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75
075화
두 눈으로 에두아르의 몰락을 똑똑히 지켜봐준 뒤 난 일부러 칩거에 들어갔다.
시민들과 언론은 복잡한 심경을 가진 군인이라며 온갖 추측성 기사를 낸다만 사실 딱히 외부 활동을 할 이유가 없다.
이젠 내가 나서서 시민들에게 인기를 구걸하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외부 활동을? 어차피 필요한 말은 드골이 매일같이 해주고 있는데 무슨 말을 더 할까. 때론 침묵도 또 하나의 발언 방법이다.
지금 난 파리에 상주함으로 한 가지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거다.
어서 깽값 내놓으라고.
비록 내가 배포한 내용이지만 무료라는 말은 안 했다구.
‘아아, 이건 21세기 월트 디X니식 계산법이라는 거다, 친구들.’
그리고 어느덧 3주가 지나니 원하는 바가 전부 손에 들어왔다.
자잘한 잔돈 빼고 딱 큰 거 두 장만 보면 일단.
페탱의 북부 사령관 임명.
에두아르 중장의 해임.
“그래도 총참에서 어중간하게 나한테 접촉 안 하는 걸 보면 아직 눈치는 있어.”
“어, 그냥 말이 안 통할 걸 알고…. 아, 아닙니다.”
“뭐라는 거야, 파비앵. 조프르는 정치 괴물이라고. 나 같은 걸 그런 이유로 피할 리가 있나. 다 고도로 계산된 움직임이야.”
그의 파벌 누구도 이제 와서 나한테 잘해보자느니 다른 제안을 하겠다느니 하는 개소리는 안 한다.
조프르는 지금 그 누구보다 눈에 띄어선 안 되는 존재다. 모든 책임은 국민의 역적이 되어버린 에두아르 중장이 뒤집어쓰고 침몰했으니까. 실제로 언론에서 총참 책임론이 쏙 들어간 걸 보면 말 다 했다.
조프르의 고립. 난 이번에 목표한 바를 다 이뤘다고 생각한다.
추가로 딱히 의도하지는 않았다만 5월, 영국이 우리한테 진 빚까지 내가 써먹게 되었다.
영국이 노 대신 삽을 들었을 때 일어나는 삽질.
바로 갈리폴리 대패.
감히 내가 개인적으로 영국의 조프르라고 평가하는 우리 처칠 경.
그의 코스탄티니예(이스탄불)까지 쭉 쓸어버리겠단 꿈은 갈리폴리 앞바다에 수장되어버렸다.
그와 동시에 함께 수장될 뻔한 프랑스한테 어찌 보면 빚이라고 칭할 게 생겼는데 마침 북해가 좀 더 복잡해지게 생긴 거다.
북부 전선의 해양 보급 및 영국 해군력의 무력 압박.
처칠의 삽질로 조프르가 얻은 ‘영국 소원권’을 어찌 묵혀두겠나. 바로 내가 써야지.
처칠이 사임했어도 식을 줄 모르는 유사 혁명의 국가 영국의 여론도 마침 ‘개짓거리 하지 말고 그냥 북해나 지켜라’라고 등 떠밀어주고 있다.
“그래, 무려 ‘그’ 헤이그도 국민 영웅이 되어버렸잖아. 너희 해군으로 잘 좀 도와주라고.”
이 정도면 몇 년 전 끄적인 몇 장의 보고서 값으로는 적당하다 느낀다.
어느새 깽값 계산이 끝나니 다시 전선으로 복귀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산달이 가까워진 샤를로트를 두고 파리를 떠날 생각을 하니 발걸음이 안 떨어지지만….
[-비록 포슈 장군께서 완전히 손을 떼시진 않았지만 지금 새로운 전선이 열려 매우 바쁜 와중에 … 자넨 파리에서 설마-]지휘봉을 빠따로 휘둘러도 이상하지 않을 페탱이 ‘내 참모장 어디 감?’이라고 물으시니 더는 파리에서 꿀 빨긴 글렀다.
“에효, 꼭 복귀해야 하나? 나 없이도 잘만 할 거면서.”
“더 파리에 머물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흠, 마음의 상처와 회의감으로 칩거를 연장….”
