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197)
을 위한 세계는 없다-197화(197/817)
〈 197화 〉 도시에는 꿀이 뜨고, 문에는 달이 흐른다. (3)
* * *
***
호텔에서 점심을 먹으려던 일행의 계획은 생각지도 못한 난관을 마주했다.
죄송합니다. 저희 호텔은 수인은 받지 않습니다.
지구에서도 유명한 브랜드 호텔부터 여행자 숙소에 가까운 싸구려 호텔들까지.
모든 곳에서 코르부스를 보자마자 기겁하며 방을 내어주길 거부했다.
참다못한 성녀가 항의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호텔들이 수인을 받지 않는 건 차별이나 혐오의 문제가 아닌, 원초적인 두려움의 문제였으므로.
수인 테러리스트들이 호텔 직원들을 룸서비스로 잡아먹은 게 불과 일주일 전입니다. 손님, 죄송하지만… 다른 곳으로 가주셨으면 합니다.
덕분에 일행들은 호텔을 잡긴커녕, 길바닥에 앉아 끼니를 때워야 했다.
다행히 길거리의 드워프가 파는 보리 잼(?) 발린 보리빵은 맛있었다. 맥콜은 별로였지만.
아무튼, 일행들은 차가 돌아다니는 길거리 벤치에 앉아 배를 채웠다.
네티가 몰래 맥콜을 화단에 버리고, 뉘엿뉘엿 기울어지는 태양이 그 위로 길게 그림자를 드리울 때쯤.
코르부스가 날개에 묻은 빵가루를 털며 말했다.
“아무래도, 본인이 있으면 숙소를 잡긴 힘들겠소.”
가볍게 운을 떼는 말투였으나, 무슨 말이 나올지 깨달은 일행들의 분위기가 딱딱하게 굳었다.
“하루 이틀 정도야 별문제 없으니, 여기서…”
그때, 보리빵을 오물거리던 여명이 그녀의 뒷말을 가로챘다.
“헤어지자고요? 일 없습니다.”
“하지만 숙소가….”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 뭐하면, 어디 게스트하우스라도 통째로 빌리면 되니.”
여명은 그렇게 말하고는, 인벤토리에서 금화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묵직한 돈주머니를 본 코르부스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가, 성녀가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 나서야 부리를 열었다.
“…살아생전 돈을 보고 감동하게 될 줄은 몰랐소.”
농담과 진담이 반반 섞인 코르부스의 목소리를 따라 네티가 키득거렸고, 성녀는 빙그레 웃었으며, 세티는 말없이 맥콜에 보리빵을 찍어 먹었다.
그리고 그런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각자 배를 채우길 잠시.
어느새 식사를 끝낸 일행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음 숙소를 향해 걸음을 돌렸다.
빵 바구니를 비운 드워프가 손을 흔들고, 길을 건너기 위해 모두가 신호등 앞에 선 바로 그 순간.
검은 리무진 한 대가 끼익 소리와 함께 일행의 앞에 멈춰 섰다.
지구에서도 보기 어려운 최고급 세단 리무진의 등장에 시선이 쏠리는 가운데, 뒷좌석이 열리며 양복 차림의 드워프가 내렸다.
작은 외눈 안경에, 얼굴에 화상이 가득한 드워프.
그간 만나온 드워프들과 달리, 군인 같은 느낌을 풀풀 풍기는 자였다.
길거리에 있던 몇몇 사람들이 그를 보자마자 허겁지겁 도망치는 걸 보아하니, 도시에서 꽤 유명인인 듯싶었는데…
그는 갑자기 일행을 향해 똑바로 다가왔다. 그리고 여명을 향해 대뜸, 이런 말을 꺼냈다.
“잠시 시간 좀 내어주겠소? 인벤토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분이 계시오.”
***
역사가 증명하듯, 범죄조직이란 전부 비슷비슷한 토양 위에서 태어나는 법이다.
무능한 정부와 불안정한 치안.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대중들.
차별받는 소수집단과 노동자들…
사회에 순응하는 자들이 비웃음거리가 되고, 부자와 거지 모두가 정의보다는 손쉬운 폭력을 선호하게 된 순간.
범죄조직은 자연스레 사회의 일부가 된다.
중세 시칠리아가 그러했고, 근대의 미국이 그러했으며, 현재의 제미니 시티가 그렇…
“짧게, 요약만.”
안락한 리무진 좌석 위, 여명이 말을 끊었다.
그러자 여태껏 입을 놀리고 있던 드워프가 힐끗, 여명을 흘겨봤다.
“이것도 나름 중요한 이야기오만.”
“우린 드레이테리얼에서 왔어.”
차원문 너머 최고의 쓰레기 도시 이름이 나오자, 드워프의 얼굴이 굳었다.
“…쓰레기통 출신이셨구려. 이거,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았군.”
“….”
