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19)
을 위한 세계는 없다-19화(19/817)
〈 19화 〉 잡몹이 맞이한 필연 (6)
* * *
***
무의식의 물살 사이, 쇠똥구리는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봤다.
온갖 감정들이 뒤섞인 파도는 그의 몸을 철썩 치고 지나갔다.
무겁고, 슬프고, 쓰라린 파도에 홀딱 젖어버린 그는 마음속으로 한 단어를 떠올렸다.
심재좌망(心??忘)
귀로 듣는 것을 멀리하고, 마음으로서 듣는 것을 잊고, 텅 빈 마음으로 세상을 느끼니, 이것이 심재다.
고요히 앉아 잡념을 버린다. 현실을 잊고 나를 잊으니, 이것이 좌망이다.
‘….’
또다시 파도가 몰려오고, 이번에도 쇠똥구리의 몸을 치고 지나갔다.
파도가 지나간 자리로, 쇠똥구리의 이름이 쓸려나갔다.
오물 청소라도 잘하란 뜻으로 청소부 길드가 붙여준 이름… 쇠똥구리는 그 이름을 잊었다.
그다음 파도가 치자, 기억을 잊었다. 천사와 미그니움, 동료와 복수가 파도 저편으로 사라졌다.
기억이 쓸려나가니, 감정도 함께 사라졌다.
슬픔, 분노, 기쁨, 후회… 그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그의 마음속이 텅 비었다.
철썩!
비워진 마음속으로, 파도만이 차올랐다.
한 번, 두 번, 세 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파도가 부딪히고, 그의 마음속에 쌓였다. 그를 둘러싸고 있던 모든 물살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
어느 순간, 그는 파도와 자신을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파도가 그였고, 그가 곧 파도였다.
‘…!’
그래, 이것이 파양결의 진의였다.
심재좌망을 깨닫고, 마음속 파도를 흡수해 스스로 파도 그 자체가 되는 것.
다른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초식도, 구결도 모두 겉치레에 불과했다.
스스로 파도가 되었으니, 주먹에 마음을 실으면 경파(??)의 힘이 담긴 파양권(???)이고, 다리를 움직이면 파양보(???)다.
그것을 깨달은 쇠똥구리는 파양결의 깊이에 전율했다. 세티가 어째서 자신을 무지렁이로 봤는지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런 무술을 알고 있었다면, 자신도 똑같이 생각했으리라.
그는 깨달음의 갈무리했다. 기쁨과 환희를 접고, 현실에서 눈을 뜨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마음속 저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미있는 걸 배워왔구나.』
그의 마음속에 봉인된 불청객.
목숨을 되살려주고, 재능을 내려 준 은인이자… 거대한 악.
“…미그니움.”
마음의 파도가 일렁이던 공간 사이로, 검은 드레스 자락을 휘날리는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의 간택자야. 그대의 재능으로도 입문에 이리 오랜 시간이 걸리다니. 제대로 된 무공을 구했구나. 일대 대종사가 심혈을 쏟아 만든 무공이 틀림없다.』
“…무공?”
『아, 그대의 세계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던가.』
미그니움은 뜻 모를 소리를 하며 웃었다.그림자로 이루어진 미그니움의 얼굴 위로, 기다란 균열 하나가 떠올랐다. 그녀 나름의 미소였다.
『아무튼, 간택자여. 이렇게나 빨리 그대와 얼굴을 마주할 줄은 몰랐구나. 설마 벌써 무아지경에 빠질 줄이야… 이래서 하찮은 신들이 인간에게 재능을 내리지 않는 것인가?』
“헛소리할 생각이라면, 난 간다.”
쇠똥구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미그니움의 고개가 삐딱하게 기울어졌다.
『벌써? 그대는 내게 묻고 싶은 것이 많을 터인데?』
“물으면 대답해 줄 거냐?”
