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193)
을 위한 세계는 없다-193화(193/817)
〈 193화 〉 막간 열차의 뒤편에서
* * *
***
…어디서부터 이야기할까?
그래, 모든 것의 시작을 설명하기 위해선, 우선 종교에 대해 말해야겠지.
이봐, 지구인. 너희들은…
그러니까, 차원문 너머의 모든 것을 탐냈던 너희들은, 새로운 신앙 또한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겠지.
언제나 침묵으로 일관하는 너희의 신들과 달리, 우리의 신들은 사제와 축복으로서 실존을 증명했으니까.
전대 성녀가 독가스 후유증으로 죽어가는 유대인을 치유한 사건을 기점으로, 다섯 신 교단은 순식간에 교세를 늘렸다.
그 열광, 그 기쁨…
우리 네크로맨서들조차 놀랄 정도였으니, 다섯 신의 교단 사제들이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말할 필요도 없겠지.
하지만 그게 문제였다. 기쁨이 사제들의 눈을 가렸다.
그들은 심지어 교단이 지구와 아샤를 잇는 평화의 다리가 될 수 있을 거라 망상했지.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어.
차원문 너머의 귀족들과 마법사들조차 교리대로 살지 않는데, 백악관과 크렘린을 무슨 수로교화할 수 있다고 믿은 걸까?
뭐, 굳이 내 생각을 말해보자면…
사제들은 간단한 진리를 잊어버린 거다. 인간의 권력욕은 언제나, 신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진리.
그리고 지구인들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권력욕을 가지고 있었지.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번째 시련이 그들을 덮쳤다.
이오시프 스탈린.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 주장하던 공산주의 교의 교황은 경쟁 종교의 등장을 좋아하지 않았어.
특히, 차원문 너머에 공산주의 확장을 자제해달라는 사제들의 오만한 요구는, 소련을 매우 불쾌하게 했지.
격렬한 논쟁, 혹은 전쟁 준비 끝에 스탈린은 차원문 너머의 신들을 이렇게 정의했다.
고차원적 에너지 생명체.
그는 다섯 신은 물론이고, 우리가 섬기는 불사의 왕조차 신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사제들은 그 끔찍한 신성 모독에 항의했고, 그 대가로 총탄을 받았지.
성검이나 호아나 툴레같은 성기사들이 영웅적으로 저항했지만…
역사서에 ‘승리’가 아니라 ‘저항’이라 적힌 이유가 뭐겠나?
결국, 사제들은 도망치듯 공산주의 진영을 떠나야 했다.
루마니아, 동독, 불가리아, 폴란드, 헝가리, 중국… 수백, 수천의 사제들이 피눈물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모든 건 그저 시작에……
…응? 뭐라고?
***
“다음으로 넘어가라고?”
새하얗게 탈색된 머리카락의 네크로맨서, 딜라는 황당한 표정으로 상대를 바라봤다.
열차 복도에 기댄 채, 푸른 눈동자를 빛내는 소녀.
그 꼬락서니가 심히 비참했으나, 그녀는 당당히 딜라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설마 근현대사를 주절거릴 줄은 몰랐거든.”
“….”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 말고, 너만 아는 부분으로 빨리 넘어가면 안 될까?”
딜라는 눈살을 찌푸린 채, 잠시 그녀를 노려봤다.
감히 패배자가 자신에게 이래라저래라하는 게 어이가 없었지만, 어째서인지 화가 나지 않았다.
아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녀는 승리자? 였으니까.
그래, 이건 자연? 스러운? 일? 이다? 자신의 계획을 주절거리는 건 승자의? 권리다.
“좋아, 그럼 빠르게 다음으로 넘어가지. 우리 네크로맨서들과… 미국이 손잡았던 그 시절의 이야기로.”
***
우리는 뭔가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 손을 잡은 건 아니었다.
네크로맨서들은 안전한 실험실과 재료가 필요했고, 미국은 냉전에서 앞서 나가기 위한 지식이 필요했지.
그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유익한 거래였어.
혼란으로 가득 찬 남미 덕분에 텍사스에는 언제나 시체가 넘쳐났고, 미국은 가장 기본적인 마나 사용법만 던져줘도 만족했지.
좋은 시절이었어. 미국이 우리를 토사구팽하기 전까지는.
