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203)
을 위한 세계는 없다-203화(203/817)
〈 203화 〉 마지막에 남는 것 (3)
* * *
***
톈린은 놀람과 반가움이 반반 섞인 표정으로 여명을 맞이했다.
“팀장 아니고, 일 번팀 말단이라니까.”
가벼운 그 태도 때문인지, 여명의 얼굴을 못 알아본 용병들도 팔짱을 끼거나 무기를 내리며 상황을 지켜봤다.
수십 명을 일시에 제압한 초인을 대하는 것치고는 부드러운 분위기.
톈린은 여명이 내린 리무진과 마찬가지로 리무진에서 내린 산초, 그리고 다시 여명을 차례대로 바라본 뒤 말했다.
“너야말로 여긴 왜 온 거냐? 지구로 돌아간다고 하지 않았어?”
“부탁받은 일이 있습니다.”
“부탁이라, 우린 의뢰를 받았는데.”
그렇게 말한 톈린은 단장이 있는 건물을 향해 턱짓했다.
“이곳에 있는 전범을 잡으러 왔다.”
전범? 예상치 못한 단어에 여명이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가만히 듣고 있던 외눈 안경의 드워프, 제푼이 버럭 소리 질렀다.
“전범이라니! 단장이 어째서 전범이란 말이냐!”
톈린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프로방스 자치령에서 벌인 잔학행위와괴수를 몰고 와 민간인을 학살하고, 무고한 지구인들을 학살한 죄.”
프로방스 자치령, 그것은 한때 변경백령이라 불린 땅을 말하는 것이었다. 황제가 기사단과 변경백의 뒤통수를 치고, 프랑스에게 넘겨준 땅.
제푼은 외눈 안경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인상을 구기며 톈린을 노려봤다.
“우리가 학살자라고? 괴수를 몰고 와? 지구인들은 진실을 말하면 죽는 병이라도 있는 것인가?”
톈린은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도 안 믿소. 까놓고 말해서, 댁들에게 그럴 능력이 있었는지도 의심스럽군.”
“…뭐라?”
“하지만 우리가 믿고 안 믿고가 뭐가 중요하겠소? 우릴 고용한 씹새들이 그렇게 말하면 그게 진실인 것을.”
제푼은 물론이고, 산초마저 입을 다물었다.
그제야 용병단과 마피아들을 충동질한 흑막의 존재를 깨달은 것처럼.
톈린은 다시 여명을 보며 말을 이었다.
“저 뒤편에, 4층짜리 고급 별장 보이… 어허, 부단장 양반, 그렇게 대놓고 눈 돌리진 말고.”
“….”
곁눈질로 지붕을 확인하던 여명과 달리, 대놓고 지붕을 보려던 산초가 조심스레 고개를 돌렸다.
톈린은 쯧쯧 혀를 차며 덧붙였다.
“저 지붕 위에 CIA 요원이 이곳을 조준하고 있다. 그리고 뒤편에서는 미군들이 포격을 준비하고 있어.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 진짜 미군들이.”
그의 말마따나, 거의 2km정도 떨어진 지붕 위에는 세 명의 인영이 서 있었다.
용병단의 부단장 김만수와 열차에서 만났던 CIA 요원 스칼렛 오하나, 그리고…
…전용섭?
“저 사람이 왜 여기 있습니까?”
기사단원들은 ‘저 사람’이 누구를 뜻하는 건지 몰라 눈을 깜빡이는 가운데, 톈린은 코를 긁으며 대답했다.
“낸들 알겠냐?”
“….”
“뭐… 미국이 이곳에 있는 양반을 생포하거나 죽이고 싶어 하는 건 확실하다.”
미국이란 단어가 나오자 기사단원들의 눈빛이 변했다. 의문과 두려움이 깃든 눈빛이었다.
여명은 잠시 손을 쥐락펴락하다가, 걱정스레 물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이렇게 기밀을 줄줄 불어도 되냐는 질문. 톈린은 피식 웃었다.
“당연히 안 괜찮지. 그러니 싸우는 척이라도 해야 할 거 같은데, 어떠냐?”
“….”
“염동력으로 목을 조르는 건 좀 그렇고… 팔다리 하나씩 부러트리는 게 낫겠어. 어이, 모두 동의하냐?”
갑작스러운 헛소리에 기사단원이 황당한 표정을 짓건 말건, 여명은 고개를 돌려 다른 용병들을 둘러봤다.
여러분들도 동의하십니까? 라는 뜻이 담긴 눈길.
그들은 여명과 톈린을 번갈아 바라본 뒤, 너나 할 것 없이 한숨 쉬며 총을 들었다.
“저 녀석이 누군지, 나중에 똑바로 설명해야 할 거요.”