『아니, 질문의 즐거움은 나중으로 미뤄둘 것이다. 여긴 나의 꿈이 아니라 그대의 마음속이니.』
“…그럴 줄 알았어.”
뭔가를 알려줄 생각이었다면, 저번에 그렇게 입을 막지 않았겠지.
『다음엔 꿈속에서 보자꾸나, 나의 간택자.』
미그니움의 작별을 뒤로하고, 쇠똥구리는 눈을 감았다.
마음속이 요동치고, 무겁게 가라앉았던 정신이 현실로 다시 떠올랐다.
***
현실에서 눈을 뜨니, 낯선 풍경이 그를 반겨 줬다.
세티의 무술을 견식하던 공터는 온데간데없고, 웬 거적때기가 그의 눈 앞을 가리고 있었다.
슬쩍 고개를 들어 확인해 보니, 거적때기가 아니라 캠프용 텐트였다.
‘뭐야 이거?’
쇠똥구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텐트 바깥으로 나왔다. 텐트 바깥은 세티가 무술을 펼치던 바로 그 공터였다.
‘무아지경에 빠진 날 위해 텐트를 치고 간 건가…?’
고민의 답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텐트의 입구에는 섬세한 필체로 쓰인 쪽지 3장이 놓여 있었으니까.
쇠똥구리는 천천히 쪽지를 읽어 내려갔다. 예상대로, 세티가 쓴 쪽지가 맞았다.
꾹꾹 눌러 쓴 쪽지는 그가 무려 하루가 지나도록 깨어나지 않아 텐트를 쳐놨다는 내용으로 시작됐다.
다음 장에는 마음 같아선 더 기다려주고 싶었지만, 여동생이 위급해 먼저 유니콘의 뿔부터 전해주고 오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고.
마지막 장에는 아무리 늦어도 일주일 내로 새로운 신분을 구해 돌아올 테니, 장만 어르신의 술집에서 다시 보잔 내용과 핸드폰 번호가 적혀 있었다.
모든 쪽지를 읽은 쇠똥구리는 주머니에 쪽지를 쑤셔 넣은 뒤, 텐트 바닥에 털석 주저앉았다.
‘…하루가 지났다고?’
아니, 아니지. 쪽지를 쓰고 떠난 시간까지 고려하면 최소 이틀은 지났을 것이다.
‘마음속에서 보낸 시간이 그렇게나 길었던가?’
쇠똥구리는 시간을 가늠해 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음속 파도가 얼마나 오랫동안 그의 몸속에 쌓였는지 생각하는 건 무의미했다. 즐거운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고, 괴로운 시간은 느릿느릿 흐르는 건 당연한 이치 아닌가.
지금 따져 봐야 하는 건… 무아지경 속에서 얼마나 깊게 파양결을 익혔는가?
거기까지 생각한 쇠똥구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는 텐트 앞 공터에 서서, 세티가 마지막에 보여주었던 주먹을 떠올리고 자세를 잡았다.
무의식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파양권이라고 이름 붙인 그 주먹.
세티는 마나를 물처럼 흐르게 하고, 주먹에서 파도를 만들어냈었다. 하지만 쇠똥구리는 그런 준비과정이 필요 없었다.
주먹을 쥔 순간, 그의 주먹을 타고 흐르던 마나가 파도쳤다. 그것이 진의를 깨달은 자와 깨닫지 못한 자의 차이였다.
하지만…
‘깨달은 걸 온전히 몸으로 녹여내지 못한 건가?’
쇠똥구리 자신의 주먹을 내려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주먹에서 느껴지는 마나의 파도와 마음속에서 느끼던 파도의 차이가 느껴진 탓이었다.
굳이 완성도를 따지자면, 3할… 혹은 그 이하밖에 구현하지 못했다.
그는 확인하듯 주먹을 내질러, 허공을 강타했다.
!!!
