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71
071화
첫 만남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음을 암시하며 떠난 모헬 중령. 그가 저택을 나선 뒤에도 한참을 클레망소는 생각에 잠겼다.
죽은 듯 의자에 미동도 없이 앉아 있는 그지만 눈빛만큼은 살벌하게 모헬 중령이 떠난 자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비서 마틴이 다가왔다.
“의원님, 정말 그의 말대로 해주시려는 겁니까?”
“글쎄, 나도 모르겠군.”
그는 묵직하게 자리나 지키는 입장이지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를 젊은 의원들처럼 날뛸 위치는 아니다.
그러나 모헬 중령의 태도는 확고하기 그지없다.
“군인이라서 그런가, 중간이 없어 중간이. 뭐, 중재자 역할이나 대리자 역할은 어림도 없을 것 같고.”
모헬과 만나기 전 클레망소는 다양한 방안을 구상했었다.
조프르와의 중재를 통해 그 사이에서 우뚝 서는 방법. 혹은 파리와 떨어진 북부 전선에 있는 그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높여주는 위치 등등.
그러나 모헬 중령은 그런 것 따위 필요하지도 않아 보인다.
“하긴, 이번에 드골 대위가 해낸 것만 봐도 그러겠지.”
그가 자신에게 원하는 것은 딱 하나.
조제프 자크 세제르 조프르라는 인간의 파멸.
“진짜 둘 사이에 아무런 과거가 없나?”
“저희 말고 다른 이들도 파헤쳐봤을 겁니다만, 그 누구도 둘의 과거사를 찾지 못했습니다. 이는 페탱 소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순수한 악의 그 자체란 말이군. 정말 지독해.”
모헬 중령에 관해 아는 자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그의 분노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그의 적대가 너무 과하다고.
이는 클레망소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저 젊은이가 무슨 원한이 있기에 총참을 이리 싫어하는가?
그러나 오늘 만남에서 약간이나마 해답을 얻은 것 같다.
“그는 진심으로 조프르 총사령관이 사라져야만 전쟁에서 이긴다고 생각하는 거야. 정말 그게 전부인 거였어.”
정치인, 자본가, 권력자와 같은 사회지도층이 보기엔 이해할 수 없는 이유였으나 모헬이 보인 의지는 진짜다.
아마 그 뒤의 페탱도 비슷하겠지. 둘은 이미 조프르의 실각이 이 전쟁의 승리로 직결된다고 믿는 수준 같다.
“그래서, 저자의 뜻대로 해주실 겁니까?”
“원래라면 어림도 없다고 생각했으나…. 이젠 대체재가 있지 않은가.”
만약 조프르가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면, 그 혼란은 프랑스 육군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리라.
그러나 그의 자리에 대신 들어갈 인물, 예를 들어 필리프 페탱 같은 이가 있다면.
‘그럼 굳이 이번 전쟁에 조제프 조프르가 필요할까?’
이제 와서 필리프 페탱은 증명되지 않았다는, 아직은 능력을 믿을 수 없다는 개소리를 할 만큼 클레망소는 멍청하지 않았다.
필리프 페탱은 진짜다.
그 아래 모헬은 실제로 존재하는 환상이고.
고민은 컸지만, 결정은 간단했다.
“의원들에게 연락 돌려. 지금부터 내가 총참의 무능을 까발리겠다고.”
“모두가 따라오진 않을 겁니다.”
“결국 썩은 달걀은 바구니에서 걸러지는 법이지.”
언제 끼워줄지 모르는 거국적 내각 의장직을 바라며 하염없이 허공에 소리치는 것은 역시 클레망소의 성미에 안 맞았다.
작년 말에 푸앵카레 대통령이 입 다물라고 하나 던져주려던 자리도 겨우 법무장관직.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나라의 총리였던 그의 자존심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클레망소 또한 단순히 정치인이 아니라 진심으로 프랑스에 충성하는 한 시민이다.
그런 사람으로서 판단컨대,
이번 전쟁에 두 이름을 배제하고 승전이란 목표에 조금이라도 다가간 적은 없었다.
***
이전까지는 홀로 구름 위에서 노니는 참모부를 보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만 이젠 같이 진흙탕으로 내려온 것 같으니, 어찌 이를 두고 볼쏘냐.
난 죽을 때까지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힐 것처럼 행동하는 결벽증 환자집합소인 참모부와 함께라면 유격 8번 체조도 하루 종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행보는 이제 시작이었다.
먼저 멀리 계신 분들에게는 안부 인사 한번 전하고.
[존경하는 오귀스탱 뒤바일(Augustin Dubail) 동부 집단군 사령관님께.…최근 들어 동부의 전세가 심상치 않다고 들었습니다. 사령관님께서도 적의 대대적인 공격을 예상하고 계심을 알고 있습니다.
사실 저 또한 적의 대규모 공세를 의심하는 바입니다. 특히 베르됭(Verdun)과 벨포르(Belfort) 지역 방어를 주장하신 바는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 참모부는 동부는 안전하다는 생각에 지원은커녕 병력 이동 지시를….]