그 배신은……
…뭐? 빨리 다음으로 넘어가라고?
어… 잠깐…
그… 이걸 알고 있나? 우리가 섬기는 불사의 왕은, 승천한 존재로 알려져 있어.
그래, 승천. 살아생전에는 인간이었는데, 죽어서는 스스로 신이 됐다… 뭐 그런 이야기지.
사실, 그건 그냥 신화일 뿐이야. 인간이 어떻게 신이 되겠어?
하지만 그 사실을 안 미국인들은 조금… 다른 것을 떠올렸지.
그걸 뭐라고 해야 할까, 창의성? 발상의 전환? 그것도 아니면, 광기?
뭐라고 부르건 상관없이, 지구인들은 승천이란 개념을 듣자마자 정반대의 개념을 요구했다.
추락. 기존에 있는 신을 땅으로 떨어트려 무기로 삼는 것.
정신 나간 아이디어였지만, 우리에겐 그 요구를 거부할 힘도, 이유도 없었어. 그건 우리의 목적과도 연관되어 있었으니까.
결론적으로… 우리는 신들을 추락시키기 위한 마법을 준비했다.
아, 조금 이상하게 들리나?
이해한다. 지구인들이 달에 사람을 보내겠다며 로켓을 만들던 일도 내게는 충분히 이상하게 들렸거든.
사실, 지금도 이해가 잘 안 가.
대체 달에 사람을 보내서 어디다 쓰려고? 그건 그냥 돈 낭비 아닌가?
…뭐, 어쨌든.
가장 먼저, 우리는 미국과 함께 다른 차원을 엿볼 수 있는 마법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단 한 번의 시도로 신들이 있는 천상을 엿봤지.
행운이었어. 우리의 마지막 행운.
우리가 그곳에서 발견한 건…예상하지 못한 것들이었어.
잡다하고, 난잡한 신들.
원래 목표였던 다섯 신과 비교하면 너무나 희미하고 작은 무언가들.
…그들의 모습이 어땠냐고?
마나로 똘똘 뭉친, 어떤 개념 같은 거라고 해야 할까… 이 이상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군. 그건 마치…
…별?
그래 맞아, 몇몇 사람들은 그걸 별이라고 불렀어. 너는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설마, 너도 그것들을 본 적…
…이야기나 빨리하라고? 으, 응. 알겠어.
어… 그다음에 여러 일이 있었지만, 한 줄로 정리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
우리는 실패하고, 또 실패했어. 미국을 실망시킬 정도로.
그리고 어…
어… 으…
머리가 이상해… 왜, 이러지… ?
계속 이야기하라고? 어, 그게…
우리는… 버려졌어.
고향이 우리를 배신했듯, 미국은 우리를 숙청했…
그래서… 복수를… 마이애미를…
아…
잠깐만, 머리가… 너무… 아파…
***
세티는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네크로맨서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진짜 중요한 질문은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망가지려고 하네.
역시 양치기처럼 험하게 다루는 건 무리였나?
그녀는 한숨을 쉬며 조금 더 섬세하게 그림자를 움직였다.
그러자 네크로맨서의 관자놀이에 박혀있던 그림자 촉수들이 더욱더 깊이 파고들었고…
다음 순간, 네크로맨서가 눈을 까뒤집고 몸을 벌벌 떨었다.
그녀의 동생이 봤다면 기겁했을 광경.
다행히 그녀의 동생은 열차가 멈춘 이유를 찾기 위해 앞 칸으로 달려간 뒤였고, 이 복도에 있는 건 그녀와 네크로맨서 단 둘뿐이었다.
세티는 네크로맨서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래서, 여긴 어디지?”
“부, 불사의 왕께서 만든, 심상의 일부…”
“그게 뭔… 쓰읍, 됐고. 그러면 나갈 방법은?”
“시전자가, 마법을 해제하면… 알아서…”
“시전자? 시전자가 누군데?”
“나… 딜라 카탁포이어…”
세티는 네크로맨서를 보며 피식 웃었다. 안 죽여서 다행이네.
“이 마법으로 우리를 노린 이유는? 우릴 노린 거야?”
“너희…? 모, 몰라… 우리가 원한 것… CIA 요원…”
“…CIA 요원?”
이곳으로 들어오기 직전, 코르부스가 해준 말을 떠올랐다.
