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156)
을 위한 세계는 없다-156화(156/817)
〈 156화 〉 19530305
* * *
그 멍청한 황제가 온 국민을 빨갱이로 만들기 위해 작정을 한 모양이오.
『스탈린 실종 일년 뒤, 피의 화요일 사건에 대해 전해 들은 리처드 닉슨의 대답.』
***
“…어떻게?”
계단으로 착지한 침입자를 본 순간, 서 궁정백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여러 의미가 함축된 질문이었다.
하수도를 지키던 수많은 경비병들은 어떻게 했으며, 대체 어떻게 그 두꺼운 콘크리트 벽을 뚫었는가?
그 의문의 답은 천장에서 떨어졌다.
눈이 드러나는 가면을 쓴 채, 각각 거대한 망치와 대전차 로켓으로 무장한 두 여성.
피와 콘크리트 가루를 가득 뒤집어쓴 그녀들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서 궁정백은 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깨달았다.
방해되는 건 다 죽이고, 망치와 로켓으로 콘크리트 바닥을 뚫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서 궁정백이 침을 삼키며 뒷걸음질 치는 사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침입자들의 수준을 가늠하고 있던 말머리가 입을 열었다.
“네놈들, 전부 지구인이로구나.”
세 명의 침입자 중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움직인 녀석은 있었다. 가장 먼저 착지한 남자 침입자.
그는 검에 우윳빛 검기를 머금고 말머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검은 어떠한 속임수도 없이 직선으로 들어왔다. 단순한 공격이었지만, 속도가 지독하게 빨랐다.
말머리가 반사적으로 보호막을 펼쳤을 땐, 이미 코앞에 있을 정도로.
쩌엉!
보호막이 종잇장처럼 구겨지고, 말머리의 몸이 포탄에 얻어맞은 것처럼 뒤로 날아갔다.
말머리는 허공에서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 걸리는 건 아무거나 붙잡았다.
손가락이 부러지고 손아귀가 찢어졌지만, 콘크리트 계단 아래로 추락하는 건 간신히 막을 수 있었다.
말머리는 계단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상태로 숨을 골랐다.
본래라면 다음 주문을 준비하거나 변신해야 했지만,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침입자를 노려봤다.
상대의 실력이 상상 이상이라서? 아니, 까치발을 든 침입자의 발걸음이 너무나 익숙했기에.
“비각술…? 비각술이라니!”
한민족의 피와 땀이 얽힌 애국자들의 무술이 어째서 침입자의 발에서 펼쳐진단 말인가.
말머리는 혼란을 느끼고, 뒤이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드워프제 검에 비각술… 미제의 앞잡이들이었나?”
“….”
“하! 전용섭…! 그 민족반역자가 기어코 팔아선 안 되는 것마저 팔았구나!”
침입자, 천여명은 녀석의 오해를 정정하지 않았다. 죽을 놈에게 진실이 무슨 소용일까.
그는 다시 비각술을 펼치며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파도치는 파양결의 마나가 검 위에 덧씌워졌다.
“불사의 왕이시여!”
그러자 말머리는 기다렸다는 듯 주문을 엮었다. 뒤틀린 마나로 이루어진 검붉은 화염이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여명은 멈추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어깨에 힘을 주고 불길을 향해 검을 내려쳤다.
플레이어에게 빼앗은 검술과 검기, 그리고 파양결의 마나가 합쳐진 검은 쏟아지는 불길과 뒤틀린 마나를 가르고, 말머리의 어깨에 틀어박혔다.
목을 찌르려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것인데, 의미 있는 저항은 아니었다.
여명은 그대로 검에 무게를 실어 녀석의 팔을 잘라버렸으니까.
촤악! 양치기 특유의 역겨운 피가 콘크리트를 적시고, 잘린 팔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여명이 대차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말머리는 즉발성 주문을 일으켰다.
목표는 상대가 아닌 그의 잘린 팔, 주문의 이름은 시체 폭발.
