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91
091화
뷔이용을 떠난 이후로 제대로 쉰 적이 없던 북부군. 목적지를 베르됭으로 변경하여 아래로 향하길 3일째다.
지칠 대로 지친 북부군은 어쩔 수 없이 약간의 휴식을 취했다.
급속 기동이라지만 식량, 화포, 말, 유류 등 모든 물자를 지닌 채 이동하기에 속도가 그리 빠르다고 보긴 힘들었다.
아직 병사들과 하급지휘관들은 우리가 진짜 베르됭으로 향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진실되었고 고스란히 팽팽한 긴장감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일부 고위급 지휘관들의 시선은 달랐다.
적이 나타나지 않음을 고려하면 사실상 풍경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없으나, 우린 방향을 꺾은 뒤부터 쉬지 않고 매의 눈으로 사방을 주시했다.
바로 시기를 정하기 위해.
너무 늦는다면 온전히 몸을 빼기 힘들 것이다. 도망치는 적만큼 공략하기 쉬운 상대는 없으니.
반대로 너무 이르다면 베르됭은 언제나 그래왔듯 견고할 것이고 포슈 장군은 니벨을 답습한 멍청이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난 또 한 번의 강력한 신호를 느꼈다.
“독일군이 신호를 이렇게 보내네.”
“무언가 좀 보이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안 보여.”
“그럼 무슨 신호를?”
아, 이 우매한 것. 그렇게 2년을 치고박고 싸웠음에도 독일군을 모른단 말인가.
“파비앵, 아직 장교의 치열함에 적응하지 못했군.”
“예?”
발전이 없는 파비앵의 모습이 참으로 딱하다.
몇 달 전, 머릿속에서 페탱 공세를 세울 때 난 철저한 근거를 가지고 세웠다.
그때 독일군이 보여줬던 아주 야리꾸리한 냄새.
무슨 5할 확률 복권이라도 손에 쥔 채 전쟁 한 방 역전을 노리는 파렴치하고도 졸렬한 냄새가 서부 전선에 진동했었다.
코를 막고 무시하려 했지만 원역사의 지식과 그들의 뻔뻔함이 나를 기어코 움직여 탄생한 게 바로 페탱 공세안이다. 결과적으로 우린 언제 멈춰도 대성공이라 불릴 성과를 만들어냈다.
그럴진대, 어째서 저들은 파비앵처럼 발전이 없는 걸까.
“병참선을 지키던 그 독일군은 지금 어딨지? 왜 우리 뒤통수를 안 치고 있는 걸까?”
“당연히 수적 열세를 인정하고…”
“아니지, 아니지. 다 핑계야! 그럼 지금 포슈의 공세를 막는 베르됭 군은? 난 여전히 포슈 장군이 대패했다는 소식을 못 접했네.”
“그거야 포슈 장군님의 뛰어난 지휘력 아닙니까?”
“쯧….”
부대의 행보관처럼 든든한 국밥 파비앵이지만 사고를 거치지도 않고 내뱉는 얕은 말들에 한숨만 나온다.
자기 딴에는 무시당했다고 여겼는지 붉어진 얼굴로 파비앵은 되물었다.
“부디 설명을 좀 자세히 해주시지요, 모헬 중령님.”
“아예 스스로 답을 찾으려는 자세도 사라졌군. 완전 독일군 다 됐어.”
“허, 허허.”
“한 번만 말할 테니 잘 듣게.”
먼저 베르됭. 곤충 니벨은 날개 없는 무당벌레와 같아 위로 끊임없이 오르려다 뚝 떨어졌지만 포슈 장군은 다르다.
요새는 없다만 병참과 우세한 수를 이용해 넓게 병력을 포진했다.
그렇다면 이에 맞춰 독일군도 당연히 주요 요새의 병력은 줄이고 대치하듯 병력 배치해야지.
그래야만 너희가 그토록 원하는 병력 교환이 가능하니까.
근데 이상하네.
“우선 포슈 장군이 지휘봉 잡은 이후 베르됭의 사망자가 몇만이나 될까.”
“모르죠. 많아 봐야 사단 한두 개 아닙니까?”
“그래, 근데 니벨이었다면?”
“…. 삼 일이면 군단 5개는 날려먹기 충분한 시간이죠.”
난 아직 그 어느 소식통으로부터도 베르됭에서 막대한 사망자가 나왔단 소식을 못 들었다.
여기까지는 그래, 우리가 급속 기동 중이니 정보를 못 받은 거라 치자. 혹은 포슈 장군의 우수한 지휘력이든 적의 졸전이든 뭐든 간에 말이다.
