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86
086화
빠른 점령. 빠른 공격. 빠른 이동. 슐리펜 계획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시간에 쫓기는 입장인 것은 매한가지다.
그럼에도 왜 이번 작전에 적합하지 않은 식민지군이나 호주군까지 되는대로 긁어서 나왔을까. 생각보다 이유는 참으로 간단하다.
“자, 여기에 병력을 남기고 우린 이동한다! 남은 병력은 참호를 파도록!”
“나머지는 계속 이동한다! 물자만 내리고 다시 이동 준비해!”
사람이 지나간 곳에는 길이 생기는 법이고 벌처가 지나간 자리에는 거미 지뢰가 설치되는 법이지.
결집하는 독일군 움직임을 보면 한번 구멍을 뚫고 들어와 안을 헤집을 거라 생각한 모양인데.
“에이, 그럴 거면 최대한 조용히 전차 사단하고 정예 몇 사단만 골라서 몰래 들어왔지.”
벨기에, 지금보다 먹기 쉬운 기회가 올지는 모르겠다만 난 포기가 빠른 남자다.
‘저건 상한 음식이다. 저거 먹으면 탈 난다. 쳐다도 보지 말자.’
비록 베르됭에 이례적인 군사적 결집이 이뤄지고 있다만 결국 적과 참호는 건재하다.
소수로, 다수를 막는 것은 여전히 쉽다는 의미.
난 그 사실을 절대 잊어먹지 않았다.
후티어, 난 그가 뛰어난 지휘관임을 인정한다. 그는 최초로 제대로 된 육해공 합동 작전인 알비온 작전을 펼친 사람이니까.
그러니 그 또한 자신들의 불리함을 인정할 거라고 믿는다.
예를 들면, 깔끔하게 내줄 건 내주고 지킬 건 지키자는 마인드로 벨기에 수도에 힘을 쓴다든지.
‘난 널 믿는다, 후티어! 넌 몇 안 되는 냉정한 지휘관이니까!’
난 페탱을 상대로 공격을 포기한 것부터 후티어에게 합격점을 주겠다.
“현재 새로 만든 참호들 상태는 어떤가.”
“저희가 지나온 곳을 따라 병력이 몇 차례에 걸쳐 보충될 겁니다. 그때쯤이면 아마 완벽한 참호가 되어 있겠지요.”
“반대로 지금이 가장 위험하다는 소리군.”
“사령관님,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영국군이 이번 작전을 위해 본토 방위군까지 끌어왔으니까요. 게다가, 저희는 샤를루아로 향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긴, 공세하는 놈이 참호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긴 어렵지. 자네한테 처음 들었을 때는 얼마나 어이없던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을 떠올린 건가?”
음, 별들의 전ㅈ… 아니, 순수하게 나의 아이디어였던 것 같다.
“제가 이런 말씀 드리기 뭐하지만, 이번에 샤를루아를 완벽하게 화력만으로는 제압하기 어려울 겁니다.”
확실히 화력으로 제압하고, 진격하자는 생각이 강한 우리 페탱 사령관님의 교리와는 사뭇 상충하는 샤를루아 전투가 될 거다.
지금 우린 피로 시간을 사야 하는 입장이니까.
“다 알고 있네. 다만 지나친 피해는 본래 목적에 다가가지도 못하고 끝나게 만들 뿐이야.”
“최대한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한 소릴.”
그렇게 적과 대치 중이던 기존 북부 전선의 참호를 뚫고 나온 지 4일이 지나서, 우린 샤를루아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나선 것은 당연하게도 우리 포병과 영국군.
“전군. 가스탄 발사.”
헤이그 사령관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복수의 순간이었다.
***
우리 프랑스군이 개전 3개월 이후 변태처럼 포병에 집착하게 되었던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빠른 진격 와중에도 엄청난 효율을 보여준 독일의 중포. 적당한 화력, 적당한 발사 속도, 적당한 무게와 기동력.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다만 밸런스 하나는 기가 막힌 독일 중포를 보고 프랑스는 벤치마킹을 넘어서는 움직임을 보여줬다.
자, 그럼 육군을 무에서 창조해야 하는 우리 영국군은 어떠한 변화가 있었을까?
딱히 다를 게 뭐 있나. 벤치마킹, 늘어지는 전쟁에서 가장 쉽고도 확실한 방법 아닌가.
다만 영국에서는 다른 형태의 벤치마킹이 유행했다.
“미친놈들. 어느 순간부터 고폭탄 못지않게 화학탄을 생산하더니.”
“싸고, 참호 무력화에 효과적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작년에 포탄 위기까지 있었으니까요.”
“거기에 자기들이 당하고 나니 더욱 열을 올리고 파고들었던 거겠지.”
포탄 부족에 서러워하는 군인들의 불만이 애스퀴스 총리의 정치 위기까지 가져올 줄은 런던의 그 누구도 모르지 않았을까.
자신들의 졸전, 정치적 위기, 부족한 포병 화력을 하나의 방법으로 돌파했는데 그게 바로 내가 보고 있는 광경이다.
