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167)
을 위한 세계는 없다-167화(167/817)
〈 167화 〉 과거의 유령, 현재의 인연 (6)
* * *
***
머리 위로 떨어지는 인간과 빛나는 검.
용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녀석은 날갯짓하는 동시에 앞발을 휘둘렀다.
여명은 앞발을 피하는 대신, 검 위에 검기를 겹쳤다.
혜성검과 파양결, 그리고 플레이어에게 빼앗은 검기까지.
!
세 개의 검기가 중첩된 검은 소리도 없이 용의 발톱을 갈랐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진짜 목표를 향해 뻗어 나갔다.
용의 심장.
카할 마그두의 갈비뼈 사이로 낙하한 여명의 시야로, 푸른 보석처럼 빛나는 심장이 보였다
그렇게 여명의 검기가 심장에 닿기 직전.
하!
용은 분노인지 기쁨인지 알 수 없는 웃음을 내뱉으며 심장의 마나를 폭발시켰다.
아까 전 그를 밀어냈던 마나 폭발? 아니, 이번에 터져 나온 마나는 그것과 차원이 달랐다.
화아아악 !
용의 심장은 자기 자신을 연료 삼아, 귀기 어린 푸른 불꽃을 뿜어냈다.
밀어내는 게 아닌, 그대로 여명을 태워버리겠다는 의지가 담긴 불꽃.
순간 시야가 녹아내렸다. 불길이 얼굴을 뒤덮은 직후였다.
참신함은 인정해주지.
카할 마그두의 불길이 여명을 불태웠다. 데스나이트나 발사 코드에 대한 생각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죽고, 죽인다. 오직 그뿐.
그러나 여명은 밀려나지도, 타죽지도 않았다.
그는 염동력으로 심장을 붙잡은 채, 온몸의 마나를 쥐어짜며 불길을 버텨냈다.
피부가 타올라 감각이 사라져도, 눈동자가 녹아내려 시야가 암전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치미는 고통 속에서, 오직 용의 심장만이 선명했다.
무의식, 확신, 그리고 검.
여명은 그대로 검을 쥔 손을 휘둘렀다. 그의 의지를 따라 불꽃이 갈라지고…
심장에 검이 닿았다.
!!!
소리는 없었다. 환호는커녕 비명조차 없었다.
들숨 한 번, 날숨 한 번.
용의 심장이 내뿜던 불길이 사라지고, 여명은 그대로 갈비뼈 사이로 밀려나 추락하기 시작했다.
재생된 그의 눈동자 너머로 보이는 건, 카할 마그두의 거대한 몸체가 땅으로 추락하는 광경.
‘이겼… 다.’
승리를 확신한 그때, 빠르게 다가온 붉은 용의 손이 그를 받아냈다.
나이스 캐치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타버린 입과 혀가 움직이지 않았다. 여명은 그냥 용의 손에 기댄 채, 천천히 땅으로 내려갔다.
잠시 후.
쿠우웅…!
해골용이 지면과 충돌하는 소리가 천지를 울렸다. 승리의 소리였다.
충격적인 결과에 도시 전체가 침묵하는 가운데, 오르세 타불은 가볍게 도시에 착지했다.
그는 조심스레 여명을 땅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우리의, 아니… 그대의 승리다. 천여명.]그러나 여명은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도시에는 아직도 좀비들이 우글거리고 있었으니까.
‘술자는 이미 쓰러트렸는데… 어째서?’
그때, 그의 의문에 대답하듯 카할 마그두가 쿨럭, 기침을 내뱉었다.
하, 하하하! 졌군. 지구인에게, 졌어.
해골용은 웃음을 터트리며 몸을 일으켰다. 반쯤 잘려나간 오른손으로 땅을 짚는 꼴이 몹시 위태로웠다.
[지긋지긋한 시체 같으니.]오르세 타불이 이를 드러내며 주문을 엮고 전투를 준비했지만, 여명은 그저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녀석이 아직까지 살아있는 이유를 깨달았으니까.
카할 마그두는 갈비뼈 사이에 왼손을 집어넣어, 갈라진 심장을 붙잡고 있었다.
그건 응급처치도 뭣도 아니었다. 그저 죽을 시간을 아주 조금 늦추는 게 전부인, 단순한 시간 끌기.