CIA 요원이 같은 열차에 타고 있었다는 말.
그러면 이곳에 끌려온 게, 순전히 우연 때문이었다고?
세티가 허탈하게 웃는 사이, 딜라가 웅얼거렸다.
“스칼렛 오하라… 미국이… 성공적으로, 끄윽, 추락시킨, 별…”
“뭐?”
“별로, 만든… 인간, 잡아서, 해부, 해야, 우리의… 비원…”
성공적으로 추락시켰다? 별을? 그 말을 들은 세티는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문뜩, 그녀의 머릿속으로 어떤 장면들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금제 속에서 만난 정체불명의 존재, 한국 정부와 네크로맨서, 그리고 자신을 보고 때가 아니라고 말했던 모래 별…
세티는 확신과 의심 사이에서 물었다.
“추락한 별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따로 있는 건가?”
딜라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네크로맨서는 한참 동안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세티가 한 번 더 그림자 촉수를 움직이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이, 있다. 세, 세 가지 방법. 가, 같은 벼, 별이라면, 알아볼 수, 있다. 그리고 스스로, 신성을, 쓰거나… 또…”
“또?”
“이름이… 지워진, 신이, 있다면, 알 수, 있다.”
“….”
“우리, 기록, 했다. 지구 신, 이름, 아르테미스, 포세이돈, 아폴론! 전부, 사라졌다. 그래서, 알았다. 미국이, 별, 추락시킨, 것.”
영혼을 너무 헤집어 놨나? 딜라는 혓바닥을 제대로 굴리지 못했다.
물론, 세티는 개의치 않고 계속 그림자를 움직이며 물었다.
“…아르테미스? 그런 신이 있었어?”
“지, 지구, 지방, 신화, 달, 여신, 너, 모른다, 이 땅에, 추락, 했으니까!”
추락한 별은 이름이 지워진다는 설명.
그 말을 들은 세티는 웃었다. 햄릿이 확신을 얻은 그 순간처럼, 허탈하게.
자매들의 이름이 이상한 이유가, 설마…?
그녀가 갑작스러운 깨달음 앞에서 몸서리치던 바로 그 순간.
쿠구구궁 … !
땅이 울리고, 열차가 출렁거렸다.
‘뭐지?’
세티는 즉시 창문을 뒤덮은 살덩이를 치우고, 바깥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녀의 시야에 가장 먼저 보인 건, 지평선을 가득 메운 거인들이었다.
언데드 타이탄. 그 괴물이 하나도 아니고 수십 마리나 있는 광경은 무시무시했으나, 정작 세티의 시선을 끄는 건 거인과 싸우는 작은 존재였다.
…여명?
그녀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고민들이 일시에 사라졌다.
떠오른 건 단 하나, 여명이 다치기 전에 이곳을 나가야 한다는 생각뿐.
‘시전자가 마법을 해제하면 된다고 했지.’
세티는 망설이지 않고 그림자 촉수를 더 만들어낸 뒤, 딜라의 몸 곳곳에 꽂았다. 다시는 빼낼 수 없을 정도로, 깊게.
그러자 다음 순간, 흐리멍텅했던 딜라의 눈에 생기가 돌아왔다.
정신을 되찾았다는 증거. 딜라는 그것을 증명하듯 이를 딱딱 부딪치며 그녀를 올려다봤다.
“나, 나한테 대체 무슨 짓을…?”
세티는 질문에 답하는 대신, 명령을 내렸다.
“이 마법 해제해. 지금 당장.”
“웃기지 마! 너는 결코 이 심상에서 벗어날…!”
분노에 찬 목소리와 달리, 딜라의 몸은 세티의 명령을 충실히 따랐다.
작은 단검을 꺼내 스스로 손바닥을 베고, 뚝뚝 흘러내리는 피를 물감 삼아 바닥에 마법진을 그리고…
딜라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았다.
네크로맨서인 그녀는 알 수 없는 신성 주문에 의해 자신의 육체 주도권이 넘어갔음을, 그리고 다시는 되찾을 방법이 없음을 깨닫고 말았으니까.
“안 돼… 안 돼…”
절망에 빠진 딜라의 목소리를 배경 삼아, 세티의 눈동자가 여명을 쫓았다.
마법이 해제되기까지 3분, 여명이 시체 폭발을 사용하기까지 1분 남은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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