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161)
을 위한 세계는 없다-161화(161/817)
〈 161화 〉 19530305 (6)
* * *
***
탱크의 주포에서 불길이 치솟자마자, 귀청이 찢어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125mm 활강포.
수십 톤이 넘는 강철 괴물이 토해낸 포탄과 마주한 순간, 카할 마그두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남 궁정백을 뒤로 날려버렸다.
제아무리 강대한 용이라고 해도, 탱크 포탄의 기습을 막아낼 재주는 없었으니까.
콰아앙!
폭음과 함께 해골이 산산조각나고, 폭발 범위 주변의 콘크리트들이 나뒹굴었다.
“크윽!”
곧이어, 가까스로 폭발 범위를 벗어난 남 궁정백이 복도 바닥을 굴렀다.
충격을 삼키며 일어나려는 궁정백의 시야로, 탱크의 주포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하하! 죽어라!]탱크 내부에서 들려오는 낭랑한 목소리. 남 궁정백은 욕지거리를 참으며 보호막을 연달아 펼쳐냈다.
첫 공격은 기습이라서 통했을 뿐. 진짜 마법사가 진지하게 방어에 전념한다면 탱크 주포를 막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적이 탱크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
궁정백이 펼친 보호막들 사이로, 여명이 발사한 얼음송곳들이 날아왔다.
노골적으로 포물선을 그리는 얼음송곳들은 하나 같이 목이나 중요 장기 같은 치명적인 부위를 노렸다.
송곳을 막자니 이어서 날아올 주포에 직격당하고, 주포를 막으면 송곳에 죽을 상황.
지독한 양자택일에 빠진 남 궁정백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바로 그때.
바닥을 구르던 카할 마그두의 해골이 입을 열었다.
탱크라니, 낭만이 없군.
뒤틀린 마나가 가득 담긴 음산한 목소리가 복도 전체를 휘감았다.
곧이어 조각났던 뼛조각들이 허공으로 두둥실 떠오르더니, 얼음송곳을 하나하나 막아내는 게 아닌가?
‘탱크 주포를 맞고도 버텼다? 역시, 평범한 뼈가 아니었나.’
여명이 눈살을 찌푸리며 가장 가까운 뼛조각들을 베어버리는 사이, 다른 뼛조각들은 뒤틀리고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무슨 마법인지 모르겠지만, 가만히 두고 보면 안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딜!]네티도 여명과 같은 생각을 한 건지, 탱크의 주포가 재차 불을 뿜었다.
125mm 포탄에 휘말린 뼛조각들이 우수수 땅으로 떨어졌지만, 그래도 절반이 넘는 뼛조각이 마법을 완성했다.
나의 수는 무수히 많으니, 나를 군단이라 부르라.
섬뜩한 주문과 동시에, 허공에 떠 있던 뼛조각 하나하나가 멀쩡한 스켈레톤으로 변했다.
[…좀비도 아니고 스켈레톤이 증식을 하네?]탱크 안에서 보고 있던 네티가 기겁하는 사이, 수십 마리에 달하는 스켈레톤이 복도에 착지했다.
하나하나가 푸른 불꽃을 일렁거리는 카할 마그두의 분신.
이건 내 이빨로 창조한 용아병(??兵)들이다. 이 정도도 못 해서야 쓰나.
수십 마리의 카할 마그두가 동시에 지껄이는 소리가 복도를 채웠다.
자, 이제 다시 시작해 볼까?
다시 시작하긴 무슨,여명은 수많은 해골을 뒤로하고 탱크 위로 올라탔다. 그리고 포탑 뚜껑을 두들기며 말했다.
“네티, 전부 탱크로 밀어버려.”
[네?]“밀어.”
[하지만 마법이…]“달려, 마법은 내가 막는다.”
그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여명이 탱크 위에 서서 검을 들자마자, 탱크의 엔진이 굉음을 내뿜기 시작했다.
무기고로 이어지는 복도 넓이는 탱크가 간신히 통과할 수 있을 정도. 남 궁정백은 복도로 밀고 들어오는 탱크를 보며 소리쳤다.
“정신 나간 놈!”
그는 탱크의 궤도를 향해 보이지 않는 힘 주문을 발사했다. 바퀴를 파괴해 탱크를 멈출 생각이었으나, 여명의 검기가 주문을 반으로 베어버렸다.
