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146)
을 위한 세계는 없다-146화(146/817)
〈 146화 〉 복고주의자, 이기주의자 그리고 빨갱이 (3)
* * *
***
정체 모를 습격자가 검기를 피워 올렸음에도, 마법사에게 두려움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비웃음 띈 얼굴로 상대를 노려봤다.
“그 나이에 검기를 피워내는 걸 보면 재능은 있어 보인다만, 어리구나, 어려.”
겁도 없이 마법사의 공방에 들어와 협박을 내뱉다니.
지구인들이 총을 가져온 뒤로 마법사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지만, 이런 모욕을 당할 줄이야.
뒷골목에서 마약을 판다고 해도, 마법사는 마법사.
아직 흰머리도 자라지 않은 애송이 기사 하나쯤은 한 손으로도 상대할 수 있었다. 하물며 그 장소가 자신의 공방이라면야.
마법사는 가부좌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정보를 내놓으라고 했느냐? 애송아, 내가 해줄 대답은 하나다.”
“….”
“덤벼라, 버릇을 고쳐주마.”
그가 그렇게 말하며 손을 까딱거린 순간.
습격자, 아니 애송이는 기다렸다는 듯 땅을 밟았다.
뒤꿈치를 든 발로 사뿐히 땅을 밀어내기 무섭게, 열 걸음이 넘는 거리가 좁혀졌다.
가히 신속이라 불러도 모자라지 않을 속도.
예상치 못한 속도를 마주한 마법사는 화들짝 놀라며 마나를 끌어 올리고, 주문을 일으켰다.
정확히는, 이미 완성된 주문을 발동시켰다.
‘막아라!’
그의 의지를 따라 아지트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마법진들이 일제히 마나를 내뿜었다.
그렇게 검기를 머금은 검이 그의 목에 아슬아슬하게 닿기 직전.
쩌엉!!
반투명한 보호막이 검을 튕겨냈다.
검에 실린 위력이 어찌나 무거운지, 옆에서 구경하던 마약쟁이들이 충격파에 밀려 우르르 쓰러질 정도.
‘이 무슨.’
기껏해야 약관을 막 지난 것 같은 놈의 마나가 왜 이리 묵직하단 말인가?
마법사는 눈살을 찌푸리는 동시에, 다음 마법을 엮었다.
마약 연기를 넓게 퍼트릴 바람 마법과 안개 마법.
두 개의 주문이 완성되기 무섭게, 아지트 전체가 짙은 연기로 뒤덮였다.
습격자의 검이 뒤늦게 마법사가 있던 자리를 베었지만, 그는 이미 뒤로 몸을 날린 뒤였다.
우, 우린 아무 상관도 없어! 그냥 약 하러 온 거라고!
찌, 찍! 아무것도 안 보인다!
던칸님! 살려주십쇼!
졸지에 안개 속에 갇힌 약쟁이들이 난리를 쳐댔다. 그들은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거나, 손을 허우적대며 안개를 밀어내려 애썼다.
마법사, 던칸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약쟁이들 주변으로 연기가 모이도록 마법을 조종했다. 녀석들이 난동을 피울수록 적이 그를 찾아낼 확률이 줄어들 테니까.
그에 비해…던칸은 상대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안개 마법 속에 흩뿌려진 그의 마나와 방을 뒤덮은 마법진 하나하나가 그의 눈이나 다름없었으므로.
그는 안개 너머에서 검을 늘어트린 습격자를 향해 손을 뻗은 뒤, 염동력 주문을 엮었다.
기사를 상대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마법.
화염 폭발이니, 죽음 광선이니 하는 고급 마법은 괜히 위치만 드러나게 할 뿐.
저런 애송이에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쏘아낸 염동력이면 충분했다.
꽈악
가장 먼저, 목을 졸랐다. 일반인이라면 단번에 목이 부러질만한 위력.
한데, 녀석은 고개조차 흔들지 않았다.
조금 더 정신을 집중해보니, 강렬한 마법 저항이 느껴졌다.
마법진의 백업을 받는 그의 마법과 대등하다니.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불합리한 저항력이었다.
‘오냐, 어디 한번 끝을 보자.’
던칸이 이를 갈며 주문에 더 많은 마나를 더한 순간.