“그 변명을 사령관님 앞에서 해보십시오. 살아남으시면 제 봉급으로 고급 와인을 사 병원으로 찾아가겠습니다.”
“젠장, 역시 불가능하단 말인가.”
분명 신문에서는 ‘우리들의 상처받은 영웅.’이라고 보도했을 텐데 페탱은 왜 내가 후방에서 등 따시게 누워서 배나 두드리며 버억 쉬고 있다 생각하는 걸까.
“파비앵, 내가 방금 또 군대의 고질적인 문제를 발견했네.”
“무엇이십니까.”
“군대는 자기 빼고 전부 쉬면서 꿀을 맛보고 있다 여기는 것 같아.”
“…….”
“역시 나랑은 잘 안 맞아. 체질이 아니란 말이지.”
“하아…. 먼저 짐 싸겠습니다.”
“자네 지금 한숨 쉰 거야? 감히 상관의 진지한 고찰을 무시해?”
내 말에도 파비앵은 그저 고개를 흔들며 무의미한 ‘예, 다 맞습니다, 언제나 옳으십니다.’ 같은 영혼 없는 답만 내놓았다.
파비앵과 하는 이런 진지한 고찰도 돌아갈 날이 다가오니 다 부질없게 느껴진다.
조프르 외톨이 만들면 뭐 하나, 내 삶은 달라진 게 없는데.
“복귀하기 싫다….”
후방에 더 머물 방법은 없단 말인가. 이 넓은 파리에 진정으로 날 필요로 하는 곳이 없을 수가 있나.
이 기분은 단순히 내가 일하기 싫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샤를로트한테는 또 한 번 미안해지네.”
그래도 전쟁 영웅이 탈영할 순 없으니 가야겠지.
죽음과 군대.
프랑스 남자라면 피할 수 없는 숙명인가 보다.
정말 무섭고도 지긋지긋하다.
***
“시민 여러분, 비록 저희는 떠나지만 이것만은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저희가 죽음에 한 발짝 가까워질수록, 위대한 프랑스의 승리는 두 발 짝 다가온다는 것을!”
드골은 떠나는 기차역에서까지 밤을 새워서 만든 따끈따끈한 명언을 뿌리며 기자들의 손을 바쁘게 만들었다.
“이보게, 그만 말하고 좀 가지. 기차 다 왔네.”
“어허, 중령님. 이게 다 나의 애정임을 모르는 건가?”
“애정은 무슨. 누가 보면 내가 억지로 시킨 줄 알겠네.”
“내 다 알아서 할 터이니 자넨 표정만 유지하시게.”
분명 드골이 내 부탁으로 파리에서 활동하긴 했는데… 이게 맞나?
대변인 정도의 위치를 바라긴 했다만 이건 뭐 군인이 아니라 모헬 홍보 대사로 취직한 거 같잖아.
이놈 적성이 언론플레이라는 걸 진심으로 느낀 게 내가 ‘작년에 조사받을 때 귀찮았지.’라고 중얼거린 뒤 자고 일어나면.
다음 날 프랑스 전국에 ‘외부의강압적 조사로 심신이 피폐해진 베르게르 모헬!’이라고 퍼져 있더라니깐.
그래도 꼴에 자존심이 있는지 거짓말은 안 한다.
‘거짓말은… 안 했지.’
대신 3주 만에 ‘폐급 장교가 전쟁 터지고 보니 사실은 세상이 괴롭히고 적군이 죽이려고 달려드는 역사에 둘도 없을 고통받는 피해자이자 카이사르 뺨치는 전쟁의 신!’이 되어 버렸다.
아주 마이너 장르 소설 제목으로 써도 안 팔리지 않을까 싶지만 놀랍게도 이게 몇 주째 프랑스 신문사들 완판 기사 1위란다.
“아.”
기차에 앉아서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니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감과 동시에 뇌가 비워진다.
이 기분. 또 한 번 내 몸을 강타한다.
“좆같군. 아주 좆같아.”
“예?”
“혼잣말이네.”
“그… 예.”
신나서 조프르 팔 한 짝 뜯어먹겠다고 발 동동 구르며 파리에 온 것과 대조되는 순간.
내 첫 휴가가 그러했고 작년 마른 이후 북부로 끌려갈 때가 이랬다.
