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106)
을 위한 세계는 없다-106화(106/817)
〈 106화 〉 특별 교육 (7)
* * *
***
카가가각!!
코르부스는 얼음송곳을 상대하는 여명을 보며 딱 부리를 부딪쳤다. 감탄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마법을 튕겨내고, 막고, 피하는 여명의 대응이 너무 완벽한 탓이었다. 마치, 이런 전투를 여러 번 경험해본 것처럼.
“…그 나이에 대체 무슨 수라장을 겪으며 살아온 것이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대신, 틈을 노린 여명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다가와 검을 내려찍었다.
쩌엉!
코르부스는 마나가 담긴 발톱으로 그의 검을 막아냈다.
무진연각이라 불리는 무술이 파도치는 마나와 부딪히고, 코르부스는 그 힘을 이용해 훌쩍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또다시 얼음송곳.
여명은 욕인지 한숨인지 모를 소리를 내뱉으며 얼음송곳을 피해 바닥을 굴렀다.
그것을 시작으로 일방적인 공방전이 재개되었다.
날아가는 송곳과 그걸 막아내는 여명.
얼음송곳이 아니라 상위 마법을 사용하면 여명이라 해도 단번에 제압할 수 있겠지만…
준비한 지팡이도 없었고, 무엇보다 장소가 문제였다.
학생들이 생활하는 아카데미 아닌가. 여명 정도의 초인을 한 방에 제압할 마법은 여러모로 민폐였다.
‘뭐, 지금도 충분히 민폐를 끼치고 있소만.’
코르부스는 조금 시간이 걸리는 한이 있어도 얼음송곳으로 끝을 보고자 했다.
사실, 원래 계획은 이렇지 않았다.
조금 더 단순하게, 여명의 몸을 적당히 두들기며 차근차근 몸에서 살기를 빼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여명의 실력이 그녀의 계획을 한참이나 벗어났다.
반응속도, 무술의 깊이, 순간적인 판단력, 그리고 어마무시한 육체까지.
어느 것 하나 학생 레벨이 아니었다. 성녀님의 축복 덕분에 용과 싸울 수 있었다던 세간의 인식을 비웃는 수준이었다.
덕분에 꼴이 우스워졌으나, 불쾌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아카데미에 와서 다행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초빙 교수 같은 특별한 인연이 아니고서야, 수인이 어찌 저런 재능있는 인간을 제자로 삼을 수 있겠나.
그녀는 미소가 나오려는 부리를 억눌렀다.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은 까닭이었다.
‘이쯤이면… 검기를 쏘겠군.’
번쩍!
역시나, 그녀를 향해 검기가 날아왔다. 주문을 배열하는 순간을 정확히 노린 검기.
주문을 읽을 정도로 눈썰미가 좋거나, 마나 감응도가 말도 안 되게 뛰어나거나.
어느 쪽이건 웬만한 마법사들은 검기에 바로 목이 따일 정도로 노련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코르부스는 웬만한 마법사가 아니었고, 날아오는 검기를 그냥 몸으로 받아냈다.
“그대는 몇 번이고 본인을 감탄하게 하는구려.”
검기를 받아낸 어깨에서 피가 흘렀지만, 코르부스는 신경 쓰지 않고 여명에게 집중했다.
“후우, 후…”
체력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건지, 여명의 입에선 거친 숨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코르부스와 그렇게 난타전을 벌이고, 벌써 수백 발에 달하는 얼음송곳을 막아내지 않았나.
대체 무슨 영약을 먹었는지 모르겠지만, 저 나이 또래 소년이 이런 전투를 겪고도 아직 마나가 남아있는 게 기적이었다.
‘그래도 이제 끝이 보이는구려.’
저 상태에서 딱 한 발, 딱 한 발의 얼음송곳을 허용하는 순간 댐이 무너지는 것처럼 여명은 쓰러지리라.
승리가 코앞에 있었지만, 코르부스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고수는 언제나 최후의 한 수를 준비하는 법이고, 여명은 이미 고수라고 부르기에 손색없는 모습을 보여줬으니까.
