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8
008화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의 시계는 돌아간다고, 절대 안 올 거 같던 1913년이 도래했다. 시한부의 반년은 이리도 빠르다.
비록 몸은 부대 안에 있지만 내 귀는 세간의 소식을 끊임없이 접했다.
굵직한 사건만 짚어보자면, 먼저 새로운 제3공화국의 대통령으로 레몽 푸엥카레(Raymond Nicolas Landary Poincaré)가 추대되었다.
일반적으로 프랑스 대통령은 전적으로 정치적 상징적 위치일 뿐, 직접적인 행정이나 업무적으로는 조금 떨어져 있는데도 레몽은 매일매일 국민의 삶에 영향을 끼쳤다.
바로 반독 사상으로.
“당시의 전 11살밖에 안 된 아이였지만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우리 프랑스를 짓밟고 당당히 독일 제국을 선포하던 그 굴욕을! 그때 우리 국민들이 흘린 눈물을!”
민주공화동맹 출신으로 수많은 아군이자 정적을 둔 대통령. 그에 대해 정말 간단히 정의하자면.
“반독 사상을 바닥에 깔고 정책을 펼치는 놈.”
프랑스 경제가 안 좋아?
독일 탓이다.
국방비가 지나치게 많이 들어?
독일 탓이다.
요즘 식료품 가격이 너무 올랐어?
독일 탓이다.
당신이 임금을 적게 받는 것도, 투자했는데 손해 본 것도 전부 독일 탓이다.
이런 전제하에 그가 말한다.
걱정 말라고. 내가 반독일 투사로 나와 대통령이 되었으니 이제 바뀔 거라고.
과연 프랑스 국민이라면 자신의 표를 누구에게 줄까.
시시콜콜 정책을 설명하고 국가의 발전과 안보에 대한 계획표를 보수 정치인들?
혹은 그냥 속 시원하게 적을 정해주고 자신이 나서서 물어뜯겠다는 충실해 보이는 후보.
레몽 푸엥카레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이유다.
이즈음이면 한 표도 선사하지 않은 독일이 레몽 푸켕카레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꼴.
근데 어쩌겠나. 이 시대가 그런 것을.
비단 프랑스뿐만 아니라 영국도, 독일도 누가 누가 욕 잘하나가 곧 표로 직결되니 정치인들은 신나서 입만 털어댔다.
“저들은 우리 대영제국의 해군력을 위협하려 하는 파렴치한-”
“독일은 전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제 가만히 있어선 안 됩니다!”
“우리의 주적은 누구우우!”
참으로 신기한 점은 모두 정작 정책으로 이어지진 않는단 점이다.
이를 보는 내 마음은 허탈해 비소만 나왔다.
“저, 저거 다 어떻게 주워 담으려고.”
지금은 공수표인 줄 알고 마구 써재끼고 있는데 곧 사채 뺨치는 이자까지 돌아온다.
‘뭐, 대우는 IMF 올 줄 알고 확장했던가.’
되려 위기가 오니 확장했었지.
그리 보면 저것들은 전쟁 터지면 더 입만 나불거리리라.
두 번째로 큰 소식은 프랑스의 미래를 결정짓는 플랜이 세워졌다는 거다.
정확한 내용까지는 공개되진 않지만 페탱 발 소식에 의하면 내가 올린 보고서처럼 대독일 전쟁 계획이 세워졌단다.
“내용이야 뻔하지.”
비밀이라 하지만 이때까지 프랑스군이 주장해온 바를 생각하면 비밀이 아닌 계획.
먼저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여기에 독도보다 한 천 배쯤 더한 상징성과 가치를 지닌 알자스-로렌이 핵심이 되리라.
자, 그럼 위대한 대 프랑스 육군 참모들이 모아 세운 계획이란 이럴 거다.
‘전쟁이 일어나면, 우린 닥치고 알자스 로렌으로 돌격한다. 이후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음, 확실하다.
문제가 있다면 나 또한 저 계획표대로 싸워야 한다는 점이지만 그래도 페탱이 있는데 어떻게든 되겠지. 무려 ‘그’ 페탱인데.
마지막으로 고요한 나의 부대 생활에 어쩌면 제일 큰 변화가 도래했다.
“나의 친우, 베르게르 모헬!”
“…안녕하신가.”
“그래, 안녕하고말고! 자넨 어떠한가! 또 아래 병사들 못 괴롭혀 안달인가?”
바로 내 인생에 원치 않은 인간이 끼어들었다는 점.