지난 3주가 3분같이 느껴지며 오직 군대에 복귀하는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현타가 내 동공의 초점을 빼앗아버린다.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드골은 위로한답시고 차분히 말을 붙였다.
“그래도 자네 이번 전쟁만 버티면 되지 않겠나.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한 전쟁 아닌가.”
“허허, 허허허!”
내 귓구멍으로 저 개소리를 직접 듣게 될 줄이야. 모든 것을 끝낼 전쟁? 그래, 틀린 말은 아니지.
“자네 말이 맞아! 모든 것을 끝낼 전쟁이야! 우리도 끝장이고 독일도 끝장이고 다 망하는 전쟁! 근데 그거 아나? 끝이라는 말은 새로운 시작이란 말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보게, 베르게르. 자네 지금 너무 흥분-”
“젠장, 빌어먹을 4년! 시발, 내가 아무리 전선에서 구르면 뭐 하나! 우리 프랑스의 힘으로는 절대 베를린에 삼색기를 꽂을 수 없는데!”
“…….”
“어….”
답답한 마음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을 겨우 문장으로 꺼냈더니 파비앵과 드골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지 날 그저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더니 드골은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후 다시 자리에 앉아 천천히 내 말을 곱씹었다.
“그, 자네 말대로라면 현 연합국들의 힘으로는 못 이긴다. 맞나?”
“후우, 뭐, 그렇지. 샤를, 현실은 현실이라네. 어찌저찌 막을 수는 있어도 진격은 여전히 불가능해.”
“그럼 자네가 만든 벨기에 전선은?”
“그건… 우연의 산물?”
1초의 고민 후 내놓은 나의 답에 드골은 앞에 놓인 다과를 쓸어내리고 접시를 집었다.
“아니, 아니! 잠깐! 왜 자네가 화를 내는 건데!”
“내가 그 우연의 산물에 목숨을 걸었다는 생각은 안 하나? 그거 네가 만든 전선이잖아, 이 미친놈아!”
“어허! 내가 만들었다니? 언제나 말하지만 난 ‘제안’을 했고 ‘명령’에 따라 움직였을 뿐-”
“으아아, 참으십시오!”
움직이려는 드골의 손에 곧장 파비앵이 달려들어 그의 접시를 뺏었다.
“하아… 그래. 자넨 이런 새끼였지.”
“말이 심하군. 난 생각보다 그런 말에 쉽게 상처받는다네.”
“닥치고. 그럼 새로운 참전국이 있다는 소리 같은데. 그게 혹시 미국인가?”
“그렇지, 뭐. 남은 플레이어가 그쪽뿐이니.”
열강 중에 힘 남은 애가 미국뿐이니 딱히 어려운 답도 아니다.
다만 모두가 미국을 새로운 참전국으로 생각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저들이 신앙처럼 여기는 먼로주의가 깨진다라. 내 머리로는 상상하기 어려운데.”
“괜찮아. 그 먼로주의자들 대가리는 자본주의 앞에서 확실히 깨지니까.”
미국이 참전을 안 할 거 같다고?
미국에 관련된, 이런 큰 문제가 나타난다면 우린 돈이 관련되지 않았나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미친 듯이 수출하며 돈 놓고 돈 먹는 미국의 판을 어느 날 누군가 엎어버렸다고 하자.
그때 저 미합중국 1억의 1인 정당들이 모두 ‘엣큥, 와따시 너무탐욕스러웠던 거예요!’ 하고 조용히 안방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제임스 먼로의 주장 따위 한마음 한뜻으로 변기에 처박고 자기 집에서 뛰쳐나올까.
“독일의 경고가 그리 가볍진 않을 텐데. 실제로 무력을 어느 정도 실행할 여력이 있고.”
“아, 경고? 저 신대륙 놈들은 자기네 정부 말도 안 듣는데 타국의 경고 따위를 들을 것 같나?”
“그도… 그렇군.”
우리나라 국민들도 디폴트값이 혁명이라 무섭지만 저 미국 놈들도 만만치 않다. 어디 시위하러 나갔다 하면 총 챙기는 놈들이 널린 곳이거든.
“도저히 내 머리론 따라갈 수가 없군. 화가 날 지경이야.”
“괜찮네, 지금 이해할 필요도 없어. 먼 미래의 이야기니까.”