마나가 대기를 때리자마자, 마나의 파동이 뿜어져 나오며 텐트가 쓰러지고, 나뭇잎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놀라운 결과였으나, 쇠똥구리는 한숨을 내쉬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
역시, 아직은 부족했다.
아무래도 마음속에서 봤던 것과 똑같은 파도를 현실에 구현하기 위해선, 꽤 오랜 수련과 많은 실전이 필요할 듯싶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그에겐 주먹을 휘두를 일이 많이 남아 있었다. 특히, 인천에서는.
‘세티가 돌아오기 전에… 인천에서 끝낼 인연은 전부 끝내자.’
차갑게 가라앉은 시선이 산자락 너머, 인천 시내로 향했다.
***
인천시 외곽도로에 주차된 묵직한 밴 안에서, 한 남자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탁, 탁.
초조함 때문인지 아니면 얼마 남지 않은 가스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남자의 라이터는 불이 붙질 않았다.
그는 대여섯 번 정도 라이터 불을 붙이려고 손을 움직이다가, 결국 포기하고 담배와 라이터를 바닥에 집어 던졌다.
“시발, 내가 어쩌다가….”
그는 한숨을 쉬고 밴의 문을 열었다.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돼지머리의 양복쟁이가 그에게 다가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지부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씨발, 그놈의 지부장 소리 좀 하지 말라니까. 요원님이라고 불러. 요원님.”
대외적으로 알려진 그의 직급은 인천 청소부 길드의 지부장이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을 지부장 따위로 생각한 적 없었다.
바지사장도 급이 있지. 다른 곳도 아니고 청소부 길드?
정부의 비밀 요원이라는 신분을 감추기 위해 억지로 떠맡은 간판에 불과했다.
“어이, 양치기.”
“예, 요원님.”
“그거 아냐? 나는 이 도시가 진짜, 존나 싫다.”
“그러십니까.”
돼지머리 양치기는 영혼 없는 목소리로 지부장의 짜증을 받아 냈다. 지부장이 원래부터 이런 진상 상사는 아니었다. 그저,요 며칠간 이어진 사건들은 누구라도 개 같은 상사로 만들기에 충분했을 뿐.
“거리 이름도 맥아더, 산 이름도 맥아더, 시장 이름도 맥아더… 길거리 무당년까지 맥아더를 신령이라고 모시는 도시야. 시발 여기가 미국이야 한국이야?”
“….”
“구국의 영웅인 안중근 의사께서도 동상이 없는데, 여긴 맥아더 동산까지 있다니까? 맥아더가 이곳에서 신탁 통치한 게 그렇게 자랑스러운 일인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모르겠지, 시발, 네가 알면 양치기겠냐? 사회학자하고 있겠지.”
카약 퉤, 그는 바닥에 침을 뱉은 뒤, 기억을 더듬어 이렇게까지 일이 꼬인 이유를 떠올렸다.
시작은 작업소장의 실종이었다. 사실, 그는 꽤 괜찮은 부하였다.
가짜 지부장인 자신의 귀에 귀찮은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만 호박씨를 까고, 시키는 일은 척척 해냈으니까.
하지만 그가 갑자기 실종되고, 그가 관리하던 정부의 시체 창고가 불타면서 모든 게 꼬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네크로맨서와의 거래가 파토났다.
사건의 개요는 알 수 없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네크로맨서와 협상하기 위해 나간 4급 공무원이 죽었고, 각성의 물약도 회수하지 못했다.
물약을 애타게 기다리던 초인부가 현장에 사람을 급파했을 땐,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난 뒤였다.
현장에 남아 있는 건 깨진 물약 병과 정체불명의 한국 요원이 네크로맨서와 싸운 흔적뿐.
이것만으로도 머리통이 깨지는 판에, 문제가 한 번 더 터졌다.
현장을 조사하던 요원들이 싸그리, 정말 한 명도 남지 않고 또 쓸려나간 것이다.
이번에는 단순히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양치기가 셋이나 참살당했다. 그것도 소머리 급 인사가 무참히 죽었다.
