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95
095화
“으음, 정말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화난 시민들을 달랠 제물이라 생각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모든 정치가 보여주기 위함이라지만 이건 과해. 총사령관을 이런 식으로 끌어내린 경우는 반역을 제외하면 없어.”
“그럼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너무 과격하고, 파괴적인 페탱의 방법에 클레망소는 골이 아파왔다.
‘이거 뭐 자기의 승리를 세상천지에 공표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경질하고 새로운 자리에 페탱을 올린 뒤 한시라도 빨리 총참을 정상가동하는 게 일반적인 정치인들의 바람이라면, 눈앞의 페탱을 비롯한 군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피, 혁명, 그리고 공개처형을 당당히 요구한다.
거리에 드물지 않게 화염병을 든 이들이 보인다만 클레망소가 보기에 시민들보다 더욱 과격한 게 바로 눈 앞의 페탱이었다.
시민들은 시위에서 끝나겠으나 군인들은 아니니까.
“푸엥카레 대통령도 반대하지 못하고, 시민들도 동의할 터인데 무엇이 그리 걱정하십니까. 재판은 빠르게 진행될수록, 좋을 겁니다.”
“이거 협박처럼 들릴 지경이군. 실형 선고는 어차피 불가능해. 그렇다면 고작 망신을 주겠다는 건데 그리해서 얻는 게 뭔가? 여전히 조프르 총사령관과 사이좋은 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저는, 저는 재판이 성사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만…. 음, 그 친구는 아닐 겁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 슬며시 웃음이 나오는 친구. 클레망소는 페탱이 말한 친구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았다.
‘베르게르 모헬 중령….’
클레망소가 조용히 페탱이 오기만을 기다린 것도 이의 일환. 첫 만남부터 알아챈 바다만 모헬 중령의 원한은 그리 얕지 않다.
그는 마치 지난 몇 년간 삶의 목적 자체가 조프르의 목인 양 행동해 왔다. 아마 중령이기 전부터 이 순간만을 기다려 왔으리라.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페탱이기에 말하는 거다.
난 당신이 조용히 넘어가려 한다면 모헬 중령을 막을 수 없다. 혹은 막지 않겠다.
‘이게 말이나 된단 말인가.’
페탱의 동조, 혹은 방관은 둘째치고 모헬 중령, 그 미친개를 만족시킬 만한 방법은 이것뿐이라니.
관계 자체가 이상함을 그만 느끼는 건가.
“의원님은 이미 전권총사령관직을 세상에 터트린 순간부터 한배를 탄 사이입니다. 그러니 깊게 고민하지 마십시오.”
“후우, 이거 무서워서 내 실수라도 하는 날엔 잠이라도 자겠나.”
페탱은 차마 ‘실수를 안 하시면 됩니다.’라고 답하지 못했다. 그리 말했다간 스스로 모헬 중령처럼 행동한다고 느껴질 것 같아서였다.
“후우, 좋아. 대신 내 약속 하나만 받지. 최대한 빠르게 진행하고, 이후 결과가 어떻든 간에 자네를 비롯한 모두가 다시 전쟁에 집중해야 할 거야.”
“걱정 마시길.”
“그럼 난 바로 대통령을 만나러 가지. 자네도 어서 가보게.”
서로 적당한 거래와 합의가 이뤄지자 페탱은 홀연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디어 이 순간이 왔다.
그간 주적이 누구인지 구분도 안 될 지경일 만큼 답답하고 고통스러웠던 날들.
그 오류를 바로잡는 날이.
“이거, 모헬 중령이 아주 좋아하겠군.”
마치 아들에게 선물을 사가는 아버지의 심정이 이러할까. 파리에 오자마자 모헬의 선물을 챙긴 페탱은 곧장 그를 만나러 갔다.
그리고 가는 길에, 부관을 통해 뒤늦게 알게 되었다.
