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72
072화
“으음… 향이 좋아.”
개인적으로 난 어린애 입맛이라 쓴 걸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고운 가루까지 달달한 쇼콜라떼.
우유에 시럽 듬뿍 넣고 향만 살짝 첨가된 커피.
과도한 설탕으로 구강과 위장의 건강 따윈 개나 줘버린 아이스크림.
이런 것들이 소소한 행복을 주는 베르게르 모헬의 도파민 제조기들이다.
지금 내가 마시는 커피도 멋들어진 신사가 폼 잡고 마실 고오오급 커피는 아니지만 뭐 어쩌겠어.
난 이런 게 너무 좋은걸.
“이런 여유, 도대체 얼마 만이냐고.”
후르릅.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무조건 존재하는 군대 조직 특성상 나라도 이런 시간을 가지긴 어려웠다고.
조금이라도 쉬려고 하면 눈 부릅뜨고 찾아와서 평화를 파괴하던 베이강과 이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페탱 소장님, 포슈 사령관님까지 얼마나 고달팠는데.
반면 지금은? 파리 시민 전부가 내가 쉰다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해줄 거다.
‘이게 맞지. 암, 그렇고말고.’
커피의 구성을 물, 원두, 설탕으로 분류 가능하다면 베르게르 모헬이란 인간은 자유(自由), 여유(餘裕), 유유(愉愉)라는 세 단어로 정의 가능하리라.
“어, 저희 이러고 있어도 되는 겁니까?”
“안 될 건 뭐야?”
다만 이름 모를 파리 시민만도 못한 나의 부관은 괜스레 불안한 소리나 뱉고 있다.
피해자는 뭐 아침에 여유로운 커피 한잔도 해선 안 된단 말인가.
‘그런 거라면 진짜 억울해서라도 파리에 전차 끌고 입성했지.’
원래 몸이 다쳤다면 빠른 회복부터 해야 하지 않겠나. 정신적 상처도 비슷하다고.
이런 커피 한잔이 얼마나 내 정신건강에 이로운지 몰라서 저러는 거다.
게다가.
“파비앵, 말로 입은 상처는 총칼에 의한 상처보다 더 아프다는 말이 있어.”
“처음 듣습니다만. 그 문구 이럴 때 쓰는 말입니까?”
“모르지. 처음 뱉은 사람이 총칼로 상처를 입어봤을 것 같진 않으니까.”
내 경험상 볼에 파편만 스쳐도 페탱의 독설보단 아프던데.
뭐 부대마다 다른 것처럼 사람마다 다른 거 아닐까.
아무튼 난 이런 휴식을 즐길 자격이 차고 넘친다.
한잔의 모닝커피를 마치자 방에 놓인 시계가 8시 30분을 알렸다.
그와 동시에 내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
똑똑.
“중령님, 말씀하신 손님이 오셨습니다.”
“들여보내.”
군복이 아닌 말끔한 포멀 슈트와 모자의 조합. 거기에 검은색 지팡이까지 겸비한 이가 들어섰다.
‘저게 딱 자본가의 표본 복장이지. 나처럼 가슴팍에 훈장 달고 알록달록한 정복이 아니라.’
처음 보는 얼굴. 그러나 참으로 반갑다.
“안녕하십니까, 위명은 많이 들었습니다. 루이 르노(Louis Renault)라고 합니다.”
“하하, 잘 오셨습니다. 베르게르 모헬입니다.”
난 반가움을 숨기지 않은 채 그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
루이 르노.
부유한 집안의 넷째로 태어나 지금의 자동차 제조 회사(Renault)를 경영하고 있는 경영자.
부르주아와 경영자란 단어만 보면 시가 벅벅 피우면서 거만하게 배나 두드리는 자본가로만 생각하겠지만 첫인상부터 느껴진다.
‘왜 샌님 공돌이가 여기에….’
그러고 보면 저 양반이 입은 포멀 슈트, 왠지 안 어울리는 거 같아.
청색 작업복이나 체크무늬 와이셔츠가 찰떡일 것 같달까.
너무 그의 옷만 신경 쓰고 있었더니 루이는 헛기침을 하며 애써 말을 했다.
“제가 참전자는 아니라… 아, 그렇다고 전쟁 거부자는 아닙니다!”
“음?”
“게다가 저희 르노 사는 전쟁 후원 기업임을 아시지 않습니까?”
아, 설마 내가 배지 없다고 쳐다보는 거라 생각한 건가.
요즘 애들이 후방에서도 야전 한번 뛰고 나면 가슴팍에 조그만 은색 배지를 무슨 명품 패션 아이템처럼 달고 다니던데.
그게 마치 애국의 증거라도 되는 것처럼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더니 짭도 돌아다닌다고 들었다.
‘그냥 훈장 받고 그거나 달고 다니지.’