진짜 초인이나 마법사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돼지머리 둘에 소머리 하나면 진짜 초인을 상대로 싸워도 한 명쯤은 무사히 도망칠 수 있는 전력이었다.
그런데 셋이 전부 죽었다? 답은 간단했다. 상대는 도망갈 틈조차 주지 않을 정도로 수준 높은 초인이란 뜻이다.
그쯤 되자, 정부는 몸을 사렸다. 다른 강대국이나 정체불명의 초인 조직이 사건에 개입한 게 아닌가 의심한 탓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장에서 바로 발을 빼지는 못했다. 체면의 문제도 있고, 현장 인원들의 사기 문제도 있었다.
결국, 정부는 적당한 구원투수… 혹은 허수아비만을 남겨두고 사건에서 손을 털었다.
그리고 이번에 뽑힌 허수아비는, 지부장 본인이었다.
대단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현장에 보내진 요원 중 가장 계급이 높은 탓이었다.
하지만 모든 사정을 알고 있다고 해도, 자신이 허수아비로 뽑혔다는 걸 즐거워할 사람은 없었다.
특히, 바로 일주일 전까지 어린 초인들의 입학을 관리하고 있던 그는 갑자기 추락한 자신의 처지가 더더욱 비참할 수밖에 없었다.
“시발, 다른 놈들은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요원이 한 번 더 짜증을 내뱉자, 밴 옆에 서 있던 돼지머리가 슬그머니 휴대폰을 꺼냈다.
“약속 시간까지 15분 남았습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도착할 겁니다.”
“시발, 요즘 현장 새끼들은 하나같이 다 빠져가지고. 상사가 기다리는데 정시에 오는 새끼가 어딨어?”
“….”
“나 때는 10분은 일찍 와서 기다렸는데… 후, 야 전화 한 통 해 봐.”
“하지만 보안상 전화는….”
“시발하라면 해, 좀!”
“…예, 알겠습니다.”
돼지머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휴대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뚜, 뚜, 뚜. 기본 수화음이 흐르고,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누, 구십니까?]전파가 잘 통하지 않는지, 수화기 너머에서 노이즈가 잔뜩 낀 목소리가 들려왔다.
[뻐꾸기 11이다.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차 전화했다.] [잘… 안 들립니다. 뻐꾸기 11… 맞습… 까?] [뻐꾸기 11이다. 다시 묻겠다. 어디까지 왔나. 우리는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다.] [장소… 죄송…니다 … 지금 길을… 잃었…]핸드폰 너머에서 길을 잃었단 소리가 나오자마자, 지부장이 돼지머리의 핸드폰을 낚아챘다.
“야 이 미친 새끼야, 맥아더 3번 길에서 6번 국도로 이어지는 다리 위! 여기에 잃어버릴 길이 어디 있다고 길을 잃어?”
[….]“지랄 말고 15분 내로 튀어와. 알겠어?”
[맥아더…3번…6번 국도…다리. 바로 가겠…]녀석의 대답을 들은 순간, 지부장은 찝찝한 무언가를 느꼈다.
뭐지? 담배를 못 펴서 그런가?
그는 찝찝함을 떨쳐 버린 뒤, 다른 부하들에게 전화를 걸어 빨리 올 것을 닦달했다.
그렇게 대략 오 분 정도 부하들을 갈구고 나자, 저 멀리서 승용차 한 대가 밴을 향해 다가왔다.
“드디어 한 놈 왔군.”
익숙한 차였다. 이번 임무를 위해 랜트한 차량 중 하나였다.
하지만 차량이 가까워질수록, 지부장의 미간이 좁혀졌다.
다가오는 승용차는 뭔가…이상했다. 승용차 앞 유리에 피가 묻어 있었고, 차에 곳곳이 찌그러진 채 덜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속도가 줄어들지 않았다.
“이런 시발, 피해!”