포슈 장군이 아르투아 공세 총사령관직을 사임했다는 것을.
***
여전히 날이 따뜻하지 않아서일까, 시민들의 손에는 드물지 않게 따스함을 더해주는 물건들이 하나씩 들려있었다.
“젠장, 화염병이다! 피해!”
“야, 그냥 막지 마! 막으면 우리가 다친다!”
“네놈들 때문에 친구들이 다 죽었어! 다 죽어서 안 돌아왔다고!”
창문을 통해 멀리서 지켜봄에도 나의 가슴 한켠이 따뜻해진다.
레볼루숑이라는 게 이리 빠르게 전염될 수 있다는 사실은 언제봐도 신기하다.
“중령님을 창구로 쓰는 겁니다. 저번에도 그랬듯, 그간의 모든 불만을 정당하고 공의로워 보이는 시기에 표출하는 거지요.”
“감사할 따름이지.”
이유가 뭐든 간에 저분들이 이 추운 날 밖으로 나와서 외쳐주는 게 마치 나의 지지처럼 보이지 않나.
모두가 착각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면 사실 페탱이 총사령관직에 오른다고, 그러니까 조프르의 모가지가 떨어진다고 전쟁이 갑자기 승리하게 되는 건 아니다.
지난 3년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우린 수많은 병력을 참호에 박아서 꼼짝없이 전선이나 지켜야 할 거다.
시민들이 극히 일부 지역에서 이뤄진 나의 승리가 서부 전선 전체에서 일어날 거라 착각하지만 오를 대로 오른 인간은 소극적으로 변하길 마련.
특히나 포슈 장군처럼 순수한 능력이 부족한 나로선 정말 패배만을 면하기 위할지도 모르겠다.
사실이 그러거나 말거나 거리의 모두가 한목소리로 외친다.
“조프르는 물러나라!”
“우린 페탱, 포슈, 그리고 모헬을 원한다!”
“무능한 것들 때문에 프랑스가 못 이기고 있다!”
틀린 말도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니다.
’굳이 정정해줄 필요는 없다만…’
설령 조프르와 그의 파벌이 어떤 변명을 하든 결과가 말해준다.
페탱 공세는 성공했고,
니벨 공세는 실패했다고.
그럼 더는 볼 것도 없이 끝인 거다.
그리고 누구보다 이 끝이 다가옴을 잘 느끼신 윗분들은 참으로 빠르게 움직이셨다.
근데 명분이 하나같이 참으로 애매하셨는데.
[조제프 조프르, 재판장에 서다!] [죄목, 시기한 이들을 사지로 몰아넣기 위한 인사권 오용?] [총사령관의 군납 비리 의혹.]하나같이 뭔가 나쁜 놈들이 할법한 짓이긴 한데, 정작 중요한 건 빠졌네.
이에 대해 중얼거리고 있었더니 페탱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총참이 그간 내온 작전을 승인한 사람이 누구겠나?”
“그야 최고통수권자인 푸엥카레… 아, 그렇군요.”
“설마 대통령까지 끌어내리고 싶은 건 아니지?”
“에이, 설마요. 그럴 능력도 안 됩니다.”
“으음, 그럼 다행이고.”
조프르와 그간 연관된 모든 이들을 다 재판장에 세울 게 아니라면 우린 잘못된 작전의 책임을 그에게 ‘죄목’으로 물을 순 없다.
결국 이를 승인한 것은 작전안을 본 모든 군정부 관계자들, 즉 현 권력자들이니까.
이런 사실을 알고 나니 재판장이란 무대가 조금은 다르게 보였다.
마냥 조프르를 절벽으로 밀어넣는 게 아닌 혁명을 달래는 보여주기식 처형이랄까.
“뭐, 상관은 없지만.”
칼로 죽이나 매달아서 죽이나 뒈지는 건 다르지 않으니까.