“불사룡! 뭐 하는 건가! 어서 저 탱크를 막아!”
궁정백의 비명에 호응하듯이 카할 마그두의 수십 스켈레톤이 주문을 엮었다.
그렇게 수십 개의 마법이 동시에 터져 나온 순간.
여명 또한 흑익류의 금빛 깃털을 흩날리며 주문을 엮었다.
운전석을 향해 날아오는 화염구. 얼음송곳으로 요격.
바닥을 얼리기 위한 얼음창, 염동력으로 방향을 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궤도를 노리는 벼락.
여명은 똑같이 벼락 주문을 손에서 발사했다.
파지직! 카할 마그두의 검붉은 번개와 여명의 금빛 번개가 충돌하며 무력화되었다.
벼락? 여태껏 숨기고… 아니, 그사이에 익힌 것인가?
카할 마그두가 감탄하건 말건, 여명은 계속해서 주문을 맞부딪쳤다. 그의 실핏줄들이 막대한 마나의 충돌을 버티지 못하고 터져나갔다.
혓바닥 사이로 비릿한 피의 맛이 감돌았으나, 여명은 멈추지 않았다.
이윽고.
탱크가 용아병들을 우지끈 밟아버렸다. 40톤이 넘는 강철 괴물의 궤도 아래, 부서진 뼛조각이 튀었다.
“히라리아의 밤, 깊은 탑의 노래여! 내 부름에 응… 이런 제길!”
뒤늦게 남 궁정백이 거대 마법을 준비했지만, 그때마다 탱크의 주포가 불을 뿜었다.
어디 넓은 공터라면 모를까, 이런 좁은 복도에서 주포를 상대할 수 있는 건 보호막뿐이었다.
하하하! 걸작이군! 걸작이야!
뭐가 그리 재밌는 건지, 카할 마그두는 탱크에 밀려 도망치면서도 웃음을 터트렸다.
남 궁정백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것과 대조되는 모습.
그렇게 수십의 용아병들을 짓밟은 탱크가 멈춘 건 다른 창고 방의 입구까지 용아병들을 짓밟은 후였다.
밑도 끝도 없이 밀린 궁정백과 카할 마그두가 철문으로 아슬아슬하게 뛰어든 직후, 탱크는 그대로 입구를 틀어막았다.
쿵!
정확히는, 입구에 탱크를 처박았다. 궁정백과 녀석이 다시 철문을 열려면 고생 좀 해야 하리라.
물론, 이건 시간 벌기에 불과했다. 여명은 포탑 뚜껑을 두들겼다.
“둘 다 나와, 이제 후퇴하자.”
포탑 뚜껑이 덜컥 열리며 네티가 먼저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는 소원을 성취한 사람처럼 기쁨에 찬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정작 그녀의 몸은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괜찮아?”
“저요? 물론 괜찮죠! 원래 세 명이 운전하는 걸 두 명이 하느라 고생하긴 했지만, 자동장전 시스템 덕분에 염동력으로 운전에만 집중하면 됐…”
그녀의 말이 길어지려는 찰나, 뒤따라 탱크에서 내린 세티가 말을 끊었다.
“네티, 거기까지만 해.”
그녀는 멀미에 시달린 사람처럼 고개를 흔들다가, 여명의 입가에 피가 흐르는 걸 보고 울상을 지었다.
여명은 그녀가 무어라 말하기 전에 선수를 쳤다.
“이제 가자, 녀석들이 탱크를 밀어내기 전에 벗어나야지.”
세티는 한숨을 쉬었다.
“…무기고에 볼일 있다는 거, 그건 어떻게 하고?”
무기고 지하에 잠든 핵무기. 녀석들에게 발사 코드가 있다면 모를까, 지금 당장은 후퇴하는 게 옳았다.
특히 카할 마그두의 동료 하나가 아직 나타나지 않은 시점이라면 더더욱.
여명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어차피 녀석들은 못 건드려. 지금은 재정비하는 게 맞아.”
세티는 고개를 끄덕이고 여명을 따라 탱크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렇게 일행이 무기고 입구로 향하는데, 탱크 너머에서 카할 마그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여명, 목 잘 씻고 기다리고 있게. 내가 반드시 죽여줄 테니.