지부장은 먼저 밴에서 뛰쳐나왔다. 그의 짜증을 받아주던 돼지머리는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승용차와 밴 사이에 직격으로 처박혔다.
콰과광! 승용차와 밴이 동시에 떠오르며 다리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가까스로 살아난 지부장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짚고 일어나,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냈다.
“이런 시발, 대체….”
지부장은 고개를 빼꼼 내밀어 국도 아래를 살폈다. 굴러떨어진 밴은 밟힌 계란처럼 으깨져 있었다.
다행히도, 밴에 타고 있던 모두가 죽은 건 아니었다. 잔해 사이로 몇몇 양치기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밴의 바로 옆 승용차에선… 시체는커녕 사람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충돌 직전에는 분명 사람이 타고 있었는데?
의문에 휩싸인 지부장의 목덜미로, 싸늘한 시선이 느껴졌다. 그는 권총을 쥔 손에 힘을 주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낡은 재킷 하나를 걸치고 모자를 꾹 눌러 쓴 청년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 누구냐.”
녀석은 슬쩍 모자를 들어 지부장의 얼굴을 확인하곤,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지부장님.”
“시발…그놈의 지부장.”
지부장은 생각할 것도 없이 권총을 발사했다.
탕! 탕! 권총이 불을 뿜었지만, 녀석은 슬쩍 상체를 움직이는 것만으로 총알을 피했다.
초인적인 반사 신경과 움직임. 문자 그대로 초인이 틀림없었다.
“좆 됐네.”
지부장은 다가오는 청년과 국도 아래를 번갈아 봤다.
높이는 대략 5미터 정도, 그는 즉시 결심을 굳혔다. 초인에게 붙잡히는 것보단 다리 하나 부러지는 게 나았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키고, 다리 아래를 향해 소리쳤다.
“뛰어내린다! 잡아!”
양치기 하나가 고개를 들었고, 지부장은 즉시 다리 아래로 뛰어내렸다.
타닥!
다행히, 돼지머리 한 놈이 그의 몸을 받아 냈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초인 녀석 또한 그를 따라 다리 아래로 뛰어내렸으니까.
“죽여! 저놈이 이번 사건의 범인이다!”
지부장은 악을 쓰며 소리쳤다. 증거 하나 없었지만, 밴에서 나온 돼지머리들은 그 말을 듣자마자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파악!
그나마 몸이 멀쩡한 세 놈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맨 앞의 돼지머리가 도약하고, 그 뒤로 나머지 두 놈이 입을 쩍 벌렸다.
캬아악! 저주의 마나가 담긴 목소리가 돼지머리에서 뿜어져 나왔다.
저주가 쏟아진 자리로, 도약한 녀석의 주먹이 떨어졌다. 완벽한 연계 공격이었다.
“쯧.”
정체불명의 초인은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혀를 차며 주먹을 내질렀다.
피할 수 없으니 맞서려는 걸까? 하지만 도약하며 내려찍는 주먹과 이제 막 뻗은 손 중 어느 쪽에 더 큰 위력이 실릴지는 명확했다.
헌데…
초인이 주먹을 뻗은 순간, 무언가 변했다.
마나를 느끼지 못하는 지부장은 깨닫지 못했지만, 미약하게나마 마나를 느끼는 양치기들은 달랐다.
그들은 주먹에서 일렁이는 마나를 보며 기겁했다. 하지만 뻗은 주먹을 회수하기엔 너무 늦었다.
주먹과 주먹이 부딪혔다. 콰드득! 한쪽 주먹이 완전히 부서졌다.
“끄아아악!”
부서진 건 돼지머리 양치기의 손이었다. 그는 발악하며 초인에게서 멀어지려 했지만, 초인은 틈을 주지 않았다.
그는 즉시 왼손을 들어 양치기의 머리통을 후려쳤다.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돼지머리의 눈 코 입 구멍에서 피가 쏟아졌다.
즉사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