조프르는 사회적으로 완전히 죽을 거다. 그간 총참의 오판으로 죽은 수십만 병력을 떠올리면 부족하지만 어쩌겠나. 이 이상은 물리적 죽음뿐인데 그건 무리인걸.
그리고 진짜 죽어서 동정표라도 얻음 어떡한담? 조프르는 죽을 때까지 프랑스 공식 욕받이 역할이다.
“그럼 나머지는 어떻게 합니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조프르 아래에 남아 있을 텐데요.”
“솎아내고, 버릴 놈은 버리고. 쓸만하면 쓰고. 전시 아닌가. 혼란은 최소화 해야지.”
“사령관님답지 않네요. 이런 포용력과 자비라니… 왜 나한테는 이런 면모를 안 보여주지?”
난 언제 실수 한 번만 해도 죽일 듯이 굴리면서 정작 일면식 한번 없는 사람들한테는 저리 친절하다니. 너무하네.
이젠 대답도 없이 가볍게 무시하시며 할 말을 이어 하신다.
“아, 그리고 자네도 증언해야 할수도 있는 거 알지?”
“준비 철저히 했습니다.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내가 페탱 공세안 만들 때만큼 준비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진짜 재판장에서 이뤄질 장면을 홀로 상상하니 벌써부터 짜릿해서 미치겠더라고.
정말, 너무 오랫동안 준비해와서 이젠 지겨울 정도다.
근데 날짜가 잡힌 뒤로부터는 하루하루가 길게 느껴지면서도 지날 때마다 솜털이 곤두선다.
전역을 앞두면 이런 기분이려나.
그토록 안 올 것 같던 몰락의 날이 왔다.
난 당당히 재판장으로 향했다.
***
재판은 세간의 최고의 관심을 자랑하듯 생샤펠성당(Sainte Chapelle) 성당 바로 옆에 위치한 역사적인 건물, 최고재판소(Palais de Justice)에서 열렸다.
최고재판소는 이전에 왕궁, 파리 경찰청, 파리 변호사 협회 사무실 등 다양한 용도로 쓰여왔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프랑스 혁명 당시의 혁명 재판소였다.
그리고 1916년에 이른 지금은. 한 인간의 처형식 거행장소가 되었다.
참으로 기구하지만 이보다 적절한 위치 선정은 없어 보인다.
자신의 재판이 다 짜고치는 고스톱이고 자긴 권력의 희생물이라고 여기는 걸까, 조프르는 건물 앞에 등장해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발걸음 하나하나가 당당했다.
“아, 쿨한 척하는 게 마음에 안 드네.”
부끄러움을 모르는 듯하니, 그럼 내 친히 알려줘야지. 그 고압적인 자세는 딱 지금까지니 즐겨 두라고.
인파가 재판소 인근 거리를 가득 메우고 질서 유지를 위해 수많은 경찰들이 재판소를 둘러싼 채로 군사재판은 이른 아침에 시작되었다.
모두가 각자 자리에 앉은 뒤.
재판장이 들어오고.
각종 선서와 국기에 대한 경례가 이어졌다.
그리고 시작되는 본 게임.
“피고인은 공정하지 못한 인사권을 행사한 적이 있습니까?”
“단 한 번도 없소.”
“너무 많은 사건이 올라왔지만 그중 몇 가지만 이 자리에서 뽑아보겠습니다. 왜 페탱 중장과 모헬 중령은 북부 전선으로 보내졌습니까?”
“충분히 의견을 여쭈었고, 당시에 두 사람이 이끈 6사단이 최적이라 여겼소.”
“증인, 들어오세요.”
증인이란 말에 조프르는 얼굴을 구기며 짜증스럽게 몸을 돌려 들어오는 사람을 쳐다봤다.
“증인, 자기소개를 해주시지요.”
“모리스 귀스타브 가믈랭, 현재 벨기에 전선에서 중령으로 복무 중이며 이전에는 북부 전선에 있었습니다.”