“개소리하지 말게. 난 저들에게 전장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고 있으니.”
“저, 저 또 이상한 소리나 하고 있군. 베르게르, 내 솔직히 말하면 이해해주겠네. 혹시 아랫사람들의 고통에 희열을 느끼는 변태인가?”
“하아…”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장신의 사람이 호탕하게 나불거리고 있다.
그의 정체는 이름하야 샤를 드골. 나와 같은 생시르 동기이자 아라스 제33보병 연대 소위다.
그래, 소위. 짬도 낮고 계급도 낮은 쏘가리.
반면 나는? 해를 넘기자마자 바로 중위로 진급한 몸이시다.
“자넨 소위야. 난 중위고.”
“그런 논리라면, 좋네. 자네 주위 중위 중에 친한 사람 이름 한 명만 대보게.”
“….”
“좋아, 닥치는 그 모습. 참으로 마음에 들어. 이제부턴 계급이 아니라 동기로 대하자고.”
씨발롬. 말은 잘하네. 어차피 이놈도 올해 내로 중위로 진급될 테니 큰 차이는 없다만.
그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 기분은 뭐랄까. 조금 괴리감이 든다 해야 하나.
역사는 원래 사실을 기록한 게 아니었나. 근데 어째서 내가 아는 샤를 드골이 아닌 거지?
자신감과 용기가 넘치며 검소한 대통령, 이게 샤를 드골 아니었나.
아무리 기억을 되돌려도 샤를 드골 이름 앞에 ‘천박함’이라는 수식어는 없었는데?
“요번에 내가 나가서 만난 여자가…”
“닥쳐. 좀.”
“쯧, 흥미 없는 척하기는.”
흥미? 이 새끼가 지금 누구는 죽을 날 새면서 하루하루 보내는데 여자에 흥미가 가겠냐고.
물론 나도 남자인지라 흥미는 있지만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릴 뿐이다.
“그래서, 언제 알려줄 건가. 자네 부대만 보면 내가 피가 끓어. 어디 나뿐인가?”
“자네 말고 아무도 그리 말 안 해.”
“아니지, 연대장님이 계시지 않은가?”
페탱의 비호가 없다면 난 주위 날뛰는 별종으로 찍어서 욕만 처먹고 부대를 바꿀 시도도 못 했을 거다.
솔직히 나도 안다. 끝물 대령한테 딸랑거려서 비호받는 중위가 좋게 보일 리 없다는 것을.
심지어 엘리트 출신에 부잣집이라면 더더욱.
그런 나에게 샤를 드골은 몇 없는 인맥이다. 뭐 반쯤 강제로 맺어진 인연이지만.
‘미래가 대단한 놈이지… 미래가.’
미래가 대단하단 게 지금의 상태가 긍정적이단 소린 아니다.
“나도 보여주라고! 이미 소식 다 들었네. 도대체 대령님한테 어떤 보고서를 올린 게야! 좋은 말 할 때 내놔!”
“후우- 몰라, 없어.”
이놈만 보면 담배가 마렵다. 폐가 아무리 도리질을 쳐도 뇌가 스트레스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담배에 불을 붙인다.
이게 다 이놈 탓이야.
신기한 게 안 피던 사람도 군대 오면 담배 피고, 피던 사람은 더 꼴초가 된다.
“그리 말한다면.”
“말한다면 뭐.”
“뭐, 없지. 그냥 다시 졸라야지.”
도대체 이 나라는 어찌 돌아가면 이 새끼가 국가 원수를 해 먹는 거지.
나의 조국 프랑스는 어쩌다 이런 놈에게 권력을 쥐여주게 된 거냐.
‘역시 이 새끼랑 너무 엮이면 안 돼.’
같이 있으면 나도 이상해질 거 같다.
“왜 그리 나한테 관심이 많은가?”
“흠, 뭐 어디 나뿐이겠나. 모두 알게 모르게 자네한테 관심이 많아.”
알고는 있었지만 그 정도인가. 그저 일개 중대가 바뀌는 거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다니.
“자네 아랫사람들에게 프랑스군의 공격 정신은 병신이라고 했다며? 그런데 어찌 관심이 없겠나?”
“쿨럭, 쿨럭. 커헉!”
샤를 놈의 기습공격에 나의 기관지는 화학 공격이라도 맞은 듯했다.
“누가! 누가 그러는데.”
“이거 봐, 맞네.”
어디서 새어 나간 거야. 아니, 안 퍼지는 게 이상할 정도로 과격하게 가르치긴 했다만 그래도 이게 왜 남의 부대 장교 입에서 튀어나와.