물론 21세기 선진 패션피플의 시선에서는 다 추레하다만.
“일단 진정하시죠. 전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르노 사장님에 대해서는 프레드릭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고.”
“정확히는 도움을 주실 수 있다고 하셔서….”
“그게 그거죠.”
지금 르노 기업한테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난 내가 아는 메가 코퍼레이션 르노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조금 알아보니 이것들, 미래와 달리 아직은 조금 흘러나오는 코도 흥- 하며 도로 주워 먹는 코찔찔이더라고.
“전 개인적으로 르노라는 회사가 좋습니다. 마른 전투 당시 택시들이 병력 수송을 도울 때 보니 대부분이 르노 회사에서 제조했더군요.”
“하하, B타입이 워낙 잘 팔려서.”
“소형 엔진임에도 튼튼한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전차 협력 대상으로 점찍었던 거구요.”
이건 사실이다. 눈앞의 양반이 만든 부아튀레트(Voiturette) 자동차는 작은데도 힘이 좋고 튼튼해서 유명하다. 기술력 하나는 믿을 만한 기업이 지금의 르노다.
근데 그건 그거고.
“다만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큰돈 들여 북부에 지은 루르 공장은 뭐 전쟁 터지자마자 망해버렸고, 몇 번의 대규모 파업으로 회사가 휘청이기도 했죠. 지금은 겨우 전차와 트럭 납품으로 연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건 다 전쟁 때문에 그런 겁니다. 전쟁만 끝나면 다 해결됩니다!”
“그럼 그 전쟁은 언제 끝납니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긴 이 양반아, 너도 대충 주워들은 게 있으니 알잖아. 아직 멀었다는 거.
조프르가 올해 5월에 종전 각 본다는 말에 모든 회사들이 눈 딱 감고 5월까지만 버티자는 마인드로 그간 연명해왔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다.
돈 빌릴 은행? 수출? 지금 프랑 화폐 가치 자체가 망하고 있는데 무슨 말인가.
르노가 지하에 금괴 몇십 톤 쟁여둔 거 아니면 절대 내년까지도 못 버틸 거다.
물론 군용으로는 뒤지게 잘 팔리고 있긴 한데 그걸 팔린다고 할 수 있나?
“군납으로는 대금 결제도 제대로 안 되고 있죠. 아마 채권이나 강제 동원되는 실정 아닙니까.”
“후우, 그렇습니다. 사실 회사 내부에 돈이 안 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제조 기업이 돈 벌었다는 소문이라도 돌아봐라. 바로 돌 맞고 끝장이다.
그러니까 난 그의 몇 안 되는 vip 고객이자 전쟁 한정으로 르노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간이다.
게다가 하나 더 추가하자면.
‘우헤헤, 돈도 많다구.’
보고 배우라고, 미래의 이찬석? ETF도 네가 사면 떨어지지만 지금의 난 가치 투자의 시초를 쓰고 있다고.
작년까지 프랑스를 다 가진듯했을 테지만 지금은 대전쟁에 휩쓸려 숨을 헐떡이는 이자에게 난 아주 자비로운 제안을 할 생각이다.
“그래서 말인데, 제가 도움을 드리고자 이리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정확히 어떤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도 기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눈을 반짝이며 경청한다.
“먼저 전쟁은 절대 내년에도 안 끝납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르노가 국가에 기대어 운영했다간 아예 국가 산하 기업이 되어버릴 판이고요.”
“그건….”
“설마 국가가 나중에 그간의 손해를 다 보상해주고 뺏어간 트럭과 사용한 설비를 다 돌려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죠?”
에이, 종전 후 프랑스는 지금보다 더 거지일 텐데? 장담컨대 클레망소는 전쟁 끝나면 자본가를 더 털었으면 털었지 절대 그들이 바라는 자유 따위 주지 않을 거다.
심지어 외국으로 튄 놈들까지도 잡아 와서 돈 다 토해내게 만드는 지독한 인간이 클레망소라는 사람.
전쟁을 도운 공이 있는 르노라지만 별반 다를 운명은 아니다.
“먼저 군납 문제. 제가 약간의 도움을 드리죠. 특히 전차 생산 라인은 얼마를 생산하든 전량 다 군부에서 매입하겠습니다. 당연히 대금은 음, 거래가 가능한 채권 형태로.”
“거래 가능 채권이라면 지금 민간에도 유통되는 채권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기업들한테 마구잡이로 뿌리는 채권 말고, 민간인들이 실제로 쓰는 애국 채권 말씀입니다.”
세금은 안 걷히고 돈은 없는데 금본위까지 포기한 푸앵카레 내각이 선택한 방법은 바로 무제한 채권 발행이었다.