“이래도 되나 모르겠네. 단장이 화낼 텐데.”
“용병은 딱 받은 만큼만 일하는 거지. 시발 총알값만 주면 당연히 총알만 쏘다 가는 거지.”
톈린은 수군거리는 동료들을 보며 피식 웃은 뒤, 자신도 총을 들며 한마디 덧붙였다.
“이번 임무는 반강제로 하는 거라서 말이야. 페이도 짜고.”
“….”
“그래도 혹시 모르니, 좀 그럴싸하게 싸우자고. 이쪽도 총알 한두 방은 먹여주지. 팔에 한 방, 종아리에 한 방. 어떠냐?”
“아니, 그건 좀…”
“자, 셋을 세면 시작이다. 셋, 둘…”
하나 란 말이 나오기 전에, 여명은 한발 앞서 염동력을 펼쳤다.
그리고 목을 조르거나 팔다리를 부러트리는 대신, 총기를 일제히 날려버렸다.
“…그렇게 총 맞기가 싫었냐? 재생력도 좋은 자식이.”
“죄송합니다. 총소리를 내면 안 돼서.”
“아, 그래? 어쩐지 소음기도 안 주더니만.”
톈린은 그렇게 말하며 뒤로 훌쩍 물러나더니, 마법으로 얼음 칼을 만들며 소리쳤다.
저 뒤편에 있는 미국인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크게.
“협상 결렬! 죽여!”
***
“저건… 대체?”
살짝 당황이 섞인 목소리.
톈린과 여명의 전투를 구경하고 있던 김만수는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한때 한국에서 알아주는 미남 마법사로 불렸던 남자가 그곳에 있었다.
TV 너머로 보던 그의 얼굴에는 세월이 깊게 새겨져 있었으나, 여전히 미중년이라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물론, 김만수는 사내 새끼 외모가 어떻든 관심 없었다. 그의 관심이 쏠리는 건, 전용섭이 여명을 바라보는 눈빛 그 자체였다.
그 속에 담긴 감정…분노? 아니, 그건 당황이었다. 예상치도 못한 존재를 봤을 때의 당황.
스칼렛 오하라도 비슷한 감상을 느낀 것인지, 전용섭의 귓가에 뭔가를 작게 속삭였다.
“열차… 네크로… 불명… 추락한…”
김만수가 귀에 슬쩍 마나를 모아봤으나, 겨우 몇 단어를 주워듣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추락한 별인가 뭔가 하는 단어를 듣자마자, 전용섭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건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대체 추락한 별이 뭐길래 저런 반응을?
김만수는 얼굴로 올라오는 궁금증을 감추기 위해 톈린과 여명의 싸움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바로 그때.
용병 중 하나가 여명을 향해 손도끼를 던지는 게 보였다.
초인이라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속도였으나, 염동력을 피해 바닥을 구르던 톈린이 마법으로 손도끼를 가속 시키는 게 아닌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연계 공격. 여명은 그대로 도끼에 왼 어깨를 내주었다.
이 거리에서도 도끼날이 삼각근을 가르고, 피가 튀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저건 좀 심한 거 아닌가? 꼬맹이를 상대로 적당히 해야지.
김만수는 슬쩍 눈살을 찌푸리다가, 톈린의 다리가 반대로 꺾이는 걸 보고 입을 다물었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격한 전투.
전용섭과 스칼렛 또한 그 전투를 보고 속아 넘어간 건지, 바닥을 구르는 톈린을 보며 혀를 찼다.
“쯧, 미끼 역할도 못 하나.”
“….”
이 새끼가?처음부터 미끼로 쓸 생각으로 불러온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지껄일 줄이야.
어차피 똑같이 한국을 떠난 입장에서, 배신자란 색 안경을 벗고 있던 김만수는 주먹을 꽉 쥐었다.
톈린이 적당히 넘어가서 다행이었다. 최소한의 존중도 없는 놈을 위해 일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김만수가 그렇게 생각하며 침을 뱉던 그때.
전용섭이 군용 핸드폰을 꺼내며 말했다.
“플랜 A는 실패, 플랜 D로 넘어간다.”
“예? B가 아니고요? 자칫하면 민간인 피해가…”
스칼렛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으나, 전용섭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답했다.
“D로 간다.”
그는 군용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스칼렛이 당황하며 소리쳤다.
“대행자님, 재고해주십시오. 아니, 10분만 주십시오! 10분이면 주변 민간인을 전부 대피시킬 수 있습니다!”
스칼렛의 외침이 무색하게, 전용섭은 순식간에 입력을 끝냈다. 그는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스칼렛에게 말했다.