여명은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채, 드워프의 미간을 향해 얼음송곳을 겨눴을 뿐.
드워프는 여명과 얼음송곳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네티가 ‘냉장고 열어 봐도 돼요?’ 라고 물어볼 때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의 역사는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하겠소.”
“요약.”
“음, 이 도시를 지배하는 조직이 ‘라 코사 노스트라’라는 건 알고 있소?”
여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차원문에서 건너온 미국의 마피아들.
“사실, 라 코사 노스트라는 간판 조직에 불과하오. 실질적으로는 세 개의 조직이 연합하고 있는 상태지.”
“…세 개의 조직?”
“수인들의 초원 형제단, 지구의 마피아가 운영하는 라 코사 노스트라, 그리고… 우리 기사단.”
여명은 눈살을 찌푸렸다. 다른 집단도 아니고, 범죄조직이 한 도시에서 연합하며 살고 있다?
마피아가 손을 잡을만한 이유가 뭐길래? 외부의 적? 힘의 균형? 그것도 아니라면… 절대적인 강자?
거기까지 생각한 여명을 향해, 드워프가 정답을 말했다.
“셋 사이에 평화가 성립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우리 단장님 덕분이오. 그분께서 이 도시의 시민들을 위해 노력하신 결과지.”
“….”
일개 깡패 주제에 기사단이니 단장이니 하는 오글거리는 이름을 붙였음에도, 여명은 녀석을 비웃지 않았다.
당장 드레이테리얼의 궁정백들 또한 힘과 권력으로 도시를 지배하던 깡패들이었으니까.
더군다나 이곳은 지구와 연결된 도시 아닌가.
이런 곳에서 깡패들을 조율할 수 있을 정도라면, 분명 힘과 수완 양쪽에서 뛰어난 인물이리라.
물론, 어디까지나 상상 속의 이야기였다. 여명은 조금 날이 선 목소리로 답했다.
“그런 것치고는 상태가 개판이던데.”
도시에서 한참 떨어진 초원에서 도적 떼가 조직 이름을 팔고, 도시 한복판에서 수인 깡패들이 CIA를 미행하고…
여명은 굳이 그 사실을 입에 올리지 않았지만, 드워프는 뒷말을 들은 것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짧은 침묵.
부끄러움 때문인지 잠시 창밖을 바라보던 드워프는 한숨을 푹 내쉬며 침묵을 거둬냈다.
“최근 단장님께서 조금… 편찮으시다오.”
“….”
“그 사실이 퍼지자마자, 온갖 잡놈들이 이때다 싶어 설치고 있소. 의리와 명예가 뭔지도 모르는 병신들이지.”
거기까지 말한 드워프는 차갑게 가라앉은 여명의 금빛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리고 그가 무어라 더 말하려던 그때, 세티가 말을 끊었다.
“됐고, 여명을 찾아온 이유나 빨리 말씀하시죠.”
그랬다. 조금 전 드워프는 다짜고짜 여명 일행에게 다가와 동행을 요구했고, 여명은 거절하지 못했다.
드워프가 입에 올린 한 마디, ‘인벤토리’란 단어 때문에.
그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 세티 또한 여명을 따라 리무진에 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기나긴 잡담에 질린 세티는 더는 참아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함정에 빠트릴 생각이라면 질질 끌지 말고 빨리 저질러요. 시간 아까우니까.”
리무진 냉장고에서 꺼낸 콜라를 홀짝이던 네티가 굳어버릴 정도로 살벌한 말투.
드워프는 화상이 가득한 얼굴을 쓸어내리며 대답했다.
“…그럴 의도는 없었소. 혹, 내 행동에 오해가 있었다면 사과드리오.”
“사과는 됐고, 이유나 말씀하시라니까요.”
드워프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정확한 이유는 나도 모르오.”
“….”
딱 코르부스가 부리를 부딪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드워프가 변명했다.
“나는 부단장님의 명으로 여러분을 모시러 왔을 뿐이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치고는 혀가 길던데요.”
“침묵보다는 대화가 낫지. 그렇지 않소?”
어디서 되도 않는 변명을 참다못한 세티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그 순간.
리무진이 멈췄다. 도시를 빙빙 돌아,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었다.
일행은 거의 동시에 리무진 창문 밖을 확인했는데, 너나 할 거 없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곳은 일행이 두 번째로 들렸다가 퇴짜를 먹은 바로 그 호텔이었으니까.
도착했습니다. 임페리얼 그랜드 호텔입니다.
뒤통수에 얼음송곳이 겨눠지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운전사는 능숙하게 목적지를 입에 올렸다.
***
처음 찾아올 때와 달리, 호텔 직원들은 코르부스를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드워프와의 친분을 몰라봬서 죄송하다는 듯, 연신 코르부스에게 굽신거렸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를 최대한 이용하려는 건지, 드워프가 능청스레 물었다.
“방은 몇 개나 예약하시겠소?”
