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2)
을 위한 세계는 없다-2화(2/817)
〈 2화 〉 재수 없는 하루 (2)
* * *
***
소년이여, 너에게 이런 무거운 짐을 지운 나를 용서하거라.
빛나는 천사님은 그렇게 말하며 어깨에 손을 올렸었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허나, 이 모든 게 필요한 희생이었음을 알아다오. 그것은 반드시 봉인되어야 했다.
천사님의 목소리는 속삭이는 것처럼 작았고, 그의 몸은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흐릿했다.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지금은 알 수 있었다.
천사님은 죽어 가고 있었다. 봉인을 위해, 자신을 위한 힘까지 전부 써버린 탓이었다.
만약 그것이 풀려난다면, 오늘 이 도시에서 일어난 비극과 비교도 되지 않을 거대한 재앙이 될 터이니…. 소년이여.
부디, 봉인을 지켜다오. 봉인이 너의 육체를 짓누르고, 그것이 너의 정신을 고문하는 고난의 길이겠지만… 이 길이야말로 옳은 길임을, 세상을 위한 것임을 알아다오.
그 말을 끝으로, 천사님은 나를 땅속 깊은 곳으로 밀어 넣었다.
폐허가 된 도시 아래, 깊고 깊은 지하 속에 나를 묻어 봉인의 존재를 세상에서 숨겼다.
아마 그것이 천사님의 마지막 안배였을 것이다. 무언가를 봉인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누구도 그것이 봉인됐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으니까.
‘천사님….’
당연한 이야기지만, 봉인은 한낱 소년에 불과했던 내가 견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코앞에 뭐가 있는지도 알 수 없는 끈적한 어둠 속,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최악의 감옥.
지독한 두려움과 외로움을 달래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가끔 사무치게 괴로울 때마다, 봉인되기 직전에 들었던 천사님의 부탁을 떠올렸다.
봉인을 지켜다오. 세상을 위해서.
그것이 나의 마음의 등불이었고,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그것으로도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을 땐, 생각을 그만뒀다.
머리를 비우고 나무나 돌처럼 있다 보면, 시간이 아주 잘 흘러갔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오래 버텨도…그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먼저 사라진 건 지하의 봉인이었다.
천사님을 탓할 수는 없었다. 이런 식으로 봉인이 깨질 거라곤 천사님도 예상 못 하셨을 테니까.
지하철을 뚫던 대형 굴착기가 봉인을 찢어버릴 줄이야.
형님! 여기! 여기 좀 와보쇼!
이런 씨… 꼬맹이 시체잖아.
누가 공사장에 유기한 모양일세. 우선 경찰에 신고부터 하지.
하, 밥 먹자마자 시체 치우게 생겼… 응? 형님, 이놈, 숨 쉬는데요?
봉인에서 해방된 나를 처음 발견한 건, 공사 현장을 치우던 청소부들이었다.
생활 쓰레기부터 시체까지, 돈만 준다면 뭐든지 치워주는 밑바닥 인생들.
주민등록도 없고, 말도 못 하고, 이름도 모르고…이거 인신매매라도 당한 건가?
아따, 눈까리 색 보면 몰러? 금붙이마냥 누런 게, 분명 차원문 너머에서 납치당한 아이고만!
형님, 이제 어쩝니까? 경찰이나 고아원에 넘길까요?
아니, 우리가 거둔다.
하지만 형님, 지금도 먹을 입이 아홉이나 되는데…
이대로 고아원 보내면 백 프로 돈 많은 늙은이 침대로 팔려 갈 거다. 처음부터 외면했으면 모를까, 우리가 구했으니… 우리가 책임져야지.
청소부들은 나를 쓰레기 사이에 내버려 두고 떠나거나, 고아원에 보낼 수도 있었다.
돈 욕심이 있었다면, 직접 인신매매범에게 팔아 한몫 챙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나를 형제로 받아들이고, 가족이 되어 주었다.
언제나 친절했던 제임스 형.
PC방, 당구장을 함께 들락거리던 덕배 아재.
함께 만화책을 나눠보던 춘식이 형.
그리고 인생의 많은 것들을 가르쳐 준 작업반장님까지…
피를 나눈 가족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나눠준 선의는 피보다 진했다. 돌이켜 보면,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나는 그들이 나눠준 행복의 십 분의 일도 되돌려주지 못했다.
천사가 내 안에 봉인한 그것, 그것 때문에…
『주마등 한 번 지랄맞게 길구나.』
지하의 봉인이 깨진 뒤, 그것은 호시탐탐 나를 노렸다. 봉인을 부수고, 내 육체를 강탈하려 했다.
『이건 대체 언제 끝나는 것이냐?』
그러나 죽음을 각오한 천사님이 남긴 봉인은 굳건했다. 그것이 아무리 내 몸과 봉인을 쥐고 흔들어도, 봉인은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것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반드시 내 몸을 빼앗겠다는 듯,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힘겨루기를 계속했다. 감각을 빼앗고,잠을 설치게 하고,고통을 심었다…
몇 년이 지나 내가 소년에서 청년이 되고, 그것의 고문에 익숙해진 순간.
우리는 동시에 깨달았다. 내가 죽지 않는 이상, 봉인은 결코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걸.
『삶에 대한 애착이 이렇게 강한 녀석이, 그렇게 아득바득 재미없게 살았단 말이냐?』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그것은 태도를 바꿨다. 봉인을 공격하는 대신, 나를 회유하려 했다.
아담과 이브를 유혹한 뱀처럼, 내 마음속 빈틈을 파고들어 추잡한 유혹을 쏟아 냈다.