근데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우리 발목 잡으려고 날뛰던 독일군은 왜 더 이상 안 나타나는 걸까? 마치 안 막는 것처럼 말이야.
“난 지난 삼 일간 기동하면서 지연전을 펼치려는 모습을 못 봤네.”
“어차피 못 막는 거 무의미한 희생을 줄이려는 게 아닙니까?”
“하아… 몇 번째 말하나. 독일놈들은 그리 정직한 친구들이 아니라니까?”
“언제는 자기를 믿어주는 참된 친구들이라 그러셨으면서.”
“에헤이, 그건 경우가 다르지. 지금은 된다는 확신에 한 방에 해결하려는 거잖아. 마치 슐리펜 계획처럼.”
“…..”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건가. 간단히 비유하자면 법정에서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우릴 미련 남은 여자처럼 안 붙잡는 거다.
간절함, 아쉬움, 애타는 마음. 그런 게 지금 내 피부 아래로 기어가는 기분이 안 들고 있다고.
‘이거 봐, 뻔해서 닭살도 안 돋았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확실한 증거가 있다.
“저것들, 우리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 누가 보면 나, 페탱 사령관님, 포슈 장군님이랑 한 20년 동네에서 같이 자란 친구인 줄 알겠다고.”
만약 내가 게르만 사람이었다면 독일군인 보증 서류로 오를레앙 와인창고를 가득 채울 자신이 있다.
그만큼, 저것들은 왜인지 모르겠으나 두터운 신뢰를 보여주고 있다.
“이미 병참선은 연막이고 베르됭으로 향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우리를 믿는다는, 그런 말씀이십니까?”
“그래. 참으로 순수한 친구들이야. 아마 우리 북부군이 애국심으로 무장해 죽음을 불사하고 베르됭으로 향하고 있다고 믿지 않을까?”
“…. 이런 말씀 드리기 이상하지만 우리만큼 중앙통제에서 벗어나고 조국에 반감을 가진 사령부는 없었을 겁니다.”
“저 친구들은 그 또한 조국을 사랑하기에 그런 거라 여길 테지.”
“저 친구들이 우리 프랑스 옆에 사는 독일인들 말씀하시는 게 맞긴 한 겁니까.”
“어.”
안 믿기는 모양이지? 사실 나도 그래.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일면식 없는 타국 사람들이 날 믿는 걸까? 오늘의 나도 내일의 나를 안 믿는데.
이 시대에만 통용되는 겜성이란 게 백인 사이의 국룰처럼 적용되는 걸까? 그럼 미안한 말이지만 난 속은 이미 누렇게 익어버렸고 머리카락은 한때 빛도 반사 안 하는 까만 놈이었다.
아아, 역시 난 너희를 믿을 수가 없어. 세상에 날 믿는 놈을 어떻게 믿어? 그건 뇌에 심각하게 문제 있는 거라고.
“자, 슬슬 집밥이 그리워지는군. 슈티른 대령님한테 가서 전해. 회군 준비하자고. 아마 비슷한 생각하고 계실 거다.”
“하아, 알겠습니다.”
결국 교훈을 끝까지 배우지 못한 파비앵은 내 지시를 수행하러 자리를 떠났다.
비록 파비앵은 실패했다만, 독일군은 아직 기회가 있다.
저들의 우매함은 세상이 아직도 상식적인 약속과 굳은 신뢰에 돌아가는 줄 착각하고 있다.
부디 이번 기회에 제대로 배우길.
***
뫼즈 강 동편에서 치러지는 베르됭 전투.
단순히 좁은 특정 지역이 아닌 인근 수km에 걸쳐 양군의 전투가 치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진두지휘하는 포슈는 오늘따라 이상한 부분을 많이 포착하였다.
“고작 일주일째인데 벌써 힘이 빠진 건가.”
“그런 거치고는 적의 병력은 건재합니다.”
“그렇군.”
전장을 축소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워낙 양군이 많다 보니 주요 공략지점이 아니어도 병력을 할당했는데 적군은 그런 부분을 확실히 줄이고 있다.
“확신할 시기는 아니지만, 이런 경우 두 가지지. 하나는 아주 늘어지게, 그러니까 초장기전으로 끌고 가기 위한 준비이거나.”
“아니면 그냥 병력 자체가 부족한 경우죠.”
“참모장, 난 왜인지 오늘따라 후자에 무게중심이 쏠리는군. 매우, 강력하게 말이야.”
“저도 그렇습니다.”
니벨의 전철을 밟을까 두려워하던 지난 일주일이 우습게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공세에 독일군은 비굴해지고 있다.