그 직후 마력과 공기가 빨려 들어가더니, 꽝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피와 살점이 수류탄처럼 터져 나오며 두 사람을 밀어냈다.
그렇게 생겨난 찰나의 간극.
말머리는 즉시 마나를 끌어 올리고, 변신을 준비했다. 변신만 한다면 팔 하나쯤 날린 건 문제가 아니었…
“…컥!?”
그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힘이 날아가던 그의 모가지를 붙잡은 까닭이었다.
“여, 염동…?”
마법? 말머리가 뒤늦게 항마력을 집중하는 바로 그 순간.
여명은 말머리를 계단 아래로 집어 던졌다.
이 개새끼가아아아아 !
말머리는 비명 같은… 아니, 비명을 지르며 저 아래로 사라졌다.
여명은 얼굴에 묻은 피를 닦으며 콘크리트 계단 아래를 바라봤다. 깊이가 얼마나 깊은 건지, 녀석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저렇게 떨어진 놈은 꼭 나중에 살아서 돌아오던데.”
“….”
산통을 깨는 네티의 목소리. 여명은 고개를 들어 일행을 바라봤다.
세티와 네티는 어느새 서 궁정백을 붙잡아 꽁꽁 묶고 있었는데, 의외로 궁정백은 의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신들, 정말로 지구인인가? 그것도 미국인?”
“….”
말머리의 오해가 전염된 건가? 하기야, 궁정백 입장에선 오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했다.
“나는… 이 도시의 서 궁정백, 조 판토리아노다.”
“…알고 있다.”
“알고 있다고? 그럼 더 쉽겠군. 황제께서 주신 궁정백의 권한으로…너희와 미국에게 정식으로 협력을 요청하겠다.”
애써 의연한 태도를 가장하고 있었지만, 궁정백의 목소리에서는 숨길 수 없는 두려움과 기대감이 느껴졌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거 잘하면 이용할 수 있겠는데?
여명은 세티에게 아무 말 하지 말란 눈짓을 보낸 뒤, 궁정백에게 대답했다.
“협력? 테러리스트 주제에 잘도 지껄이는군.”
“테, 테러리스트라니! 나는 억지로 녀석들에게 이용 당하고 있었을 뿐이다!”
궁정백의 심장 소리가 커지는 게 들렸다. 거짓.
여멍은 입을 다문 채, 어디 더 지껄여보라는 듯 팔짱을 꼈다.
그러자 궁정백은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려는 듯, 열성적인 태도로 말을 이어나갔다.
“다시 말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녀석들은 사랑하는 시민들을 인질로 붙잡아 나를 협박했단 말이다!”
“….”
“하, 하지만 나라고 가만히 당하고 있던 건 아니다. 반격의 기회를 노리기 위해, 녀석들에게 협력하는 척 정보를 빼냈지…”
뻔뻔한 거짓말, 은근한 눈빛. 여명은 쓴웃음 삼키기 위해 입을 꾹 다물었다.
그 태도를 긍정으로 해석한 걸까? 궁정백은 입술을 핥으며 덧붙였다.
“무슨 정보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나와 협력한다고 약속한다면…”
“…아니, 순서가 틀렸다. 그쪽이 먼저 가치를 증명해 봐.”
“….”
꽈악, 여명의 연기에 맞춰, 세티가 궁정백을 묶은 줄을 강하게 당겼다.
갑작스러운 압박을 받은 궁정백은 숨을 컥컥 거렸으나, 계속 입을 놀렸다.
“그들이 노리는 건 지하의 무기고다! 무기고를….”
“그런 건 이미 알고 있어. 조금 더 쓸모 있는 걸 말해.”
더욱 강하게 압박하는 로프. 궁정백은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녀, 녀석들이 알고 있는 무기고의 비밀번호는 전부 가짜다!”
그제야, 그를 압박하던 줄이 느슨해졌다.
“…가짜?”
“내, 내가 일부러 가짜를 알려줬다! 진짜 중요한 순간에 녀석들을 응징할 수 있도록…”
그게 아니라 마지막까지 보험을 남겨둔 거겠지.