이미 드골이 이리 말할 정도면 돌고 돌아 내 귀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거 같은데.
“근데 이를 아는 연대장님이 가만히 있네? 그럼 최소한 방관, 혹은 동조인데.”
“그런데.”
“근데 나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네.”
“무슨 생각.”
“부대를 싹 다 갈아엎고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
“야이 색… 후우, 후우.”
심호흡. 심호흡이 필요하다.
결국 옆 부대에 날뛰는 신임 장교가 마침 자기 동기이니 재밌어 보여서 다가왔단 소리 아닌가.
“장난이고, 궁금해서 그러네.”
“헛소리면 대화는 여기까지네. 뭐가 궁금하길래 그래.”
내 주위에 뭐 이리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아.
“자네가 왜 그런 일을 하는지? 보통 생각에서 그칠만한 것도 자넨 명백히 무리하게 밀어붙이며 시행하고 있네. 참으로 열심이야. 고작 열심이라고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
훅 들어오네.
천박함 속에 진지함을 숨겨 말하는 게 역시 내가 아는 샤를 드골인가 싶기도 하다.
잠시 여러 가지 답 중 무엇을 건네줘야 이 자식이 만족할까 고민했지만, 이내 그냥 간단히 얼버무리기로 했다.
“나중에 필요해 보여서 그랬네. 되었나?”
“뭐, 설명이 부족하긴 한데 일단은 여기서 만족하도록 하지.”
“더는 묻지 마. 나도 그냥 심심해서 하는 일이니.”
“이보게, 친구. 내가 아는 자본가는 절대 심심해서 돈을 낭비하진 않는다네. 다음에는 좀 더 제대로 된 답을 준비해오도록!”
“난 자본가가… 에휴, 그래.”
그놈의 자본가, 자본가. 하다못해 나도 돈맛 좀 즐기다 군생활 중이면 몰라.
나도 짬밥 먹고 이 빌어먹을 부대에서 산다고. 옷도 저들과 똑같은 알록달록 군 코트인데 뭐가 자본가냐.
샤를 드골.
비록 전생의 내가 그의 젊은 시절에 대해 아는 것은 하나도 없지만 한 가지 대단히 여기는 게 있다면 바로 그의 친화력이다.
‘이런 친화력이라면 사람 다루는 것쯤은 누워서 떡 먹기겠어.’
“시간이 되었군. 난 이만 회의 때문에 가봐야 하네! 어서 자네도 그 동성을 괴롭히는 더러운 취미를 즐기러 가보게!”
정정.
그냥 어느 부대에나 있을 법한 광대 캐릭터다. 여기저기 굴러다니며 장난치는 게 인생의 목표인.
진짜 저런 성격이면 적이랑도 친해지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지만 훠이 훠이. 나한테 너무 다가오지 말라고.
괜히 엮여서 나중에 피곤해질라.
꼭 저런 것들이 사고 치고 헤헤 웃으면서 해결해달라고 오더라니깐. 그럼 또 그간의 정이 있어서 끌려다니고.
내 지난 군생활의 감이 외친다.
레지스탕스에서 연장 복무하기 싫으면 너무 친해지지 말라고.
***
내가 따라 한 북한의 4대 군사노선.
전군의 간부화, 전 지역 요새화, 전군의 현대화 그리고 전 인민의 무장화.
마지막 전 인민 무장화는 어차피 국가가 곧 전 국민을 징집해 무장시켜 전장으로 내몰 테니 내 역할은 아니다.
그럼 최소한 앞의 셋을 내 부대에 적용시키려면, 지금의 상태만으로는 부족하다.
‘무기 교체 및 보급은… 자본, 기술, 생산 다 부족해. 무엇보다 정치의 영역이라 아직은 무리.’
그럼 할 수 있는 것은 사용법을 가르치고 이에 익숙해지며 이를 응용한 교리를 전파하는 것 정도.
‘참호 파는 것은 이제 익숙하다 못해 질릴 정도지.’
들어는 보았나. 진지 공사라고.
진지 공사 명령이 내려올 때 우리 중대는 총 대신 곡괭이와 삽을 들고 공병으로 변신한다.
원래 군대가 삽 들면 공병이고 총 들면 보병인 거지.
이렇게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이 기다리는 부대 생활은 솔직히, 답답하다.
부대가 답답하단 소리는 아니다.
다만 매일이 똑같은 부대에 새로운 하루를 집어넣는 게 힘들다는 거였다.
지금의 상황도 그렇다.