녀석의 몸에서 마법 저항이 일제히 사라졌다. 마치, 스스로 마법 저항을 포기한 것처럼.
마나 부족? 아니면 집중력이 흔들렸나?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던칸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염동력을 퍼트렸다.
팔, 허리, 다리, 그리고 발목까지.
애송이의 온몸을 붙잡자마자, 던칸은 양손을 꽉 쥐고 팔을 위로 들어 올렸다.
쿵!
애송이의 몸은그의 손을 따라위로 솟구치더니, 그대로 천장과 부딪혔다.
천장이 쩌적 갈라지며 먼지와 돌가루가 튀었다. 아지트 전체가 흔들거렸으나, 던칸은 멈추지 않고 손을 아래로 휘둘렀다.
쾅!!
이번에는 애송이의 몸이 바닥에 처박혔다. 중력 가속도 덕분인지, 묵직한 손맛이 느껴졌다.
못해도 온몸의 뼈가 으스러졌을 충격.
던칸은 마무리를 할 생각으로 다시 한번 염동력을 움직였다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그가 마나를 움직인 순간, 애송이가 고개를 돌렸다. 정확히 그가 있는 위치를 향해서.
차갑게 가라앉은 황금색 눈동자가 안개 너머, 늙은 마법사의 눈동자와 마주한다.
‘어떻게?’
의문은 길지 않았다. 던칸은 불길함을 느낀 즉시 주문을 엮었다.
하지만 애송이가 그를 향해 손을 뻗는 게 조금 더 빨랐다.
다음 순간.
꽈악.
보이지 않는 힘이 던칸의 목을 졸랐다. 그가 조금 전에 사용했던 염동력과 똑같은 주문.
“커, 커헉!”
기사가 아니라 마법사였다고? 그럼 검기는? 설마 갈림길을 걷는 자?
수많은 의문이 떠올랐지만, 목을 조이는 염동력을 풀기 위한 답은 없었다.
그 사이 산소가 줄어든 심장이 쉴새 없이 쿵쾅거리고, 정신이 흐릿해진다.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온 게 느껴졌다. 패배를 확신한 던칸은 반사적으로 품에 손을 넣었다.
마법사의 자존심 때문에 여태껏 꺼내지 않은,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이 그의 손에 잡혔다.
서 궁정백 몰래 밀수한 거무튀튀한 권총.
던칸이 그것을 뽑아 애송이에게 겨눈 순간.
누군가 그의 손에서 권총을 낚아챘다.
“오, 데저트 이글. 게다가 꽤 옛날에 단종된 옛날 모델이네?”
“컥, 뭐, 뭣…?”
던칸이 간신히 고개를 돌려보니, 애송이를 뒤따라왔던 푸른 숏컷의 소녀가 그의 권총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있었다.
“이런 골동품은 어디서 구했어요? 관리 상태도 나쁘지 않… 아, 총알을 리볼버용으로 채워 넣으셨네. 이러면 납이 녹아서 몇 발 쏘고 그대로 수리점 행인데. 초보신가?”
이 미친년이 지금 뭐라는…
던칸의 마지막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의 경동맥을 압박하던 염동력이 한층 더 강해지고, 산소가 끊어진 그는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
“형부, 왜 당해줬어요? 아까 보니까 일부러 마법 저항 푸시던데.”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여명을 향해, 네티가 물었다.
“….”
여명은 자신이 마법을 맞으면 주문을 역설계할 수 있는 체질이란 것도, 던칸의 염동력을 보고 좋은 기회다 싶어 몇 번 맞아 보려 했다는 것도 말할 수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에게 마법을 쏘고 싶어 하던 세티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는 애써 둘러댔다.
“실수야. 방심했어.”
“방심? 에이, 아닌 거 같은데?”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우선 녀석에게 정보부터 뽑아내자. 이런 건 빨리 끝낼수록 좋으니까.”
여명은 미심쩍은 네티의 눈빛을 외면하고, 쓰러진 던칸을 향해 염동력을 사용했다.
우드득가볍게 몸을 들어 올릴 생각이었는데, 발목을 으스러트리고 말았다.
이제 막 배운 마법이라서 그런지, 힘 조절이 쉽지 않은 까닭이었다.
아무튼, 여명은 포기하지않고 계속 염동력을 시도했다.