돈, 명예, 권력…
나는 애써 그것의 유혹을 외면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녀석의 유혹은 점점 더 구체적으로 변했다.
황금을 원하느냐? 나를 섬겨라. 너를 위한 금광을 만들어주마.
저 무례한 것을 죽이고 싶으냐? 내게 무릎 꿇어라.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힘을 주마.
tv속 여인을 원하느냐? 더 많은 공물을 바쳐라. 그리하면 모든 여인을 네 밑에 깔리게 해주마.
가끔, 삶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질 때… 유혹에 넘어가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끝끝내 견뎌냈다.
소멸을 각오한 천사의 용기와 나를 거둬준 동료들의 선의에 부응하기 위해, 세상을 위…
『그만.』
『이제, 눈을 뜰 시간이다.』
『나의 간택자.』
***
서늘한 밤공기가 얼굴을 감쌌다.
오랜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목 주위가 뻐근했다. 그리고…
‘…썩은내?’
쇠똥구리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아직 아침이 오지 않은 것인지, 주변은 온통 어둠뿐이었다.
“여긴 어디야… 반장님? 제임스 형? 모두 어디 있어요?”
그는 땅을 짚고 일어나려다가, 흠칫 몸을 굳혔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촉… 너무나 익숙한 그 감촉에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이런, 젠장.’
쇠똥구리는 그제야 자신이 시체 더미 위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당황을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이 서서히 어둠에 적응하면서, 대략적으로나마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창고처럼 보이는 공간 가득, 어마어마한 양의 시체가 빼곡히 쌓여 있었다. 적게 잡아도 수백 구, 많으면 천 구가 넘을 정도였다.
‘…내가 대체 왜 이곳에 있는 거지?’
쇠똥구리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계속 머리를 굴렸다. 여긴 대체 어디고, 나는 왜 이곳에 있으며, 동료들은 어디에 있는가?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 정신을 잃기 전에 무슨 일을 하고 있었지?’
기억이 마치 끊어진 필름처럼 흐릿했다. 이 이상 고민해봤자 답이 나올 거 같지 않았다.
그는 우선 이곳을 벗어날 생각으로 시체 더미에서 내려왔다. 아니, 내려오려고 했다.
내려가기 위해 붙잡은 시체의 손가락에 걸린 무언가를 본 순간, 쇠똥구리의 시선은 그곳에 박혔다.
시체의 손가락에 끼워진 금반지.
“이거….”
그건 덕배 아저씨가 어머니의 유품이라며 애지중지하던 반지와 닮아있었다.
“…그냥 닮은 거겠지.”
익숙한 작업복, 자신과 똑같은 방독면…
“설마.”
쇠똥구리는 스스로도 믿지 않는 말을 중얼거리며 시체를 들어 올렸다.
시체는 가벼웠다. 이렇게 가벼운 시체가 앉은 자리에서 고기를 5인분을 먹어 치우던 덕배 아저씨일 리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전부 들어 올리고 나서야, 쇠똥구리는 시체가 무언가에 잘려 반밖에 남지 않은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아냐.’
쇠똥구리는 모든 증거를 부정하며 조심스레 시체의 방독면을 벗겼다. 곧이어, 끔찍한 진실이 그를 마주했다.
“덕배, 아저씨…?”
언제나 웃고 있던 덕배 아저씨의 얼굴이 거기 있었다. 그러나 사후 경직으로 딱딱하게 굳은 얼굴에 웃음 따윈 없었다.
공포와 고통.
죽기 직전, 그가 느꼈을 감정들이 그대로 박제되어있었다.
“….”
쇠똥구리는 자신도 모르게 주변의 시체들을 확인했다. 그가 깨어난 자리 주변에는, 방독면과 작업복을 입은 청소부들의 시체로 가득했다.
“제임스 형? 춘식이 형…?”
시체로 다가가 방독면을 벗기자, 익숙한 얼굴들이 드러났다.
제임스의 시체는 목에 구멍이 뚫려있었다.
춘식이 형은 가슴을 길게 베였고, 작업반장님의 시체는… 차마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꾸, 꿈인가? 이, 이거 꿈이지?”
어째서일까, 갑자기 몸이 으슬으슬 추웠다. 쇠똥구리는 자기 몸을 끌어안고, 꿈이 끝나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내일이 월급날인데, 빨리 깨어나야 하는데…”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꿈은 끝나지 않았다.
“…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깊은 곳에 잠겨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오늘따라 지랄이 심했던 소장, 처참했던 현장, 빨갱이 엘프와 양아치들의 시체, 그리고…
볼에 튄 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피식거리던, 그 얼굴.
“…플레이어.”
누군가 망치로 후려친 거 같은 충격이 머리를 강타했다.
TV 너머에서나 보던 초인의 움직임, 비명을 지르는 동료들, 울리지 않는 경보기, 그리고 목을 찌르는 칼날.
죽음 직전의 마지막 기억은 조각난 도자기의 파편처럼 쇠똥구리의 뇌를 찔렀다.
“나, 난 죽었는데…?”
마지막 순간의 기억을 떠올린 쇠똥구리는 자기 목을 더듬었다.
말라붙은 피딱지가 가득 잡혔지만, 그뿐이었다. 칼에 베인 상처는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목이 잘리지 않았던 것처럼.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뒷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낯선 인기척과 함께 뚜벅 뚜벅 발소리가 들려온 탓이었다.
쇠똥구리는 입을 다물고, 조심스레 시체 더미 사이에 몸을 숨겼다. 나쁜 예감이 그의 등줄기를 쓸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