 모르겠다만.
게다가 클레망소도 나중에 푸앵카레 대통령의 여야 통합 정책 덕에 총리직 따낸 걸로 아는데.
‘에휴, 군바리라 정치는 모른다고 생각하나 봐.’
그딴 달콤한 ‘난 네 편이야! 너랑 같은 생각이라니까?’라는 말에 홀딱 넘어갈 만큼 내가 멍청하진 않다고.
그래, 인정한다. 남이 보기에 난 브레이크 없는 기차로 오직 기관사 페탱만이 멈출 수 있는 것처럼 보이겠다지.
사실 나도 폐차까지 3년 남았는걸. 물론 자진 폐차다만.
클레망소. 그가 비서를 보내서 나를 움직인다면 결국 원하는 행동은 이거다.
현 참모부 인사들의 실각, 혹은 그에 준하는 인기 하락.
조프르의 실각은 곧 정부의 지지 하락이나 마찬가지니까.
물론 그럴 거긴 한데…. 뭐랄까 내가 이룬 업적에 숟가락 얹으려는 모습이 매우 꼴받는달까. 거참 기분 나쁘네.
그렇다고 여기서 ‘난 네 속셈을 다 아는데?’라고 떠들어 대거나 ‘우린 조프르와 적대할 생각이 없어.’라고 구라 치는 것은 전부 하수나 할 법한 짓이다.
진정한 고수는, 바로 판을 키워 그 속에 진심을 넣는 거다.
상대가 날 이용해? 그럼 나도 상대를 이용하는 거다. 이게 상부상조, 자유무역, 상호이익 아니겠나.
내 첫수는 그가 알다시피 ‘나는 고발한다’다.
“정확히 클레망소 의원님께서 어찌 저랑 함께하시겠단 겁니까. 저는 단 한 번의 불장난에 만족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저희 페탱 소장님 역시 소장 따위에 만족하실 분이 아니고요.”
기대감이 무럭무럭 자라나지? 막, 나랑 페탱이랑 이 나라 인기 군인 아이돌 천년만년 해먹을 거 같지 않아?
자, 그럼 너의, 정확히는 클레망소가 보일 패는 무엇일까. 진또배기 조합을 어떻게 보여줄 건데?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은 전부 사실입니다. 다만 발설은 주의해주십시오.”
“말씀하시죠.”
자, 지금부터 진심 확인 들어가겠습니다잉.
따라라란, 따라란, 쿵짝짝.
“곧 갈리에니 장군이 전쟁 장관직에 오를 겁니다. 아마 몇 달의 시간은 걸리겠지만요.”
“…. 조프르가 그걸 두고 본답니까?”
“그리고 조프르 총사령관은 다르다넬스 해협을 포함한 전역의 전권 총사령관으로 자신을 임명해 달라고 로비 중입니다.”
“…….”
“더불어 이 모든 일의 순서는 저희도 아직 파악 중입니다만, 지금보다 더욱 강력한 전쟁 계획을 설계하는 이는 차기 전쟁장관인 갈리에니 장군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어라, 사쿠라가 아니네.
근데 왜 내 모가지가 걱정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