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114)
을 위한 세계는 없다-114화(114/817)
〈 114화 〉 제자를 위한 가르침 (5)
* * *
***
로드 하우의 교무실은 넓다.
학년마다 따로 본관을 두는 학생들과 달리, 교사들을 위한 교무실은 단 하나뿐이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수십, 수백 명의 교사가 한자리에 모이는 시장바닥 같은 곳은 아니었다.
아카데미는 거의 모든 교사들에게 개인 사무실을 제공할만한 능력과 재력을 가지고 있었고, 대부분의 교사들 또한 그런 개인실을 선호했다.
덕분에 로드 하우의 교무실은 외부인들의 환상과 달리 교사들이 모여 업무를 보는 조용한 사무실에 가까웠다.
어디까지나, 어제까지만.
특별 수업 신청이 시작된 오늘.
교무실 분위기는 그야말로 시장바닥이나 다름없었다.
1지망으로 미켈레 쓴 신청서는 전부 학년 상관없이 다 모아서 마법학부 가단님께 전달하세요!
3학년 수학 교사 마르쿠스가 소리치고.
특별 교사들에게 전달할 자료 담당 어디 계세요?! 2학년 자료 받아 가세요!
2학년 국제법 교사 김수진이 서류 더미를 들고 애타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그 외에도, 수많은 교사들이 일에 쫓기며 바쁘게 교무실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선생님들! 교장님 추천으로 온 특별 교사랑 외부 추천으로 들어온 특별 교사랑 구분해서 정리하셔야 합니다!
주요 학생 명단은 따로 빼놔!
누락 명단 확인하신 분? 아직 제출 안 한 학생들 확인하러 가신 분 있습니까?
교무실보단 난리 통에 가까운 풍경 속에서, 드워프 교사가 한숨을 내뱉었다.
“그냥 전자식으로 하면 안 됐나…”
딱히 대답을 바라고 내뱉은 말은 아니었건만, 그의 옆자리에서 대답이 날아왔다.
“어쩌겠어요, 전자기기를 다룰 줄 모르는 학생이 한둘이어야죠.”
마르간이 고개를 돌려보니, 제미니 선생님이 한숨을 푹푹 내쉬며 서류와 씨름하고 있었다.
그녀는 마르간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설명을 이어나갔다.
“아카데미에 와서 휴대폰 실물을 처음 본 학생들도 있을걸요? 특히 차원문 너머 출신들.”
“….”
“특별 교사들도 마찬가지죠. 아시잖아요. 아직도 전자기기 쓰면 마나를 빼앗기는 줄 아는 마법사들이 있다니까요? 지구의 음모라나, 뭐라나.”
발랄한 분노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마르간은 쓴웃음을 지었다.
“덕분에 오늘 야근은 확정이군요.”
“야근으로 끝나면 좋겠어요. 이대로라면 밤샘해야 할 분위기라….”
제미니는 그렇게 말하며 두툼한 서류 더미를 꺼냈다.
특별 교사에게 보내야 할 학생 정보와 특별 교사들이 보내온 수업 관련 서류들.
“사고만 안 나면 오늘 내로 끝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런 말 하면 꼭 사고가 나던데.”
제미니가 정색하며 말했다. 마르간은 그녀의 서류 중 일부를 덜어 자신의 책상에 올리며 대답했다.
“이 특별 수업 자체가 사고인데, 더한 사고가 있겠습니까?”
그의 목소리를 들은 다른 교사들의 시선이 쏠렸으나, 딱히 그의 말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교무실에 있는 교사들 대부분이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아카데미 교사진들이 멀쩡히 존재하는데, 특별 수업이니 뭐니… 이래서야 기존 교사들이 뭐가 되는가?
물론, 그런 불만을 행동으로 옮기는 멍청한 교사는 ‘아직’ 없었다.
교사들 대부분은 히메나 교장이 왜 이런 선택을 내렸는지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아카데미를 압박하는 외부 세력과 니콜라이 이사 같은 내부의 적을 생각하면, 특별 초빙 교사는 히메나 교장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수였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일은 일이었다.