가믈랭의 등장과 함께 조프르의 눈이 커지며 당황한 모습이 내 마음에 작은 감동을 선사한다.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습니까?”
“전 총참모부 출신이었다가 북부 전선으로 외인연대를 이끌고 가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당시 6사단은 여러 차례 큰 공을 세웠고 동시에 과도한 피해로 부대 재편을 해야 할 위기였습니다. 그럼에도 조프르 총사령관은 직접적으로 6사단을 언급하며 그들을 북부로 보내길 원했습니다.”
“그, 그건 6사단이 가장 잘 싸워서 적합하다 여겼기 때문이오!”
“조용히 하세요!”
고작 서곡 파트에서 이리 나오면 아까의 당당함이 초라해지잖아. 아직은 자존심을 지키라고.
“보통 잘 싸우는 부대라면 되려 아끼며 키우길 마련입니다. 게다가 저는 그때 6사단과 같은 전선으로 계속 파견되며 그들에 대해 따로 보고하고 기회가 된다면 그들을 능가하는 전공을 세우거나 혹은 비교우위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조프르 총사령관이 얻는 게 뭡니까?”
“뭐긴요, 언제나 그렇게 해서 자기가 가질만한 사람인지 판별하는 거지요. 사람 목숨으로 장난을 치는 겁니다.”
고작 자신의 권력에 도움이 되는지 알기 위해 사람을 사지로 보냈다는 증언. 벌써부터 장내는 술렁이기 시작한다.
“위 발언들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서류로는 충분히 드렸고… 가장 큰 증거는 아마 6사단의 전투 기록일 겁니다. 하나같이 다른 사단이라면 한 번 겪기도 힘든 규모의 싸움을 밥 먹듯이 했으니까. 특히 아미앵으로 강제로 보내졌을 때, 상대를 고려하면 그냥 죽으라고 보낸 겁니다.”
“차도 살인에 가까울 정도군요. 증언 감사합니다.”
내가 매번 느낀 바다만 세상은 나한테 관심도 없더니 갑작스레 날 중력을 뛰어넘는 미지의 힘으로 억까한다.
‘그때의 참담한 심정을, 너도 느껴보길 바라.’
억울해? 나도 억울했어. 막 가슴이 답답하고 화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와 머릿속 세포 하나하나를 잠식시키지? 나도 그랬다니까?
애써 부들거리는 손을 주먹 쥔채 진정시키는 게 보이는데, 아직은 무너질 때가 아니야. 당신은 애써 당당한 채로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 줘. 차례는 많이 남았거든.
가믈랭의 증언은 몇 차례 더 이어졌고 판사와 검사는 몇 차례 발언한 뒤 제자리로 돌아갔다.
“피고인의 인사권 남용에 대한 다음 사건입니다.”
아까부터 말은 곱게 표현했다만 사실상 ‘너 권력욕 때문에 애꿎은 짓 한 거 아니냐.’라는 소리다.
“먼저 다음 증인부터 들이겠습니다.”
시작부터 새로운 증인이 들어와 정중앙에 앉았다.
“증인, 스스로를 소개해주시지요.”
“샤를 란레작, 프랑스 제3공화국의 후작이자 1914년 제5군 사령관이었소.”
“왜 5군 사령관에서 물러나셨습니까?”
“가장 큰 이유는 적의 주공이 벨기에 방면이라고 여러 차례 보고했기 때문이오.”
“만약 당시에 보고를 총사령관이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의도된 게 약간 티 났지만 란레작 장군은 잠시 피식 웃더니 고민도 없이 답했다.
“조금이라도 군사적 식견이 있는 사람 아무나 잡고 물어보시오. 아마 이리 답하겠지. 프랑스 땅은 단 한 뼘도 안 뺏겼을 거라고.”
음, 더 들을 필요도 없어 보이는구먼. 끝났네.
잘 가라, 조프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