우선 현 조프르를 떠받치는 이들이자 방패막이들을 한 번씩 흔들고. 대놓고 싸우는 놈들한테도 얼굴을 비쳐 본다.
“어이쿠, 요즘 악마는 이렇게 생겼나?”
“소크라테스가 이런 말도 했다더군요. 악명도 명성이다!”
“으하하하! 이 사람 좀 보게! 땅개에도 웃을 줄 아는 사람이 있다니!”
놀랍게도 어디 시골이 아닌 파리에 당당히 위치한 해군전략사령부(Commandement Stratégique Naval). 솔직히 나도 얼마 전까진 그 위치조차 몰랐다.
영국은 수상함.
독일은 잠수함.
프랑스는 그… 구식 타고 다니는 쩌리들.
현 해군 전략을 한 줄로 요약하면 지중해 골목대장.
이게 유럽 해군 구도에서의 프랑스 위치가 아닐까 싶다.
죄다 구식함에 요즘 없으면 무시당하는 명품 드레드노트는 지었다 하면 육군한테 온갖 개쌍욕을 다 처먹고 의회 불려 나가서 ‘사치 좀 그만 부리세욧!’ 소리 듣는 게 바로 우리나라 해군.
그런 그들에게 육군 최고 아이도루 모헬이 말한다.
너희 서러웠잖아. 전쟁 시작한 지 1년이 지났는데 도크 위에 전함 하나 안 올라가고 하는 짓이라곤 지중해에서 떵떵거리는 것뿐.
대양에선 동맹 영국한테도 무시당하고. 어휴, 고생했어, 고생했어. 난 다 이해한다니까?
조프르가 내다 버린 해군의 지지, 내가 잘 주워다가 먹겠다.
벨기에까지 뻗어버려서 우린 해군 보급도 가능하거든.
클레망소의 폭로로 조프르가 해군 지휘권까지 손에 넣을 뻔했단 사실을 알자 바닷가재들의 지렁이 혐오는 더욱 심해진 상황.
“각자의 전공이 있는 법이고, 서로 협력해야만 승리할 수 있는데 어찌 육군이 해군을 통솔한답니까? 이게 말이나 됩니까?”
“내 말이 그거야! 우리 게프라트 제독께서 지중해에 하시는 일들을 지금 총사령부가 어떻게 이어받았지? 잘 만든 봉쇄 그물을 찢고 되지도 않는 상륙이니 오스만 점령이니 하면서 다 말아먹었지!”
“저도 다르다넬스 해협에 침몰한 우리 전함 생각만 해도 피가 거꾸로 솟습니다. 그러고 보면 영국의 처칠이나 우리 조프르가 형제 아닐까요? 기가 막히게 잘 꼬라박는 재주를 가졌으니까!”
“으허허허!”
“흐흐흐.”
살살 긁어주니 참으로 좋아하는구나.
아무리 술과 아부에 취해 기분이 좋다 한들 난 하루아침에 폐에 소금물이나 채우던 것들이 날 위해 움직일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 모든 과정은 단 하나를 보여주기 위한 쇼다.
너희가 아는 절대 권력 조프르는 이제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쇼.
권력(權力)이란 단어의 정의가 상대를 강제로 복종시키는 힘일진대 일개 중령이 날뛰어도 수그린다면 그건 더 이상 권력이 아니다.
그건 거대한 샌드백이자 뜯어 먹을 고래 사체일 뿐이지.
그러니 내가 말한다. 같이 뜯어 먹자고.
당연히 해군도 눈치껏 ‘슬슬 기 펴도 되나?’ 싶을 거다.
원래 나쁜 짓은 처음 한 번이 힘들지 두 번, 세 번은 곧장 습관으로 변한다.
그런 의미에서 난 모두가 조프르에게 의문을 품고 그를 시험하길 바란다.
누군가는 철퇴를 맞겠지. 어떤 이는 나락을 경험할지 모른다.
그러나 장담한다.
절대 조프르는 날 못 건든다.
그러니 어째.
이 한 몸 불살라 증명해야지.
조프르는 이제 끈 떨어진 신세라는 것을.
내가 여기저기서 얼굴을 알리며 더는 우리 파파 조프르가 가장이 아님을 알릴 때, 클레망소의 행동은 처음부터 본격적이었다.
[클레망소 의원, 공개 청문회 요청.]파리 도착 2주도 안 되어 쓰라린 민심에 소금을 뿌려줄 장소가 마련되었다.
***
청문회.
사실 프랑스에는 미래 인사청문회 같은 차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특정 정책이나 주제에 한해서 청문회가 진행되긴 하는데, 그 자리에 군인이 선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게 나도 알아보니까 이 나라 역사가 그리 만만치가 않더라고.
청문회는 청중을 대동한 채로 다양한 의견을 청취, 수렴하는 자리다.
뭔가 마구마구 떠오르지 않는가?
‘불타는 횃불과 쟁기를 든 채 씨불여 보라는 시민들이 생생하게 그려지네.’
이 자리에 마녀사냥의 화형대와 단두대의 환영이 보이는 것 같다.
아무튼, 겉으로는 ‘군사계획에 대한 질의응답’이다만 내가 볼 땐 아니다.