‘이러다간 진짜 교무실에서 자겠군.’
마르간은 한숨 쉬며 업무로 돌아갔다. 아니,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그가 서류 작업을 시작하려는 순간.
시설 관리과에서 보내온 메시지가 그의 컴퓨터 모니터에 떠올랐다.
[1학년 분쟁 조정 담당과 말 우라간 선생님께] [1학년 남자 기숙사 앞 도로 반파.] [현장에 튄 피를 보아 전투가 있었던 듯하나, 사망자는 없음.] [현장 사진 첨부. pdf]메시지를 읽은 마르간은 미간을 가득 구겼다.
“…염병.”
시설 관리과에서는 학생들의 싸움이라고 생각해서 마르간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낸 거겠지만…
대체 어떤 학생이 도로가 박살 낼 정도로 전투를 벌일 수 있단 말인가.
저번에 남부 직원 휴게소 주변을 박살 낸 싸움도 그렇고, 이번 일도 그렇고… 분명 특별 교사들 짓거리겠지.
어느 녀석인지 모르겠지만, 걸리기만 해봐라. 수리 비용을 항문에 처박아줄 테니.
마르간은 그런 생각을 하며 메시지를 확인하고, 의견서를 적어 시설 관리과에 답장을 보냈다.
“…여러모로 고생하시네요.”
옆에서 제미니 선생님이 한마디 거들었지만, 위로가 되진 않았다.
그에게 할당된 진짜 업무는 이제 시작이었으니까.
마르간은 고개를 저으며 서류 탑 사이에서 서류 묶음 하나를 뽑아 들었다.
특별 교사의 개인 정보와 그 교사를 1지망으로 신청한 학생들의 명단이 적힌 서류 묶음.
첫 서류의 주인공은 [코르부스 다크윙] 이라는 이름의 사람, 아니 수인이었다.
‘…수인이라. 1지망으로 신청한 학생이 많지는 않겠군.’
마르간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서류를 넘겨 코르부스에게 1지망을 넣은 학생들을 확인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 무슨….”
그가 눈을 비비고 다시 서류를 확인해봤지만, 코르부스를 1지망으로 신청한 학생 명단은 바뀌지 않았다.
“오류인가…?”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마르간은 고개를 갸웃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코르부스에게 1지망을 넣은 모두가 1학년에서 가장 유명한 학생들이었으니까.
[남 : 천여명] [여 : 홍세티, 쇠미리, 성녀]***
1학년 본관에서 멀리 떨어진 남부 휴게소.
무슨 포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엉망이 된 숲속에 위치한 휴게소에서, 성녀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여명은 왜, 날 믿어?”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던 여명이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뜬금없는 질문.
“갑자기 무슨 소리냐?”
“…내 수신호만 믿고 호아나랑 싸웠잖아.”
여명은 대답 대신 팽, 코를 풀었다. 코를 막고 있던 핏덩이가 튀어나와 휴지를 적셨다.
“싸우기는, 내가 시험받은 거지.”
“…그런 거치고는 흠씬 두들겨 패지 않았어?”
“봐줄 만한 상대가 아니었으니까.”
호아나 툴레는 그 나이대의 노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튼튼했다.
주먹이 어찌나 매서운지, 맞을 때마다 뼈가 부러지고, 핏줄이 터져나갔다.
싸우는 내내 갈비뼈만 다섯 대가 부러졌고, 코뼈와 광대뼈는 두 번 이상 박살 났다.
그의 비정상적인 재생력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병실에서 눈을 뜨지 않았을까.
“…뭐, 결국 호아나도 납득해줬으니, 이 이야기는 더 할 필요 없고.”
여명은 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말했다.
“세티에 대한 예지. 그거나 말해줘. 그러려고 온 거잖아.”
직구나 다름없는 말에 성녀는 슬쩍 고개를 숙였다.
여명은 설마? 하는 마음으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거짓말이었냐?”
“…아니, 거짓말 아니야.”
성녀는 안대를 만지작거리며 잠시 뜸을 들이다가,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 여명은 진짜 왜… 날 믿어?”