하지만 곧이어 튀어나온 여명의 한 수는… 그녀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혜성검?”
여명의 검에 고이는 새하얀 빛을 보자마자, 코르부스는 눈을 가늘게 떴다.
성검의 손에 있어야 할 무술이 왜?
고민은 길지 않았다. 여명이 어떻게 저 무술을 손에 넣었건 간에, 지금 당장 저 무술을 막아야 하는 건 본인이었으므로.
“눈 내린 사립문은 굳게 닫혀있고, 눈 쌓인 마당은 손님을 맞이하지 않소.”
코르부스는 짧게 주문을 읊조렸다.
떠오른 심상을 따라 마나가 배열되고, 두꺼운 얼음과 눈이 그녀 주문을 따라 솟아올랐다.
반짝이는 얼음으로 만들어진 벽이 솟아오르기까지 불과 2초.
기적에 가까운 속도였지만, 혜성검을 막아낼 만큼 빠르지는 못했다.
번쩍!
두꺼운 얼음벽이 완성되기도 전에, 혜성검의 빛이 벽과 코르부스를 동시에 덮쳤다.
용의 비늘마저 베어내는 검기였다. 급조된 얼음벽은 채 1초도 버텨내지 못했다.
콰과광!!!
검기가 폭발하며 얼음 조각이 사방으로 터져 나왔다. 마나에 밀려난 공기, 박살 난 조각들.
폭탄이라도 터진 것 마냥, 주변 나무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살벌한 풍경이었으나, 정작 이 풍경을 만들어낸 여명은 답답한 표정으로 얼음 잔해 반대편을 바라봤다.
“…어떻게 피하신 겁니까?”
폭발 잔해에서 한참 떨어진 곳, 파편이 닿지 않은 나무 뒤편에서 코르부스가 멀쩡히 걸어 나오며 대답했다.
“잔월보에 바람 가속 마법을 섞었소. 본인만의 재주라오.”
둘 다 모르는 이름이었지만, 뜻을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마 무술에 마법을 더해 가속했다는 소리겠지.
여명은 남은 마나를 가늠하며 말했다.
“…얼음송곳 피하는 건 지긋지긋한데, 마지막은 주먹으로 하면 안 됩니까?”
코르부스는 빙그레 웃어 준 뒤, 수십 개의 얼음송곳을 만들어내며 말했다.
“부탁은 반만 들어주겠소. 얼음송곳도 쓰고, 주먹도 쓰리다.”
“….”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주시오.”
여명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여태껏 쓰지 않았던 무술을 일으켰다.
화악!
그의 몸에서 푸른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파순의 마공. 살기를 가득 풍기는 무술이 펼쳐지기 무섭게, 얼음송곳이 그를 향해 쏟아졌다.
맞은 것도 있고 빗나간 것도 있지만 유효타를 낸 건 하나도 없었다.
아지랑이는 그 자체로 하나의 갑옷이었고, 얼음송곳 수준의 마법은 닿는 것만으로도 흩어버렸다.
코르부스는 그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지난밤에 봤을 때도 그렇지만, 평범한 무술은 아니구려. 살기만 어떻게 하면 참 좋을 텐데 말이오.”
그 감탄과는 별개로, 그녀는 얼음송곳을 멈추지 않았다. 여명의 신경을 분산시키는 것만으로도 송곳의 용도는 충분했으니까.
코르부스는 송곳을 쳐내는 여명을 잠시 바라보다가, 무언가 떠올린 것처럼 두 손을 기도하듯 모았다.
“여명, 본인이 오늘 그대의 밑천을 털었으니, 본인도 밑천을 보여드리겠소.”
여명은 그럴 바에 얼음송곳이나 멈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코르부스의 말이 조금 더 빨랐다.
“지금부터 본인이 쓸 무술은 흑익류이라고 하오. 조금 전 보여드린 평범한 무술과 다른, 본인만의 비기라 할 수 있소.”