우린 주로 고폭탄을 쓰지만.
“민간인들은?”
“피난을 떠나지 못한 이들이 남아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쩌겠습니까.”
“민간인 시체 한 구라도 나오면 합류한 벨기에군이 게거품 물겠군.”
“안타까운 일이죠. 다행히 도심과는 멀리 떨어진 곳 아닙니까?”
안타깝다 말하지만 파비앵은 반대할 의사가 없음이 확연히 드러난다.
점령당한 국가의 자원군들. 분명 저 화학물질을 마시고 죽는 벨기에 국민이 있을 테지만….
“더 쏴라! 준비되는 대로 쏴!”
“탄, 탄 더 가져와!”
지금 영국군은 우리도 꺾을 수 없어 보인다. 저들의 증오는 수많은 동료들 위에 피어난 것이기에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언제든지 엔진을 켜고 달려… 기어갈 준비만 하는 마크-1 전차도 보인다.
“저 거대한 걸 150대나 바다 건너 끌고 온 것도 대단하다.”
“정부와 군부가 작정하고 밀어주는 물건이니까요.”
저걸 본 베이강이 그걸 또 못 참고 짤막한 평가를 편지로 남겼었다.
[암호명 W.C? 남자 8명이 한꺼번에 들어가는 화장실이야? 들어가면 몇 명이 살아서 나오는 건데?]그 편지를 받고 나도 모르게 크게 웃은 다음 날이었나, 괴상한 소문이 퍼지고 영국 애들이 정식 명칭을 ‘Tank’로 바꿨었다. 난 진짜 비웃은 거 아니었는데….
웃픈 일이지만, 베이강의 평가대로 저 150대 중 멀쩡히 샤를루아를 통과할 전차는 절반 겨우 넘지 않을까 싶다.
비대한 덩치에 조금만 움직여도 퍼지고 바로 토치카행. 빠른 기동력은 당연히 포기했다.
물론 시각적 효과 하나는 우리 르노 전차보단 좋아 보인다. 일단 무게만 두 배는 나가잖아? 게다가 저건 기관총도 달렸다구.
그나마 유일한 장점은 시속 5km 정도라 보병과 함께 진격하긴 나쁘지 않다는 점 정도려나.
“적 탄에 가장 먼저 나가떨어지겠어. 장갑도 얇던데.”
“기관총이 핵심 공격 수단이니까요.”
우리 르노 전차와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공격 방식이다.
아예 포는 포기하고 기관총만 단 놈도 있을 정도이니 확실히 기관총이 대전쟁 트렌드이긴 한가 보다.
그 외로도 키치너의 자원군은 키치너의 징병군으로 바뀌어 수를 키웠고 150만까지 대륙파병군을 늘린다고 올해 1월에 발표했다.
드디어 조금은 든든한 아군이 된 기분이다.
몇 시간째 이어지던 화학 공격이 슬슬 끝나갈 기미가 보인다.
“적 참호가 몇 선까지 있지?”
“파악한 건 4선까지입니다만, 돌파한 이후에도 교전은 계속될 겁니다. 아마 도심 내에 진입해도 시간을 끌기 위해 소수라도 시가전을 이어가겠지요.”
“좋아, 딱 좋아.”
이후까지 준비하고 있단 의미는 후티어가 여기서 완벽히 막을 생각은 어느 정도 포기했단 소리니까.
실컷 영국군의 분풀이가 끝나자, 나의 차례가 다가온다.
손을 비비며 게슴츠레 적진을 살펴본다. 음, 연기가 다 안 걷혀서 제대로 보이진 않는다.
“그럼 어디 가볼까.”
그래도 뭘 해야 할진 입이 알아서 움직일 정도로 잘 안다.
“제일 부실한 적 중앙 기준 우측 2km 지점으로 프랑스 전차 사단 투입. 영국군 전차가 이대로 전장 중앙을 맡는다. 서로 섞이지 않도록 하게. 전차가 적 사격 거리 안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빠르게 보병이 접근하도록.”
“바로 전파하겠습니다!”
어차피 다 준비된 카드들. 난 차례에 맞게 내기만 하면 된다.
이게 바로 현대전이지.
“자, 그럼 공격.”
심신이 편안하고 회의 때마다 졸음과 함께 찾아오던 손 떨림 현상이 온데간데없다.
역시 난 책상보단 야전 체질이라니깐.
***
“적 전차다! 각 위치의 야포는 철갑탄으로 바꿔라!”
“모두 대보병전을 준비하라!”
명령하는 독일 지휘관들도 바보는 아니다.
일부라도 철갑탄으로 바꾸는 순간 보병의 접근은 더욱 쉬워질 것이고 전차는 완전히 파괴되지 않는 이상 엄폐물이자 전장 한복판의 전투 진지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퇴각을 상정한 전투임을 그들 또한 알았다.
‘그래도 그렇지, 무슨 병력 차가….’
‘저, 저 병력을 우리보고 막으라고?’