녀석은 고개를 들어 여명을 똑바로 바라봤다.
드래곤 슬레이어가 된걸… 축하한다. 천여명.
“….”
아이러니하군. 용사 이후 처음으로 드래곤 라이더이자, 드래곤 슬레이어가 된 게 지구인이라니.
해골용이 이죽거리건 말건, 여명은 검을 뽑고 녀석을 향해 다가갔다.
저벅.
검에 다시 한번 검기가 고인다.
조금 전 심장을 베었던 혼신의 일격만 못했지만, 죽음의 문턱에 있는 용을 죽이기엔 충분한 검기.
그것을 본 카할 마그두가 뭔가를 깨달은 듯, 웃음을 터트렸다.
인간 같지 않은 정순한 마나… 그랬나, 우리가 찾던 세계수의 결정, 그건 이미 네 뱃속에 있었군.
“….”
별의 인도를 받는 게 아니라…세계수의 선택을 받았군. 파순, 이 빌어먹을 년…흐흐, 운명이란…
말할 때마다 용의 주둥이 사이로 작은 불길이 일렁거렸으나, 여명은 개의치 않았다.
녀석에게선 아무런 적의도 느껴지지 않았으므로.
잠시 후, 여명이 녀석의 코앞에서 검을 들었다. 심장과 왼손을 동시에 벨 생각이었는데…
오히려 카할 마그두가 먼저 왼손을 가슴에서 뽑는 게 아닌가?
저항하려고? 아니, 아니었다. 녀석은 손위에 들린 자신의 심장을 그대로 여명에게 내밀었다.
먹어라.
“…뭐?”
이 순간부터, 내 심장과 시체를 노리는 강대국들이 너를… 아니, 이런 정치적인 이야기는 필요 없겠지.
카할 마그두는 고개를 내려 여명과 시선을 마주했다.
희미해지는 푸른 불길과 황금색 눈동자가 마주한다. 패자와 승자, 즐거움과 의아함.
간단한 진리다. 지구가 이 세계를 침략하기 전에도, 침략한 후에도 변하지 않는 진리.
“….”
약자는 먹히고, 강자는 먹는다. 패자는 빼앗기고, 승자는 빼앗는다. 오직 그것뿐. 그러니…… 네가 먹어라.
여명이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콱! 녀석은 왼손을 쥐었다.
손에 들린 심장이 압축되며 카할 마그두를 유지하던 마지막 마나마저 그 속으로 사라졌다.
하하… 별내장… 역시… 운명은… 어긋나야… 재밌…
유언인지, 아니면 웃음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마지막으로 용의 눈구멍 속 푸른 불길이 사그라들었다.
쿵!
그렇게 영혼을 잃은 뼈가 쓰러지고, 녀석의 손에 있던 보석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성인의 몸통보다도 컸던 용의 심장과 비교하면 작디작은, 야구공만 한 크기의 푸른 보석.
여명의 발치에 굴러든 보석을 집어 들고, 고개를 돌렸다.
오르세 타불의 착잡한 눈동자, 행동을 멈춘 좀비들, 그리고 골목 사이에서 절뚝거리며 다가오는 까마귀 수인.
“…코르부스.”
데스나이트와의 격전이 얼마나 격렬했는지, 그녀의 몸 곳곳에는 온갖 상처가 가득했다.
특히 왼쪽 다리는 완전히 반대로 꺾여 덜렁거리고 있었는데, 덕분에 코르부스는 마법 지팡이를 진짜 지팡이로 사용하고 있었다.
아무튼, 그녀는 해골용 앞에 선 여명을 발견하곤 부리를 딱 부딪쳤다.
“훌륭하오. 나쁜 제자. 말도 없이 사라졌을 땐 부리로 한 대 쪼아주고 싶었지만… 뭐, 살아있으니 됐소.”
“…예, 코르부스도 살아계셔서 다행입니다.”
피식 눈웃음 짓는 코르부스를 뒤로 한 채, 여명은 용의 심장을 품에 챙겨 넣었다.
그리고 성녀가 사라진 방향을 다시 고개를 돌렸다.
정확히는, 세티가 싸우고 있는 곳으로.
“오르세, 아직 몇 놈 더 남았는데…마무리 좀 도와주겠어?”