“마른 전투의 계획이 사전에 수립되어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럼 국경 전투는요?”
“그 부분은 대독일전 전쟁계획에 나와 있습니다.”
“제17계획 말씀이시군요. 근데 성공한 플랜은 어느 겁니까?”
“…플랜은 방향성을 제시할 뿐입니다.”
어우, 나도 저런 자리 경험해봐서 잘 알지.
이건 순수하게 ‘하핫, 너의 의견은 어떠니? 난 이러이러하게 생각해!’ 같은 해님 반짝 별님 안녕 토론이 아니다.
살짝만 삐끗해도 청중들이 양복 벗고 농민 복장으로 갈아입은 뒤 눈동자를 부릅뜨고 ‘뎅겅?’을 띄우는 재판.
말이 청문회지 재판장이자 사회적 처형장이란 뜻이다.
우리 자랑스러운 대육군 참모부를 당당히 진두지휘하시던 에두아르 장군님은 저 한복판에서 천하의 개썅놈이 되어 버리셨다.
‘조프르가 버릴 것이라는 확신이 있으니 사전에 언론으로 시민들을 제대로 달궈놨네.’
반면 클레망소 측에서 내세운 공화파 출신 의원들은 온갖 법률적 근거까지 들이대며 노엘 에두아르의 정신을 한쪽씩 잡고 능지형을 집행하고 있으시다.
“제1 참모차장으로 근무하던 당시에 ‘나는 고발한다’의 존재를 알고 있었습니까?”
“몰랐습니다. 정식으로 보고되지 않은 문건은 제가 알기 어려웠습니다.”
“피고, 아니 장군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모헬 중령이 당시 중위이던 시절 제1 참모부 소속 에네바에 중령이 재판과 이후의 만남까지 함께했다는 사실은 이미 증명된 바입니다!”
“그것은 제가 명령하지 않은 사적인 만남이었습니다!”
“총력전 직전에 참모부 핵심 인력이 아라스까지 사적인 만남을 위해 갔다고? 에라이,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허허, 별걸 다 알고들 계시네. 그땐 그랬지…. 나도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분이다.
잠시 눈을 감고 그때를 회상하며 미소 짓고 싶다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난 약간 충혈된 눈과 애써 담담함을 유지한 표정으로 조용히 이 과정을 팔짱 낀 채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그런 나를, 이 자리의 모두가 처음부터 끝까지 힐끔거리고 있다.
시민들은 이걸 보고 뭐라 생각할까.
정의 구현? 인생은 실전이다, 텔노야? 뭐가 되었든 난 한결같이 표정 관리 중이다.
날 파멸로 끌어내리려던 자를 지켜보는 순간 아닌가. 웃음이 냉정을 뚫고 나올까 봐 애써 힘을 주고 있다. 누가 복수는 나쁘다고 그랬어? 이리 달콤한데.
‘클레망소, 그림 하나는 기가 막히게 그리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재판받고 누명까지 쓴 채 전장에 나갔다가 전부 승리한 인간이다.
찰리 채플린도 이건 너무 허황돼 코미디 영화로 만들기도 어려운 소재라 하겠다만 어쩌겠어, 그게 사실인데.
당장이라도 날 증인으로 요청할 것 같은 공화파 의원들의 차례가 끝나고, 다음은 급진파 의원들이 나섰다.
“얼마 전 파리 안위와 직결되는 중앙집단군(GAC) 수장이 되셨더군요. 어떠한 근거에 의한 판단이었습니까? 혹시 스스로의 머리에 왕관 씌우기였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혹시 다른 이의 인사권이 개입되었습니까?”
“…아닙니다. 집단군을 이끌 장군이 몇 없어 부족하나마 제가 하게 되었습니다.”
“허! 집단군을 이끌 장군이 없다라! 뭣하면 북부에서 데려와도 충분했을 터인데.”
“…….”
급진파! 텔노의 라이프는 이미 0이야! 이미 승부는 났지만… 그래도 계속해줘!
거국적 내각에 한 발 걸친 급진파라고 쉬울 줄 알았나 본데 어림도 없다.
이번 사건으로 푸앵카레 대통령님 심기도 어지간히 불편하신 게 아닌 것 같더라고.
작년 그랑 쿠로네 전투에서 낭시를 지켜냈던 낭시의 구원자의 어깨가 오늘따라 매우 처져 있는 것 같다.
차마 총사령관 탓으로는 못 돌리고 결국 몰랐다, 내 능력 밖이었다, 다 애국심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등의 변명으로 질문들을 넘기고 있다만 그럴수록 청중들의 반응은 싸늘해지고 있다구.
그런 에두아르의 몰락을 난 한 장면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로 지켜봤다.
여러 상황이 함께 어우러졌다 하지만 내 손으로 이 나라 육군의 2인자를 끌어내렸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괜스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 나쁘지는… 않아.’
오히려 약간 흥분되게 만들기까지 한다.
처음 알았다. 누군가의 추락이 이리 내 기분을 이륙시켜 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나 지켜보는 눈이 많기에 난 신선한 이 기분을 싹 감추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익사하는 에두아르를 끝까지 응시했다.
여전히 난 억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