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166)
을 위한 세계는 없다-166화(166/817)
〈 166화 〉 과거의 유령, 현재의 인연 (5)
* * *
***
심장도 아닌 빈 눈구멍에 총알이 박힌들, 스켈레톤 드래곤은 웃어넘길 수 있었다.
설사 그것이 대물 저격총에서 발사된 10.6mm 탄환일지라도.
하지만 신의 축복이 가득 담긴 총알이 그의 두개골 안에서 폭발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펑! 그리고…
크롸라라!!
카할 마그두는 준비하던 숨결 대신, 영혼 밑바닥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내뱉었다.
감히, 어떤 놈이
용이 총알이 날아온 하늘 위로 고개를 든 그때.
태양을 등진 채, 그를 향해 강하하는무언가가 시야에 들어왔다.
거대한 날개와 꼬리, 그리고 붉게 빛나는 비늘.
그의 머리 위로 그림자를 드리운 저것은 분명…
…용?
카할 마그두는 즉시 날갯짓했다. 오랜 투쟁으로 단련된 본능이었다.
그러나 총알에 관심이 쏠려있던 그의 반응은 너무 늦었고, 그에 비해 강하하는 용은 너무나 빨랐다.
!!!
뼈와 비늘이 충돌한다. 아니, 충돌이라는 표현은 조금 어폐가 있었다.
붉은 용은 강하하는 그대로 스켈레톤 드래곤의 날개와 몸통을 붙잡았을 뿐이니까.
같잖은 짓을!
카할 마그두가 발악하며 용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중력 가속도보다 빠를 순 없었다.
이윽고.
두 마리의 용은 좀비가 가득한 도시로 충돌했다.
콰아아아앙 !
땅이 전율하고, 도시 전체가 비명을 질렀다. 추락지점을 중심으로 건물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곧이어 짓이겨진 언데드들의 울음이, 쥐 수인들의 비명이, 떠오른 파편들이 추락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대체 뭘 보고 있는 거야…?”
네티가 용들이 추락한 곳을 보며 중얼거렸다. 먼지 때문에 용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나, 이미 충분히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그러나 옆에 서 있던 여명의 시선은 전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하늘 위, 조금 전 추락하던 용의 목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점 두 개.
“네티, 따라와.”
“예? 어딜… 같이 가요! 형부!”
여명은 망설임 없이 두 개의 점이 추락하는 위치를 향해 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얼떨떨하게 뒤를 따르던 네티는 형부가 무엇을 향해 가는지 깨닫고 눈을 크게 떴다.
익숙한 안대를 차고 있는 여인.
“…성녀님?”
양손으로 거대한 대물 저격총을 들고, 등에는 커다란 가방을 멘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성녀의 어깨 위, 커다란 까마귀가 쉴 새 없이 날개를 퍼덕이며 추락 속도를 늦추고 있었다.
물론, 그 날갯짓은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성녀 한 명이면 모를까, 그녀가 메고 있는 가방은 어마어마하게 무거워 보였으므로.
그렇게 성녀가 무너진 건물 위로 추락하기 직전.
여명과 네티는 동시에 염동력을 펼쳐 그녀의 몸을 받아냈다.
화들짝 놀란 까마귀와 달리, 성녀는 당황하지 않고 염동력에 몸을 맡겼다. 이렇게 될 걸 예상했다는 듯, 여유로운 태도였다.
“안녕! 나 보고 싶었지?”
땅에 착지한 성녀의 첫마디. 여명은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입을 꾹 다물었다.
미묘하고도 짧은 침묵.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네티가 눈동자를 굴리는 사이, 여명이 한숨 쉬듯 물었다.
“왜 직접 온 거야? 그것도 용까지 데리고… 대체 뭘 봤길래?”
예지.
“그게 하늘 위로 날아가는 걸 봤어.”
핵무기.
“….”
두 사람의 대화 속에는 주어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백 마디의 설명보다 더 확실한 믿음이 있었으므로.
“적색의 레독스시여. 당신의 총이 바라나이다. 이자에게 당신의 용기를 주시옵고, 만용을 거둬가소서.”
성녀는 여명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작게 축복을 외웠다. 그러자 붉은 기운이 그의 몸에 깃들고, 이내 얇은 막이 되어 몸 전체를 감쌌다.
“회포는 나중에 풀자. 빨리 끝내, 알겠지?”
그녀의 말이 신호라도 된 걸까?
콰아아 !
때마침 용들이 추락한 지점에서 두 개의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용의 숨결이 분명한 붉은 불기둥과 푸른 불기둥은 서로 얽히고, 부딪히며 주변의 먼지를 태워 버렸다.
그렇게 먼지 사이로 드러난 두 마리의 드래곤.