“착각하지 말게, 스칼렛요원. 우리는 고작 사람 몇 명 구하자고 이곳에 온 게 아닐세.”
거기까지 말한 그는 슬쩍 김만수를 보더니, 선심 쓰듯 말했다.
“1분 드리겠소. 용병단원들을 챙겨 물러나시오.”
“….”
대체 뭔 짓을 저지른 건지 모르겠지만, 김만수에겐 따질 권한도, 여유도 없었다. 그는 당장 지붕 위에서 뛰어내리며 무전기를 꺼냈다.
“야, 전부 후퇴해!”
***
단장은 조용히 눈을 감은 채 명상하고 있었다.
평생을 갈고 닦은 날카로운 감각과 마나가 문 앞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려주었지만, 애써 신경을 끊었다.
그는 지금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겨웠으므로.
그러나 정신은 결국 육체에 종속된 것이고, 명상은 뇌를 따라가는 법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망가진 머릿속으로온갖 잡념들이 떠올랐다.
지키지 못한 맹세, 잃어버린 명예, 흔적만 남은 긍지, 그리고… 운명.
그래, 운명.
운명이란, 참으로 야속한 존재였다.
그리고 동시에, 잔혹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성녀님, 대관절 제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운명은 이런 시련을 내린단 말입니까?
평생을 명예와 긍지를 쫓으며 살아온 게 죄입니까? 기사도에 헌신한 삶의 결과가 이것입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소련의 탱크에 짓밟혀 죽었을 겁니다.
하다못해 황제 폐하께 충언을 올리다가 숙청당하는 것도 이것보다는 나았을 테지요.
대체 왜.
왜 성녀님은 사랑을 이루시지 못하고 쓸쓸히 늙어 죽어야 했습니까?
왜 변경백께서는 고향도, 긍지도 잃어야 했습니까?
왜 황제의 핏줄은 우리를 버렸습니까?
왜 민중은 공산주의에 물들고, 귀족과 마법사들은 왜 그리도 멍청했습니까?
왜, 왜, 왜
나는 이렇게 되어야 합니까?
운명이여, 차라리 암에 걸리게 하셨어야지요. 차라리 꼴사납게 죽게 하셨어야지요.
산초, 저 불쌍한 녀석을 보십시오.
녀석은 지구인도, 이 땅의 인간도 되지 못한 채, 평생을 기사로 살았습니다.
행복해질 자격이 있는 자입니다. 맹세를 지키지 못한 저보다 백배 천배 그럴 가치가 있는 자란 말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 나이가 되도록 제 뒷바라지만 하고 있는 겁니까?
혹여 이것이 맹세를 지키지 못한 저의 죄입니까? 그렇다면 저에게만 그 대가를 물으셨어야지요.
지금이라도 맹세를 지키면 되겠습니까?
당장이라도 차원문을 넘어가, 빌어먹을 바게트 새끼들과 치즈 새끼들을 애 어른 가릴 거 없이 토막 내고, 처칠과 드골의 시체를 파내 성녀님을 위로…
“…그만.”
단장은 필사적으로 정신을 붙잡았다. 지금은 때가 아니었으므로.
이제 곧 산초가 동료를 이끌고 와 이 고통을 끝내줄 터였다.
설마 그 동료가 수첩을 넘겨준 이름 모를 꼬맹이일 줄은 몰랐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이대로 정신줄을 놓지 않는다면, 최악의 결말은 피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던 단장의 감각으로, 무언가 날아오는 게 느껴졌다.
너무나 익숙한,포탄의 감각. 평생 그를 괴롭혀온 전장의 기억.
“포격!! 포격이다!! 전원 엄폐해!!!”
이곳에는 듣는 전우도, 참호도 없었으나, 단장은 본능적으로 귀를 막고 소리쳤다.
그는 몸을 말며 생각했다.
저건 현실이 아니다. 환상이야. 치매 증상일 뿐이다…
그렇게 애써 자신을 위로하던 그 순간.
포탄이 그의 방에 직격했다. 기사단 병영과 똑같이 만든 나무 벽이 부서지고, 벽에 걸어 놓은 무구들과 파편이 튀었다.
하지만, 폭발음은 들리지 않았다.
그보다 먼저, 포탄에 새겨진 마법이 단장의 정신을 후려쳤으므로.
아아악!! 사제! 사제님!!
내 다리, 내 다리가…
엎드려!! 엎드리라고 이 병신들아!!!
마법사라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간단한 환상 마법.
단장의 눈은 그 마법을 꿰뚫어 봤으나, 정신은 그렇지 못했다.
마음 속 흉터가 벗겨지며 피 대신 눈물이 흘렀다. 애써 막아 놓았던 광기가 넘실거리며 정신을 장악했다.