세티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는 사이, 여명이 앞으로 나서서 그의 말을 받았다.
“큰 방으로 세 개 주시죠. 전부 도시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최고급 룸으로.”
“식사는 어쩌시겠소?”
“전부 룸서비스로.”
드워프는 그 정도는 얼마든 받아주겠다는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연스레 직원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꼴을 보아하니, 이 호텔은 아마 기사단의 소유인 듯했다.
“이거 괜찮은 거야?”
세티가 짐을 들어주려는 직원들을 떨쳐내며 물었다. 다른 일행들도 모두 비슷한 생각인지, 직원들이 무안한 표정으로 물러나고 있었다.
여명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인벤토리에 대해 알면서도 굳이 리무진을 보냈잖아. 대화 정도는 해볼 수 있지.”
“…겸사겸사 숙소도 잡고?”
그는 대답 대신 작게 웃었다. 세티가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젓는 사이, 호텔 지원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떡대들이 일행을 향해 다가왔다.
“제푼님, 손님을 모시러 왔습니다.”
드워프 이름이 제푼이었는지, 드워프가 여명을 향해 손바닥을 펼쳤다.
떡대들은 여명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그의 주변을 동그랗게 둘러쌌다.
“특별실로 모시겠습니다.”
떡대들은 그대로 여명을 이끌고 떠나려 했으나, 코르부스가 그들의 앞길을 막았다.
“제자여, 혼자 가도 괜찮으시겠소?”
여명은 주변을 슥 둘러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전 괜찮습니다. 먼저 가서 쉬고 계세요.”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신호를 보내시오. 이깟 호텔, 그대로 박살 내버릴 테니.”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 말. 여명은 그러겠노라고 대답한 뒤, 제푼과 떡대들을 따라 일행과 떨어졌다.
예상과 달리, 그들은 비밀 길이나 지하 통로로 여명을 이끌지 않았다.
평범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이라는 애매한 층의 가장 끄트머리에 있는 방으로 그를 안내했다.
그렇게 도착한 방은 그냥 방음이 잘 될 거 같은 방이었다.
뭔가 대단한 잠금장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마법진 같은 것도 보이지 않는, 지극히 평범한 호텔 방.
방으로 들어올 수 있는 건 여명뿐이었다.
떡대들은 그대로 복도 너머로 사라졌고, 드워프 제푼만이 입구 앞에 서서 여명에게 고개를 숙였다.
“부단장님은 안에 계십니다.”
방문이 닫히는 소리를 뒤로한 채 여명이 방 안으로 들어가자, 웬 중년인이 탁자에 앉아 있었다.
희끗희끗 흰머리가 섞인 올백 머리, 부드럽게 기른 콧수염, 그리고 양복 아래로 드러난 단단한 근육들까지.
외형만 봐도 범상치 않은 중년인이었고, 몸에서 느껴지는 마나는 더했다.
어디서도 만나기 쉽지 않은 만한 수준의 초인.
그는 탁자 위에 화려한 검을 올려놓은 채로 여명을 맞이했다.
“반갑다. 나는 이 도시를 운영하는 기사단의 부단장, 산초라고 한다네. 갑작스러운 초대에 응해주어서 고맙군.”
“예, 반갑습니다.”
여명은 탁자 맞은편에 앉았다. 자연스레 탁자 위에 놓인 검에 시선이 갔는데, 척 봐도 보통 검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검신은 통짜 용의 뼈였고, 손잡이에는 복잡한 마법진이 하나도 아니고 세 개나 새겨져 있었다.
지구에서 경매에 부친다면 족히 수백억은 받을 수 있는 물건.
이런 걸 대체 왜 탁자에 올려놓고 있는 거지? 여명이 그런 의문을 품는 사이, 산초가 입을 열었다.
“괜찮은 검이지?”
“…예, 엄청 좋은 검으로 보입니다.”
내 것보다는 아니지만. 여명이 속으로 그런 말을 삼키는 가운데, 산초가 검신을 쓰다듬었다.
“이제는 영락한 제국 기사단의 보물이지.”
“….”
“이미 알겠지만, 아주 귀한 검일세. 자네 기준으로 설명하자면… 후반부에서도 충분히 제 값을 하는 무기지.”
내 기준? 여명은 손아귀를 느슨하게 쥐었다. 언제든지 인벤토리에서 검을 뽑을 수 있도록.
“저,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모른 척할 필요 없네. 나도 자네랑 똑같거든.”
“….”
“이 세상, 현실이 아닌 이곳으로 떨어진 자.”
여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초는 그런 여명의 얼굴과 손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이 세계관의 영화를 만들던 영화감독이었네.”
플레이어, 작가, 이제는 감독.
차갑게 가라앉은 여명의 눈동자를 향해, 감독이 물었다.
“자네는 게임 속으로 떨어진 거겠지? 게임 제작자였나? 아니면 일반적인 유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