여전히 공성은 견고하며 전선은 굳건하다만, 타협하려는 모습이 보인다는 거다.
예를 들면.
“저들이 그리 쏴대는 오스트리아제 중포 소리가 안 들려.”
“그 빈 소리를 기관총이 메꾸고 있습니다.”
“흐흐.”
“후후.”
두 사람의 음침한 소리를 주고받으며 교감하고 있을 때, 끼지 못한 한 사람이 그저 옆에서 다리만 떨며 홀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
로베르 조르주 니벨.
총참과 의회에 떵떵거리며 공세안을 밀어붙였고 사교회 같은 사적인 자리에서도 자신감을 내보였으나 까보니 1대1 교환비조차 이뤄내지 못한 졸장.
말아먹은 군단이 한 손으로 세기 부족해 두 손을 써야 하는 마당에 구세주 포슈 장군이 도착했다.
포슈 장군이라면 엄청난 성과로 자신의 과오를 가려주지 않을까 기대했다.
오자마자 지휘권을 뺏어버렸지만 그래도 마른의 영웅이니까. 방어의 페탱, 공세의 포슈니까. 믿었단 말이다.
‘시발, 그래서 하는 짓이 나랑 똑같으면 어쩌자는 건데!’
자기도 안다. 니벨 공세안은 하루라도 빨리 태워야 하는 저주받은 종이쪼가리라는 것을.
근데 어째서 화가 잔뜩 난 포슈 장군이 쓰레기를 주섬주섬 정리하더니 재활용하는 걸까.
가벼운 니벨의 입과 행동을 고려해 포슈가 공유하지 않은 정보가 있었던 것이지만 이를 모르는 니벨은 자기들끼리만 히히덕거리는 두 사람이 꼴보기도 싫었다.
“포슈 사령관님. 이제 어쩌실 겁니까. 이대로는 한 달도 안 되어 전멸입니다.”
“아아, 걱정 말게. 저 요새들은 곧 무너질 테니.”
“아니, 제가 해봤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저긴 천혜의 요새 천지고 온갖 고지와 이어진 곳입니다!”
“근데 무너질 거야.”
대화가 안 통한다. 실패한 니벨 공세를 보고 충격받아 노망이라도 나 버린 것인가.
슬쩍 옆을 흘겨보며 베이강에게 먹힐지 모르는 무언의 압박을 주었으나.
“그렇죠. 저긴 스스로 무너집니다. 우하하!”
“그렇지! 하하!”
틀렸다. 뭐가 영웅이고 전쟁의 귀재라는 거냐. 이 둘은 그냥 미쳐버린 사람이다.
설마 실패한 공세를 떠안기 싫어서 아예 망쳐버리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으나 그런 거치고는 진심으로 요새를 점령하려는 모습에 말도 안 나왔다.
두 사람의 확신은 진심이었고, 베르됭 전역의 프랑스군은 모두 두 사람의 통제하에 놓여있다.
‘대가리가 미쳐버리면 어쩌자는 건데!’
보는 것만으로 울컥 분노가 입에서 튀어나올 것 같지만, 실패한 장수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크윽!”
홀로 개인 막사에 돌아와 술병이나 들이키는 것뿐이었다.
슬프고 비참하지만 이렇게라도 현실을 잊고 알콜과 잠에 취해 꿈이라도 꾸고자 했다.
지휘권도 잃고 남은 거라곤 허울뿐인 직책이다. 허나 돌아가면 모두에게 물어뜯겨 그간 살아온 삶이 조각나버리는 결과만 남은 그에겐 이미 파직당한 기분이었다.
얼마나 술에 취해 있었을까. 그가 손대지 않으면 밖의 빛이 새어 들어오지 않는 막사 안으로 밝은 빛이 들어온다.
“으윽. 뭐야.”
“사령관님! 일어나 보십시오! 요새 하나가 우리 손에 들어왔습니다!”
“으, 응?”
“우리가 드디어 요새 탈환에 성공했다구요! 곧 다른 요새들도 시간문제입니다!”
“그게 무슨….”
뭐지. 왜 성공한 거지.
분명 포슈 장군이 한 짓이라곤 넓게 퍼져서 그저 손가락으로 가리킨 다음 ‘공격’이라고 말한 게 전부인데.
‘서, 설마 니벨 공세의 뒤늦은 효과가 이걸?’
스스로 생각해도 망상이긴 하나 말이 안 되지 않는가.
술기운에 빠진 그는 어떻게든 이유를 찾으려 했으나 이 좁은 개인 막사에서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일단은.
“…. 살았다.”
그의 목이 효수되어 광장에 전시되는 일은 피한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