여명은 참고 있던 쓴웃음을 내뱉으며 계단 아래를 바라보았다.
궁정백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미 내려간 녀석들은 모두 무기고 입구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으리라.
“…어쩔까?”
그 사이, 궁정백을 압박하던 세티가 물었다. 여명은 검을 털며 대답했다.
“더 캐낼 건 없겠어. 이제 버리자.”
“뭐? 잠깐! 내가 없으면 무기고로 들어가는 비밀번호는…!”
궁정백의 항변이 이어지려는 그때, 세티가 그의 목을 꺾었다. 우득, 궁정백은 나무 인형처럼 픽 쓰러졌다.
곧이어 일행이 계단 아래로 내려가려는데, 지켜보고 있던 네티가 물었다.
“…무기고 비밀번호, 몰라도 되는 거예요?”
여명은 대답 대신 품에서 황금 옥새를 꺼내 흔들었다.
이 세상 모든 잠긴 문을 열 수 있는 마도구.
백 마디 말보다 확실한 제스처였으나, 정작 네티는 더더욱 의문에 빠진 얼굴로 물었다.
“어… 그게 뭔데요?”
***
던칸은 뭔가 꼬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부하들을 모아 서부 하수도로 내려왔을 때까지만 해도, 그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하수도에서 비밀 금고를 찾아 한몫 단단히 챙기고, 전대 마탑주의 비전유물까지 얻어 마탑으로 복귀할 수 있을 거라는 달콤한 꿈.
하지만 정작 하수도로 내려와서 본 광경은 그의 꿈과 거리가 멀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돼지머리의 시체, 코를 찌르는 화약 냄새, 그리고 하수도 전체에 득실거리는 떨거지들까지.
그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같은 사람이었다. 이 도시에서는 언제나 사람이 문제였으니까.
“보스, 저… 그냥 후퇴하시죠? 우리가 낄 판이 아닌 거 같습니다.”
하수도 저편에서 성난 고함과 악쓰는 비명이 들려올 때쯤, 던칸의 부하가 지껄였다.
마나를 모르는 일반인마저 상황이 엿 같다는 걸 눈치챘다는 뜻.
던칸이라고 모르는 건 아니었으나, 그는 차마 하수도 바깥으로 나가자고 할 수 없었다.
얼마 전 정체 모를 습격자에게 팔다리가 부러진 탓에 조직이 쪼그라들었고, 재산은 더욱더 쪼그라든 탓이었다.
여기서 아무 수확도 없이 물러난다면, 얼마나 더 깊은 바닥까지 추락할지 알 수 없는 상황.
그는 탐욕과 헛된 희망, 그리고 막장에 몰린 사람 특유의 오기에 취해 소리쳤다.
“지랄 말고 금고나 찾아! 내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
부하들은 꺼림칙해하면서도 그의 명을 충실히 따랐다. 하수도 저편에서 들려오는 비명보다, 코앞에 있는 마법사가 더욱 무서웠으니까.
하지만 그 판단이 틀렸다는 걸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응? 이게 뭔 소리지?”
조직원 중 가장 멀리서 하수도를 살피고 있던 녀석의 귓가로, 무수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찰박, 찰박. 하수도 물을 밟으며 다가오는 발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규칙적이었다.
“두목! 여기 이상한 녀석들이 옵…!”
이상함을 느낀 조직원이 던칸을 향해 도움을 요청하려는 순간.
느긋하던 발소리가 뜀박질 소리로 바뀌었다.
두두두두! 마치 수천 마리의 쥐 떼가 동시에 움직이는 듯한 소리.
조직원이 놀라 몸을 돌렸으나,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어둠 속에서 칼날이 튀어나와 그의 목을 푹 찔러버렸으니까.
찌, 찍! 죽여! 전부 죽여라!
혁명! 혁명의 때다!!
우라! 우라!!!
피 거품을 물며 쓰러진 조직원의 눈동자에 마지막으로 비춘 것은, 하수도를 가득 채운 쥐 수인들의 모습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