스켈레톤 드래곤과 레드 드래곤은 서로 엉킨 채 앞발과 꼬리, 그리고 이빨로 서로를 공격했다.
괴수 영화에서나 볼법한 거대 파충류들의 육탄전.
땅이 울리는 그 광경을 향해, 여명이 몸을 날렸다.
***
오르세 타불, 용 비늘 산맥의 탕아여! 이제는 털꼬마 왕이 아니라 성녀의 깔개가 된 것이냐?
해골용이 꼬리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붉은 용 또한 앞발을 휘두르며 녀석과 맞섰다.
[닥쳐라, 시체야.]시체? 털꼬마를 위해 수십 년 넘게 무덤 속에 처박혀 있던 멍청이가 시체를 운운하다니. 역사의 아이러니란!
카할 마그두는 껄껄 웃으며 숨결을 내뿜었다.
붉은 용이 아니라, 그 뒤편에서 날아오는 수십 개의 얼음송곳을 향해서.
치이익 ! 얼음송곳이 얼마나 많은지, 얼음이 기화되는 대신 어마어마한 수증기가 일어났다.
그러나 해골용의 날카로운 시야는 수증기 너머에서 다가오는 두 사람을 정확히 감지해냈다.
축복을 두른 천여명과 까마귀 수인.
성녀와 그 계집은 어디로 갔지? 카할 마그두는 붉은 용에게서 훌쩍 물러나며 이를 갈았다.
반푼이 용에 마법사급 수인이라, 소중한 수확이 엉망이 되었군.
“오늘 수확할 건 처음부터 네놈 목숨뿐이었어.”
수증기 사이로 날아오듯 거리를 좁혀오는 천여명의 대답. 해골용은 양손으로 동시에 주문을 엮으며 대답했다.
벌써 승리를 확신하면 안 되지. 천여명, 내가 네크로맨서라는 걸 잊었는가?
네크로맨서 앞에서 머릿수는 아무 의미도 없는 법.
카할 마그두가 그렇게 속삭인 순간, 그의 양손에서 거무튀튀한 어둠이 터져 나왔다. 진흙처럼 끈적이는 어둠이.
그것을 보고 불길함을 느낀 붉은 용이 훌쩍 거리를 벌리는 사이, 어둠이 공간을 짓이기며 특별한 아공간의 문을 열었다.
죽음의 문.
카할 마그두의 데스나이트들이 잠든 아공간과 연결된 어둠이 활짝 열리고, 그 안에서 수십 구의 시체가 튀어나왔다.
인간, 드워프, 오크, 수인, 심지어 엘프까지.
시체처럼 창백한 피부 아래, 뒤틀린 마나를 품은 수십 마리의 초인 언데드가 땅에 착지했다.
카할 마그두가 한땀 한땀 정성스레 만든 특별한 장난감들.
우뚝 선 수십 쌍의 눈동자 위로 그와 똑같은 푸른 귀화가 피어올랐다.
전세 역전이로군.
해골용은 그렇게 말하며 날갯짓했다.
시야를 가리던 수증기와 먼지가 싸악 밀려나며, 주변을 밝혔다.
붉은 용과 까마귀 수인이 모습을 드러냈으나, 어째서인지 천여명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카할 마그두가 흠칫했다. 그는 본능을 따라 물러나며 데스나이트들에게 소리쳤다.
마나를 펼쳐라! 녀석을 찾아!
다음 순간, 해골용은 자신이 무너트린 폐허 사이에서 비쭉 솟아오르는 빛을 보며 기겁했다.
별의 빛을 품은 검기, 혜성검.
막아!
카할 마그두가 발악하듯 소리치기 전에, 데스나이트들은 이미 혜성검을 향해 제각각 검기나 마법을 쏘아냈다.
혜성검을 막아내기엔 턱없이 부족했지만, 위력을 줄이기엔 충분한 공격들.
쩌어엉 !
그러나 혜성검은 줄어든 위력으로도 보호막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카할 마그두의 갈비뼈에 기다란 상처를 남겼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치명적이었을 일격.
저 검기가 코앞으로 다가올 때까지 아무 반응도 하지 못했다고?
카할 마그두는 폐허 사이에서 튀어나오는 여명을 보며 그 이유를 깨달았다.
환상 마법…?
그것도 용의 감각을 속일 마법이라니. 저런 마법을 멸망 전 소련도 아니고, 이딴 쓰레기 도시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좋은 수였다. 시체에서 뽑아낼 정보가 하나 더 늘었군.
그 말을 신호 삼아, 수십의 데스나이트가 여명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
해골용이 날아오르고, 데스나이트가 움직이기 시작한 바로 그때.