보이진 않으나 저 속에는 베르게르 모헬이란 인간이 있을 거다. 여름 내내 잠잠했던 공포의 이름이 한 걸음씩 다가올수록 전의가 꺾여버린다.
그 누구도 막지 못한 이를 과연 자신들이 막을 수 있을 것인가. 고작 들어가 있는 참호와 눈에 보이는 철조망 정도로?
“사정거리 내에 들어올 때까지 명령을 기다려라!”
그 답을 알려주러 영프 연합군이 다가오고 있었다.
***
“니미…. 많이도 준비했네.”
일제히 폭발하는 화약 더미들. 진격하다가 갑작스레 일부 전차들이 멈춰 서자 진격하던 모든 보병이 약간이나마 움츠러든 느낌이다.
가장 중앙에서 명령에 따라 전차들의 이동을 통제하던 윌리암은 잠시 공격을 멈추고 상황 파악에 들어갔다.
그 사이로 적의 기관총이 언제 들어도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연기 속으로 보이지도 않는 죽음을 배달한다.
명백히 이 순간만큼은 아군이 무력하게 당하고 있다.
그러나 잠시 뒤 연기가 걷히고 다시 전차들의 진격이 시작되자 상황은 반전되었다.
몇 년간 군 생활 하면서 봐왔던 것이지만 모든 지휘관은 하나에 광적으로 집착한다.
그리고 개전 이후 보병전에서 모헬 중령님이 독일군을 보면서 침 흘리던 것은 바로 저격수.
빗발치는 총알 속에서 적을 저격할 수 있는 병력이 모든 보병분대에 존재하길 바랐다.
그런 중령님의 광기는 참모직으로 가서 꽃피웠고, 이는 곧 멀리 있는 적만 조준하는 저격수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전차도 그래서 만든 건가?”
최소한 저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기 위해서 전차를 만든 건가 싶기도 하지만, 그건 아닌 거 같다.
왜냐면.
까앙.
전장의 소음을 뚫고 근거리에서 들리는 쇠와 쇠가 부딪히는 굉음.
이건 철갑탄에 맞은 전차만이 낼 수 있는 소리다.
“저딴 걸 저격수를 위해서 만들었을 리가.”
비록 빗맞았겠지만 철갑탄을 맞고도 안 뚫리는 전면 장갑. 이 육중한 기계가 움직이는 모습.
베이강 참모장님이 만들었다? 아니, 아니. 절대 그럴 리 없다. 비록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다만 그분이 모헬 중령님처럼 미치진 않으셨을 거다.
기관단총, 윤형철조망, 전차.
독일군도 혀를 내두를 이런 변태적인 물건은 오직 ‘진짜’만이 만들 수 있는 거다.
“에이씨, 또 신나서 혼자 치고 나가는 놈들이 있네.”
측면 장갑은 직격으로 맞으면 무조건 뚫린다는 걸 모르는 건가.
윌리암은 즉각 위험을 알리는 혼 소리를 앞쪽으로 울리며 경고했다.
어느새 철조망에 도착한 전차들. 그러나 멈추진 않는다.
그저 가볍게 장갑으로 철선을 뭉개고 연결된 나무 기둥까지 뽑아버린다.
“그래, 이거지.”
엔진 열기에 숨이 턱 막혀오지만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곧장 전차가 뚫어준 곳으로 보병들이 아기 오리처럼 우르르 따라 들어간다.
우측의 공세가 이리 도착했다면 아마 다른 곳도 비슷할 터.
적은 이미 퇴각할 준비를 하고 있을 거다.
아니나 다를까.
적의 화력이 몇 분 만에 줄어든 느낌이 든다.
장갑을 두드리는 총탄 소리는 줄어들고 눈에 보이는 기관총 진지는 군데군데 비어 보인다.
2선으로 후퇴를 감행한 거다.
적이 후퇴했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없다.
방금과 같은 상황이 다시 재현될 뿐이다.
완벽히 아군이 적 참호에 들어가고 짧은 난전이 이어진 뒤, 적은 완벽히 후퇴했다.
“전차부대! 전열만 맞추고 다시 나아간다!”
대보병을 완전히 준비하지도, 포병으로 원거리 화력전을 하지도, 하다못해 전처럼 대규모 화학전을 펼치지도 못한 독일군.
“모헬 중령님이 언제나 말씀하셨지. 애매하게 미친놈은 겁먹은 거라고.”
어째 독일군 참호에서 전과 같은 악다구니가 안 보인다.
한 놈이라도 더 지옥 길 동료 삼겠다는 놈도 없다.
누군가는 깔끔한 후퇴라고 표현할지 몰라도 윌리암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다.
천하의 독일군이, 겁먹은 거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윌리암의 입꼬리는 점점 올라가 기괴해졌다.
“히히, 도망쳤구나. 괜찮아! 내가 또 만나러 가줄게!”
여전히 죽음은 무섭다. 그러나 진격하는 것을 주저하진 않는다.
왜냐면 자신보다, 적이 더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어느새 전장에 적응해버린 윌리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