[그게 그대가 원하는 것이라면.]***
“도망만 가지 말고, 좀 싸우지?”
세티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예카테리나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땅을 굴렀다. 그리고 곧이어…
콰아앙!!!
그녀가 서 있던 자리가 폭발했다. 대전차 로켓보다도 강력한 폭발 마법.
파편이 옷을 찢고 피부를 뚫었으나, 폭발 범위는아슬아슬하게벗어날 수 있었다.
바닥을 구른 세티가 고개를 들어보니, 남 궁정백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금색 지팡이를 겨누는 모습이 보였다.
“쯧, 어린 계집 하나를 두고 이게 대체 뭐 하는 건지…”
그는 이런 싸움 자체가 불쾌한듯했다.
하긴, 초인 두 명이 수백 마리의 좀비를 몰고 다니며 어린 여자애 하나를 몰이 사냥하는 게 그리 명예로운 일은 아니지.
물론 명예는 명예고, 일은 일이었다.
발사 코드를 얻어내기 위한 인질, 그 필요성 때문에 남 궁정백은 재차 마법을 발사했다.
“히라리아의 열기여!”
또다시 반복되는 폭발 마법.
세티는 입에 고인 피를 퉤 내뱉은 뒤, 비각술을 펼쳐 자리를 이탈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좀비들이 그녀의 착지 지점을 향해 내달리는 게 아닌가?
‘젠장.’
그것을 본 세티는 떨어지는 와중에 망치를 들어, 허공을 후려쳤다.
쾅! 망치 끝에서 벼락이 터지며 그녀의 몸이 허공에서 방향을 틀었다.
마나가 요동치고 내장이 뒤틀렸지만, 덕분에 세티는 아슬아슬하게 골목이 아닌 건물 지붕 위에 착지할 수 있었다.
“와, 도망가는 건 정말 일류가 따로 없네. 근데… 이제 그만하고 끝내면 안 될까?”
예카테리나의 도발 섞인 부탁에 세티는 중지를 들어 화답했다.
차원문 너머에도 널리 알려진 지구의 손짓.
남 궁정백의 표정이 일그러지건 말건, 예카테리나가 낄낄거렸다.
“그냥 편하게 가자니까? 이렇게 시간 끌어봤자 아무 의미도 없어.”
“….”
“설마, 니 애인이 카할 마그두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저깟 용 하나 붙었다고 싸움이 달라질 거 같아?”
그녀의 말마따나, 도시의 하늘에선 스켈레톤 드래곤과 레드 드래곤이 맞붙고 있었다.
온갖 마법과 용의 숨결이 부딪히는 장엄한 광경.
동시에 누가 봐도 카할 마그두에게 승기가 기울고 있는 광경이기도 했다.
세티는 당황하지도, 그렇다고 겁을 먹지도 않았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여명의 승리를 믿었으니까.
그렇기에 그녀는 냉정하게 남은 수류탄과 마나를 가늠한 뒤, 도주 경로를 확인했다.
‘이대로 도망친다면 십 분… 아니, 오 분은 더 시간 끌 수 있어.’
5분 뒤에는? 그녀의 단기 결전 능력을 믿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싸워야 하리라.
그러다 만에 하나라도 인질로 잡힐 일이 생긴다면…
‘…사지 중 하나는 제물로 바친다.’
판단을 끝낸 그녀가 바로 몸을 날렸다. 아니, 몸을 날리려 했다.
하지만 그녀가 지붕에서 발을 떼는 순간.
터엉!
도시 저편에서 총알이 날아와 예카테리나의 머리를 터트려버렸다.
“저격?! 누구냐!”
갑작스러운 기습에 남 궁정백은 보호막을 펼치며 물러났다.
그리고 머리가 터진 예카테리나는 실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지다가, 갑자기 자세를 다잡고 머리가 없는 몸으로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머리가 터져도 안 죽어?’
대체 정체가 뭐야? 세티는 헛웃음을 삼키고, 저격이 날아온 방향을 확인했다.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는 걸 보니, 적어도 수백 미터 바깥에서 저격한 것 같은데…
적인가? 아니면 아군?
뭐든 상관없었다. 기회를 잡았으면 사용할 뿐.
세티는 즉시 방향을 돌려, 혼자 남은 궁정백을 향해 훌쩍 점프했다.