“남미의 살바도르, 칸디도, 히베이루… 만주에서 실종된 판즈이까지? 이 미친 도마뱀 새끼.”
코르부스는 골목을 가득 채운 데스나이트의 면면을 보며 부리를 다물지 못했다.
하나 같이 실종되거나 전사했다고 알려진 유명 초인들이었으니까.
[이길 수 있겠나?]붉은 용의 질문에 코르부스는 고개를 저었다.
언데드의 천적이나 다름없는 성검이라면 모를까, 저 정도 숫자의 초인 언데드… 소위 데스나이트란 것들을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끝없는 마나를 지닌 스켈레톤 드래곤이 바로 앞에 있다면 더더욱.
[그래도 시간은 끌 수 있겠지.]“오 분 정도라면. 아슬아슬하게 가능하오.”
코르부스는 날개 사이에서 종려나무로 만든 지팡이를 꺼내며 대답했다.
그녀의 시선은 하늘로 날아오르는 카할 마그두가 아닌, 데스나이트와 싸우는 여명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천여명과 내가 카할 마그두를 처치하겠다. 그전까지 혼자서 저 녀석들을 붙잡고 있어 다오.]“미친 계획이구려.”
[….]“뭐, 제자 놈을 잘 부탁하오.”
코르부스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용의 어깨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추락하는 그녀의 지팡이에서 거대한 마나가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여명을 포위한 데스나이트들이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돌린 그 순간.
“날 봐 라 !”
까마귀의 머리 위로 무수한 얼음의 칼날이 피어올랐다. 얼음들 사이로 햇빛이 반사되며 어지러운 빛을 내뿜었다.
그 빛을 본 데스나이트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녀석들은 여명을 둘러싼 포위를 풀고 물러서거나, 검을 휘두르며 얼음 칼날을 파훼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코르부스가 원하던 바였다.
[지금이다, 천여명.]오르세 타불이 날아오르며 소리치자, 여명은 훌쩍 위로 뛰어올랐다.
탁! 꼬리가 그의 몸을 붙잡기 무섭게, 용의 날개가 펄럭이며 하늘을 갈랐다.
날카로운 바람이 여명의 볼을 스치고, 아래로 보이는 도시가 순식간에 작아졌다.
아, 어찌 용이 된 자가 스스로 깔개를 자처하느냐?
붉은 용이 하늘 위로 올라서자, 이미 하늘에 떠 있던 카할 마그두가 조롱했다.
오르세 타불은 브레스로 대답했다.
용의 입에서 시작된 거대한 불기둥이 하늘이 붉게 물들이고, 해골용을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하하하! 그래, 용이라면 그래야지!
두 마리의 용은 거의 동시에 주문을 엮었다.
대기가 요동칠 정도로 거대한 마나가 움직였다. 그 직후, 수십 개의 마법이 하늘을 수놓았다.
화염구와 충돌하는 얼음창.
벼락을 막는 불기둥.
화염 폭발을 억누르는 염동력.
그리고 서로의 브레스까지.
온갖 마법이 충돌하고 폭발하는 용들의 공중전은 대규모 폭죽쇼를 방불케했다.
개중에는 여명의 얼음송곳도 간간이 섞여 있었는데, 카할 마그두는 그때마다 상대를 비웃었다.
인간 깔개야, 체력이 바닥난 게 느껴진다. 성녀를 등에 업고 얼마나 날아온 것이냐? 일주일? 이주일? 아니, 그 전에 육십 년의 상처는 회복했느냐?
해골용의 말마따나, 승리의 저울은 점점 더 그를 향해 기울고 있었다. 무한한 체력의 언데드와 이미 체력을 낭비한 살아있는 자의 차이.
그 격차를 좁힐만한 건 용의 등에 탄 천여명 뿐이었지만, 카할 마그두는 천여명이 활약할 거리를 허용하지 않았다.
인간은 날 수 없었으니까.
내 컬렉션에 동족의 시체를 추가하는 날이 올 줄이야. 오르세 라날이 통곡하겠구나!
서로의 마법이 또다시 폭발하던 그 순간, 카할 마그두는 미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천여명, 저놈이 이대로 포기할 인간이 아닌데.
만주에서 나무를 타고 하늘까지 쫓아오던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얼음송곳과 염동력만 깔짝거린다고? 분명 무슨 수를 숨겨둔
그때.
카할 마그두는 여명이 쏘아낸 얼음송곳들이 자신의 머리 위로 죽 늘어져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구름 다리처럼.
이 미친놈.
용이 뒤늦게 고개를 들었지만, 너무 늦은 깨달음이었다.
얼음송곳을 다리 삼아 달려온 여명이 이미 그의 머리를 향해 뛰어내리고 있었으니까.
“이제 끝내자, 마그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