그렇게 그의 팔다리를 한두 개쯤 더 부러트리고 나서야, 여명은 던칸을 들어 올릴 수 있었다.
그 사이 안개 마법이 해제되었다.덕분에 아지트 구석에서 와들와들 떨고 있는 약쟁이들이 눈에 들어왔으나, 녀석들까지 처리할 이유는 없었다.
챙겨줄 의리는 더더욱 없었고.
“일 분을 주마. 전부 여기서 꺼져.”
마나가 담긴 여명의 목소리가 아지트에 울리자마자, 약쟁이들은 혼비백산하며 계단으로 몰려갔다.
비켜 씨발!
빨리, 빨리 나가!
그렇게 약쟁이들의 발소리가 멀어진 뒤에야, 여명은 던칸을 아지트 구석으로 옮기고 심문을 준비했다.
아지트의 연기를 몰아내고, 마법진을 지우고, 부러진 팔다리를 의자에 묶고…
자잘한 준비가 모두 끝날 때쯤, 지켜보고 있던 네티가 대뜸 질문을 던졌다.
“형부, 이렇게 해서 뜯어낸 정보가 진짜 정보인지 어떻게 알아요?”
“…갑자기 그건 왜?”
“아니, 조금 걱정돼서요. 우리 엿 먹으라고 가짜 정보를 주면 어쩌죠?”
“이놈 말고 다른 놈한테도 물어보면 돼. 어차피 뒷골목 정보는 교차 검증은 필수니까.”
“…다른 놈이요? 설마, 우리 다른 조직도 털어요?”
네티가 설마 아니겠지 라는 뜻이 담긴 눈으로 여명을 바라봤으나,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응.”
“….”
“이 속도라면 한두 곳 정도 더 털 수 있을 거야. 저녁 전까진 세티랑 합류해야 하니까… 빨리 끝내자.”
여명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던칸을 깨우려 했다.
하지만 늙은 마법사의 몸에 마나를 주입하려던 순간, 그는 문뜩 뭔가를 떠올리고 네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네티, 혹시 고문할 줄 알아?”
“고, 고문이요? 저는 잘… 저희 자매 중에서 그런 걸 익힌 건 언니랑 막내 둘뿐이라…”
“그래? 그럼 보기 거북할 수도 있으니까, 잠깐 나가 있을래?”
“저, 전 괜찮아요. 옆에서 지켜볼게요. 아니, 지켜보게 해주세요.”
그녀는 그렇게 대답하며 쪼르르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여명은 뭔가를 각오한 네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기절한 던칸을 깨웠다.
하지만그녀의 각오가 무색하게도,던칸은 눈을 뜨자마자 아는 것을 전부 토해냈다.
기절한 동안 여명이 부러트린 팔다리의 통증 때문이었으나, 그 사실을 모르는 네티는 뒷골목 녀석들이 의외로 깡이 없다고 생각했다.
***
드레이테리얼 남부. 남 궁정백의 성문 앞.
남 궁정백의 기사, 도반은 궁정백의 성을 바라보며 담배를 빨았다.
‘…인생 참. 꼬이려니 더럽게 꼬이네.’
시작은 남부 마경에서 도시로 몰래 침입한 녀석들이었다.
그냥 출입세 내기 싫어하는 유목민인 줄 알았건만, 하필 궁정백님이 도둑맞은 금화를 가진 놈들일 줄이야.
남 궁정백님의 온갖 지랄을 듣고 하수도로 쫓아갔지만, 찾은 거라곤 쥐 수인들의 시체뿐.
부랴부랴 하수도를 정리하고 흔적을 찾아봤으나, 하수도가 괜히 하수도인가?
제대로 된 흔적은 이미 쓸려나간 뒤였다.
그가 알아낼 수 있었던 건 기껏해야 침입자가 세 명이고, 그 중 한 명은 여자인 것 같다는 가설이 전부였다.
겨우 그딴 걸 보고하려고 날 찾아온 거냐! 한심한 소리 말고 당장 가서 내 금화나 찾아와!
덕분에 궁정백님께서 집어던진 도자기에 처맞는 색다른 경험도 할 수 있었다.
그 꼴을 본 부하들은 그냥 수사하는 척만 하자고 그를 유혹했으나, 도반은 차마 그 유혹에 넘어갈 수 없었다.