다만 한 가지 술수를 부렸는데, 민간에 유통되는 채권, 국내 기업들한테 뿌린 채권, 그리고 국외까지 유통되는 채권을 구분 지어버린다.
당연히 봉인 국내 기업들은 전부 현금성이 떨어지는 채권을 받았고.
저 채권들도 엄밀히 다 원금에 이자까지 받을 수는 있다. 한 몇 년, 혹은 몇십 년 걸리겠지만.
“그러니 전차는 전부 만드는 대로 북부로 보내주면 됩니다. 당연히 초기 르노 전차와는 달라야겠지요. 이 부분은 나중에 이야기 나누시고 그다음이 핵심인데. 혹시 투자 필요하시지 않습니까?”
“지금 시기에 투자가 가능하겠습니까?”
“어우, 위법도 아닌데 당연히 가능하지요.”
20세기 프랑스, 너무 좋아. 규제 자체가 없어서 위법이 아니거든!
프랑스 은행들도 심심하면 투자하고, 그 회사 상장시킨 뒤 곧장 배당 뿌려서 껍데기 만든 다음 버리는 짓까지 하는데 나 정도면 건전한 투자자다.
다시 말하지만, 난 르노라는 회사에서 발견한 작은 가치의 불씨에 장작만 던져줄 뿐이다.
“제 개인적인 자금입니다. 전혀 탈도 없고 합법인 돈 말입니다. 게다가 제가 끼면 도움이 되면 되었지 손해는 아니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르노가 지금 물불 가릴 처지는 아니잖아? 돈이면 눈 딱 감고 목구멍에 쑤셔 넣어야지요.
“저, 저는 경영권만 안전하다면 얼마든지 좋습니다! 아니, 제발 해주십시오!”
“좋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나의 후손들아, 들어라. 이 주식은 100년이 지나도 팔지도 말고 배당만 받아먹으며 존버할지어다.
날 닮은 놈이면 분명 더럽게 게으른 놈일 텐데 내 너희들의 은퇴자금까지 지금 이 자리에서 벌어주겠노라.
“먼저 지분은-”
벌컥.
모헬 가문의 역사적인 순간에 갑자기 밖이 시끄러워지며 문이 열린다.
“정말 안 됩니다!”
“뭐가 안 돼. 나와.”
“아무리 그러셔도 안 됩니다. 나중에 다시 찾아오시면-”
“자넨 아무런 관련이 없으니 좋은 말로 할 때 나와. 안 그러면 내가 지금 못 참을 것 같으니.”
“아니, 안 된다고요!”
어떻게든 막으려는 자와 그를 가볍게 무시하며 밀고 들어오는 중년.
둘의 싸움이 커지는 게 싫어 난 손을 들어 일단 몸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제지했다.
“하아… 이분은 누굽니까.”
감히 모헬 가문이 대대손손 태어나면서부터 은퇴하는 순간을 막무가내로 방해하다니.
불쾌함에 나도 모르게 정색하게 된다.
“자꾸 안 된다고 하는데 병력까지 이끌고 찾아오셔서는….”
“어, 잠시만.”
나, 저 얼굴 아나?
‘아니? 처음 보는데?’
내 좁디좁은 인맥으로는 저런 사람을 알지 못한다. 근데, 왜 익숙하지?
이 느낌은 그래, 마치 그때처럼.
“혹시… 성함이.”
“맞아.”
“그니까 그-”
“맞다고.”
“아. 아하하하.”
잠시 숨을 들이쉬고, 표정을 자본가에서 친절한 서비스직으로 바꾼 다음 말했다.
“다들 잠시만 나가주시겠습니까? 르노 씨도 잠시만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무리 그래도 중령님.”
“파비앵, 제발 부탁이야.”
어서 빨리 나가줘.
내 간절한 눈빛에 이해는 못 해도 상황 파악은 했는지 파비앵은 순순히 모두를 이끌고 나갔다.
그렇게 방문이 굳게 닫히고 나와 눈앞의 중년인만 남은 상황.
난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그리고.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바로 무릎 꿇고 싹싹 빌었다.
“아니, 아니지. 자넨 몰라. 역시 아무리 봐도 모르는 것 같아.”
“무엇을….”
“왜 죽어야 하는지 말이야.”
아니, 내가 죽을죄까지 지었다고? 잘못이 없는 건 아닌데 그래도 난 무려 벨기에 해방자인데? 당신이 입은 게 군복이 맞다면 더 잘 알 거 아니야.
무감정하게 사망선고를 하는 의사처럼 중년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장군님, 제가 무슨 죄를….”
“혹시 아기 이름은 정했나?”
“예? 아기라니요?”
“그래, 역시 넌 이 자리에서 죽어야 해.”
“잠깐만, 잠깐만요! 그게 무슨- 으아악! 파비앵, 들어와! 들어오라고!”
무언가.
내가 모르는 역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