홍단벽력. 한국 정부가 자랑하는 태번벽력공에서 오직 공격력만을 극대화한 일격 필살의 무술.
‘이 틈에 남 궁정백이라도 처리한다.’
망치 머리로 파지직 전기가 고였다. 무지개를 가르는 벼락처럼 강렬한 마나가 찬란하게 빛난다.
“이런!”
남 궁정백이 놀라 뒤로 물러나려는 순간, 저편에서 또다시 총소리가 들려왔다.
터엉!
이번 목표는 궁정백의 보호막.
저격을 막아낸 보호막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대전차 로켓을 막아내던 보호막을 일격에 날렸다? 설마…
“…무기 강화 축복? 사제가 대체 왜?!”
남 궁정백이 다급하게 다음 보호막을 준비했지만, 세티의 망치는 이미 그의 머리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다음 순간, 그대로
콰아앙 !
망치가 살아있는 뼈와 살을 강타했다.
남 궁정백이 아닌, 머리가 날아간 예카테리나의 뼈와 살을.
궁정백의 몸이 산산조각 나기 직전, 예카테리나가 몸을 날려 망치를 막아준 것이었다.
그 대가로 그녀의 몸은 한 줌의 핏물이 되었지만, 궁정백은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
남 궁정백은 노련한 마법사였다. 피에 젖어 꼴사납게 바닥을 구르면서도, 주문을 외울 수 있을 정도의 마법사.
“제기랄, 나라스의 빛이여!”
번쩍!
저격수와 세티, 두 사람의 시야를 동시에 가릴 수 있는 섬광 마법.
궁정백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좀비 떼를 향해 달렸다.
좀비들에게 명령을 내릴 권한은 없었지만, 적어도 좀비들은 그를 공격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궁정백이 좀비들을 방패 삼아 내달리길 잠시.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이 거리에서는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인간의 검에서 튀어나온 빛.
그 빛은 그대로 스켈레톤 드래곤의 팔을 자르고, 용의 가슴 사이로 떨어지더니… 곧이어 그 속에서 거대한 폭발을 일어났다.
짧은 침묵.
침묵이 길어지려는 찰나, 카할 마그두가 땅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불사룡이 패배했다고?
남미의 악몽이 고작 이런 곳에서?
“어, 어찌 이런 일이…”
남 궁정백이 추락하는 용을 보며 말을 잃은 사이, 그의 곁에 있던 좀비의 입이 쩍 벌어지며 검붉은 피를 토했다.
갑작스러운 구토를 본 궁정백이 기겁했다. 물론 그러건 말건, 피는 허공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피는찰흙처럼 뭉치고 얽히며, 금세 익숙한 인간의 형태를 갖췄다.
“…예카테리나?”
피로 육체를 만드는 마법? 대관절 저게 무슨 마법이란 말인가?궁정백이 의문을 삼키는 사이, 새로운 육체를 얻은 예카테리나가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존나 아프네.”
그녀는 좀비들의 옷을 뺏어주섬주섬챙겨 입고는, 카할 마그두가 추락한 방향을 보며 말했다.
“어? 불사룡이 죽었네?이건 우리 운명이 아니었는데…?”
“그, 그게 무슨 소리요?”
“쯧, 뭐긴 뭐야, 우리가 졌다는 소리지. 후퇴나 하자.”
“뭐? 그럴 순 없어! 난 이미 당신들, 옛 지배자들에게 대가를 지불했다. 이제 와서 후퇴할 수는 없어!”
궁정백이 부들부들 떨었지만, 예카테리나는 콧방귀도 끼지 않았다.
“카할 마그두가 죽은 시점에서 이미 진 싸움이야. 그러지 말고 목숨이나 건지자고.”
“아니, 아직이다! 발사 코드… 발사 코드만 있으면 이 상황도 얼마든지…!”
발사 코드?
예카테리나는 부들거리는 궁정백을 보며 잠시 고민하다가, 무언가 떠올린 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아, 그래… 아직 그 사람의 운명이 남아있네.”
“그 사람? 누구? 누가 더 있는 거요?”
궁정백이 기대감 어린 목소리로 물었으나, 이어진 대답은 그를 실망시켰다.
“동 궁정백, 비코프 주가시빌리.”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