“내 말은 자네가 혼자 다 알고 설레발로 지랄하는 꼴이 매우 짜증 난다는 소리야. 난 일반적인 프랑스 남성일 뿐인데 뭐가 문제겠나.”
“…….”
아니 시발 아는 것도 죄가 돼? 내 무지가 죄라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유지가 죄라니!
“흠흠, 자네까지 날 억울하게 만들지 말게.”
“그러고 보니 말이야… 자네 혹시 ‘나는 고발한다’를 원래 이런 용도로 만든 건가?”
“갑자기 왜 그런 질문을 하는가?”
“대중들 앞에서 떠들면서 문득 이런 의문이 들더군. 과연 내 친우가 상부가 들어 처먹질 않을 거란 걸 알면서 이리 열심히 쓴 이유가 뭘까. 그리고 지금의 결과를 보니….”
“어허! 샤를, 난 순진한 피해자일 뿐이야!”
당당히 내 입장을 밝히니 옆에서 듣던 파비앵이 죽은 동태 눈깔로 날 바라본다.
그러나 이 모헬의 양심은 그따위 시선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뭐, 말해주기 싫으면 말든가. 역시 나한테 말하긴 어렵겠지.”
“에헤이, 그런 거 없다니까.”
잡아떼니 드골은 말 안 해줄 것을 알았는지 깊게 파고들지 않았다.
근데 여기서 ‘사실 이게 전쟁 터지고 나면 이자까지 쳐서 받아먹으려고 쓴 채권증서’라고 말하면 저 친화력 높은 샤를도 날 멀리할지도 모른다.
‘굳이 주변인들한테까지 미친놈 취급받을 필욘 없지.’
끝까지 내가 숨기는 게 많다고 생각한 샤를은 기차가 이동하는 내내 뽀로통한 채 팔짱 끼고 창밖만 바라봤다.
딱히 다 큰 어른 달래는 취미는 없기에 난 그러려니 한 채 마지막 휴식을 취했다.
그러는 새 우린 아미앵역에 도착했다.
“하아.”
짧은 한숨과 함께 기차에서 내려 곧장 사령부 건물로 향했다.
역시나 그곳에는 새로 안방을 차지한 페탱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충성, 복귀하였습니다.”
“난 내 참모장이 어디 독일군한테 납치라도 당한 줄 알았네. 소식도 신문으로밖에 못 들어서 말이야. 근데 사지 멀쩡한 꼴을 보니 또 그건 아닌 듯한데.”
“하하….”
내가 혼자 놀다 왔다고 생각하는 모양새인데 나도 나름 일하다 온 거다. 파리에서 중앙 집단군 사령관인 에두아르 날려버리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따로 보고할 만한 일은?”
“없-”
“있었습니다.”
“응?”
“샤를 드골 대위, 그게 뭔가?”
없다고 말하려 했는데 옆에 처음부터 조용히 서 있던 샤를이 갑자기 치고 들어왔다.
“흠흠, 사령관님?”
“말하게.”
“모헬이 저희 프랑스는 자력으로 전선을 밀어낼 능력이 밀 한 톨만큼도 없답니다. 근데 벨기에 전선은 그냥 갑자기 꼴려서 만들었답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점은 이 나라를 승리로 이끌려면 미합중국이 꼭 필요한데 지금 미합중국 먼로주의자들이 돈으로 머리통을 맞고 정신이 나가야만 가능하답니다. 한마디로 저희는 벨기에 전선에 무의미한 투자를 하고 있으며 이번 파리행에 영국의 해군력까지 끌어들인 뒤 복귀했습니다. 바로 이 모헬 중령 주도로 말입니다.”
“…….”
“…….”
“이상입니다.”
아.
지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시원스레 장문의 연설을 뱉고 난 샤를은 슬쩍 날 쳐다보며 비열한 입꼬리를 잠깐 드러냈다가 감췄다.
“…내 오늘 모헬 중령과 나눌 대화가 꽤 많을 것 같군.”
아냐, 사령관님. 필리프 페탱 장군님? 나 진짜 아니야.
진짜로. 믿어주세요.
“모헬의 변명을 좀 들어봐야 할 것 같으니.”
아니, 이번엔 진짜로 억울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