“…지금 해야 할 만큼 중요한 이야기냐?”
“응, 중요한 이야기야.”
그녀는 무언가를 각오한 듯 주먹을 꽉 쥐었다. 여명은 성녀의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대답했다.
“성녀가 거짓말할 리 없다는 종교적 믿음, 여태껏 나한테 거짓말한 적 없다는 경험적 믿음.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냐?”
“…둘 다 싫어. 그런 가식적인 말 말고, 진심을 알려줘.”
진심. 성녀는 힘주어 그 단어를 말했다. 마치, 그러면 진심을 들을 수 있을 것처럼.
그래, 원한다면 말 해줘야겠지. 여명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성녀. 내가 널 믿는 이유는…”
꿀꺽, 성녀의 목울대가 꿈틀거리는 그 순간.
여명은 진심을 말했다.
“그냥.”
“뭐…?”
“그냥 믿었어.”
안대 아래 가려져 있었지만, 성녀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는 게 느껴졌다.
“만주에서부터, 뭔가 이유가 있어서 널 믿은 적 없어. 그냥 믿은 거지.”
여명의 말이 어지간히도 충격이었던 걸까, 성녀는 무심코 언성을 높였다.
“그, 그건 좀 이상하지 않나? 아까 전에도 호아나랑 싸웠잖아.”
힘을 잃은 입꼬리, 이리저리 꼬이는 손.
“그게 그냥, 날 믿어서 그런 거라고? 그건… 아니, 기분은 나쁘지 않은데… 만주에서도 그랬다고? 흐, 완전… 미쳤… ”
성녀의 횡설수설이 길어지려는 찰나, 여명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래서, 이런 건 대체 왜 물어보는 거냐? 너, 나한테 거짓말한 적 있어?”
“어… 어? 한 번쯤?”
성녀는 자기가 대답하고도 무안했는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 그게… 만주에서…”
“…무슨 거짓말인지 알려줄 필요 없어.”
“….”
나도 너한테 거짓말한 적 많으니까. 여명은 속으로 말을 삼킨 뒤, 성녀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고, 이제 세티에 대해 말해줘.”
그제야, 성녀는 푼수 같은 미소를 지우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여명,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물을게. 정말로 나 믿지?”
대체 예지로 뭘 봤길래 이럴까. 여명은 걱정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진심으로 믿는다.”
작은 미소. 성녀는 손을 뻗어 여명의 손을 붙잡았다. 마시멜로우처럼 부드러운 손이었다.
“여명, 이제부터 내가 해주는 말은 다른 곳에서 절대로 발설하면 안 돼. 맹세해 줘.”
“…맹세할게.”
여명이 고개를 끄덕이자, 성녀가 말을 이었다.
“사실… 내 예지로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
다섯 신의 축복으로 볼 수 없는 사람.
자칫하면 신의 권능을 부정할 수 있는 신성모독적인 말이었건만, 성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만주에서 만났던 그 파순이라는 사람이나, 전윤성, 그릇… 그리고 너랑 세티.”
“…나랑 세티?”
“응. 두 사람도 포함해서.”
“하지만, 대피소에서는 봤잖아? 세티의 죽음을.”
여명의 반박하기 무섭게, 성녀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세티가 아니라 대피소 전체의 미래를 본 거야. 그 미래에서도 흐릿하게만 보였어. 마치… 검열된 것처럼.”
“…검열.”
뭔가 기시감이 드는 이야기였다. 파순과 세티, 그리고 운명.
여명이 짧은 고민을 떠올리는 사이, 성녀가 덧붙였다.
“근데… 바로 얼마 전부터, 세티의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어.”
“….”
“이, 이유는 나도 몰라. 그냥 늘 하던 대로 아침마다 세티를 예지해봤는데, 갑자기 보이기 시작했어.”
“아침마다… 뭐?”
여명이 눈살을 찌푸리는 찰나, 성녀가 그의 손을 꽉 쥐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손을 들어, 자신의 안대에 손을 걸쳤다.
“…내가 본 미래. 같이 봐줄래?”
성녀가 속삭였다. 여명은 거절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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