“자네 미쳤는가?”
“아닙니다.”
“뭐가 아니야! 지금 이걸 내가 어찌 받아들여야 하냔 말이야!”
책상을 쾅 치며 일어나지만 난 눈 깜짝하지 않았다. 솔직히, 눈앞의 인간이 얼마나 대단해질 놈인지는 모른다.
조금이라도 역사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 소령. 적어도 내 기억엔 그렇다.
그의 이름은 바로 나의 상관, 파스칼 뒤헝이다.
제33보병 연대 18대대 대대장.
비록 우리 중대가 떨어져 있지만 명백히 18대대 휘하 소속이자 내 윗사람이다.
“허락받지 않은 군사 행동은 군법 재판에 회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나?”
“허락받았습니다.”
“누구한테, 페탱 대령님께?”
“그렇습니다.”
“그게 문제라는 게야! 보고 체계 위반이라고!”
언제는 보고 안 했나.
언제나 반쯤 통보이긴 했어도 알리긴 알렸다. 상관 놈이 따로 허가를 안 내주니 내가 어쩔 수 없이 더 위로 갈 뿐이지.
이건… 마음의 편지 같은 거라고. 해결 안 해주면 더 위로 가서 찔러야지 뭐.
“실탄 훈련? 장난하나? 세상에 어느 부대가 매달 실탄을 써대!”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내년에는 매달이 아니라 매일 쓸 텐데.
나도 인지는 한다. 내가 막 나가고 있단 것을
책상을 짚은 채로 화를 내던 그는 이내 겨우 진정하여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내 이젠 진짜 궁금해서 그래. 왜 그러는 겐가?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라도 있나?”
아, 또 이 질문이다. 주위에서 내가 무언가를 하려 할 때마다 튀어나오는 수많은 ‘왜?’들.
그럼에도 그들에게 설명할 자신도, 의무도 없기에 난 일관되게 밀어붙였다.
이미 이들을 설득하기엔 시간이 없을뿐더러 어차피 들어 처먹질 않는다.
‘말이나 되냐고. 병사 대부분이 탄을 쏴본 적이 없다는 게.’
탄은 실전용. 그 전에는 자세만. 이게 실상이다. 마치 입으로 빵빵 으악 총소리 내는 어느 군대 훈련이 생각나더라니까.
우리 부대에서 제일 총을 많이 쏴본 놈이 2번이란다. 심지어 5발짜리 클립 탄창. 환장한다.
“제가 처음 사격훈련을 허락받았을 때 기억하십니까?”
“…기억하네.”
“그때 자기 총기 오조준 정도를 아는 놈이 없었습니다.”
오조준의 개념조차 모르는 놈이 부지기수였지. 이게 현실이다.
프랑스 보병이 총을 쏠 줄 모르며, 포병들은 포탄 사격 경험이 없다시피 하다.
“그걸 변명이라 하는 겐가? 자네 마음에 병사들이 차지 않으니 멋대로 행동한 게 보고 체계를 위반한 정당한 사유라고?”
“아닙니다. 다만 제가 왜 이런 짓을 하는지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다시 일어나 벌컥 화를 낼 수도 있지만, 난 무덤덤하게 답했다.
화내면 화내라지. 다들 페탱을 곧 끊어질 끈이라 생각하는데 과연 누가 끊어지려나.
뒤이어 자꾸 뭐라고 면전에 다양한 윽박이 날라왔지만 난 가볍게 기갑 철면피로 튕겨냈다.
내 면상은 방탄이라구요. 화만 내면 대대장님만 손해에요.
“후우… 나가. 빨리 사라져.”
쏟아낼 만큼 쏟아낸 파스칼 소령은 지쳤는지 축객령을 내렸다.
“저, 대대장님.”
“설마 할 말이라도 남았나?”
“저 휴가를 나가려 합니다. 이 또한 직속 상관의 허락이 필요한 부분이라.”
“야 이 개새끼야!”
극대노하며 다시 벌떡 일어나는 대대장. 난 다시 한번 철면피를 장착했다.
이때까지는 자제한 거였는지 온갖 욕설이 과격한 제스처와 함께 대대장은 화가 났음을 어필했다.
그럼에도 난 당당히 손을 뒤로 한 채 조용히 한 귀로 흘렸다.
뭐, 어쩔건데. 설마 안 보내주려고? 그럼 나도 연대장한테 이 서러움을 마편에 담아 올려야지.
‘중대장도 이등병처럼 마음의 편지를 쓸 권리는 있다고.’
암, 그렇고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