그가 성실한 궁정백의 기사라서? 그럴 리가.
깡패로 살다가 운 좋게 마나를 깨우친 놈에게 충성심이 어디 있고, 기사도가 어디 있겠는가.
단지…
“야, 뭐하냐?”
갑자기 들려온 여성의 목소리. 도반은 흠칫, 정신을 차리고 담배를 집어 던졌다.
그는 아직 절반도 피지 않은 지구산 담배를 잘근잘근 짓밟은 뒤, 허리를 세우고 대답했다.
“치,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친구? 궁정백님이 저렇게 화가 나셨는데 친구를 만나? 이야, 팔자 좋네?”
목소리의 주인은 농염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성이었다.
질끈 묶은 검은 머리카락과 아찔한 미모는 물론이고, 터질듯한 몸매까지.
음란서적 속 몽마가 떠오를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이었으나, 도반은 추파를 던지긴커녕 그녀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야, 궁정백님이 우습냐?”
“아, 아닙니다!”
“그럼 내가 우스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등에 걸고 있던 창을 뽑아 들었다. 도반의 몸통보다도 커다란, 흡사 발리스타용 화살이 떠오르는 창.
눈치 없는 부하들은 그녀의 몸으로 저런 창을 휘두를 수나 있겠냐며 수군거렸지만, 도반은 똑똑히 봤다.
그녀가 남부에서 유명한 불법 마법사를 꼬치로 만들어 버리는 광경을.
골목 전체가 피에 젖어버렸던 광경을 떠올린 도반은 식은땀을 질질 흘리며 대답했다.
“우, 우습지 않습니다! 예카테리나 님을 우습게 볼 수 있는 사람은 이 도시에 없습니다!”
눈을 질끈 감고 소리치는 도반의 꼬락서니가 우스웠는지, 여인은 창대로 그의 머리를 툭툭 쳤다.
“새끼가, 아부는.”
“….”
“오늘은 내가 힘 좀 써서 여기까지만 한다. 다음에 걸리면 국물도 없어. 알았지? 잘하자.”
“예! 노력하겠습니다!”
그가 소리치건 말건, 예카테리나라 불린 여인은 창을 회수하고 등을 돌렸다.
대체 어디에 힘을 썼다는 걸까?
도반은 문뜩 궁금증을 느꼈으나 그걸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세상에는 모르는 게 약인 일도 있는 법이었으니까.
아무튼, 예카테리나가 남 궁정백의 성안으로 사라질 때쯤.
도로 저편에서 익숙한 얼굴이 그를 향해 달려오는 게 보였다.
“도반! 자네 정말 도반 맞나?”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 그는 도반과 종족부터가 달랐다.
떡 벌어진 어깨와 녹색 피부를 가진 오크.
종을 뛰어넘은 우정을 나눈 친구는 두 팔을 활짝 펼쳤고, 두 남자는 무려 10년 만에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짧은 포옹이 끝나자 친구는 그가 입은 갑옷을 보며 감탄을 내뱉었다.
“설마, 자네가 진짜 기사가 될 줄이야.”
“왜, 내가 평생 뒷골목에 있을 줄 알았냐?”
“아니, 나는 자네가 해낼 거라고 믿었네.”
친구의 솔직한 대답에 도반은 웃었다. 조금 전 예카테리나와 만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진심 어린 미소였다.
“임마, 놀라기는 내가 더 놀랐지. 설마 도시를 탈출한 놈이 다시 돌아올 줄이야.”
“십 년은 긴 세월이지. 사막의 유목민이 고향을 다시 찾아올 정도로.”
“고향은 무슨, 헛소리 말고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들어나 보자. 어디로 갈래? 레스토랑? 술집?”
“당연히 술집이지. 내가 유목민 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게 한 가지 있다면, 술 없는 과거 이야기만큼 거지 같은 게 없다는 점일세.”
친구가 너스레를 떨자, 도반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런 웃음 아래, 그의 코끝과 눈시울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눈물은 흘리지 않았지만, 꽤 감정이 북받쳐 오른 게 틀림없었다.
친구는 이해한다는 듯 도반의 어깨를 두들겨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아무 말 없이 서 있기를 잠시.
도반은 웃으며 미처 못한 인사를 꺼냈다.
“고향에 돌아온 걸 환영한다. 발라구.”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