곧이어 그녀의 몸에서 검은빛을 띤 마나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아지랑이를 피어내는 파순의 마공과 달리, 흑익류의 마나는 마치 검은 깃털을 흩날리는 것처럼 검은 마나를 피어냈다.
마나에 민감한 여명은 저것이 파양결에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수준 높은 무술임을, 그리고 파순의 마공과 궤를 달리하는 무술이라는 것도 느꼈다.
마공이 마나를 사용한 갑옷이자 주먹이라면, 흑익류는 마나를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게 돕는 파이프와 같았다.
머리부터 발끝, 대동맥부터 미세혈관까지.
온몸의 마나의 통로를 강제로 열어젖히는 무술이라니.
일반적인 초인은 무술을 따라 마나를 움직이면 그만이었기에, 모든 통로를 개방할 필요가 없었다.
마법과 무술의 길을 동시에 걷는 초인을 위한, 코르부스만의 무술.
다른 사람들, 특히 여명에게는 익혀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는 무술이었다. 그는 마법을 쓸 줄 몰랐으니까.
하지만 검은 깃털을 흩날리는 코르부스가 여명과 거리를 좁힌 그 순간.
여명은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흑익류의 진의가 뭡니까?”
뜬금없고, 무례한 질문이었다. 무술의 진의를 함부로 묻다니.
하지만 그를 이미 제자로 취급하고 있던 코르부스는 별 고민 없이 대답해주었다.
“두 갈림길 앞에서 가운데를 택하니, 내가 가는 곳이 곧 길이다.”
코르부스의 삶이 담긴 진의. 그것을 마주한 여명은 초점 없는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불현듯 눈을 감았다.
살기를 뽑아내려던 코르부스의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무아지경? 갑자기?”
황당함이 섞인 그녀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여명의 정신은 마음 저편으로 추락했다.
***
여명이 눈을 뜬 곳은 피비린내로 가득한 숲이었다.
녹색으로 물든 땅 위로, 아름드리나무와 어딘가 익숙한 시체들이 빼곡히 쌓여있는 곳.
그는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숲을 바라보다가, 눈을 뜨기 전 현실에서 겪은 일을 떠올렸다.
코르부스와 싸우던 중, 흑익류의 진의를 듣자마자 정신을 잃은 기억.
‘설마… 무아지경에 빠진 건가?’
당황은 없었다. 저번에도 이런 일을 겪은 적 있었으니까.
세티에게 파양결의 진의를 들었을 때, 그때가 딱 이랬었다.
앞뒤도 없이 갑작스레 무아지경에 빠졌지.
그때와 다른 게 있다면… 혼자가 아니란 것 정도일까.
뭘 봐? 등신아.
그의 우측에는 파순과 똑같은 목소리를 내는 시뻘건 코끼리가 서 있었다.
여명을 내려다볼 정도로 커다란 몸집, 펄럭이는 귀와기다란 상아까지.
전형적인 수컷 인도 코끼리의 외형이었다. 정작 그가 봤던 인간 파순은 분명 분명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중성적인 외모였는데…
‘…역시 남자였나?’
여명이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 이번에는 왼쪽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 쇠똥구리 씨? 여긴 대체 어디죠?
당황한 표정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금발의 소녀.
여명은 머리를 곱게 말아 올린 그녀를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내 꿈속일 거야. 아마도.”
예? 어디라구요?
“내 꿈속이라고. 그리고 질문은 오히려 내가 해야지. 미리디스. 너야말로 왜 여기 있어?”
여명의 질문을 마주한 엘프 공주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눈을 깜빡였다.
짧은 침묵.
파순이 코를 휘둘러 풀을 뜯어 먹을 때쯤, 미리디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 혹시, 혹시나 해서 여쭙는 건데요.
“뭘?”
몽정… 하시는 건가요? 저랑, 저… 코끼리로?
미리디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파순이 웃음을 터트렸다.숲이 떠나갈 정도로 커다란 웃음이었다.
“…”
물론, 여명은 웃을 수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