잠시 후, 단장은 제미니 시티의 교외지가 아니라, 전쟁터 한 가운데서 눈을 떴다.
단장님!
변경백님이 후퇴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부상자가 너무 많습니다!
죽은 전우들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귀를 울렸다. 단장은 바닥에 굴러다니는 메이스를 높이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모두 후퇴!! 후퇴해!내가 시간을 끌겠다!!”
수십 년 전 전쟁터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
혼탁한 정신, 포탄의 연기 속에서 단장은 후퇴하는 전우들의 정반대 방향으로 뛰쳐나갔다.
전쟁에서 후퇴는 돌격만큼이나 위험한 법.
특히 총기를 들고 뒤를 쫓는 지구인들에게 후퇴하려면 초인들의 엄호는 필수였다.
그렇기에, 단장은 가장 먼저 만난 지구인을 향해 메이스를 휘둘렀다. 단 한 명의 전우라도 더 살리기 위해서.
쩌엉!!
마나가 가득 담긴 메이스가 총과 충돌하며 공기를 찢어발기고, 지구인을 저 멀리 날려버렸다.
“부단장님!”
두꺼운 철판조차 찌그러트릴 위력의 공격. 하지만아쉽게도 상대는 죽지 않았다.
힘을 이기지 못해 저 멀리 날아가 바닥을 구르긴 했지만, 숨을 헐떡이는 게 보였다.
지구인이 이만한 공격에 죽지 않았다고? 설마?
“기어코 마나를 다룰 수 있게 되었구나!”
단장은 경악하며 메이스를 꽉 쥐었다.
“역겨운 폴루 새끼들! 도둑질한 영약으로 거짓 기사를 만든 것이냐?”
어쩌면 이곳이야말로 자신이 죽을 전장일지 모른다는 작은 기대감을 느끼면서.
‘잠깐, 기대감?’
단장이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눈살을 찌푸리는 사이, 누군가의 검이 그의 목을 노리고 떨어졌다.
훌륭한 기습이었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다. 단장은 검이 다가오는 걸 느끼자마자 허리를 뒤로 빼며 메이스를 넓게 휘둘렀다.
!
검날과 메이스가 부딪히며 생겨난 충격파가 바람을 만들고, 주변을 집어삼켰다.
서로의 마나가 뒤섞이고, 밀리는 가운데, 녀석과 단장은 거의 동시에 후속타를 준비했다.
튕겨 나간 반동을 억누르고 재차 찔러 들어오는 검.
단장은 그 검에 맞춰 메이스를 휘두르는 대신, 둔기의 장점을 살렸다.
그는 메이스의 무게 중심을 이용해 한발 앞서 발을 뻗었다.
퍼엉!
옆구리를 차인 녀석은 가죽 터지는 소리를 내며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위력이 어찌나 강한지, 녀석은바닥을 두어 번 구르고, 벽에 처박힌 뒤에야 멈출 수 있었다.
좋아, 한 놈 처리했…
단장이 그렇게 생각하며 다음 적을 향해 고개를 돌리려는 그 순간.
벽에 처박힌 녀석이 벌떡 일어났다. 머리와 어깨 위에 쌓인 건물 파편이 부스스 떨어졌다.
“…끼어들지 말고, 바로 후퇴하세요.”
녀석의 말을 들은 다른 지구인들이 무어라 소리쳤으나, 단장의 귀에는 잘 들리지 않았다.
저 녀석도 자신처럼 전우를 위해 시간을 끌려는 건가?
명예를 아는 적이라, 드디어 저런 지구인을 만나는군. 단장은 웃으며 메이스를 들어 올렸다.
“난 제국 기사단의 단장이자, 고귀하신 황제 폐하의 으뜸가는 검이다. 그쪽은?”
그러자 황금색 눈동자를 가진 지구인은 퉤,피 섞인 침을 내뱉으며 검을 들었다.
“…천여명.”
“이명이나 계급은 없나?”
“….”
“이거 원, 격이 맞질 않는군.”
천여명이란 녀석은 잠시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다른 동료들이 도망치는 걸 보며 대답했다.
“이달의 청소부, 용의 해방자, 코르부스의 제자, 그리고… 성녀의 엉… 음, 이건 아니고…”
노골적으로 시간을 끌려는 게 보였지만, 단장은 상대를 비난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그의 동료들이 도망갈 시간을 버는 것이기도 했으니까.
잠시 후, 여명이란 놈이 말했다.
“…세티의 연인.”
“멋지군. 이 싸움이 끝나면, 내가 직접 그쪽 연인에게 꽃 한 송이 보내주마.”
낭만적인 선언과 동시에, 두 사람은 그대로 땅을 박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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