친구와 약속을 잡는 것처럼 가벼운 어투였다. 여명은 염동력으로 탱크를 밀어 벽을 흔드는 것으로 답했다.
카할 마그두의 웃음소리를 배경음 삼아, 여명과 일행은 그대로 무기고를 벗어났다.
***
탱크가 가득한 창고를 지나, 양치기들이 시체가 가득 쌓인 입구, 그리고 하수도로 통하는 계단까지.
서 궁정백의 시체 앞까지 도착한 여명이 다시 하수도로 올라가려는데, 누군가가 여명을 불렀다.
“하수도로 가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돌아보니, 익숙한 녀석이 계단에 앉아 있었다. 바닥이 질척해질 정도로 피 칠갑을 한, 외팔이 엘프.
“…핀엘? 날 찾아온 거냐?”
핀엘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명은 어떻게 찾아왔느냐고 묻지 않았다. 이 도시에서 세계수의 마나를 지닌 건 여명과 결정뿐이었으니, 그를 찾아오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리라.
엘프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숨을 크게 들이쉬며 말했다.
“바깥은…상황이 좋지 않다. 쥐 수인 군단이 하수도에 가득해. 이대로라면 도시 전체를 점령하는 것도 시간문제지.”
세계수 결정으로 양산되던 인조 군인들.
산 넘어 산이라더니, 여명은 계단 아래와 핀엘을 번갈아 보며 말문을 열었다.
“…세계수의 결정을 훔쳐 간 범인은? 누군지 찾았나?”
“동 궁정백.”
즉답. 여명은 쓴웃음을 지었다.
동 서 남 궁정백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음모를 꾸미고 있었나.
아래는 남 궁정백과 해골용, 머리 위에는 동 궁정백과 쥐 수인 군단이라.
“…개판이네.”
“그래, 개판이지.”
그 말을 끝으로, 핀엘은 쿨럭 피를 토했다. 약해진 마나와 옅어진 호흡. 여명은 그가 죽어간다는 걸 느꼈다.
세티 또한 그것을 느꼈는지, 여명에게 허락을 구하고 가방에서 치유 물약을 꺼냈다.
“…도움을 받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엘프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물약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는 순식간에 포션을 비운 뒤, 한결 나아진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제 와서 말하긴 뭐하지만… 천여명, 네게 부탁할 게 있다.”
“…부탁?”
여명이 되묻자마자, 핀엘은 품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꺼냈다.
꿈속에서 봤던 것보다 조금 작아진, 그럼에도 거의 주먹보다도 큰 세계수의 결정.
“동 궁정백에게서 빼돌렸다. 이걸 우리의 숲으로 되돌려 달라 부탁하고 싶지만… 이 상황에 그건 힘들겠지.”
“….”
“받아라.”
여명은 그가 던진 세계수의 결정을 받았다. 혹시 말을 걸어올까 싶었지만, 세계수 결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걸 왜 나한테 넘겨? 내가 먹으면 어쩌려고?”
“…그게 네 선택이냐? 그렇다면 먹어라.”
“뭐?”
핀엘은 잠시 후우 숨을 고르더니,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세계수께서 너와 대화하는 걸 봤다. 그분이 개입한 이상, 네가 뭘 하건 내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
여명은 아무 말 없이 결정과 핀엘을 번갈아 바라봤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네티가 궁금한 듯 무언가 질문하려 했으나, 세티가 먼저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짧은 침묵, 짧은 고민.
잠시 후, 여명은 뭔가를 각오한 듯 결정을 품에 넣었다.
“핀엘, 우선 우리 베이스캠프로 가자.”
“베이스캠프? 제안은 고맙지만… 이 몸으론 무리다.”
핀엘은 하나 남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포션 덕분에 위급한 상황은 넘겼지만, 싸울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짐? 그거라면 걱정할 필요 없어. 싸울 일 없을 테니까.”
“천여명, 다시 말하지만, 쥐 수인들은 이미 도시를 점령하고 있…”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여명의 얼굴이갑작스레쥐 수인의 그것으로 변한 탓이었다.
피눈물의 환상. 여명은 쥐 수인의 얼굴로 말했다.
“이거면 충분하겠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